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라(Hola)! 정말 점심 먹으러 왔네.”
식당 주인이자 요리사인 이스팔도와 끌라라가 살갑게 맞이한다. 식탁도 의자도 없는 식당. 바에 음식을 올려놓고 서서 먹는다. 이스팔도가 가게 문 밖에서 손님을 기다릴 때 앉는 의자를 권한다. 접시에 밥과 삶은 콩, 고기 한 조각, 얇게 썬 토마토와 상추가 담겨 있다. 맛있게 먹어치우자 로사의 얼굴이 활짝 펴진다.
뜨리니닷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꾸바의 주요 관광 명소다. 그 중심부인 마요르 광장 옆 노천극장 ‘까사 델 라 무시까(Casa de la Musica)’에선 매일 밤 10시에 공연이 시작된다. 내 옆에 거리를 두고 혼자 앉아 있던 아라베이즈(30)와 인사를 했다. 그녀의 고향은 시에고 데 아빌라. 볼일이 있어 며칠 전부터 이곳의 내국인용 민박에 머물고 있다. 낮에 길에서 봤다며 반가워한다. 내일 안꼰 해변에 같이 가기로 했다.

아바나 광장의 춤추는 여인.
이튿날 오전 이발소를 찾았다. 꾸바의 영화를 보면 이발소 풍경이 자주 나오는데 실제 어떤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대와 달리 그곳의 이발사는 퉁명스럽기 그지없다.
“이발료는 5cuc요.”
“왜 그리 비싸지오?”
“여긴 정부에서 정식으로 허가를 받은 이발소니까.”
“그럼, 당신 머리처럼 깎아줘요.”
오전 11시, 아라베이즈를 만나러 공원에 갔다. 그녀는 약속시간 30분이 지나서야 나타났다. 어머니와 통화하느라 늦었다는데 사과는 없다. 11시10분에 셔틀버스는 이미 떠났기에 맞은편 호텔에서 택시를 불러 탔다. 에어컨이 고장 난 현대자동차의 엘란트라.
“자연적인 게 좋아.”

동양인이 아름다운 꾸바 여자와 같이 해변에 들어서니 금방 눈에 띄는 모양이다. 여기저기 수군대는 기척. 돈 많은 동양남자가 꾸바나를 돈으로 산 걸로 보는 걸까.
“경찰들도 외국인과 꾸바 여자가 같이 있는 걸 싫어해.”
그녀 역시 그런 시선들이 불편한 모양이다.
그녀에게 mp3로 한국노래를 들려줬다.
“한국 노래 어떠니.”
“아주 슬퍼(muy triste).”
“춤출 줄 알아?”
“물론. 난 꾸바나야.”
홀로 술에 취해 노래 부르다
아무것도 안 해도 지루하지 않다. 카리브 해의 미풍과 햇빛만으로 충분하다. 아니 차고 넘친다. 게다가 꾸바 친구까지 옆에 있지 않은가.
“앞으로 무얼 하고 싶니, 무엇이 되고 싶어? 넌 아직 젊잖아.”
“음. 리, 너는?”
꾸바 여자도 이렇다. 곤란한 질문을 받은 여자는 대개 같은 질문으로 답한다. 카리브 해에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목만 내놓고 두 팔을 벌린 채 수평선을 향해 오줌어뢰를 쏘았다.
“사람들이 없다면 발가벗고 수영을 할 텐데.”
“하하, 물고기가 거길 떼어 먹을 텐데?”
“무슨 색을 좋아하니.”
“분홍.” 그녀가 엉덩이 쪽 팬티를 보여준다.
“…….”
“선블록 크림 발라줄까?”
“고맙지.”
그녀가 내 왼팔과 가슴, 오른팔에 차례로 크림을 발라준다. 난 이제 영락없는 동양인 졸부로 보일 거다.
“이번엔 네 차례.”
“난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