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무원 연봉제 도입할 것 공무원 지역할당제 검토해볼 만
- 나눠먹기식 공기업인사는 금물 흠있는 공기업 임원, 임기 보장 못해
- 더 이상 인터넷 여론에 끌려다니지 않을 것
청와대에서 민정수석과 인사보좌관은 상호 보완 및 견제 관계로 설정돼 있다. 정무직과 공기업 임원 인사는 추천 창구를 인사보좌관으로 일원화하고 민정수석의 검증을 거쳐 3배수로 올라온 인사안을 놓고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낙점한다. 정찬용(鄭燦龍·53) 인사보좌관은 참여정부의 인사시스템을 3심제에 비유했다. 인사보좌관이 1심, 문재인 민정수석이 2심, 노무현 대통령이 최종심이다.
1950년 전남 영암 출신인 정보좌관은 서울에서 대학(서울대 언어학과)을 마친 뒤 경남 거창에서 17년 동안 고교 교사와 YMCA 일을 했고 1997년 고향으로 돌아와 줄곧 광주YMCA에서 활동했다. 인사행정을 전공했거나 공무원 조직에서 일해본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새 청와대의 핵심 기능인 인사보좌관에 지방에서 비정부기구(NGO) 활동을 하던 사람을 임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풀어가보자.
그는 청와대 안팎에서 스스로를 ‘촌닭’이라고 칭하지만 그의 경력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장터에 갑자기 끌려나온 촌닭은 아니다. 정부혁신위원장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정보좌관은 YMCA 운동의 신화로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YMCA 전국연맹 사무총장 후보 1순위자였다”고 말한다. YMCA 전국연맹 사무총장은 전국의 YMCA 조직을 이끄는 사실상 최고 지도자다. 현 이남주 부패방지위원장(장관급)도 연맹 사무총장을 하다 위원장이 됐다.
정보좌관 인터뷰는 청와대 춘추관 2층에서 이루어졌다. 지난 정부에서는 기자가 수석비서관 방에 찾아가 취재를 할 수 있었지만 제도가 바뀌어 면담 신청을 하면 비서관이 춘추관으로 나와 기자를 만난다. 춘추관 1층에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득실거리지만 보도지원과와 기자회견장 그리고 인터뷰 룸이 몇 개 있는 2층은 한가했다.
오십세주는 잘 안맞아
메인 인터뷰에 앞서 몸을 푸는 의미에서 약간 아첨기가 담긴 질문으로 시작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한테 물어봤더니 청와대 장차관급 중에서 인기가 비교적 높은 편이라고 하더군요. 노대통령은 언론과 긴장관계를 유지하라고 거듭 강조했는데 기자들과 너무 사이 좋게 지내는 것 아닙니까.
“언론과 밀월관계는 곤란하지만 긴장 관계는 유지해야 하지 않습니까. 흉보고 싸우자는 이야기가 아니고 서로 건강한 비판과 토론을 하자는 뜻입니다.”
―공무원이 업무와 관련해 외부 인사를 만나면 판공비로 저녁도 내고 술도 마실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노대통령이 공무원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양주는 안 되고 오십세주는 괜찮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인재를 찾아다니다 보면 오십세주 비용이 만만치 않겠어요.
“예전에는 대통령이 통치자금을 조성해 참모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노대통령은 그게 없대요. 제 월급으로는 식구들 먹여 살려야 할 것 아닙니까. 업무추진비가 조금 나오지만 아껴 써야 합니다. 인사 추천을 하려는 사람과 저녁을 먹으면 계산은 내 몫입니다. 그런 일과 관계없이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상대방이 내는 경우도 있지만….
만날 된장찌개만 먹을 수는 없습니다. 중국 요리나 양식을 먹기도 하고 한정식집에 가면 1인당 3만∼5만원짜리 밥상이 나옵니다. 불쑥 겁이 납니다. 5만원짜리 밥을 먹고 다녀야 하나, 이 돈 가지면 좋게 쓸 데가 많은데, 이런 생각이 듭니다. 황위원도 언론사에 있으니 이해하겠지만 돼지고기 구워 먹자고 하면 홀대받는다는 생각에 섭섭해하지 않겠습니까.”
―옛날 분위기에서는 섭섭했겠죠. 지금은 청와대 사정이 어떻다는 걸 이해하니까 비싼 밥 안 사도 됩니다.
“그렇습니다. 점심이나 저녁을 먹다가 술 한잔 하더라도 흥청망청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다가 오십세주 소리가 나왔겠지요. 오십세주를 한두 번 마셔봤는데 나한테는 잘 안 맞는 술입니다.”
1980년대 초 총칼로 권력을 잡은 신 군부는 낮에는 ‘사회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밤에는 요정에서 사람들을 만나 돈 봉투를 주고받았다. 이 즈음 ‘정권교체가 뭐냐’는 질문에 요정 주인이 ‘계산하는 X은 같고 얻어먹는 X만 바뀌는 것’ 이라고 답했다는 조크가 있다. 끝까지 지켜봐야겠지만 낮과 밤의 태도를 관찰하는 것도 집권세력의 도덕성을 판별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농담 하나 할까요. 시중의 입 소문으로 청와대 수석비서관 물망에 오르내리던 사람에게 확인을 했더니 ‘시켜주지도 않겠지만 시켜줘도 안 간다’고 하더군요. 정부의 정책을 설명하고 대통령의 뜻을 알리자면 밥도 먹고 운동도 해야 할 텐데 업무추진비로는 턱도 없을 테고 외부 지원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지요. 그러다 결국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신세가 된다는 겁니다. (웃음)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사보좌관은 여러 가지 유혹에 노출되는 자리입니다. 부정한 대가를 제공하고 역량을 훨씬 뛰어넘는 직책을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인사 청탁입니다. 그런데 청탁과 추천의 꼬리표가 분명하지 않아 문제이지요.”
―참여정부에서 추천과 검증을 분리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하향적으로 인사를 하면 잡음이 안 생기고 일사불란합니다. 그러나 최고 권력자가 마음대로 인사를 하면 측근인사 정실인사의 폐해가 나타납니다.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해 일일이 확인하고 능력을 평가하다 보면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인터넷에 상호 비방이 뜨기도 합니다. 교육부총리를 선임할 때 불필요한 잡음이 생겼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장 경우에도 추천된 사람들에 대한 악의적 정보가 난무해 뜻밖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술사학자로 이름이 높은 유홍준 명지대 교수는 국립중앙박물관장에 후보로 지원했다가 왜 스스로 포기했습니까.
