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호

정의선, 현대차 인도법인 IPO 승부수 던지다

세계 3위 車시장 인도 본격 조준

  • 유수진 연합인포맥스 기자 sjyoo@yna.co.kr

    입력2024-08-09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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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 현대차그룹 성장에 가장 크게 기여한 곳”

    • 각별한 인도 사랑… 8개월 만에 재방문 + 해외 첫 타운홀미팅

    • 인도 내수 공략·글로벌 생산 거점 확보 노림수

    • ①인구 ②경제 규모 ③정부 의지 3박자 충족 시장

    • 생산능력 확충·전동화 전환·인도 전기차 시장 패권전쟁 준비

    4월 25일(현지 시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인도권역본부 델리 신사옥에서 현지 직원들과 타운홀 미팅을 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4월 25일(현지 시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인도권역본부 델리 신사옥에서 현지 직원들과 타운홀 미팅을 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인도권역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도 세계 경제 침체와 공급망 대란 등 수많은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꾸준히 좋은 성과를 창출했습니다.”

    4월 23일(현지 시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인도 하리아나주 구르가온시에 위치한 인도권역본부 델리 신사옥에서 현지 현대차·기아 임직원들에게 “인도는 현대차그룹의 성장에 가장 크게 기여한 권역 중 하나”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발전이 가속화하고 있는 인도에서 현대차그룹이 시장점유율 2위를 달성하고,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하며 브랜드 파워를 강화해 나가고 있는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재차 고마움을 표했다. 현장에 있던 직원들 사이에선 “진정성이 느껴졌다”는 얘기가 나왔다.

    “시간 분 단위로 쪼개 쓰는 총수가 두 번이나…”

    지난해 8월 7일(현지 시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인도를 방문해 현대차·기아 인도기술연구소에서 현대차·기아 및 경쟁사 전기차를 둘러보고 있다. [현대차그룹]

    지난해 8월 7일(현지 시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인도를 방문해 현대차·기아 인도기술연구소에서 현대차·기아 및 경쟁사 전기차를 둘러보고 있다. [현대차그룹]

    정 회장이 인도를 찾은 이유는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차그룹의 미래 성장 방안을 모색하고 중장기 전략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특히 이번 방문은 지난해 8월에 이어 8개월 만의 재방문으로 화제를 모았다. 여기엔 인도의 급격한 발전 과정에서 현대차그룹이 중추적 모빌리티 기업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 다양한 사업 기회를 선점하겠단 전략적 판단이 작용했다.

    또 다른 목적도 있다. 현지 직원들과의 스킨십 강화다. 정 회장은 “수평적이고 열린 소통을 통해 비전을 공유하고 신뢰를 강화하자”며 직접 타운홀미팅을 제안했다. 정 회장과 허심탄회하게 질의응답을 할 수 있는 타운홀미팅은 국내에서도 두 차례 열린 게 전부일 정도로 흔치 않은 일이다. 해외 현지 직원 대상으론 첫 타운홀미팅인 이번 자리엔 장재훈 현대차 사장과 김언수 인도아중동대권역 부사장 등 경영진을 비롯해 양사 임직원 400여 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에서 인도권역이 갖는 전략적 중요성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힘을 실어주겠단 약속도 빼놓지 않았다. “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인도를 글로벌 수출 허브로 육성해 나갈 것”이라며 “인도권역의 중요성을 고려해 앞으로 더 큰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당초 1시간 예정이던 타운홀미팅은 직원들의 뜨거운 참여 열기와 정 회장의 화답으로 1시간 30분 넘게 진행된 것으로 전해진다. 정 회장은 행사가 끝난 뒤에도 직원들의 사진 촬영 요청에 일일이 응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재계에선 “정 회장이 인도에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쓰는 글로벌 기업 총수가 1년 새 두 번이나 발걸음을 한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정 회장은 인도에서 현대차그룹을 ‘핵심 모빌리티 기업’으로 거듭나도록 하기 위한 청사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현지 기업공개(IPO)를 추진한다. 갈수록 중요도가 커지는 인도 자동차 시장을 잡기 위한 승부수다. 내수 성장성뿐 아니라 글로벌 생산 거점 역할도 고려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인도 역대 최대 IPO… 4.2조 원 조달

