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호

결승선 없는 마라톤 ‘몬주익 영웅’은 없었다

‘이동통신 올림픽’ 바르셀로나 ‘MWC 2012’ 가보니

  • 바르셀로나(스페인)=배수강 기자│bsk@donga.com

    입력2012-03-21 14: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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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월 27일~3월 1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세계 최대 통신 전시회인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2’가 열렸다. ‘이동통신 올림픽’으로 불리는 MWC에는 세계 1400여 업체가 참여해 전자기기와 통신이 쉴 새 없이 융합하는 IT쇼를 벌였다. 잠시 머뭇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첨단 전쟁’, 그 속에서 글로벌 기업들은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전시장이 내려다보이는 몬주익 언덕은 고즈넉이 1992년 황영조의 월계관만 기억할 뿐.
    스페인 바르셀로나 남쪽 바닷가에 위치한 작은 언덕 몬주익(MontJuic). 해발 213m의 야트막한 몬주익은 ‘유대인의 산(언덕)’이란 뜻의 고대 카탈루냐어에서 유래했다. 중세에는 유대인이 많이 모여 살았다. 지중해 포트벨 항구를 뒤로하고, 산 중턱에 올림픽 주경기장과 카탈루냐 국립미술관(MNAC·Museo National D‘Art Cataluna)을 품었다. 서울 남산(해발 262m)에 잠실 주경기장을 옮겨온 느낌이다.

    우리에게 몬주익 하면 황영조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올림픽 마지막 날인 1992년 8월 9일. 족저근막염으로 발바닥 통증이 심했던 황영조는 한때 포기할 생각도 했지만, 결국 72개국 112명의 선수와 함께 출발선에 섰다. 5㎞ 정도 달리다 보니 발바닥 통증도 사라졌다. 생각보다 컨디션도 괜찮았다. 선두 그룹을 유지하며 신중하게 레이스를 펼치던 황영조는 30㎞ 지점을 통과할 즈음 스퍼트를 했다. 선수들이 하나둘 뒤로 밀려났고, 황영조와 김완기, 그리고 일본의 모리시타 고이치가 선두그룹으로 나섰다. 3㎞를 더 달리자 김완기가 처졌다. 황영조와 모리시타의 맞대결.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끈질기게 따라붙는 고이치를 견제하며 그는 이를 악물고 달렸다. 결승선 3㎞가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승부는 갈렸다. 몬주익 언덕에 올라선 황영조가 내리막길에서 스피드를 끌어올리며 내달렸다. 고이치는 조금씩 뒤처졌고, 황영조는 몬주익 스타디움에 홀로 들어섰다. 트랙을 돌고 두 팔 번쩍 들어 올리며 결승선에 들어선 황영조. 8만여 관중은 기립박수로 ‘몬주익 영웅’을 맞았다.

    그로부터 20년 뒤, 몬주익은 다시 영웅을 맞이하고 있었다. 황영조가 뛴 몬주익 언덕에는 삼성, LG 등 세계 1400여 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지난하지만 치열한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격한 호흡과 결승선 없는 마라톤이다. 잠시 주춤하면 곧바로 뒤처지는 ‘이동통신 올림픽’ 말이다.

    황영조와 모리시타

    세계 최대 통신 전시회인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2’가 개막한 2월 27일, 기자는 개최지인 스페인 바르셀로나 MWC 전시장을 찾았다. ‘이동통신 올림픽’으로 불리는 MWC는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국제소비자가전쇼(CES), 9월 독일 베를린의 국제가전박람회(IFA)와 함께 세계 3대 IT 전시회로 꼽힌다.



    올해 전시장은 지중해를 등 뒤로하고 두 팔을 벌린 몬주익 앞쪽 스페인 광장에서 카탈루냐 국립미술관까지 이어진 레니아 마리아 크리스티나 거리 양측에 마련됐다. 전시장 대부분은 평지에 설치됐지만 이 중 6,7관은 6차선 도로를 건너 카탈루냐 국립미술관 앞마당에 마련됐다. 황영조의 몬주익 언덕과는 걸어서 10~15분 거리다.

