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호

집 짓는 휴머니스트 건축가 유걸

“젊을 땐 디자인을 봤지만 이젠 사람을 생각해요”

  • 글·이설 기자 snow@donga.com / 사진·김형우 기자 free217@donga.com

    입력2008-04-03 17: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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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년 건축 외길을 걸어온 백발 성성한 건축가. 오늘도 손가락에 연필심을 묻혀가며 작업에 열심이다. 강산이 네 번 변한 세월인데 혹 ‘밥벌이’가 지겹지는 않을까. 아니,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집 짓는 재미가 새록새록하단다. 처음엔 디자인을 봤지만 이제는 건축물 속의 사람을 생각한다. 그러니 의욕도 보람도 예전과 비할 바 아니다.
    집 짓는 휴머니스트 건축가 유걸
    “기술만으로는 좋은 건축가가 될 수 없어요. 사람과 사회를 이해하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건축물이 빛을 발하고,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의 만족도도 높아집니다. 좋은 건축물은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건축사무소 아이아크 대표 유걸(杰·68)씨. 40년 경력을 쌓아온 그는 건축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내 ‘사람’을 강조했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건축물이란 궁극적으로 ‘창의적인 생활을 끌어낼 수 있는 건축’. 이를 위해 건축가는 설계부터 시공까지 오롯이 그속에서 생활할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 예컨대 교회 하나를 짓기 위해서 목사, 장로, 교인들을 두루 만나 소통하고 교감하는 식이다.

    유씨는 아이아크 건축가 40명과 함께 프로젝트 더미에 싸여 산다. 요즘은 더 바빠졌다. 서울시 신청사 설계를 맡아서다. 노(老)건축가는 공모에 출품하지 않는다는 룰을 깨고 신청사 공모에 참가해 당당히 당선됐다.

    집 짓는 휴머니스트 건축가 유걸

    2011년경 완공 예정인 서울시 신청사 모형을 다듬고 있다. 수평형의 신청사 건물 앞부분은 한옥 처마의 곡선을 차용해 전통미를 살렸다.(좌) 유씨는 “좋은 건축가가 되려면 사회·심리·정치 등 다양한 분야를 끊임없이 탐구해야 한다”고 말한다.(우)



    집 짓는 휴머니스트 건축가 유걸

    유씨 부부는 경기도 용인에 산다. 부인 박혜란씨는 서울대 건축공학과 동기.

    그가 디자인한 신청사는 가로 길이가 세로 길이보다 긴 수평형 건물. ‘관청사는 위용 있는 고층빌딩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깼다. 역이나 터미널처럼 시민들이 거리낌 없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한 친(親)시민적 디자인이다. 심사위원들이 이런 ‘철학 있는 파격’을 높이 샀다는 후문이다.



    신청사 공모에 당선돼 그의 이름이 알려지자 언론은 고희(古稀)를 앞둔 그의 나이에 주목했다. 우리 건축계에선 60세가 넘으면 대개 스케치를 접는다. 그의 행적은 정반대인 셈이다. 이에 그는 “외국에선 건축가들 간의 경쟁이 워낙 심해 70세가 넘어서야 인정받는 이가 수두룩하다”고 말한다.

    건축가라는 직업에 대해 묻자 그는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굉장히 재미있다, 나와 아주 잘 맞는다”고 말했다. 평생의 ‘즐거운 밥벌이’가 됐지만 이 일을 시작한 계기는 다소 심심하다.

    “아버지(유형목)께서 서양미술을 하셨어요. 일본 와세다대에서 공부한 1세대 화가시죠. 그 영향으로 저도 조소에 관심을 가졌어요. 그런데 미술을 하면 돈을 많이 못 벌겠더라고요. 그래서 하는 일은 비슷하지만 돈벌이가 좋을 것 같은 건축공학과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실제 벌이가 좋은 건 아니더라고요. 하하.”

    집 짓는 휴머니스트 건축가 유걸

    일주일에 두 번 서울대 건축학과 학생들의 졸업작품 설계를 지도한다.(좌)

    1963년 서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이광로 선생과 김수근 선생의 건축연구소에서 일했다. 그러다 더 넓은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1970년 가족과 함께 도미한다. 그곳에서도 rnl이라는 회사에 취직해 계속 건축일을 했다. 1985년 올림픽선수촌 건설에 관여하는 친구 일을 돕기 위해 한국에 온 뒤 미국과 한국을 오가다가 2002년 경희대 건축조경전문대학원 교수를 맡으면서 경기도 용인에 정착했다. 한미 두 나라에서 활동한 그는 척박한 국내 건축 토양을 아쉬워했다.

    “외국 언론에는 건축만 다루는 섹션이 있습니다. 건축 비평가도 활발히 활동하지요. 새로운 디자인에 대한 의견도 나누고 비평도 합니다. 미술 섹션에서 작품을 소개하고 논하는 것처럼요.”

    무엇보다 건축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건축 경쟁력을 높이는 모티프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기대치에 따라 건축가의 의욕과 결과물의 수준이 달라진다. 건축을 보는 일반인의 안목이 높아져야 건축주의 요구를 뛰어넘은 건축, 창조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건축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국내 건축물은 서울 서대문구 합동에 있는 프랑스대사관. 고(故) 김중업 선생의 작품으로 1962년에 완공됐다.

    “서구 건축은 자존(自存)하지만 한국 건축은 여러 것의 한 부분으로 존재해요. 조화의 건축이지요. 석가탑과 다보탑이 서로에 의해 유명해진 것처럼요. 프랑스대사관은 현대건축물이지만 한국인의 정서가 기막히게 녹아 있어요. 김중업 선생께서 완공 뒤 몇몇 지인을 초청해 뿌듯해 하시던 게 눈에 선합니다.”

    유씨의 건축은 ‘공간활용이 자유롭고, 생활하면서 새로운 면들을 발견하게 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역시 “젊은 시절에는 디자인과 조형에 관심이 기울었지만, 지금은 사람과 건축물의 궁합에 마음이 간다”고 말한다. “내 혼을 쏟은 건축물 속에서 행복해 하는 사람들을 볼 때가 가장 기쁘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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