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호

인터뷰

‘회색인간’ 작가 김동식

“저 작가 맞나요? 꾸준히 썼을 뿐….”

  •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8-03-25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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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날 불쑥 나타난 중학교 중퇴 학력 소설가

    • 주물공장에서 일하며 2~3일에 한 편씩 소설 완성

    • 온라인 커뮤니티 칭찬에 ‘중독’돼 더 열심히 집필 몰두

    • “맞춤법 고쳐주고 내용 조언해준 수많은 네티즌이 선생님”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회색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13일의 김남우. 

    지난해 12월 말 동시 출간된 소설집 세 권의 제목이다. 모두 ‘김동식’이라는, 그동안 세상에 알려진 적 없는 이름의 작가가 썼다. 책을 낸 곳도 ‘요다’라고, 그동안 소설을 한 권도 펴낸 적 없는 작은 출판사다. 

    그런데 ‘터졌다’. ‘회색인간’이 출간 후 채 석 달도 지나기 전 6쇄를 찍은 것이다. 무명의 김동식은 3월 초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조남주(‘82년생 김지영’), 김애란(‘바깥은 여름’), 김진명(‘미중전쟁’) 등과 순위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요다 출판사에 따르면 3월 5일 하루에만 ‘회색인간’ 주문이 2300부 들어왔다. 유명 작가도 1만 권을 팔기 힘들다는 국내 소설 환경에서 말 그대로 돌풍이라 할 수 있다. 

    ‘회색인간’ 만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등 다른 두 권의 소설집도 3월까지 4쇄를 찍었다. 이처럼 한 작가의 작품 여러 권이 동시 출간돼 동반 인기를 끄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김동식의 독자 중 상당수는 아마도 이런 호기심에 이끌려 처음 그의 책을 펼쳐 들 것이다. 그러고는 이내,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정신 못 차린 채 한 권을 다 읽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되리라. 이러한 흡인력은 김동식 작품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속도감 있는 전개, 기막힌 반전

    ‘회색인간’ 한 권에는 24편의 아주 짧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일반적인 단편소설 분량은 200자 원고지 70~80장 정도. 그런데 김동식의 작품은 대부분 20~30장 안에 끝난다. 그러다 보니 시작과 동시에 이야기가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음박질쳐 나가고, 그 박진감에 빠져들 때쯤이면 어느새 파격적인 결말에 다다라 있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기막힌 반전이 폭풍처럼 몰려오니, 독자는 순식간에 한 편을 다 읽고 다음 편을 향해 손을 내밀게 된다.
    김동식의 작품은 소재 면에서도 독특하다. 요괴, 외계인, 지저(地底)인간 등이 무시로 등장한다. 평범한 직장인이 어느 날 갑자기 영원히 되풀이되는 시간 속에 갇히고, 세계 정부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세상 모든 아이의 손가락을 여섯 개로 만들어버리며, ‘인조인간’ 사냥꾼이 불의의 사건으로 자신도 실은 인조인간이었음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형식 면에서나 내용 면에서나, 김동식은 지금까지 주류 문단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를 선보인다. 그래서 그를 만났다. 서울 건국대 근처 한 카페에서 마주 앉은 김동식은 수줍은 표정의 청년이었다. 

    요즘 문학계에서 가장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 작가를 만나 뵙게 돼 영광입니다. 

    “작가라니…. 제가 그렇게 불리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2016년부터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지만 한 번도 작가라고 생각한 적이 없거든요. 작년 겨울 제 이름을 단 책이 나왔을 때도 속으로 ‘이걸 누가 사서 읽겠나’ 하고 걱정했죠. 요즘 벌어지는 상황이 신기하고 얼떨떨해요.” 

    이처럼 독특한 소설은 어떻게 쓰게 된 건가요. 

    “2010년쯤인가, 스마트폰을 샀는데 ‘오늘의 유머(오유)’라는 사이트가 기본으로 등록돼 있었어요. 사람들이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를 올리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나누는 공간이죠. 일하다 힘들 때면 거기 올라오는 글을 보며 피로를 풀었어요. 그중에서도 ‘공포 게시판’을 특히 많이 봤죠. 무서운 이야기를 올리는 곳이에요. 매일매일 거기 올라오는 글을 읽다가 문득 ‘나도 한번 글을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2016년 5월의 일입니다. 그때까지 한 번도 뭘 써본 적이 없어서 일단 ‘네이버’에서 ‘글 쓰는 법’을 검색했어요. 그리고 거기서 하라는 대로 이야기를 한 편 써서 올렸죠. 그게 시작이었어요.”