“유홍준씨는 대단한 역량을 갖춘 사람이죠. 박학다식하고 논리 전개가 분명하고 부지런합니다. 그러나 집중적인 인터넷 공격을 받다가 사퇴했습니다. 유교수가 전화로 ‘국립박물관장 잘해볼 생각으로 지망했는데 나를 모함하고 욕을 하니 견딜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유교수는 나의 대학 1년 선배이고 감옥도 같이 갔습니다. 내가 ‘아이고 홍준 형님 잘했소. 교수하면 됐지 뭐 하려고 욕을 먹소’하고 위로했습니다. 실제 있는 얘기도 덮어놓으면 괜찮은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마구 살을 붙이면 상처를 주지요. 참여정부는 인터넷을 중요한 도구로 쓸 생각이지만 그것에 끌려다니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청와대와 중앙인사위원회 홈페이지에 ‘삼고초려’라는 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하루 만에 인사 추천이 5000건 들어왔습니다. 평범한 민초도 인사보좌관 얼굴 안 보고 중요한 자리에 사람을 추천할 수 있게 돼 기분 좋아합니다. 국민참여수석실에서는 5월 중 여론수렴 사이트를 더 키우려고 합니다.”
―추천 후보자들을 어떤 방식으로 면접 합니까. 술자리에 끼여서 관찰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그 질문에 답하기 전에 인사의 원칙을 먼저 말하지요. 과연 국정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도덕성이 겸비돼 있느냐를 따집니다. 윤리적 법률적 잣대도 있겠죠. 청렴성이라든가 사회적 신망도도 살펴봅니다. 이런 것들을 보고 나서 연령 지역안배 등을 고려합니다.
국정을 수행하는 일이 너무 편향되지 않도록 고민합니다. 참여정부는 개혁 대통령, 안정 총리, 개혁 장관에 안정 차관 구도입니다.
후보자를 만나는 일은 중요한 업무입니다. 많은 분을 만나야 하는데 시간은 한정돼 있습니다. 인사가 지연되면 비판이 나오니 시간을 쪼개 아침 점심 저녁 가리지 않고 만나보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만날 장소가 마땅치 않습니다. 호텔방에서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청와대로 들어오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가능하면 한가한 찻집을 골라 구석진 자리에서 만납니다.”
정실·측근인사 배제할 것
대통령직인수위 시절부터 참여정부에서 일할 사람은 개혁성을 갖추고 노대통령과 코드가 맞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대강 그 의미를 알 것 같지만 다의적 해석이 가능한 말이기도 하다.
“가정에서 살림을 꾸리는 배우자를 만날 때도 서로 맞다 안 맞다 하지 않습니까. 대통령이 말하는 코드는, 지향하는 가치의 유사성을 의미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대통령은 우리 사회에 공정하게 흘러가는 물줄기를 만들어놓아 국민 신뢰를 받자는 구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자면 도덕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사회의 흐트러진 것을 고치려면 개혁 의지가 필요하겠죠.
행정자치부 경우 중앙에 집중된 권한을 지방으로 분산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행자부 장관으로는 행자부를 가능하면 축소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야 개혁 코드가 맞는다고 할 수 있죠.
코드라는 것이 개혁성에 한정된 것은 아닙니다. 대통령은 일에 대한 열정도 매우 높이 평가합니다. 역량은 10개쯤 되는데 5개 정도 일하고 지내는 것이 아니라 5개의 역량을 가진 사람이 6개씩 일하려고 하는 열정을 중시합니다.”
―DJ정부의 인사에서 가장 잘못된 점은 무엇이고 이것을 참여정부에서는 어떻게 극복하려고 하는지요.
“정무직과 산하 단체장뿐만 아니라 1∼3급 공무원 인사의 경우에도 주관적 감정적 평가가 아니라 객관성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면평가를 하려고 합니다. 1급 공무원 인사를 할 때 소속 부처의 상하 좌우에 있는 동료나 선후배가 업무수행 능력, 청렴도, 주위의 신뢰도, 실적을 평가합니다.”
정보좌관의 답변 스타일에 묘한 특징이 드러난다. 질문과 관계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하다가 정작 질문 내용은 후반부에 답변한다. 인터뷰를 능동적으로 끌고 가려는 생각일 수도 있고 시민단체에서 격렬한 토론을 하면서 한 박자 늦추어 말하던 습관인지도 모르겠다.
―광주와 거창에서 살아봤으니까 지역감정에 관한 질문을 해보지요.
“한국적 현상이죠. 정치인과 언론이 증폭시켜 해소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매번 인사가 나면 지역으로 푼단 말이에요. 지역감정의 진원지는 정치인이고 이것을 확산시키는 것은 언론입니다. 워낙 오래 끌어온 병이어서 고치는 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시골에서 올라와 대학 다닌 하숙생 세대가 끝이 나면 자연히 해결되리라 봅니다. 양념 삼아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나서 시골로 내려가 교사 생활을 한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민청학련 출신 중에 정치판에 나가 출세한 사람도 많지 않습니까. 신언서판을 갖추어서 정치판에서도 경쟁력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거창고교가 훌륭한 학교였습니다. 고 전연창 교장은 척박한 풍토에서 교육의 뜻을 제대로 세웠습니다. 그 학교의 교훈이 빛과 소금입니다. 그 학교의 중요한 모토가 ‘위대한 평민’입니다. 충남 홍성에 있는 풀무학교가 쓰던 표현인데 두 학교가 자매결연을 해 함께 썼어요. 목수를 하든, 농부를 하든 간에 위대한 평민이 되라고 교육시켰어요. 나도 속으로 위대한 평민이 되자고 생각했지요.”
―1996년 거창을 떠난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거창YMCA는 재정이 빈약해 월급이 없었어요. 집사람이 학교 선생 해서 번 돈으로 아버지 어머니를 치료하며 가난한 살림을 꾸렸습니다. 거창에서 17년을 살고 어차피 고생길인데 고향 땅에서 하자고 해 목포YMCA로 가려고 했더니 장인이 ‘온갖 수난을 겪으며 사업에 성공해 전라도 부자 소리를 듣고 사는데 사위 같은 반정부 인물이 근처로 오면 사업에 지장이 생긴다’고 반대해 못 갔지요. 그러다가 광주YMCA 사회교육부장으로 갔습니다.”
―광주YMCA 총무 월급이 얼마나 됩니까.
“여기 오니까 월급이 세 배가 올라가대요.”
그는 서울 독립문 근처 30평 아파트를 전세 1억8000만원에 들어 서울 살림을 시작했다.
“YMCA 퇴직금으로 전세금이 모자라 처남에게 돈을 꾸었습니다. 처남이 수백억원대 부자입니다.”
―’신동아’ 독자들에게 감명깊게 읽은 책 한 권을 추천해보죠.
