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선지 부자 농민, 성공한 농민의 이야기를 들으면 뜻밖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번에는 이런 선입관을 깨는 농민, 부자 농민을 만나보고 싶었다. 단순한 부자가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자립한 자유인을 만나고 싶었다.
그런 농민을 만나기 위해 수소문 끝에 알게 된 사람이 민승규 박사다. 농업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삼성경제연구소의 수석연구원이던 그는 2001년 ‘한국벤처농업대학’을 설립했다. 농민들에게 농사를 짓는 일보다 마케팅, 즉 소비자의 마음에 들게 하는 일이 더 중요함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수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는 벌써 8기에 걸쳐 500명의 졸업생을 길러내는 데 성공했다. 그중 상당수는 이미 부자가 됐고, 나머지 사람들도 부자가 되어 가는 중이다. 부자의 유전자를 이식받았으니 부자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 아니겠는가.
지금은 청와대 농업비서관이 된 민승규 박사로부터 당당한 농민 네 분을 소개받았다. 1996년 충남 예산에서 가나안농장이라는 이름으로 돼지 사육을 시작한 이연원(43) 대표. 그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무항생제 돼지 사육에 성공하면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지금은 축산 분뇨의 퇴비화에 전념하고 있다.
또 한 사람은 쌀의 생산 및 가공, 유통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체제를 이룩한 (주)PN라이스 나준순(53) 대표. 1986년 부산에서 3평(9.91m2)짜리 쌀가게로 출발해서, 지금은 쌀의 위탁 재배까지 사업 범위를 확대했다. ‘5℃ 이온쌀’의 성공에 힘입어 연매출 250억원의, 그야말로 본격적인 농업기업이 되었다. 한국의 카길(다국적 농업·식품 기업)이 되겠다고 기염을 토하는 그는 일과 도전의 즐거움에 흠뻑 빠져 있다.
다른 두 사람은 경기도 양평에 있는 가을향기 농장의 김영환(51)·박애경(50) 공동대표다. 12년 전 귀농해서 농사를 시작한 이들 부부는 유기농작물로 간장, 고추장, 된장을 만들어 소비자의 호평을 받고 있다. 김영환 대표는 손수 시(詩)를 지을 정도로 감성적이며, 박애경 대표 역시 고객과의 교감을 중시하는 농업 기업가다.
금산의 한국벤처농업대학 강의실을 찾던 날, 1박2일간 계속된 주제는 ‘농산품에 스토리를 입혀라’였다. 거기에 참석한 네 분을 만나서 그들의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농산품에 스토리를 입혀라’
▼ 김정호 신동아 독자 여러분께 작가의 사업에 대해서 설명 겸 자랑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연원 저는 가나안농장이라는 돼지 농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100% ‘무(無)항생제’유기돼지를 키우고 있지요.
▼ 김정호 돼지가 병에 걸려도 항생제를 쓰지 않는다는 말인가요?
▼ 이연원 그렇습니다. 항생제를 쓰는 대신 병 걸린 돼지를 격리시켜 치료합니다. 사료에 항생제를 넣지 않는 건 물론이고요.
▼ 김정호 돼지가 돌림병에라도 걸리면 큰일일 텐데요. 어떻게 그런 과감한 결정을 하신 거죠?
▼ 이연원 사실 항생제로 돼지를 키우면 생산량을 증대시킬 수 있어 편합니다. 하지만 저는 단순한 생산량보다는 질과 맛을 높여, 소비자를 행복하게 만들어드리고 싶었습니다. 또 축산은 냄새나는 혐오 산업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벤처농업대학을 알게 됐고, 거기서 농업도 그저 생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를 감동시켜야 한다는 원리를 배우게 되었지요. 그래서 무항생제 돼지를 기르게 된 겁니다. 소비자를 위해야 축산에도 미래가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