    학교를 떠난 소년

    정리를 하고 보면 달변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김동식은 말수가 적었다. 자주 수줍어했고, 질문을 던지면 한동안 속으로 생각한 뒤 천천히 답을 내놓곤 했다. 다만 자신을 감추거나 포장하려 하지는 않았다. 그가 꾸밈없이 들려준 인생 이야기는 김동식의 작품만큼이나 남달랐다. 

    1985년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다. 그리고 또래보다 훨씬 일찍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지던 터라 가정환경이 풍족하지 않긴 했지만, 그게 자퇴의 직접적 원인은 아니었다고 한다. 김동식은 “굶어죽을 만큼 힘든 상황은 아니었다. 그냥 학교에 가면 자주 혼났고, 그게 싫어서 빠지다 보니 점점 더 학교에 가기 싫어졌다. 엄마가 ‘나중에 후회한다’고 말렸지만 그때는 그런 충고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학교를 벗어난 김동식이 향한 곳은 노동 현장이었다. 그러나 아직 어린 티가 채 가시지 않았을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았다. 

    “인쇄, 재단 같은 걸 해보려 했지만 며칠 못 버티고 나가떨어졌어요. 그나마 가장 길게 한 게 전화 배선 공사였는데 그것도 한 20일쯤 한 뒤 그만뒀죠.” 

    오랫동안 변변한 일자리를 잡지 못한 채 방황하던 그는 열여덟 살이 됐을 때 바닥에 타일 붙이는 일을 배우러 대구로 갔다. 그러나 거기도 불경기가 계속돼 기술을 익힐 만큼 일거리가 이어지지 않았고, 결국 그는 한 PC방에 둥지를 튼다. 이후 성인이 될 때까지 그의 ‘직장’은 줄곧 PC방이었다. 친구들이 교과서를 통해 세상을 배울 때, 김동식은 PC방을 떠도는 사람을 통해 전혀 다른 모습의 세상을 배웠다. 글 쓰는 법도, 책 읽는 재미도 모른 채 살아온 김동식의 글이 지금 수많은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바로 이 남다른 경험의 폭 때문인지 모른다. 

    서울에는 어떻게 오게 됐나요. 

    “2006년 서울에 계시는 외삼촌이 연락을 하셨어요. 당신이 다니는 공장이 괜찮다고, 몸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니 올라와서 같이 일하자고요.” 

    김동식이 도착한 곳은 사장까지 포함해 6명으로 구성된, 서울 성수동의 한 주물공장이었다. 주물은 쇠붙이를 녹여 거푸집에 부은 뒤 굳혀서 만든 물건을 뜻한다. 이때부터 김동식은 성수동 그 공장에서 일하며 단추, 지퍼, 옷핀 등을 만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만드는 일’ 중 한 부분을 담당했다. 김동식에 따르면 “400~500℃ 정도로 끓인 뜨거운 금속 액체를 국자로 떠서 500원짜리 동전보다 약간 큰 구멍 안에 붓는” 일을 했다. 그 구멍 안에는 단추 지퍼 옷핀 모양 틀이 들어 있어서, 금속 물이 식으면 각각의 제품이 만들어졌다.

    단단한 벽 앞에서

    공장에서 금속 액세서리를 만들며 이야기를 지은 김동식 작가. [박해윤 기자]

    공장에서 금속 액세서리를 만들며 이야기를 지은 김동식 작가. [박해윤 기자]

    “주로 아연 물을 사용했고, 가끔 납이나 주석 녹인 물도 썼어요.” 

    김동식이 말했다. 

    그러니까 여러 직원이 분업해 액세서리를 만드신 거군요. 

    “네. 각자 맡은 일이 다른데 저는 뜨거운 액체를 구멍 안에 붓는 일을 한 거죠. 아연 녹인 물이 워낙 뜨거워 처음엔 좀 무서웠지만 금세 익숙해졌어요. 외삼촌 말처럼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고 육체적으로도 크게 힘들 게 없는 일이었거든요.” 

    월급도 좀 올랐고요? 