“조지 워싱턴 카버의 전기 ‘땅콩박사’(종로서적 간행)를 재밌게 읽었습니다. 카버는 고아 흑인으로 자라나 농부들에게 땅콩을 심게 하고 땅콩으로 105가지 요리법을 개발한 흑인 지도자입니다.”
봄볕 따사로운 청와대 춘추관 밖에서 대화를 나누는 정찬용 보좌관(오른쪽)과 황호택 논설위원
직무 분석을 먼저 했습니다. 가령 이 부처의 책임자는 지금까지 이러이러한 일을 해왔으나 앞으로는 이러이러한 일을 보완해야 한다는 논의를 하고 거기에 맞추어 사람을 뽑아 올렸기 때문에 공정하고 믿을 만했다고 자평합니다. 그렇게 하고 보니 지역도 고르게 배분되더군요.”
―DJ정부 인사에서 반면교사로 삼을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직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DJ정부뿐만이 아닙니다. 그 전, 그 전전 정부에서 가지고 있던 정실·측근인사를 참여정부에서는 배제하겠다는 것입니다.”
DJ정부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조심하는 인상을 준다.
―지역 안배는 어떻게 합니까.
“참여정부의 인사에 네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적재적소, 둘째 실적평가, 셋째 공정투명, 그리고 넷째가 지역과 학교의 균형입니다. 어느 특정 지역에 편중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DJ정부 이전 37년 동안 영남 지역에 편중돼 있었습니다. 인정하나요? 그랬죠?
그 시기에 호남·충청지역이 소외되었습니다. 강원·경기도 마찬가지지요. 지난 5년간 국민의 정부에서 호남지역이 과하게 배려된 점이 없지 않습니다. 37년 동안 배려된 것에 비하면 별것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최근 일이어서 사람들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지역 안배는 네 번째 고려 사항이고 적재적소 실적평가 공정투명이 더 중요합니다.”
노대통령은 후보 시절 연세대에서 열린 시민단체 ‘학벌 없는 사회’ 주최 초청 강연에서 “학벌주의는 한번 대학 졸업장을 따면 영원히 우려먹고 독점적인 힘을 발휘해 끼리끼리 정보를 유통시켜 특권사회를 형성한다”며 학벌타파를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참여정부에서 장차관 인선을 하면서 지역 안배는 고려했지만 학교 안배를 하자면 인사가 너무 복잡해져 사실상 신경을 덜 썼다고 토로했다.
해외인재 영입 위해 노력
―장차관 인선이 마무리된 시점에서 학벌타파의 노력이 조금 부족하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전 정부에서는 지방대학 출신 장관이 극히 드물었어요. 김두관 행자부장관은 동아대학 출신입니다. 김영진 농림부장관은 고졸이고 허성관 해양수산부장관도 동아대학 출신입니다. 조영동 국정홍보처장은 부산대 출신입니다. 지방대학 출신들이 이전보다 많이 배려됐습니다. 고졸 학력도 몇 분 있어요. 대다수 사람들이 대학을 나오기 때문에 학벌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사회는 학벌 중심에서 창의력 역량 중심으로 가야 합니다.”
―참여정부의 인재풀이 통추 민변 민청학련, 그리고 소위 386세대 등에 집중됐다는 비판이 간간이 나옵니다. 고건 국무총리, 한승주 주미대사처럼 지난 정부에서 일했던 사람들도 들어와 있지만 전체적으론 그렇게 비치고 있습니다. 정보좌관도 시골에 묻혀 있던 인재라고 볼 수 있는데 숨어 있는 인재들을 어떻게 발굴하고 또 인재풀을 어떻게 넓혀갈 것인지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해외에 있는 인재를 영입하는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또 공무원의 등용문을 다양화할 생각입니다. 지금까지는 고시를 통해서만 인재가 등용되었거든요. 그리고 장애인과 여성 차별을 줄여나가겠습니다.
격무에 시달리는 공무원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이 휴식을 취하고 명상도 하고 가족과 함께 즐기기도 해야 합니다. 지난번에 내가 표현을 잘못했어요. 집에 가서 부인이랑 놀라는 뜻이 아니고 일을 잘하기 위해 휴식이 필요하다는 뜻이었습니다. 일하고 또 일하는 것은 사람을 망쳐놓습니다.
객관적인 평가의 틀에 의해 사람을 평가해 더 큰 업무를 맡길 수도 있고 더 작은 업무로 돌릴 수도 있습니다. 보수 체계를 바꾸어 연봉제를 도입하려고 합니다. 공무원 급여가 일반 대기업에 비해 많이 떨어집니다. 일은 많은데 월급이 적으면 좋은 인재가 밖으로 빠져나갈 것 아닙니까.
인사 교류를 적절히 해서 전문성과 종합성을 갖추도록 할 생각입니다. 전문성이 필요한 사람은 그쪽에서 계속 성장하게 해주고 1급 정도 올라오면 전문성과 더불어 다른 부서나 부처의 일도 잘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종합적 판단을 할 수 있죠.
퇴직 공무원 가운데 좋은 자원이 많습니다. 한참 일할 나이에 정년을 맞은 분들은 다른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부패하고 무능한 사람은 정돈하겠지만 유능하고 헌신적인 사람은 퇴직 후에도 경륜과 경험을 다시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짧은 기간에 공부를 꽤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공부하는지 말해줄 수 있나요.
“인사에 관련된 전문 서적을 시간을 쪼개 읽고 있습니다. 요약된 보고서를 통해 공부도 하구요. 인사 전공 교수 또는 대기업에서 인사를 담당하는 책임자들을 만나 얘기를 듣고 배웁니다.”
―청와대 인사보좌관 자리에 비정부기구(NGO) 출신 인사 비전문가를 앉힌 것은 어떻게 보면 파격입니다.
“인사한 결과를 보고 평가했으면 좋겠어요. 인사 관련 학문을 전공한 사람이나 공무원 인사를 시행해본 사람이 적격일 수도 있겠죠. 나는 광주YMCA 사무총장을 하면서 한 80명 정도 직원을 데리고 일했습니다. 광주YMCA에서 10년 일하는 동안 크게 불만을 제기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10년 동안에 광주YMCA가 양적 질적으로 5, 6배 성장했습니다.
인사 끝나고 나면 승진이나 영전이 안 된 사람이 ‘떨어져서 서운하긴 하지만 될 만한 사람이 되었다’고 승복을 해야 합니다. 인사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적격자가 아니라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10만명 존안자료 만들 것
김영삼·김대중 두 전 대통령은 수십년 야당 생활을 하면서 신세진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하다가 인사를 그르친 사례가 적지 않다. 대통령이 되기까지 함께 감옥에 간 동지도 챙겨야 하고 재정적으로 도와준 사람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전임 두 대통령에 비해 은혜 갚기 인사의 부담이 훨씬 덜하다.