    6월 17일 현대차는 “인도 현지 종속회사인 현대모터인디아(HYUNDAI MOTOR INDIA LIMITED)를 인도 증권시장에 상장하기 위해 인도 증권거래위원회(SEBI)에 IPO 관련 예비 서류를 제출했다”고 공시했다. 현대차가 해외 법인을 현지 증시에 상장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재계로 범위를 넓혀도 국내 대기업 가운데 100% 해외 자회사를 현지 주식시장에 상장한 사례는 아직 없다.

    현대차의 인도법인 IPO 가능성이 처음 고개를 든 때는 올해 2월이다. 복수의 글로벌 투자은행(IB)이 현대차 경영진에게 IPO 자문을 위한 프레젠테이션(PT)을 진행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시장 분위기도 우호적이었다. 지난해 12월 인도 증시가 시가총액 4조 달러(약 5568조 원)를 돌파하는 등 상승세를 타며 IPO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 인도 주식시장은 시가총액 기준 미국과 중국, 일본에 이은 세계 4위로, 아시아 금융 중심지인 홍콩을 앞선다.

    당시만 해도 현대차 측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해외 자회사 상장 등을 포함한 다양한 활동을 상시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로부터 약 4개월 만에 IPO 추진을 공식화한 것이다.

    6월 말 기준 딜 구조는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상태지만 로이터 등 주요 외신은 현대차가 신주 발행 없이 보유 주식 일부를 매각하는 ‘구주 매출 방식’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전체 8억1200만 주(100%) 가운데 최대 1억4200만 주(17.5%)를 시장에 내놓아 최대 30억 달러(4조1800억 원)를 조달하는 형태다.

    이대로 진행될 경우 현대차 인도법인 상장은 인도 증시에서 역대 최대 규모 IPO로 기록된다. 직전 1위는 2022년에 약 25억 달러(3조4800억 원)를 끌어모은 인도생명보험공사 IPO다. 증권가에선 현대차 인도법인이 SEBI가 요구하는 최소유통주식비율(25% 이상)을 확보하기 위해 IPO 이후 추가 구주 매출을 하거나 신주를 발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구체적 상장 일정 역시 아직 나오지 않았다. 통상 인도 증시에선 최초 투자설명서 제출 후 상장 승인 여부가 결정되기까지 최장 90일 정도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르면 오는 10월께 상장 작업이 완료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잠재력 무궁무진, 가장 ‘뜨는’ 시장

    왜 인도일까. 자동차업계에선 현대차가 현지 IPO를 추진할 만큼 인도가 매력적 시장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 그에 걸맞은 경제 규모, 정부의 강력한 전동화 의지까지 삼박자가 딱 맞아떨어져 시장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는 게 이유다. 사실상 인도는 ‘가장 뜨고 있는 시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는 숫자로도 증명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인도의 인구는 14억4171만 명으로 전 세계 국가 가운데 가장 많다. 세계 인구(81억1884만 명)의 17.8%에 해당한다. 특히 인구가 줄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와 달리 갈수록 증가해 2060년대 중반 정점(약 17억 명)을 찍을 것으로 전망된다. 2위 중국(14억 2517만 명)과의 격차도 점점 벌어지고 있다.

    주요 경제지표인 국내총생산(GDP) 순위도 지난해 영국을 제치고 세계 5위에 올라섰다. 특히 성장세가 강하다는 점을 눈여겨볼 만하다. 지난해 GDP 증가율이 8.2%로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았고, 올해도 7%대 성장이 예상된다. 이에 내년엔 일본을 제치고 4위에 오르리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모빌리티 부문에서도 관심을 가질 이유가 충분하다. 지난해 인도에서 팔린 자동차는 약 500만 대다. 중국과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시장규모가 크다. 이 가운데 80% 이상(410만 대)이 승용차로, 2030년엔 500만 대를 넘어설 것으로 관측된다.