    “첫 월급이 130만 원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PC방에서 60만 원쯤 받았으니까 많이 오른 셈이죠. 처음 돈을 받았을 때 피자를 사 먹었어요(웃음). 매달 돈이 안정적으로 들어오니 나름대로 저금도 하고 가끔씩 맛있는 것도 사 먹고…. 그런 게 참 좋았어요. 서울 올라와서 처음엔 송정동 옥탑방에 살다가 5년 정도 돈을 모아 성수동에 있는 반지하 전셋집을 구했어요. 거기 지금도 살고 있어요.” 

    공장 생활은 마음에 들었나요. 

    “네. 사장님도, 직원 분들도 다 좋고…. 10년을 일하면서 결근 한 번 안 했어요. ‘나도 뭔가를 이렇게 꾸준히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걸 공장에서 처음 알게 됐죠. 다만 일 자체가 온종일 혼자 하는 거니까 그게 좀 힘들긴 한 것 같아요. 제 자리 바로 앞에 벽이 있고 직원들 간 거리도 멀었어요.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없이 단순 반복 작업만 하니까 이런저런 잡생각을 많이 했죠.” 

    퇴근 후 시간은 어떻게 보내셨어요? 

    “그냥 집에 있었어요. 제가 부산을 어릴 때 떠나서 거기 친구들과는 연락이 다 끊겼어요.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서울에서 새로 사람들을 사귀지도 못했고요. 늘 집-공장, 집-공장 반복하며 지냈어요. 그러다가 오유를 알게 되고, 거기서 글을 읽으며 ‘나도 글을 써볼까’ 하는 생각을 한 거예요.” 

    아, 그의 인생 이야기에서 한 가지 빠진 게 있다. 서울에 올라온 뒤 3~4년쯤 뒤 ‘검정고시를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홀로 공부해 중졸, 고졸 검정고시를 차례로 통과한 일이다. 김동식은 이에 대해 “대학에 가려는 마음은 없었다. 그냥 검정고시를 한번 봐보고 싶어 책을 한 권 사서 보고 시험을 치렀는데 통과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렇게 고졸 학력을 인정받게 됐지만 그의 인생은 달라질 게 없었다. 여전히 ‘집-공장’을 오가며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는 작은 구멍 안에 금속 물을 붓고, 밤이면 오유의 글을 읽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글 쓰는 법’을 알고 싶어 졌을 때 ‘네이버’ 선생님은 김동식에게 대략 이런 조언을 해줬다고 한다. 

    △글에는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 △문장은 쉽고 간결해야 한다 △접속사를 많이 쓰지 말고 △말줄임표를 많이 찍지 말아라.

    “재미있어요. 다음 이야기도 보고싶어요”

    김동식은 이 ‘지침’에 따라 짤막한 이야기를 한 편 지었다. 그러고는 오유 공포 게시판에 절반만 올린 뒤 ‘결말이 궁금하신 분이 있으면 뒷내용을 마저 올리겠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두근두근 가슴 떨리는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그가 다시 게시판에 들어갔을 때, 한 개의 댓글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재미있어요. 다음 이야기도 보고 싶어요.” 

    김동식은 이 ‘칭찬’에 힘을 얻었다. 그리고 이날 이후 빠르면 하루, 늦어도 사흘에 한 편씩은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 오유 공포 게시판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쓸 이야깃거리가 많았나요. 

    “하루 종일 이야기 생각만 했으니까요. 일하는 내내 머릿속으로 생각하다 보면 퇴근할 때쯤엔 한 편이 완성돼 있어요. 그러면 집에 돌아와 씻지도 않고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았죠. 매일 6~7시간씩 글을 썼어요.” 

    힘들지 않았어요? 

    “아니요. 정말 좋았어요. ‘내가 이 글을 쓰면 사람들이 어떤 댓글을 달아줄까’ 생각하면 신이 났어요. 살면서 칭찬을 받아본 일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글을 쓰면 그 아래 ‘재미있다’ ‘정말 잘 쓰신다’ 같은 댓글이 막 달리잖아요. 칭찬받는 그 느낌이 좀 민망하면서도 참 좋고 마음이 정말 따뜻해지더라고요. 어쩔 때는 댓글이 보고 싶어서 하루에 아침저녁 두 편을 올린 적도 있어요. 훌륭한 작가 분들은 글 쓰는 것 자체가 좋아서, 그리고 세상에 뭔가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글을 쓰실 텐데 사실 저는 아니에요. 저는 사람들이 제 글을 읽고 그 아래 댓글을 달아주는 게 좋아서 글을 썼어요.” 