―구 정권에서 일해보지 않았으니 정확히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투명하고 객관적인 인사를 할 수 있는 여건에서는 노대통령이 전임 두 대통령에 비해 낫지 않겠습니까.
“노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에 인사보좌관으로 정찬용이라는 촌닭을 발탁한 이유를 설명하더군요. ‘나는 별로 빚진 사람이나 집단이 없다. 당신도 빚진 게 없는 사람이고 밥상 차려놓고 먼저 숟가락 얹지 않는 사람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당신이 이 일에 맞는 사람이라고 판단했다’고 말입니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 말입니다.
내가 인사안을 올릴 때 노대통령이 ‘이 사람 올리라’고 한 경우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주 드뭅니다. 경호실장은 대통령과 가족의 신변을 지켜주는 사람이니 대통령이 결정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호남 사람을 선택했습니다. 노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과는 전혀 다른 인사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통추라든가 민청학련, 386 사람들은 인연이 깊어서라기보다는 코드가 일치하기 때문에 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코드의 일치만 따지는 것은 아닙니다. 차관 인사는 대부분 승진 발탁했습니다. 거기에는 대통령과 통추를 함께 한 사람도 없고 민청학련 출신도 없습니다.
분명히 말하건대 나는 정치를 하지 않아 빚진 사람이 없습니다. 따라서 인사를 공정하게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정보좌관은 어디선가 “호남 출신이 혈연 지연도 없는 경상도 땅에서 17년간 산 게 대통령에게 깊은 인상을 준 모양”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청와대 인사추천회의의 구성과 운용에 대해 설명해주겠습니까.
“문희상 비서실장이 위원장으로 주재합니다. 인사보좌관이 주무이고 정무·민정·공보·국민참여 수석 6명이 참여합니다. 여기에 외교부 인사를 할 때는 외교보좌관, 국방부 인사를 할 때는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방보좌관, 경제부처 인사를 할 때는 경제보좌관이 참석합니다.”
―검증은 어느 단계에서 합니까.
“인사추천회의 결과를 토대로 검증합니다. 여러 기관에서 자료를 받아 도덕적 법률적 결함이 있는지 살펴봅니다. 과거의 존안자료는 양과 질이 떨어집니다. 공무원 인사는 중앙인사위원회 자료를 이용합니다. 정무직 후보 중에 공무원이 아닌 사람의 자료는 청와대 공직비서관실에 상당량 있습니다. 국정원 경찰 검찰 기무사 자료도 있는데 그 쪽 자료는 대체로 부정적입니다.”
―주로 비리 관련 내용이란 말이군요.
“칭찬도 있지만 주로 네거티브한 자료입니다. 인사 자료는 포지티브 자료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검증을 위해 네거티브를 골라낼 수 있으나 원칙적으로 인사보좌관실에서 만드는 자료는 포지티브 중심입니다.
인사와 관련해 10만건이 넘는 자료를 갖고 있는 기업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자료는 1만명이 안 됩니다. 5년간 열심히 노력해 10만명에 육박하는 자료를 만들 생각입니다.”
참여정부의 인사가 정보좌관의 말대로 1심 재판장은 호남이고 2, 3심 재판장은 PK다 보니 호남과 PK를 합한 인사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차관급 인사가 마무리된 3월3일 시점에서 국무총리 이하 정부의 장차관급 54명과 청와대 수석과 보좌관 13명의 출신지역을 조사해보니 호남과 PK를 합한 비율이 46%였다.
―시중에 호남, PK를 제외한 제3지역 차별이라는 얘기가 농반 진반으로 돌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호남 사람이고 두 살 때부터 서울에 와서 산 사람의 출신지역을 호남이라고 하면 맞습니까. 나는 아니라고 봅니다. 별 의미가 없습니다. 대구가 고향인데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강원도에서 살고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강원도에서 다녔다면 그 사람이 영남 사람입니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대다수 인사가 서울 사람이에요. 그런데 앞으로는 서울에 편중하지 않고 지방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다수 발탁하려고 합니다. 나같이 서울대를 나와 경상남도 거창에서 17년, 광주에서 11년 산 사람을 골라 쓰는 이유는 전국에 분포된 인재를 고루 발굴하겠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DJ정부 때 공기업 임원 인사에서 낙하산 시비가 그치지 않았어요. 공천 낙천자, 선거 낙선자, 정권 창출 유공자들에 대한 배려를 하다 보니 공기업 임원 인사가 누더기가 됐지요. 결과적으로 지역 편중이 심해졌고요. 민주당에서 청와대에 대선 공신들한테 나누어줄 자리를 내놓으라는 요구를 하고 있더군요. 노대통령이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인사보좌관과 협의하라고 했던데요.
“선거에서 공을 세운 사람에게는 상을 줘야죠. 상장 혹은 상금을 줄 수도 있습니다. 공 세운 사람들을 불러 청와대에서 밥 한 그릇 함께 먹을 수도 있겠지요. 수저 한 벌을 기념으로 줄 수도 있습니다.
공을 세운 사람 중에 역량이 출중한 사람에겐 자리까지 줄 수 있지만 공을 세웠으나 역량이 안 되면 상 받는 것으로 만족해야죠. 공기업 인사의 경우 나눠먹기식은 안 됩니다. 공무원으로 훌륭한 업적을 남기고 후배를 위해 용퇴하거나 정년이 된 사람들도 공기업 인사의 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당에서 뛰어난 지략과 능력을 발휘해 활동한 사람들도 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정도의 고려는 할 수 있지만 역량과 자질을 따져봐야겠지요.”
흠 있는 공기업 임원, 임기 보장 못해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선거를 치르는 데 필요한 자금 동원은 필요악이기도 하다.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은 선거기금을 많이 낸 사람들을 초청해 백악관 특실에 재워 논란거리가 된 적이 있다. 미국에서는 유럽 주요국 대사 자리에 선거에서 재정적 지원을 많이 한 사람들을 내보낸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부친 조지프 케네디도 선거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을 재정적으로 도운 공로로 영국 대사가 돼 금주령 시대에 밀주 판매로 돈을 모은 과거를 세탁했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며느리였던 파멜라 해리먼 여사는 이혼 후 미국 영화제작자와 재혼해 미국에 정착한 뒤 워싱턴 정가에서 사교계의 여왕이 됐다. 그녀는 클린턴 선거운동본부의 공동위원장을 지냈고 반 고흐와 피카소의 작품이 즐비하게 걸려 있는 저택에서 클린턴 당선축하 파티를 열었다. 그녀도 프랑스 대사로 임명됐다.