    MWC는 1987년 ‘GSM 월드 콩그레스’로 시작했다. 행사를 주최하는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는 세계 이동통신 업계를 대변하는 단체로, 219개국 800여 이동통신 사업자와 200여 단말기 제조업체, 소프트웨어 업체 등이 속해 있다. 처음엔 통신사 주도의 소규모 전시회였다가, 2008년부터 지금의 명칭으로 바꾸면서 급성장했다.

    이동통신 분야의 최첨단 기술과 서비스·통신기기가 소개되기 때문에 미래의 기술 발전을 가장 빨리 접할 수 있는 전시회다. 입장료가 100만 원대이지만, 각국 기업 관계자들과 관람객들이 줄을 서 입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럽 인근 도시에서 바르셀로나로 가는 항공권은 이미 행사 수개월 전 동이 났다.

    중국에서 온 블로거 저우펑(周鵬) 씨는 “스마트폰 시장이 급부상하고 있고, 전자기기와 통신이 쉴 새 없이 융합하는 IT 분야를 예측하려면 반드시 MWC를 찾아야 한다”며 “폐막일(3월 1일)까지 샌드위치를 먹으며 전시장도 돌아보고 각종 콘퍼런스에 참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MWC 대회전 ‘8관’

    결승선 없는 마라톤 ‘몬주익 영웅’은 없었다

    글로벌 브랜드들이 모인 8관에는 각국 취재진과 관람객들로 붐볐다.

    그의 말처럼, MWC 전시장에는 한국의 삼성·LG전자와 SK텔레콤, 미국의 인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모토로라, 퀄컴, 대만의 HTC, 일본의 소니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모바일 브랜드들이 모여들었다. 글로벌 브랜드들이 격돌하는 격전장은 전시관 8관이었다. 삼성전자, LG전자, SK텔레콤은 행사장 입구 오른쪽 8관에 자리했다.

    8관은 전시장 중 가장 넓은 MWC 메인홀이다. 다른 전시관 3개를 합쳐 놓은 대규모 실내 축구장 같다. 그만큼 접근성과 주목도가 뛰어나 행사 참가 업체는 대부분 8관에 부스를 차리길 원한다. 행사 주최 측인 GSMA는 업체 영향력과 기여도 등을 종합해 8관 자리를 배정한다. GSMA 사무국도 8관에 뒀다. “8관을 둘러보면 모바일 업계의 판도를 알 수 있다”는 MWC의 속설이 있을 만큼, 독보적인 전시관이다.

    이번 전시회에선 국내 업체와 함께 미국 인텔, 퀄컴, 중국 화웨이와 ZTE 등이 8관에 입성했다. 그동안 스마트폰 시장에서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노키아는 3년 만에 MWC에 돌아왔지만 입구에서 가장 먼 7관으로 밀려났다.

    그래서일까. 기자가 행사장을 찾은 2월 27~28일 8관은 각국 언론의 취재 경쟁이 불을 뿜었다. 이곳에 전시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작동해보기 위해 10분은 줄을 서 기다려야 했다. 특히 지난해 ‘갤럭시 S2’의 빅히트로 세계 스마트폰 시장 1위로 올라서며 스마트폰 시장을 애플과 양분한 삼성전자와 초기 부진을 딛고 빠르게 상위권에 진입하고 있는 LG전자는 마주 보는 자리에 부스를 차렸다. 관람객들이 양사 제품을 곧바로 비교 체험해볼 수 있는 만큼 정면승부였다.