    인도 정부가 전동화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는 것도 현대차그룹에 유인이 되고 있다. 기업 관점에서 정부 정책과 발이 맞지 않는 건 리스크이기 때문이다. 인도 정부는 2030년까지 전기차 판매 비중을 전체 자동차 판매량의 30%까지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둔 상태다. 자연히 자국 내 전기차 생산과 판매에 드라이브를 걸리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아직 격차 큰 2위… 생산능력 키워 ‘추격 태세’

    현대차의 전기차 아이오닉 5. 지난해 12월 24일 ‘2024 인도 올해의 차’ 어워드에서 그린카(Green Car) 부문을 수상했다. [현대차그룹]

    현대차의 전기차 아이오닉 5. 지난해 12월 24일 ‘2024 인도 올해의 차’ 어워드에서 그린카(Green Car) 부문을 수상했다. [현대차그룹]

    실제 인도 정부는 목표 달성을 위한 ‘당근’ 제시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올해부터 인도에 5억 달러(7000억 원) 이상을 투자하고 3년 내 현지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기업에 최대 100%인 전기차 수입 관세를 15%로 깎아주기로 했다. 이에 테슬라를 비롯한 글로벌 전기차 기업들이 앞다퉈 인도 투자 계획을 밝혔다. 머잖은 미래에 인도가 치열한 전기차 격전지가 될 거란 전망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현대차그룹 역시 전기차 패권전쟁에 적극 참전할 의사를 보이고 있다. IPO를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인도 현지에 생산시설을 추가로 짓는 것은 물론 전기차 생태계 구축에도 속도를 낸다. 적시 투자를 통해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최근 현대차그룹이 2026년 현대차 인도 진출 30주년을 앞두고 수립한 ‘2030년 중장기 전략’에 포함된 내용이다. △현대차·기아 150만 대 생산 체제 구축 △전기차 라인업 확대 △전동화 생태계 조성 등이다. 정 회장은 이에 대해 “인도권역에서 매우 과감하고 대담하게 추진 중인 여러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현대차는 인도에서 마루티스즈키(인도 마루티-일본 스즈키 합작사)에 이어 시장점유율 2위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점유율이 14.6%로 마루티스즈키(41.3%)와 차이가 상당하다. 기아(6.2%)까지 더해야 가까스로 절반에 이른다. 심지어 인도 시장 내 경쟁 심화로 매년 판매량 증가에도 불구, 점유율은 떨어지고 있다. 이에 현대차는 생산능력 확충에 집중하고 있다. 인도 내 100만 대 양산 체제를 구축해 1위 업체와의 점유율 격차를 줄이겠다는 것.

    실제 현대차는 지난해 GM으로부터 인수한 푸네공장에 스마트 제조 시스템을 적용해 연 20만 대 이상 생산이 가능한 거점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내년 하반기 완공 시 첸나이공장(82만4000대)과 합해 연간 생산능력이 100만 대를 넘어서게 된다. 기아(43만1000대)까지 더하면 연 150만 대 수준이다. 현대차그룹 안팎에선 이러한 체제 구축이 완성되면 마루티스즈키 추월까진 어려워도 ‘턱밑 추격’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마루티스즈키가 지난해 인도에서 판매한 차량은 약 170만 대다.

    하반기부터 현대차는 전기차 시장 선점을 위한 전동화에도 시동을 건다. 올해 말 첸나이공장에서 첫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전기차 양산을 시작해 2030년까지 5개 모델을 투입할 예정이다. 이 기간 현대차 판매 네트워크 거점을 활용해 전기차 충전소도 485개까지 확대한다. 인도 배터리 기업과 손잡고 인도 전용 전기차 모델에 현지 생산 배터리를 탑재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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