―어느 나라나 대통령이 선거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준 사람들을 현실적으로 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지 않는 방향에서 그러한 배려를 하는 방법을 현실적으로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시절 쓴 선거자금 중 상당히 중요한 재원이 돼지 저금통이었습니다. 1000원, 1만원이 모여 큰돈이 되었습니다. 뭉칫돈의 주인공들은 없는 것 같아요. 대사는 외국에 나가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를 미국식으로 선거공로에 대한 배려로 나누어주면 안 되겠지요.”
―김대중정부에서 임용된 공기업 임원들의 임기는 보장하는지요.
“임기는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정권에서 나눠먹기식 인사의 혜택을 입었다던가, 업무를 잘 수행하지 못했다던가 하는 흠결이 발견될 경우에는 존중할 생각이 없습니다.”
과거에는 정권이 바뀌면 기사 딸린 고급 승용차를 타는 자리가 한꺼번에 수천 개 우수수 바뀌었다. DJ는 1997년 선거에서 관심(官心)을 얻기 위해 집권하더라도 공직자와 공기업 임원의 임기를 보장하겠다는 공약을 했고 대통령이 되고 나서 어느 정도 실천했다. 노대통령도 감사원장 검찰총장 등 임기직 공무원의 임기를 존중하겠다고 했으나 금감위원장과 공정거래위원장은 안 물러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 사표를 쓰게 했다. 정보좌관은 이들을 향해 공개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흐름과 안 맞을 수도 있다. 모양 좋은 결과가 도출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해 사표 제출을 종용했다.
“통치 차원의 인사였습니다. 금감위원장은 금융 증권 보험 기업 시장 등과 관련해 중요한 일을 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통치 철학과 맞아떨어져야 하거든요. 이근영 금감위원장은 역량을 갖춘 사람이지만 기존의 흐름에서 과감하게 벗어나기 어려울 겁니다. 국정토론회에서 만났는데 ‘현안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용퇴하겠다’고 밝혀 내가 ‘고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정보좌관은 요즘 공직자와 공기업 임원들 사이에서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갑자기 그가 찾아오거나 전화를 하면 사표 쓸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 공기업 사장은 그에게 건넬 사표를 쓰면서 손을 달달 떨더라는 목격자의 증언이 있다. 자리나 벼슬이 대체 무어란 말인가.
―새 정부의 검찰 인사에서 DJ정부에서 출세했던 호남 출신 검사들이 우수수 떨어져나갔습니다. 또 노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이후 지하철에서 판매되는 타블로이드 신문이나 광주에서 발행되는 신문에 ‘심상치 않은 호남민심’이 톱기사로 등장하더군요. 정보좌관이 호남 민심을 알아보기 위해 광주에 다녀왔다지요.
“사실과 조금 다릅니다. 광주YMCA에서 추진하는 ‘무지개마당’ 기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에 내려갔습니다. 고향에 간 김에 친구들 만나 저녁 먹고 소주를 한잔씩 했습니다. 언론사 간부들을 만나 민심이 어떤가 물어봤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참여정부의 인사에서 호남이 손해를 봤다고 말하는데 국민의정부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손해 봤을 것입니다. 새 정부 사람들이 일을 잘하는지 지켜보자는 입장이 광주의 대체적인 민심이었습니다.”
정보좌관은 광주에서 지역 언론인들과 토론하면서 “고등학교 친구나 선배가 인사에서 물먹고 요직에서 물러나니 전화할 데가 없어져 호남 민심을 말하는 것 아니냐”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또 무지개마당 기공식 축사에서는 “노대통령이 광주에서 ‘내게도 양심이 있다’고 말했는데 요즘도 그런 말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광주시의회는 4월8일 의장단 상임위원장단 간담회를 갖고 ‘고위직 인사와 국가정책 수립 과정에서 호남지역 소외현상이 나타나 지역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대북 송금 문제도 국민이 어떻게 됐는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세계 모든 언론에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포옹하고 악수하는 사진이 크게 실려 한국의 국가 브랜드 가치를 수백억원 이상 올렸습니다. 북한의 도움을 받기 위해 10억달러 정도는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법률적으로 위반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처벌이 따라야 합니다.”
―교육부총리 인선이 난산이었습니다. 시민단체와 인터넷 여론에 지나치게 끌려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명 아주대 총장은 정보화의 인프라를 깔아놓은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깔아놓은 정보 인프라에 의해 인민재판을 당한 느낌이 들어요. 인터넷 게시판에 들어가보면 근거 없는 모략, 유언비어, 욕설로 가득 차 있지 않습니까.
“인터넷 여론수렴이 시작 단계여서 그런지 비방과 음해가 많습니다. 나도 당했습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고약한 글을 올리고 리플을 달기도 합니다. 내 메일로 오는 것도 있고 게시판에 오르기도 하지요. 인사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올리겠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예전처럼 위에서 한 사람 찍으면 끝나는 인사가 아니다 보니 여러 사람이 검토하는 과정에서 인사 내용이 새는 경우가 생깁니다. 언론이 인사에는 초미의 관심을 보입니다. 기자들의 취재에 응하는 내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아직 결정 안 된 것을 말할 수 없다’ ‘결정되더라도 대변인이 발표할 것이다’ ‘대통령의 재가를 못 받았다’ 셋 중에 하나입니다.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다 알려주지만 알려주지 못할 것은 절대 알려주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혼자 안 하고 여러 사람이 하기 때문에 가끔 새나갑니다. 그러면 난리가 납니다. 오명 총장에게 개인적으로 죄송합니다. 오명 총장은 여러 부처의 장관 물망에 올랐어요. 오총장은 그냥 장관 할 연륜은 지났고 그 분의 탁월한 능력으로 봐 총리나 부총리쯤 맡아야 격에 맞습니다. 더구나 교육인적자원부는 교육행정만 하는 곳이 아닙니다. 인적 자원의 양성이 중요합니다. 참여정부가 오총장을 교육부총리로 모실 생각을 했는데 잘 안 되고 결과적으로 그 분의 속만 상하게 해드려 아주 미안하게 됐습니다.
인터넷도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지만 그것에만 의존하지는 않아요. 직접 만나보거나 잠행을 합니다. 우연히 내가 만나고자 한 분이 어느 장소에서 다른 사람과 어울려 있을 때는 내가 자연스럽게 끼여 같이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면서 관찰합니다.”
―신문에 아무개 내정이라고 나오면 며칠 있다가 대개 그 사람이 되더군요. 그래서 참여정부에서는 일부러 흘려 여론을 들어보고 임명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샌 거지 흘린 것은 아니라는 말이군요.
