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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 피해 숨어든 가톨릭 은자(隱者) 마을

일본 나가사키

박해 피해 숨어든 가톨릭 은자(隱者)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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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은 한국과 달리 가톨릭이나 개신교 신자 비율이 낮다. 하지만 나가사키에선 16세기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일본의 가톨릭 유적을 만나볼 수 있다. 금교시대 때 섬마을에 숨어 지낸 일본 가톨릭 신자들은 해금 이후 전통 가톨릭과는 다른, 자신들만의 독특한 신앙을 이어왔다.
박해 피해 숨어든 가톨릭 은자(隱者) 마을

다비라 천주교 성당. 20세기 초반 활동한 건축의 대가 데쓰가와 요스케의 대표작이다.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된 유산 뒤에는 무수한 사람의 노력과 시간이 숨어 있다. 등재 초기에는 단일 건축유산을 등재하는 경향이 강했으나, 점차 각 지역의 특성이 부각되는 유산을 등재하거나 여러 유산을 한데 묶어 연속 등재하려는 움직임이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나타났다.

일본은 2015년 등재된 메이지 산업유산을 포함해 19곳이 세계유산 목록에 올라 있다. 4곳은 자연유산이고 나머지는 문화유산이다. 그중 규슈 지방의 나가사키(長崎)는 2015년 산업유산으로 등재된 군함도를 비롯해 여러 세계유산을 보유한 지역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나가사키는 서구를 향해 일찍이 문화를 개방한 곳이자, 제2차 세계대전 때 원폭 투하의 비극이 일어난 곳이다.

이번 호에서는 나가사키 교회군(群)과 기독교 관련 유산(Churches and Christian Sites in Nagasaki)을 중심으로 걷는다. 이 유산은 약 10년에 걸친 준비 끝에 2016년 7월 터키 이스탄불에서 개최되는 총회에서 세계유산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나가사키와 가까운 후쿠오카(福岡) 주변도 함께 둘러본다.

나가사키의 독특한 경관



박해 피해 숨어든 가톨릭 은자(隱者) 마을

야수만다케 산 정상의 석조물.

일본에 기독교가 전래된 것은 1549년 예수회 선교사 프란시스 사비에르(Francis Xavier)에 의해서다. 이후 기독교는 일본 서부 지역에 급속도로 번져나갔고, 포르투갈과 교역하던 항구도시 나가사키가 서양에서 온 선교사들의 주요 거점이 된다. 하지만 도쿠가와 쇼군 시대 들어 반(反)기독교 정책으로 천주교는 엄청난 탄압을 받게 되고, 급기야 1637년 시마바라의 난이 일어난다. 이때 탄압받던 기독교 유적지가 오늘날까지 잘 보존돼 있다.

일본 가톨릭 신자는 현재 약 45만 명이라고 한다. 그중 15%에 해당하는 6만3000여 명이 나가사키에 산다. 교회는 나가사키에 130개, 도쿄에 80개, 오사카에 85개가 있다(일본 전체에 1000개). 일본의 주교좌 교구는 3곳으로 도쿄, 오사카, 나가사키다. 전체 인구 대비 가톨릭 신자는 1%, 개신교는 3.8%에 불과하다. 신도(神道) 및 민족종교가 51.8%이고 불교가 34%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일본인은 교회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신사(神社)에 데려가며, 장례는 불교식으로 치른다’고 할 정도다.

마지막 실사(實査)를 마치고 최종 결정만을 앞둔 등재 후보지는 2곳의 성곽 유적지, 4곳의 마을 및 집락지, 그리고 8개의 교회 건축으로 총 14곳으로 이뤄진 앙상블이다. 지역 분포를 보자면 나가사키 현의 7개 도시, 구마모토 현의 1개 도시에 걸쳐 있다. 이 가운데 이키쓰키 섬(生月島), 히라도의 성지와 집락(平島の聖地と集落), 다비라 천주교 성당(田平天主堂)을 소개한다.

이키쓰키 섬은 고래잡이 전통과 가톨릭 은자(Hidden Christians)로 유명한 섬이다. 히라도 성지와 집락은 가수가 마을과 야수만다케 및 나카에 섬을 포함하는데, 금교(禁) 시대에 천주교도가 집단 거주하던 마을이다. 당시 경관이 잘 남아 있다. 특히 토지 이용 흔적이나 석물, 무덤 등이 잘 보존돼 있어 나가사키 지방의 독특한 경관을 확인할 수 있다. 이키쓰키 섬에서 이키쓰키 대교(生月大橋)를 건너면 서쪽의 해안마을 가수가 마을이 나온다.

가수가 마을

春日集落

가수가 마을은 둘로 구분된다. 하나는 개인 주택이고, 다른 하나는 주택과 연결된 경작지와 묘지, 그리고 이 모두를 잇는 산길이다. 개인 주택에는 ‘난도가미(納神, closet icon)’라는, 장 속에 모시고 몰래 예배 볼 때 사용하는 일종의 성상이 있었다고 한다.

십자가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높은 봉우리 마루오야먀(丸尾山)에도 조그만 돌이 있는데, 이곳에서 신도(神道) 의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언덕 위에서는 바다를 비롯한 주변 경관이 한눈에 보인다. 기독교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집단 무덤지를 발굴해 표시해놓은 것도 볼 수 있다. 에도 시대 때 그린 그림과 비교해보면 경관이 달라진 게 없다고 한다. 19세기에 금교가 해제된 뒤에도 사람들이 가톨릭으로 돌아가지 않아서 교회를 다시 짓지는 않은 것 같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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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조인숙 |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대표 choinsou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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