    오유 공포 게시판에 적어도 사흘에 한 편씩 꾸준히 글을 써 올리면서 그의 글솜씨는 말 그대로 일취월장 성장했다. 처음엔 쉬운 맞춤법도 곧잘 틀렸고, 문장도 어설픈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독자’들의 댓글 수업을 받으며 이런 약점도 차츰 고쳐나갔다. 김동식에 따르면 오유 공포 게시판 사용자들은 그의 최초의 독자이자, 가장 좋은 글쓰기 선생님이었다. 

    독자들께 응원을 받은 것 말고, 배운 것도 많나요. 

    “그럼요. 댓글에 칭찬만 있는 건 아니에요(웃음). 일단 맞춤법을 많이 고쳐주셨어요. 구성에 대해서도 ‘이번 글은 개연성이 좀 떨어진다’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갔으면 더 좋았겠다’ 같은 의견을 주시는 분들이 있었고요. 그런 이야기가 저한테는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독자들 말씀에 따라 글 내용을 고치신 거예요. 

    “새로 쓰는 이야기에 많이 반영했죠. ‘요즘 똑같은 반전이 반복되는 것 같다’고 하면 결말을 새롭게 쓰려고 노력하고, ‘3인칭 말고 1인칭 이야기를 써보시면 어떨까요’ 하면 그것도 시도해보고. 사실시키는 대로 다 했어요(웃음).”

    피와 땀으로 지은 이야기

    앞서 김동식의 강점으로 꼽은 ‘속도감 있는 이야기 전개, 기막힌 반전’ 등도 이처럼 네티즌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표현력과 구성력이 점점 좋아지면서 김동식의 글이 가진 본질적인 특징, 즉 땀 흘려 일한 사람만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상상력과 세상에 대한 남다른 성찰이 더욱 선명히 드러나게 됐다. 

    그의 소설 중 ‘부품을 구하는 요괴’를 보자. 어느 날 요괴가 인간 세상에 나타나 자기 몸의 ‘부품’으로 사용할 인간을 구한다. 처음에 사람들은 잡혀가지 않으려 몸부림을 친다. 그런데 부품이 돼 끌려갔던 사람이 저녁이면 인간 세계에 돌아오는 게 아닌가. 그것도 일당으로 ‘어른 주먹만 한 금덩이’까지 받아 들고 말이다. 이제 사람들은 ‘부품 인간’을 살해하고서라도 자신이 그 자리에 들어가고자 난장을 벌인다. 

    김동식의 다른 작품처럼 이 이야기도 길지 않다. 하지만 여운이 남는다. 왜 우리가 사는 세상 곳곳에서는 요괴조차 지키는 노동의 정의가 지켜지지 않을까. 또는 인간은 왜 황금을 준다면 기계 부품이 되는 것조차 감수하는가. 김동식의 이야기는 단순하고, 때로는 황당무계하지만, 읽는 이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많다. ‘독자’들은 댓글을 통해 그의 짧은 이야기에 대한 자신들의 성찰을 주고받았고, 그러면서 점점 김동식이라는 이름은(정확히는 그의 오유 이름인 ‘복날은 간다’는) 더 많은 이에게 알려졌다. 오유에서는 특정 글이 이용자의 추천을 100개 이상 받으면 ‘베스트 오브 베스트’, 일명 베오베 게시판으로 옮겨진다. 김동식의 글은 번번이 ‘베오베’에 갔고 거기서 조회수가 더욱 폭발적으로 늘었다. 

    당시 그의 독자 중에는 문학 전공자이자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대리사회’ 등의 저자인 김민섭 씨가 있었다. 김씨가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이 운영하는 출판사에 이 ‘작가’를 소개하면서, 김동식의 글은 지난해 12월 ‘그동안 세상에 없던’ 세 권의 소설집 형태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현재 김동식은 ‘잠시’ 공장을 떠난 상태다. 2016년 겨울, 그는 오유에 이런 글을 올렸다. 

    ‘배운 것 없이 32살 먹도록 평생 공장에서 기계만 돌리다가, 올 초에 그게 너무 지쳤었습니다. 단 1년이라도 내 인생에 휴식이 필요하단 생각으로 일을 그만두자 다짐했습니다. 결정을 끌고 끌다가, 겨우 연말이 되어서야 결정을 내렸습니다.’ 