“나는 흘리지 않습니다. 물론 비서실에서만 검증하는 것이 부족해 흘려볼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아직 흘리지 않았지만 인사를 내가 다 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장관급 인사는 인수위에서 했습니다. 그쪽은 혹 흘렸나 모르죠.
인사과정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고 기자들의 집요한 유도성 질문에 넘어가는 경우도 있죠. 우리 쪽은 노회하지 않고 순진하거든요.”
춘추관 2층에 청와대 직원들 발소리가 요란하더니 인터뷰하는 방으로 보도지원과 직원의 메모가 들어왔다. 국회에서 국정연설을 마치고 돌아온 노대통령이 KBS 사장 선임과 관련해 춘추관 1층에서 기자회견을 한다는 것이다.
정보좌관이 “배석하라는 겁니까”라고 묻자 직원은 “그건 아니고 알고 계시라는 뜻에서…”라고 대답했다. 정보좌관은 “그렇다면 대통령은 기자회견 하고 나는 이 인터뷰 마저 해야죠”라고 말했다.
고영구 국정원장 집 별 문제 없어
―민변 회장 출신 고영구 변호사는 부패방지위원장 물망에 오르내리다가 집이 그린벨트 안에 있어 곤란하다는 얘기가 나오더니 다른 사람이 됐어요. 그러다가 국정원장이 되니 헷갈립니다.
“황위원이 전남 담양에 있는 내 집을 가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는데 나는 원래 촌스러운 사람이라 촌에서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광주에서 2, 3년 살다가 아버지 어머니 모시고 담양군 창평면으로 이사했어요. 동호인들이 3000평이 넘는 땅을 사 택지로 개발해서 지금 5명이 살고 있습니다. 13명이 땅을 샀지만 집을 지은 사람은 다섯 명입니다. 10년 전에 땅을 사 5년 전에 집을 지어 이사갔습니다.
300평 정도의 땅에 29평짜리 집을 지었어요. 들어간 돈이 땅값 포함해 9000만원입니다. 서울의 아파트 전세값의 절반 정도입니다. 우리 부부와 아버지가 나무 심고, 꽃 가꾸고, 울타리 만들어 참으로 아름다운 집이 됐습니다. 이 얘기를 하다 보니 귀거래사를 부르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은데…. 남들은 뭐라고 할지 모르지만 앞마당에는 잔디를 깔았고 지금쯤 매화가 만개해 있을 겁니다. 집사람이 서울에 있다가 내려갔습니다.
응접실 앞에는 통유리를 붙여놓아 눈이 오거나 비나 오거나 앞산이 보입니다. 10분만 걸어가면 저수지가 있는데 오리들이 줄을 지어 돌아다닙니다. 집 가까이 월봉산이 있어 여름에 적송이 우거진 숲길을 걸으면 참으로 상쾌합니다.
고영구씨가 나와 비슷합니다. 그린벨트 지역에 10년 전 다른 사람이 지은 집을 구입했습니다. 대지 150평에 건평이 30평 정도 되는데 부속 창고만 있답니다. 호화주택이 아니지요. 그러나 들어가 보면 나무가 있고 꽃이 피고 새가 우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노대통령도 거기 가봤다지요.
“옛날에 변호사 시절에 가봤대요. 좋은 집이래요.”
―불법주택은 아닙니까.
“아무 문제 없어요. 그러나 인터넷에 호화주택이라는 이야기가 뜨니까 깨끗하게 살려고 노력했는데 인생 70에 시비당하는 것이 싫다고 했습니다. 고변호사가 망설이고 있을 때 부패방지위원장이 국제회의에 참석할 일이 생겨 급하게 다른 사람을 임명했습니다. 고변호사는 환로(宦路)에 나올까말까 고민하다가 다시 국정원장을 제의받자 결심한 것입니다.”
失言은 失言일 뿐
―부패방지위원장과 국정원장은 직책상 성격이 다릅니다. 부패방지위원장에 거론됐던 사람이 국정원장으로 가니까 아무래도 이상해 보입니다. 미국에선 중앙정보국(CIA) 국장에게 ‘스파이 대장’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핵문제가 불거진 시점에서 대북정보와 해외 관계가 중요한데 민변 출신 변호사를 국정원장에 임명한 것이 적재적소의 인사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다산 정약용은 기중기를 만들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체 해부도를 만들었습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이를 둘러싼 턱뼈에 대한 논문을 썼습니다. 부패방지위원장감이 국정원장이 된 것이 잘못이라는 지적은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국정원은 앞으로 국내 정치사찰을 하지 않을 겁니다. 해외의 기술, 경영정보 같은 것을 분석하고 확보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북한 정보를 잘 분석해야 하구요. 원장은 국정원의 수장으로서 밑에 1, 2, 3차장과 기조실장, 그 아래 수천 명 직원을 올바로 세우는 역할이 중요합니다. 인사보좌관이 꼭 인사전문가일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노대통령은 ‘국내정치 사찰을 중단하고 대외정보를 강화하는 쪽으로 국정원을 변화시키려는 의지가 강하냐’ 하는 것을 원장감을 고르는 중요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고영구변호사는 소신을 지켜온 법률가로서 훌륭하게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천경찰서 권인숙양 성고문 사건 변호인으로 훌륭하게 활동한 경력이 있습니다.”
필자도 그 사건 취재를 해 소상하게 아는 편인데 작고한 조영래 변호사가 주동적으로 변론 활동을 했다. 대부분의 공은 조변호사에게 돌려야 한다. 고영구 변호사는 10여 명 변호인단의 한 사람이었다.
―국정원장 인선은 왜 그렇게 늦어졌나요. 한때는 신상우씨도 거론되다가 또 한때는 신건 원장 유임설도 나오고….
“모든 인사를 내가 다 하지 않습니다. 인사보좌관실이 가동할 수 있는 인원이 적습니다. 분담해서 합니다. 다만 마지막 추천절차는 나를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국방부 인사를 할 때는 장성·영관 장교 심지어 하사관까지 만났습니다. 국정원장 인사에는 깊이 관여하지 않아 잘 모릅니다. 모든 인사를 내가 다 할 수 없잖아요. 예를 들면 방송·언론 부분은 홍보수석에게 챙겨달라고 부탁하면 그 쪽에서 팀을 짭니다. 그쪽에서 정돈해서 나한테 가져오면 인사추천회의를 통해 더 넣기도 하고 줄이기도 해 대통령께 보고합니다.”
―검증과 면접을 철저히 했더라도 막상 사람을 골라 앉혀놓고 보면 사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하자가 나타날 수도 있을 텐데 그럴 때는 어떻게 하나요.
