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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신 피 흘리겠다” 중국 포위전략 선봉 자임

1930년대 빼닮은 아베의 일본

“미국 대신 피 흘리겠다” 중국 포위전략 선봉 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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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급 전범이 ‘국가 초석’

“미국 대신 피 흘리겠다” 중국 포위전략 선봉 자임

11월 2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고민하는 남중국해 문제를 거론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우선 미국과의 동맹 강화다. 아베 신조 총리, 아소 다로 부총리(총리 역임)와 산케이신문을 포함한 강경 민족주의 세력은 미일동맹을 20세기 초 영일동맹 이상의 수준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베를 포함한 일본 지도부는 일본을 메이지(明治) 시대로 되돌려놓으려 한다.

아베는 지난해 4월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을 ‘국가의 초석’으로 부르는 등 전후 질서를 부정했다. 아베의 외할아버지는 2차대전 A급 전범 용의자로, 총리를 지낸 기시 노부스케다. 아베 신조와 그의 아버지 아베 신타로의 이름 중 ‘신(晋)’은 메이지 시대 조슈(야마구치) 하기시(萩市) 출신 무장 다카스키 신사쿠(高杉晋作)의 ‘신(晋)’에서 따왔다. 아베는 종종 다카스키 신사쿠의 묘지를 참배할 정도로 그에게 깊은 애정을 보인다. 지난해 7월에는 다카스키 신사쿠의 동상 제막식에도 참석했다.

아베는 메이지 유신의 사상적 기초를 제공한 요시다 쇼인에 대해서도 존경심을 품고 있다. 아베는 2013년 8월 요시다 쇼인 신사(神社)를 방문했는데, 최근 방영된 NHK 대하사극 ‘하나모유 : 꽃, 타오르다’의 무대가 야마구치현 하기시 일대다. 아베의 우익 국수주의 성향은 이러한 가족·역사적 배경을 떼어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일본 지도자들은 중국의 부상이 본격화한 1990년대 말부터 국가의 진로에 대해 고민했다. 그들은 급격히 증강된 중국의 영향력이 한반도, 타이완을 거쳐 종국에는 일본까지 밀려들 것으로 본다. 과거 통일된 중국이 대외 팽창적 성향을 보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일본 지도부는 13세기 2차례에 걸친 여몽(麗蒙) 연합군의 규슈 침공과 1950년대 초 공산 세력에 의한 부산적기론(釜山赤旗論) 등 대륙 세력이 한반도를 거쳐 일본을 침공하려 한 역사적 사실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따라서 급부상한 중국을 제어하려면 최강대국 미국과의 동맹 강화가 필요 불가결하다고 본다.



그런가 하면 오자와 이치로 생활당 대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 간 나오토 전 총리, 아사히신문 등 온건 민족주의 세력은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나가되 한국, 중국 등 인근국과도 관계를 개선해야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 유지, 나아가 일본의 발전도 가능하다고 본다. 이는 ‘아시아로의 접근’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온건 민족주의 세력은 과다한 미국 의존이 특히 중국의 반발을 야기해 일본의 국익을 해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극우파의 ‘전략적 독립’論

민주당이 정권을 장악한 2009년 이후 약 3년간 일본은 대(對)중국 접근을 추구해 미국을 매우 당혹스럽게 했다. 2009년 12월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간사장이 인솔한 140명의 대표단이 일본 중국 관계의 미래와 관련한 건곤일척의 대화를 위해 베이징을 방문할 무렵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머리칼이 단기간에 새하얗게 변했다는 말이 워싱턴 외교가에 떠돌았다. 그러나 같은 민주당 정권의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2012년 9월 센카쿠 열도 국유화 조치를 취하면서 중일 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한편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 지사,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 다모가미 도시오 전 공군참모총장을 포함한 극우 민족주의자들은 ‘전략적 독립’의 흐름을 대표한다. 이들은 70년간 지속돼온 미국의 군사위성국이라는 굴종적 지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자위군(自衛軍)을 보유해야 하며, 한반도 침탈은 일본의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태평양전쟁은 미국과 영국이 강요한 전쟁이었다고 여긴다. 전략적 독립론은 일본의 국력이 중국에 비해 현저히 열세이며, 그 격차가 확대되는 추세를 볼 때 비현실적이다.

‘아시아 접근론’을 취한 민주당 정권은 2011년 3월 도호쿠(東北) 대지진과 이어진 쓰나미, 후쿠시마 원전사고 수습 실패 등으로 민심을 잃고 강경 민족주의 세력에 권력을 넘겨줬다. 권좌에 복귀한 아베 총리 등 강경 민족주의자들은 예상대로 미국에 접근했다. 이들은 일본 단독으로는 초대국 중국에 맞설 수 없으며, 패권국 미국이 최소 20~30년은 더 현재의 위상을 유지할 것으로 본다. 따라서 대미 동맹을 강화해야 일본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고, 중국도 일본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 여긴다.

일본의 국가 진로와 관련된 위의 3가지 흐름은 칼로 베듯 명확하게 나뉜 것은 아니다. 특정 엘리트의 생각 또한 국내 정치 환경과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다만 일본 정치인, 외교관, 군인들은 폭과 속도의 차이는 있으나 평화헌법 개정 등 전후체제를 바꿔 자위군을 보유하고, 일본의 위상을 강화하며, 중국에 대한 억지력을 높여 동아시아에서 지도적 위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데는 견해를 같이한다. 최근에는 중국의 고도성장이 지속될 경우 어쩔 수 없이 중국의 그늘 밑으로 들어가되, 중국의 성장이 정체될 경우 미국의 후원을 등에 업고 중국과 일전을 벌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중국 포위전략 선봉

약 140년 전에도 일본은 국가의 진로를 놓고 기로에 섰다. 사쓰마(가고시마) 출신 사이고 다카모리 중심의 대륙 진출 우선파와 이와쿠라 도모미 중심의 내정 개혁 우선파는 권력과 국가의 진로를 놓고 전쟁을 벌였다. 세이난 전쟁(1877)이 그것이다. 농민 출신 징병군을 동원한 내정 개혁파가 사무라이를 동원한 대륙 진출 우선파를 제압했다. 이후 일본은 ‘내정 개혁 후 해외 진출’이라는 점진책을 추진했다.

러일전쟁(1904~05) 이후에도 국가 진로를 둘러싼 갈등이 벌어졌다. 조슈(야마구치) 중심의 육군은 영국, 미국과 손잡고 만주 등 대륙으로의 진출을 주장한 반면, 사쓰마 중심의 해군은 러시아와 손잡고 해양으로 진출해야 한다고 맞섰다. 아베 등 일본 지도부는 미국, 영국 같은 1급 해양국가들과 동맹했을 때는 국가 번영과 해외 진출이 가능했지만, 이들과 등졌을 때는 국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음을 지난 100여 년간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이들은 2차대전 때 독일과 동맹을 맺고 미국, 영국의 해양 패권에 도전했다가 원자탄 세례라는 참사를 맞은 것을 잊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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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량(張良) | 중국청년정치학원 객좌교수 ·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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