    572㎡(173평) 규모의 부스를 차린 삼성전자는 ‘감성’을 승부수로 띄웠다. 디지털 기기와 다른 느낌이지만 펜과 노트, 빔을 활용해 관람객의 감성을 자극했다. 지난해 10월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결합한 ‘노트’라는 새 카테고리 제품 ‘갤럭시 노트 5.3’을 선보인 삼성은 이번 전시회에서는 갤럭시 노트를 태블릿PC 크기로 키운 두 번째 노트 ‘갤럭시 노트 10.1’을 공개했다. 출시 4개월 만에 세계시장에서 200만 대가 팔린 갤럭시 노트 5.3의 인기를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전략이었다. 노트 제품은 ‘S펜’이라는 펜을 이용해 화면에 직접 그림과 글씨를 쓸 수 있는 것이 특징. 스마트폰의 화면을 키운 것이 갤럭시 노트 5.3이었다면, 갤럭시 노트 10.1은 태블릿과 펜을 결합했다.

    10.1인치 대화면으로 문서작성과 그림그리기, 필기노트 등 다양한 기능을 지원해 실제 공책에 손으로 글을 쓰는 감성을 줬다. S펜은 꼭지에 지우개가 달린 연필처럼 뒤로 문지르면 지우개가 됐다. 펜은 일반 연필 크기다. 손에 쥐고 쓰는 느낌까지 아날로그 향수를 불러온다.

    애플 최고경영자(CEO)였던 고(故) 스티브 잡스는 “손가락이 최고의 펜”이라며 터치스크린 방식을 고집했지만, 적어도 이날 전시회에서는 그의 방식은 통하지 않았다.

    2월 28일 전시관에서 갤럭시 노트 10.1을 이용해 초상화를 그려주는 이벤트를 할 때에는 관람객 수백 명이 몰려 첨단기기의 ‘감성 향연’에 박수를 보냈다.

    화면이 커진 만큼 한쪽에서 인터넷을 하면서 다른 쪽에선 동영상을 볼 수도 있다. 동영상 강의를 보며 메모하거나,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가며 보고서도 쓸 수 있다.

    미적분 함수 같은 복잡한 수식과 기호를 S펜으로 필기하면 자동으로 인식해 텍스트로 변환해주거나, 도형을 그리면 모양을 자동으로 보정하는 기능이 있어 쉽고 편리하게 글씨 입력이 가능해졌다.

    신종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은 “갤럭시 노트 10.1은 마켓 크리에이터인 삼성전자가 선보이는 또 하나의 혁신 제품이다. 앞으로도 S펜이 탑재된 다양한 갤럭시 노트 제품을 통해 소비자에게 작은 일상에서의 특별한 감성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삼성이 이번 전시회에 선보인 프로젝터 스마트폰 ‘갤럭시빔’은 12.5㎜ 초슬림 디자인에 최대 50인치 프로젝션 화면을 제공한다. 작은 스마트폰에 강의실과 회의실에서나 볼 수 있는 프로젝터빔을 달았다. 강의실뿐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프로젝터빔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침실에 누워 천장에 빔을 쏘아 영화를 보거나, 캠핑장과 연회장, 회의장에서 손쉽게 사진과 동영상을 구현할 수 있게 했다. 현장에서 만난 한 IT 전문가는 “회의실용 프로젝터 빔을 이제 사용자들이 ‘맘껏 갖고 놀라고’ 만든 기능 같다”고 평가했다. 갤럭시 S2와, 최신 구글 OS인 ‘아이스크림 샌드위치(ICS)’를 내장한 보급형 태블릿 갤럭시탭2 등도 호평을 받았다.

    머리 넷 달린 쿼드코어 스마트폰

    하지만 이번 MWC에서 눈에 띈 모바일 흐름은 단연 ‘쿼드코어 스마트폰’이었다. 2010년 싱글코어, 2011년 듀얼코어가 트렌드였다면, 2012년은 쿼드코어였다.