“법률적 하자가 나왔다면 바로 변화가 필요하겠지만 결정적인 것이 아니라면 일정한 기간을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령 인사보좌관이 ‘1급은 집에 가서 건강이나 보살피라’는 실언을 했더라도 당장 ‘인사보좌관 너도 집에 가 건강이나 보살피라’고 해서는 안 되지요. 누구에게나 실수도 따르고 하자도 있습니다.”
민정수석과는 건강한 긴장관계
정보좌관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떨려나는 1급의 운명을 로또복권 운에 비유하는 말을 해 청와대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당하고 노대통령한테도 꾸중을 들었다. 고건 총리도 국회 답변에서 ‘조폭문화’ 운운한 이창동 문화관광부장관과 더불어 “공직을 처음 맡은 분들이 부적절한 용어를 구사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필자도 ‘1급이 로또복권으로 된건가’라는 제목으로 사설을 쓴 일이 있는데 이렇게 인터뷰로 만날 줄은 몰랐다.
“진대제 정통부장관은 이중국적 문제가 불거졌지만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미국인을 장관으로 영입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시대가 아닙니까. 진장관이 재산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대표적 기업 삼성전자의 CEO가 돈이 없다면 큰일입니다. 집이 여러 채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돈이 많으면 집도 두어 채 있을 수 있었겠지요. 장관으로 임명된 이후가 중요합니다. 대통령은 가능하면 한 국무위원이 2년 이상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자는 생각입니다.”
실은 송경희 대변인을 염두에 두고 한 질문인데 진대제 장관으로 대답했다. 청와대는 홍보수석과 대변인을 분리하면서 대변인 쪽은 텔레비전을 잘 알고 ‘용모가 텔러제닉한 여성’을 골랐다. 미국의 백악관처럼 명실상부한 브리핑제를 운영하려면 대변인이 대통령의 복심을 잘 읽어야 하고 국제문제, 경제문제 등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런 실력은 한두 달 사이에 벼락치기 과외공부를 한다 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청와대 대변인이 자꾸 실수를 하면 남북관계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고 외교 문제도 생길 수 있습니다. 송대변인 문제가 언론에 계속 보도되던데 어떻습니까.
정보좌관은 답변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손을 내저었다.
―인사를 놓고 민정수석과 협의할 일이 많을 텐데 견해 차이는 없습니까.
“추천을 담당하는 인사보좌관하고 검증을 맡은 민정수석하고는 건강한 긴장상태가 필요합니다. 문재인 수석이 올곧은 사람이에요. 사심이 별로 없어요. 문수석에게 처갓집 일은 남편이 먼저 챙기고, 시가 일은 부인이 나서서 하자는 말을 했습니다. 서로 긴장하면서 서로를 챙겨주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문수석도 사법시험 합격 통지서를 유치장에서 받았다지요. 민변에 참여해 인권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와 유사하지요. 부산 변두리에 마당을 잘 꾸며 아름다운 집에서 산답니다. 나와 취향이 비슷합니다.
다른 부분도 있지요. 그분은 영남에서 태어나 자라다 대학만 서울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군대 생활 빼놓고는 고향에서 살았습니다. 나는 전라도에서 태어나 경상도와 전라도를 오가며 활동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정서가 다를 수 있습니다.”
청와대 춘추관 옆 신문고 앞에 선 정찬용 보좌관. 그는 참여정부의 인사를 공정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인사보좌관으로 오기 직전까지 1년 동안 300여 시민단체가 모여 있는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의 상임 공동대표였습니다. 특정 정당이나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해서는 안 되는 자리입니다. 다만 작년 설 직후에 광주 전남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는 선후배 70∼80명이 한자리에 모였어요. 그때 다가오는 대선에서 우리가 어떠한 판단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내가 30분 동안 주제발표를 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민주화를 부르짖던 사람들이 투옥 수배 고문 또는 죽는 일까지 있지 않았습니까. 가정과 건강이 깨지기도 했고 인생이 다 망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세가 어디로 간다는 식으로 대응해서는 안 되고 몸과 마음을 바쳐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좋은가에 대해 심각히 고민해야 할 것이라는 요지였습니다. 특정 정당이나 특정 후보를 거론할 수는 없지만 이 얘기를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만약에 잘못돼 10년, 20년 전으로 사회가 거꾸로 가는 일이 생겨서는 절대로 안 되지 않습니까. 그냥 혼자 누구 찍어야지 라고 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 온당치 않고 역사의 후퇴를 막아야 할 책무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거기에 참석한 사람들이 잘 새겨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의 발제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내용이라고 공박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민주당의 ‘민’자도 꺼낸 적이 없고 노무현의 ‘노’자나 김근태의 ‘김’자도 말한 적이 없습니다. 해석은 알아서 할 일입니다. 몇몇 단체에서 정찬용이 특정 후보를 지지했다는 성명을 내겠다고 해서 성명을 내면 감사하게 받겠다고 그랬어요. 그때 광주 시민단체 지도자들의 내부적 논의가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그것은 내 입으로 말하기 곤란합니다.”
중앙인사위원회 안도 스크린
누구 편을 드는 것이 왜 나쁘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정보좌관이 전하는 발제 내용을 뜯어보면 형식적으로는 중립이지만 내용적으로는 특정 후보 지지로 해석될 대목이 있다.
노대통령 그리고 민정수석과의 관계를 이야기하다가 옆길로 샜다. 다시 인사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김광웅 전 중앙인사위원장은 공무원 사회에서 학연 지연으로 얽힌 연고주의 인사의 폐해가 심각해 피의 건전한 흐름을 막는 혈전(피떡)이 되고 있다는 지적을 한 적이 있다.
―부처에서 하는 인사에 대해서는 어떤 원칙을 정해놓고 있습니까. 연고주의를 시정하기 위한 특별한 수단이 있습니까.
“원칙척으로 부처와 청의 인사는 장관과 청장이 자율적으로 합니다. 1급부터 3급까지 인사는 장관과 청장이 합니다. 다만 혈연 학연 지연 중심으로 된 인사는 시정하도록 요구합니다. 장관이나 청장이 인사안을 짜 중앙인사위원회에 넘기면 과거에는 중앙인사위원회가 그냥 통과시켰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중앙인사위원회 안을 놓고 우리가 다시 스크린을 합니다. 한쪽으로 기울었다면 시정을 요구합니다.”
―중앙인사위원과 청와대 인사위원 보좌관실의 관계가 상당히 궁금해요. 어떻게 연결되고 협조하며 중복되는 부분은 없는지….
