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민서현(21)이 와인바의 육중한 유리문을 시원스레 열어젖히고 성큼성큼 걸어온다. 큰 키(170cm) 때문일까, 길게 늘어뜨린 찰랑찰랑한 머리칼 때문일까.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숲의 여왕으로 나온 ‘갈라드리엘’이 떠올랐다. 민서현은 인간도, 신도 아닌 중간계의 요정처럼 보였다.
그를 배우로 기억하는 사람은 아직 많지 않다. 가수 이수영의 뮤직 비디오에서 ‘왕의 남자’ 이준기의 연인으로 나온 걸 두고, 이준기의 실제 ‘여친’이라는 뜬소문의 주인공쯤으로 알려졌다. 최근 케이블TV 드라마 ‘하이에나’에 출연, 비로소 배우라는 호칭을 얻게 됐다.
그가 맡은 역은 ‘야한 얘기를 씩씩하게 해대는’ 메트로섹슈얼 걸. 얼굴은 모범생이지만, 속내는 불량하다. 실제로 그는 ‘생긴 것과 성격이 딴판’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한다. 드라마 감독이 그의 ‘이중적’ 캐릭터를 제대로 잡아낸 셈이다.
촬영장에서도 그의 얼굴은 천의 얼굴이다. 웃을 때는 티 없이 맑은 대학생이다가, 웃지 않을 때는 시릴 만큼 차갑다. 몽롱한 표정을 지을 때면 기괴한 ‘백치미’가 튀어나왔다. 천생, 배우로 살 여인이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