    쿼드코어 스마트폰은 두뇌 역할을 하는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가 4개 탑재된 스마트폰. 휴대전화기가 음성통화를 넘어 동영상 처리와 유무선 정보기기와의 소통, 사이버 공간에 데이터를 올리는 클라우드(cloud) 등 다양한 작업을 처리해야 하는 만큼 두뇌는 최소 4개가 되어야 한다는 웅변이었다.

    두뇌가 4개인 만큼 데이터처리 속도도 빨라졌다. 현란한 그래픽 게임도 스마트폰에서 끊김 없이 즐길 수 있다. 일찌감치 HTC가 쿼드코어 스마트폰을 공개한다고 예고한 만큼 쿼드코어 스마트폰 경쟁은 예견된 터였다. 이번 전시회에서 LG전자와 중국 화웨이, ZTE, 그리고 대만의 HTC 등은 약속이나 한 듯 쿼드코어 스마트폰을 선보였다.

    LG가 선보인 쿼드코어 스마트폰 ‘옵티머스 4X HD’는 엔비디아(NVIDIA)사의 모바일 프로세서인 테그라(TEGRA) 3 쿼드코어 프로세서를 탑재했다. 기존 듀얼코어 스마트폰과 비교해보니 게임 중 물방울과 햇볕 같은 세밀한 표현이 필요한 그래픽이 색 번짐 없이 월등히 좋아졌다. 게임 속 등장인물의 움직임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결승선 없는 마라톤 ‘몬주익 영웅’은 없었다

    LG전자 부스 모습(왼쪽)과 삼성이 선보인 제품들.

    시연용 옵티머스 4X HD는 관람객들이 4개의 AP 사용을 직접 체감할 수 있도록 화면 왼쪽 상단에 프로세서 사용률을 막대로 표시해놓아 쿼드코어의 역할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 4개의 두뇌(AP)를 사용하는 만큼 배터리 소모가 약점이다. 2월 27, 28일 시연에 참여한 LG전자 연구원들에 따르면, 고성능 게임만 연속 시행했을 경우 배터리 수명은 4~5시간 정도라고 한다. 내장 배터리를 2150밀리암페어(mAh)로 키워 효율성을 개선했다지만, 배터리 지속 시간이 짧다는 것은 그만큼 전력 소모가 많다는 얘기다. 그러나 전화나 문자, 저성능 AP를 구동했을 경우 기존 스마트폰보다 2배가량 배터리 수명이 늘어난다는 게 연구원들의 설명이다. 코어가 많아도 배터리 소모를 줄일 수 있는 것은 4개의 기본 AP 외에 숨어 있는 프로세서, 일명 ‘닌자 코어’에 있었다. 평소에는 4개의 코어 대신 ‘컴패니언 코어’ 1개로만 작동해 배터리를 최대한 적게 쓰도록 했다는 것. 교과서처럼 4대 3 비율의 5인치 스마트폰 ‘옵티머스 뷰’도 눈길을 끌었다.

    LG전자는 ‘옵티머스 4X HD’를 2분기 내 유럽 등 해외 시장서 먼저 출시한다. LTE를 주력 제품으로 하는 국내시장에서 출시할지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

    HTC 역시 LG와 같은 엔비디아의 테그라 3 프로세서를 탑재한 쿼드코어 스마트폰 ‘원X’를 선보였다. 화웨이는 엔비디아가 아닌 자체 개발한 프로세서를 탑재한 LTE폰 ‘어샌드D 쿼드’ 2종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삼성 측은 이번 전시회에 쿼드코어폰을 출시하지 않았지만, LG전자가 옵티머스 4X를 곧 출시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상반기 중 출시 목표로 한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단언컨대 때가 되면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일 것”이라고 자신했다.