    ‘앞으로 제가 뭘 해야 할까요?’라는 제목의 이 글에는 잠시 쉬어보고 싶지만 앞으로의 삶이 두렵기만 한 30대 청년의 맨얼굴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다. 김동식은 이때 ‘걱정 말고 일단 쉬어보시라’는 네티즌들의 응원에 힘을 얻었고,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1년만 맛있는 것 먹고 여행도 다니며 살아보겠다’는 생각으로 공장을 떠났다. 그러나 평생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여행은 ‘어떻게 하는 건 줄 몰라’ 시도할 엄두를 못 냈다고 한다.

    “꾸준히 쓰겠다”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이후에도 그저 똑같이 집에 머물며 3일에 한 편씩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 올리던 그의 삶은 지난해 가을 김민섭 씨와 한기호 씨를 차례로 만나면서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갑자기 ‘인기 작가’가 됐고, 그의 책이 올해 평택시가 선정한 ‘한 책’(시민과 함께 읽는 한 권의 책)으로 뽑히면서 관내 학교 등 20곳에서 특강을 해달라는 요청도 받았다. 앞 두 사람과 함께 난생처음 강원도 여행도 해봤다고 한다. 

    ‘회색인간’ 등이 큰 사랑을 받으면서 통장에는 3800만 원이라는 목돈이 인세로 들어왔고, 3월 중 그의 또 다른 작품을 담은 소설집 4권, 5권이 출간될 예정이다. 2년 동안 쉼 없이 쓴 소설이 하나둘 결실로 돌아오는 셈이다. 김동식은 “김민섭 선생님은 새로 번 돈으로 지상에 방을 구하고 본격적으로 글만 쓰면서 살아보라고 하신다. 내가 반지하에 사는 게 마음에 걸리시는 것 같다. 공장을 그만둘 때만 해도 ‘언제든 돌아오라’고 하시던 사장님도, 책이 나온 뒤 찾아뵈니 ‘이제는 글 쓴 걸로 먹고살아보라’고 하시더라. 앞으로 내 삶이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지금은 갑자기 공중에 붕 뜬 것 같은 기분”이라고 했다. 

    그래도 계속 글은 쓰고 계시죠? 


    “네. 김민섭 선생님 등이 주선해주셔서 지금은 카카오페이지에 소설을 올리고 있어요(카카오페이지는 오유와 달리 웹소설을 읽으면 편당 일정액이 결제되는 유료 플랫폼이다). 그러면서 오유에 무료로 올렸던 소설 대부분을 지우게 됐는데 마음이 울렁거리고 좀 슬프기도 했죠. 인생이 갑자기, 상상도 못 한 방향으로 바뀌었어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까지처럼 계속 꾸준히 글을 쓰는 일 뿐인 것 같아요.” 

    김동식은 ‘작가님처럼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달라’는 질문에 “글쎄요, 제가 무슨 조언을…” 하며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고는 조심스레 “꾸준히 쓰시면 될 것 같아요”라고 입을 열었다. 

    “돌아보면 제가 한 건 꾸준히 글을 쓴 것뿐이에요. 맞춤법이 다 틀리고 구성도 엉성한 글이나마 꾸준히 쓰니 많은 분이 읽어주셨어요. 그중에 책 출판을 주선해주신 김민섭 선생님이 계셨고, 또 지금 제 책을 사고 저를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계셨죠. 제가 처음 사인회를 했을 때 찾아와서 눈물을 흘려주신 분들도 오유에서 처음 제 글을 읽어주신 분들이에요. 저는 그분들에게 제 글로 재미를 드리고 싶어요. 그분들의 칭찬을 받고 싶고요. 사람들이 더 이상 제 글이 재미없다고 하면, 아마 더는 글 쓸 이유가 없어질 거예요. 그렇게 될 때까지는 계속 글을 쓸게요.” 

    김동식의 말이다. 학교를 일찍 그만둬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하는지, 하고 싶은지조차 모른 채 살아왔다’고 안타까워하는 그는, 이제야 비로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은 듯했다. 평생 살면서 읽은 책이 10권도 채 안 된다면서 어느새 5권의 책을 내게 된 이 작가가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를 품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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