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설립된 기념사업회는 지난 6월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 2층 주택을 마련, 본격적인 활동의 터전을 닦았다. 이곳에는 ‘주거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천주교 도시빈민회’ ‘아시아 주거권연합한국위원회’ 등 선생이 1970∼80년대 설립한 빈민운동단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박재천(朴在天·51) 사무국장은 “선생 개인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빈민계층에 대한 선생의 뜻과 사랑을 이어가는 것이 기념사업회의 존재 이유”라고 말한다.
1970년대부터 선생과 함께 빈민운동을 해온 박 국장은 철거민을 위해 경기도 시흥에 세운 ‘복음자리 마을’에서 선생과 함께 기거하며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아 길렀다. 그는 “끼니때마다 20∼30명의 식구가 밥상 앞에 모여 앉곤 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선생은 진짜 독종이었습니다. 공부와 참선, 명상을 통해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관리했죠. 또 무엇보다 거짓말을 참지 못하셨어요. 팍팍한 생활에 지친 이웃들이 이 핑계 저 핑계를 댔다가 혼쭐이 나곤 했습니다.”
기념사업회는 빈민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벌여나갈 예정이다. 박 국장은 “가난한 사람도 어깨 펴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빈민문화 창조, ‘제2의 제정구’ 탄생을 위한 활동가 양성에 힘쓰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