    중국의 대약진, 전통 강자의 몰락

    쿼드코어와 함께 이번 전시회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중국 업체의 대약진과 ‘전통 강자’ 노키아와 모토로라의 퇴보였다. 중국의 화웨이는 구동 속도가 가장 빠른 폰 ‘어샌드D 쿼드’와 6.68㎜로 가장 얇은 스마트폰을 선보였고, ZTE도 7.8㎜ 두께의 쿼드코어폰과 4G 게임을 이용할 수 있는 LTE폰 등 8종을 선보여 만만찮은 기술력을 과시했다. 삼성, LG 등과 비교해 화면 넘김 같은 미세한 성능은 조금 떨어졌지만, 한국 업체의 기술수준에 턱밑까지 추격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2월 27일 전시관을 방문한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도 ‘갤럭시 S3’를 내놓지 않은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런(MWC) 전시회에서 핵심 제품을 공개하면 경쟁사가 기술을 다 베껴간다. MWC에서 제품 공개는 양념에 불과하다. 정작 중요한 것은 다른 업체와 비즈니스 미팅”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옆에 부스를 차린 화웨이, ZTE 등 중국 업체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됐다.

    스마트폰 시대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2년간 MWC에 불참했던 세계 최대 휴대전화 제조사 노키아는 이번 대회에서 자존심 회복에 나섰지만 반응은 썰렁했다. 노키아는 윈도폰 계열의 초저가 스마트폰(루미아 610)을 선보였지만, ‘대세’인 쿼드코어폰이나 LTE 단말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입구에서 가장 먼 7관에 배정받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다만 4100만 화소 카메라를 탑재한 휴대전화를 공개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보통 스마트폰에 내장된 카메라는 500만~800만 화소. 3.2인치인 루미아 610은 2분기 중 189유로(약 27만 원)에 판매할 예정이라고 노키아 측은 설명했다.

    모토로라는 8관 입성에는 성공했지만, 신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예년보다 부스 크기도 절반으로 줄어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는 모바일 업계의 현실, 순간 방심하면 곧바로 뒤처지는 IT 업계의 현주소였다. 행사에 참여한 한 애널리스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예전 노키아와 에릭슨 등의 회사들이 삼성, LG가 치고 올라갈 때 ‘이놈 봐라’하는 반응을 이젠 한국 업체가 하고 있다. 중국 제조업체는 빠른 적응력과 물불 가리지 않고 경쟁사 기기의 장점을 흡수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추격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지난해만 해도 ‘아직 멀었구나’ 했는데 올해 보니 머지않아 우리를 위협할 존재임이 분명하다. 반면 ‘전통 강호’ 노키아와 모토로라는 잠시 주춤하더니 이젠 변방으로 밀려난 느낌이다. 잠시 졸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분야가 모바일 분야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차세대 통신기술도 주요 관심사였다. GSMA는 이번 MWC에서 차세대 통합 커뮤니케이션 서비스인 ‘RCS(Rich Communication Suite)’를 공식적으로 상용화한다고 선언했다. ‘조인(Joyn)’이라는 이름이 붙은 RCS는 음성통화나 채팅을 하면서 동영상이나 사진을 전송하고, 주소록에서 상대방과 실시간 채팅을 하는 등 한번에 여러 가지 통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차세대 통신 서비스. 기존 음성통화 중심의 휴대전화가 ‘손 안의 PC’라는 스마트폰으로 진화하면서 통신기술도 함께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모바일을 재정의하라(Redefining Mobile)’는 이번 전시회 주제를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SK텔레콤은 8관에 마련된 자사 전시장에서 RCS 서비스를 시연했다. SK텔레콤은 GSMA의 RCS 국제 표준화·상용화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3세대(3G) 또는 롱텀에볼루션(LTE) 망과 와이파이 망을 동시에 사용해 데이터 전송 속도를 최대 100Mbps까지 높이는 ‘하이브리드 네트워크 솔루션’을 선보여 해외 통신사, 장비업체들로부터 주목받았다. 양현미 KT 전무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제조사가 통신망 투자비 대라”

    결승선 없는 마라톤 ‘몬주익 영웅’은 없었다

    다양한 ‘스마트폰 앱’이 전시된 7관 전경.

