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열린 북한인권·난민문제 국제회의 참석자들.
북유럽 국가들은 그간 북한에 대해 미국이나 서유럽 국가들과 다른 접근자세를 견지해왔다. 북한 정부도 이 나라들에 대해 호의를 갖고 있으므로, 북유럽 국가들은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중재자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그곳에서 대회를 열게 된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번 회의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주제로 삼았다. 회의 개최 전날인 5월8일 오후 필자는 미디어 페스티벌에 참여하기 위해 베르겐에 온 북유럽 언론인들 앞에서 ‘어둠 속의 침묵 : 북한에서의 의견 및 표현의 자유(Silence in Darkness : Freedom of Opinion and Expression in North Korea)’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했고, 다음으로 탈북자들의 증언을 듣는 시간이 이어졌다.
또한 정치·경제적 접근 외에 스포츠, 예술, 문학을 통해 인권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도 시도했다. 이를 통해 북한에서도 인간의 근본적인 자유가 보장되고 인류보편의 가치를 추구하며 자아실현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당위명제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한 것은, 북한에서 벌어지는 인권유린 행위에 대해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며 드러난 병리현상마저 외면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대북(對北) 인권정책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르겐 국제회의에서도 글린 포드 유럽의회 의원은 “아이들은 정치를 모른다” “그간의 대북지원이 북한을 변화시켰다”며 지속적인 대북지원을 강조했다. 한국의 박경서 인권대사는 인권의 보편성, 불가분성, 상호의존성 및 연관성을 강조하는 ‘비엔나 선언과 행동강령’을 들며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총체적 관점을 견지할 것을 천명했다. 그러나 박 대사는 북한의 식량권만 강조했을 뿐,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인권을 거론할 수 없다는 견해를 분명히 했다. 이는 필자에게는 ‘평화와 인권의 불가분성, 상호의존성 및 연관성’을 도외시하는 태도로 보였다.
이러한 인식은 북한 정권의 극단적인 폐쇄·고립정책으로 인해 북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대안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그간 서방세계가 취해온 대북 인권정책이 북한의 인권 상황을 크게 개선시키지 못한 것은 북한의 문화와 특수성을 고려·수용하지 않고 서방세계의 주장만을 관철하려 했기 때문”이라며 “서방세계의 대북 접근자세를 수정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이는 인질로 잡힌 사람들이 인질범의 편에 서서 자신들을 구출하려는 사람들이 인질범의 요구조건을 순순히 들어주지 않는다고 원망하며, 인질범의 극히 사소한 ‘친절’에 매우 고마워하는 이른바 ‘스톡홀름 신드롬’의 일종이 아닐까 한다.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기본권
베르겐 국제회의에서 강조된 지향점은 ‘인권에 기초한 대북지원’이었다. 최근 김정일 정부는 한국에 대해 지원자의 감시·감독이 수반되지 않는 ‘개발원조’를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요구는 남북한 간의 현안을 해결하고 관계를 경색시키지 않기 위해 어느 정도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와무라 아키오 교수 등 참석자 다수는 반드시 인권개념에 기초해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