“인사보좌관의 권한이 세다고 하는데 그만큼 책임을 져야 합니다. 승진 또는 발탁된 사람들은 좋게 평가하겠지만 탈락된 사람은 인사보좌관이 구렁텅이에 빠뜨렸구나 하고 반감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욕을 먹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중앙인사위원회는 대통령 직속 기구로 1∼3급 고위직 공무원 인사의 승진과 전보를 맡고 있습니다. 부처와 청에서 올라온 인사를 마지막으로 점검하는 곳이에요. 나는 대통령을 보좌해서 정무직 산하단체장 국책연구소장 등에 대한 인사를 담당합니다. 인사보좌관실은 식구가 단출하기 때문에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 일손이 많이 가는 일은 중앙인사위원회의 도움을 받습니다.”
―인사보좌관실의 직원은 기능직을 제외하고 몇 명입니까.
“나를 포함해 5명입니다. 업무가 과중한 편이지요. 그래서 다른 수석실이나 보좌관실의 도움을 받습니다.”
―김대중정부에서 개방형 임용제를 만들어놓고 실제로는 공무원을 다수 임용했어요. 공무원 인사적체 해소를 위한 방편이 돼버린 느낌이 듭니다. 노무현정부에서는 공무원 임용의 문호 개방에 대해 어떤 구상을 갖고 있습니까.
“여러 분야에서 인재를 발굴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이 개방형 임용제입니다. 국민의정부에서 좋은 제도를 만들어놓았지만 임용된 사람들이 왕따를 당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보수가 대기업에 비해 현저히 낮아 좋은 사람을 데려오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합니다. 진대제 정통부장관은 삼성전자 CEO로 연봉 수십억원을 받았지만 장관 연봉은 1억원이 조금 넘을 겁니다. 얼마나 손해입니까. 참여정부에서는 계약직으로 채용해 만족할 수 있을 정도까지 상향 조정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습니다.”
―서울대 앞 신림동에 고시촌이 형성돼 있습니다. 공대생들까지 전공을 포기하고 사법시험 공부를 하는 판이라 고시망국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공무원을 채용하는 방식을 다양화해야 합니다. 하위직 공무원의 고위직 승진 길을 크게 열어놓은 것도 해결 방법입니다. 개방형을 많이 늘려 전문성을 갖춘 민간인을 영입하는 것도 좋습니다. ‘고시만 합격하면 내 인생 펴진다’는 식은 곤란합니다. 계속 평가를 통해 걸러내고 해외와 초야에 있는 인재를 발굴하는 인사를 한다면 고시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감소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지방대학 육성론자들은 지방대학 공동화 현상을 막기 위해 공무원 임용시 지방대학 출신자를 일정 비율 이상 채용하는 것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박찬석 전 경북대 총장이 공무원 지역할당제 주장을 펴는데 충분히 검토해볼 만한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지방대학을 서울대학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광주 같으면 IT정보산업이나 문화산업과 관련한 인재교육을 강화할 수 있겠지요. 지방대학이 바로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특수한 것을 가져야 합니다.”
―이름 없는 지방의 의대나 한의과대학의 수능 점수가 서울대 공대보다 훨씬 높아졌어요. 과학입국의 목표나 경제를 생각하면 이공계를 이렇게 고사시켜서는 안 됩니다. 중국은 대부분의 국가지도자가 이공계 출신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기술직은 승진하는데 한계가 있거든요. 이공계를 나와도 열심히 일하면 얼마든지 정부 고위직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연구개발(R&D) 예산지원액이 5조5000억원 가량 됩니다. 더 늘어날 것입니다.”
그는 여기서 조금 쉬어가자며 아들 딸 이야기를 했다.
“남매가 어렸을 때 두 가지 얘기를 자주 했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할 것인가는 너희들이 결정하겠지만 부모로서 요망사항이 있다면 법조계에 안 나갔으면 하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법조계는 일상적으로 죄인 또는 범죄 혐의자를 만납니다. 사람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생업입니다. 두 번째, 의료계로 안 갔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만날 아픈 사람을 만나니 뭐가 좋습니까.
조선시대에 법조인을 검률(檢律)이라고 했습니다. 통역은 통변이었구요. 지금은 최고로 치는 법조·외교·의료인이 조선시대에는 기능직 중인이었습니다. 세상이 바뀌어 높이 평가받고 있는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습니까. 다가오는 시대에는 정보산업이나 문화산업에 종사하는 사람, 여행전문가 같은 직종의 대우가 훨씬 좋아지지 않을까요.
아직도 어려운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먹고 입고 자는 의식주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까. 그런 만큼 이제는 청소년들이 희망하는 직업군이 삶의 질 쪽으로 변화할 겁니다.”
이 인터뷰를 읽고 법조인·의사·외교관이 화를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보좌관이 살아온 일생의 코드가 세속의 가치와는 반대라서 자녀들에게 그런 교육을 시킨 것 같다. 그러나 정보좌관이 모시는 노대통령은 법조인 출신 아닌가.
정보좌관 아들은 연세대 경영학과 3학년 재학중이고 딸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조각을 공부한다. 광주일고 서울대를 나온 아버지를 닮아 자녀들이 다 공부를 잘하는 모양이다. “자녀들이 다 좋은 대학에 다니네요”라고 기분을 맞춰주자 “아버지는 미련한데 그 놈들은 노력을 했나”라고 대답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다.
윤한봉 미국으로 도피시켜
―광주사태 때는 어디서 무엇을 했습니까. 간단하게 답해주세요.
“경남 거창에 있었습니다. 통제된 언론은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다고 보도했습니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광주시민들이 무자비하게 당한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분했지만 용감하게 광주로 가서 싸울 생각을 못했습니다. 가슴 졸이면서 걱정했습니다.”
1975년 고 전연창 거창고 교장이 와보라고 해 거창에 갔다가 눌러앉아 교사를 시작했다. 부인도 그 학교에서 함께 교사로 일했다.
정보좌관은 교사자격증 없이 강사를 하다가 1977년 교육부에서 무자격 교사를 강단에서 내쫓는 바람에 그만두고 거창YMCA에서 활동을 했다.
1984년에는 5·18 마지막 수배자로 불리던 윤한봉씨를 미국으로 밀항시키는 일을 성공시켰다. 윤씨는 5·18로 사형선고를 받은 정동년씨와 같은 주모자급으로 국내에서 검거됐더라면 끔찍한 고문을 당한 뒤 사형선고를 받을 판이었다. 정보좌관과 윤씨는 민청학련 사건의 공동 피고인이었다. 정보좌관은 외항선 기관사로 일하던 친동생의 도움을 받아 마산에서 윤씨를 외항선에 태워 미국으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