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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교회 종소리 울리는21세기자립자족형 전원도시

12세기교회 종소리 울리는21세기자립자족형 전원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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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교회 종소리 울리는21세기자립자족형 전원도시

오퇴유 언덕에서 바라본 ‘역사의 중심축’. 이곳에서 똑바로 가면 라데팡스의 신개선문, 개선문, 루브르까지 이어진다.

금융기관으로는 파리국립은행(BNP) 해외파트부문과 일반 은행과는 조금 다른 CIS, SG 등 은행기술부문 기관들이 이 도시에 들어와 있다. 1000명의 연구원을 고용한 SAGEM 등 연구소도 30여개나 된다.

이처럼 다양한 인프라와 시 차원의 적극적인 유치전략에 힘입어 푸조, 소니, 톰슨, 루이 뷔통 본사가 진출했고 3M, 유니시스, 지멘스, 포드, 존슨의 지역본부 또한 이곳에 있다. 이들을 포함해 현재 3500여 개의 기업이 진출, 8만여 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

센강의 지류인 우아즈강 일대에는 대규모 스포츠공원이 조성돼 경비행기, 요트, 카약, 낚시, 패러글라이딩 등 다양한 레저스포츠를 즐길 수도 있다. 현재 이 센터 이용객만 하루 평균 3만명, 많을 때는 8만명에 육박한다.

경영관리 및 품질관리시스템,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벤처업체 WYSIWYG사 대표 사비에르 로페즈(Xavier Lopez)씨는 “세르지·퐁투아즈의 레저센터는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극찬했다. 로페즈씨는 또 이곳에서 사업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시에서 재정뿐 아니라 사무실과 비서, 전화 등을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가 하면 경영지도도 해주는 등 벤처업체로서는 최상의 조건이었다”고 말했다.

주거환경도 훌륭하다. 단독 집합주택 지역, 삼림지 저밀도 단독주택 지역 등 각 지역별로 특색을 갖추고 있고 아파트와 국민주택 등 다양한 형태의 주택이 있어 경제적 형편에 맞춰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지역도 똑같은 집이 하나도 없다. 그러면서도 빈부 격차를 느끼지 않게 세심히 배려했다. 전체적으로 200∼300년 전에 지어진 건물들과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지역마다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파리 도심에서 살다가 이주해왔다는 한 지역주민은 “1800년대 중반에 지어진 집에서 살고 있는데 정말 새로운 기분이다. 요즘에는 집에 푹 빠져 있다. 이젠 아파트에서 못 살 것 같다”며 만족해했다.

신도시에서 가장 높은 생 크리스토프 지역 오퇴유 언덕에는 이 시를 상징하는 탑과 함께 이스라엘 출신 건축가 캬라반(Dany Karavan)이 1988년에 만든 12개의 원형 기둥이 서 있다. 그곳이 바로‘역사의 중심축(악스마젤-Axe Majeur)’의 연결점이다.

‘역사의 중심축’은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콩코드광장의 오벨리스크, 샹젤리제, 개선문, 라데팡스의 신개선문, 그리고 세르지·퐁투아즈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상징한다. 악스마젤은 루이14세 시대의 조경가 르 노트르가 루브르궁전에 느릅나무를 줄지어 심으면서 형성된 개념이다. 이후 수 세기에 걸쳐 도시계획가와 조경가, 건축가들에 의해 계획적으로 완성됐다.

프랑스 ‘신도시 개발의 산 역사’라고 일컬어질 만큼 반평생을 신도시 개발에 몸담았던 장 루이에(Jean-Eudes Roullier)씨의 설명에 따르면 신도시 세르지·퐁투아즈의 개발역사는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의 신도시 창안자 드루브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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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지시 중심지역. 1960년대 ‘차는 지하, 사람은 지상으로’라는 원칙에 따라 도로가 건물 밑으로 나 있다.

1900년대초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프랑스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농촌에서 도시로 몰려들었다. 1950년대까지 무려 2500만명이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했던 것. 그 중 300만명 이상이 파리와 그 근교로 집중됐다. 여기에 베이비붐과 해외 식민지에 거주하던 프랑스인이 대거 귀국하면서 극심한 주택난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서울 수도권이 인구 집중으로 난개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처럼 1930∼40년대 파리와 그 주변지역에도 난개발 문제가 심각했다.

파리 근교의 난개발이 통제불능 상태에 빠지자 프랑스 정부는 1941년부터 개발정비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나도록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1957년, 폴 드루브리에(Paul Delouvrier)가 신도시 개념을 창안해 정부에 제안하게 된다. 연구원만 무려 150명에 달하는 그의 도시계획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른 것이었다. 드루브리에의 이 신도시 개념은 획기적인 것이었고, 난개발 해결을 위한 혁명적인 방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신도시라는 개념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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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엄상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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