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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서양의학의 선구자 지석영과 오긍선

“우리 가족을 실험해야 남에게 쓸 수 있지 않느냐”

근대 서양의학의 선구자 지석영과 오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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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법은 이미 오래전에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1749~1823)가 소젖 짜는 여인들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 것을 보고 천연두에 걸린 소에서 고름을 빼내서 1796년 접종에 성공한 것이 시초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지석영이 처남에게 접종을 한 1879년 12월6일을 효시로 본다. 총독부는 1928년 12월6일 종두 50주년 기념식에서 지석영을 표창했고, 그 기관지인 매일신보는 지석영을 대서특필했다. 비록 지석영이 일본으로부터 우두법을 도입하고, 일제가 이를 선전의 도구로 이용한 면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지석영의 업적이 평가절하될 순 없다.

지석영은 1855년 서울의 가난한 선비 집안에서 4남으로 출생해 한의사 박영선에게 한문과 의학을 배웠다. 중인 출신 한의사의 가르침이 그의 사상 형성과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위창 오세창도 중인 역관 집안이었듯, 조선말의 중인은 개화된 문물을 먼저 받아들인 계층이었기에 당시 부패한 양반 정치에 대한 개혁 의지가 강했다. 지석영은 스승 박영선이 일본 수신사 일행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입수한 ‘종두귀감’을 접하고 서양의학에 눈을 떴다.

당시 조선에서는 천연두로 인해 많은 어린이가 생명을 잃었는데 마땅한 치료책이 없어 그저 무당굿으로 치료를 대신할 뿐이었다. 지석영은 종두법을 배우려고 해도 가르침을 받을 사람이 없었다. 마침 부산에 일본 해군 소속의 서양식 병원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서울에서 걸어서 20여 일 만인 1879년 10월에 부산에 도착했다. 병원을 찾아가 필담으로 뜻을 전하자 일본군의(軍醫)는 지석영의 열의에 감동해 종두법을 가르쳐줬다. 지석영은 이때 서양의학의 필요성을 절감함과 동시에, 배움의 대가로 조일(朝日)사전 편찬 작업을 도와주면서 국문법에 대한 관심도 갖게 됐다. 2개월 후 병원을 떠나면서 3병의 두묘(痘苗)와 종묘침 2개, 접종기구, 서양의학 서적 몇 권을 받고 귀경길에 충주군 덕산면의 처가에 들러 접종을 실시해 성공한 것이었다.

종두법의 위기

근대 서양의학의 선구자 지석영과 오긍선

지석영 선생의 사망 이틀 후 동아일보. (1935년 2월3일자)

그러나 많은 사람에게 우두를 접종하기 위해서는 두묘의 지속적인 확보가 필요한데, 두묘 제조법을 알기 위해 지석영은 1880년 7월 제2차 수신사 김홍집 일행에 섞여 일본에 들어간 뒤, 1개월만에 두묘 제조법을 완전히 습득했다. 귀국 후 지석영은 종두장(種痘場)을 차려 우두접종사업을 본격적으로 실시했다. 그러나 1882년 임오군란 때 지석영의 종두법은 한때 위기를 맞았다. 무당과 수구파들은 종두법이 개화운동이라며 종두장을 불태워버렸다. 당시 수구파의 논리는 그들이 올린 상소문에 잘 나타나 있다.



‘“…흉악한 지석영은 우두를 놓는 기술을 가르쳐준다는 구실로 도당을 유인해 모았으니 또한 그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의 형 지운영은 외국에서 사진 기구를 사 온다고 핑계대기도 하고, 김옥균의 무리를 생포해 오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지만 바다 건너에 출몰하며 도리어 역적의 부류와 내통해서 은근히 나라를 팔아먹는 짓을 일삼았습니다. 신기선, 지석영, 지운영 등을 다 같이 의금부로 하여금 나국(拿鞠 ·잡아다 심문함)하여 진상을 밝혀내도록 하여 속히 국법을 바로잡으소서…” 하니, 고종이 대답하길, “정말로 여론이 그러한가? 끝에 첨부한 문제에 대해서는 유념하겠다”고 하였다.’(1887년. 왕조실록 고종 24년 4월26일)

종두법은 그가 펼친 개화운동중 대표적인 것이지만, 그 외에도 서양의학의 도입과 이용후생에 유익한 서적 및 기계의 도입 등을 나라에 상소했고, 농서 ‘중맥설(重麥說)’, 의학서 ‘신학신설(新學新說)’ 등을 저술했다.

또 1883년 그는 자신의 꿈을 펼칠 날개를 얻기 위해 과거에 급제, 관직에 나아갔다. 수구파에 의해 유배를 가는 고난도 있었지만 1894년 김홍집 내각이 들어서자 지석영은 형조참의, 승지, 한성부윤, 동래부사 등에 중용돼 개화정책에 참여했고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접종을 받도록 하는 종두법을 1895년에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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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수필가, 번역가 japanli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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