    “4년째 GSMA에서 공통 RCS 기반을 만들고 있고 ‘조인(Joyn)’이라는 공통 브랜드를 모든 사업자가 함께 쓰기로 합의했다. 한국에서 이통 3사가 참여해 올해 상용화할 예정이다. 외국 사업자와도 공동 서비스를 할 예정이어서 훨씬 파워풀해질 것이다.”

    SK텔레콤과 KT, LG U+ 등 국내 이통 3사가 상용화를 예고한 VoLTE(Voice over LTE)도 눈길을 끌었다. LTE 데이터망으로 음성통화를 제공하는 VoLTE. LG는 음성통화를 하는 중간에 고화질 영상통화로 전환하거나,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는 화면을 상대방에게 전송하는 등의 다양한 VoLTE 기술을 선보였다.

    스마트폰 발전 속도만큼 세계 이동통신사들은 데이터 트래픽 급증에 대한 문제 해결책을 놓고도 머리를 맞댔다. 각국 이동통신사들은 망을 이용하는 사업자가 트래픽에 대한 부담을 나누고, 망을 이용함으로써 얻는 수익을 공유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인도 바티 에어텔(Bharti Airtel)의 수닐 미탈 회장은 MWC 기조연설에서 “통신사는 망을 이용하는 사업자(OTT)에게 합리적인 망 이용 대가를 부과하고, 망 투자비용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유튜브, 구글, 페이스북 등 망을 이용하는 사업자가 대가를 내지 않으면 그 비용은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새로운 모델을 구축하기 위한 논쟁을 시작하자는 주장이었다. GSMA 이사회에 참석한 하성민 SK텔레콤 사장도 “망 관련 논의의 강도가 점점 세지고 있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공룡들의 대전 속에 국내 IT 중소기업들의 빠른 발놀림도 눈에 띄었다. 코트라(KOTRA) 지원으로 마련된 ‘한국관’에는 국내 중소기업들이 참가해 해외 시장 공략을 준비했다. 한글과컴퓨터는 소프트웨어인 ‘씽크프리’와 ‘한컴 오피스’ 등을 전시했고, 성균관대 스마트융합디자인연구소(SMARDI)의 지원을 받은 중소업체들도 다이어트·운동 신체반응 측정기, 3D 얼굴인식 프로그램 등을 선보였다. 이들 업체들은 “코트라를 통해 상담 신청을 받거나 직접 해외 업체들과 만나면서 상담하고 있다”며 해외 진출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한편 삼성전자는 2월 28일 MWC 2012 ‘최고 스마트폰상’과 ‘최고 휴대폰 기업상’을 수상해 2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올해 최고의 스마트폰상 후보에는 갤럭시 S2, 갤럭시 넥서스를 포함해 애플 아이폰4S, HTC 디자이어S 등이 올라 경합을 벌였지만, 지난해 1000만 대 이상 판매한 갤럭시 S2의 판매 호조에 힘입은 삼성전자가 영예를 안았다. 2007년 ‘최고 휴대폰 상’을 받은 지 5년 만이다. ‘최고 휴대폰 기업상’은 지난 한 해 휴대전화 업계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발휘한 기업에 주는 상. GSMA는 매년 모바일 전문 애널리스트와 기자들로 구성된 ‘GSMA 어워드 선정위원회’를 통해 최고의 모바일 기기와 서비스 등을 선정해 시상한다.

    3월 1일 폐막한 MWC 2012는 ‘모바일을 재정의하라’고 명했지만, 여전히 모바일은 정의되지 않았다. IT 글로벌 업체들은 모바일의 정의를 매년 새롭게 써가며 여전히 지난한 마라톤을 펼치고 있다. 몬주익의 월계관은 여전히 모바일의 정의를 확실하게 내릴 기업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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