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호

인터뷰

한경호 경남도지사 권한대행

“최선 다했지만, 자평하면 51점”

  • | 조성식 기자 mairso2@donga.com 강정훈 부산경남 취재본부 기자 manman@donga.com

    입력2018-06-27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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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 전 지사 반면교사로 소통과 협치 중시

    • 조선업 최대 위기 막고, 항공정비사업 유치

    • 도민행복위원회·안전제일위원회…수요자 중심 행정

    [경남도청 제공]

    [경남도청 제공]

    그동안 경상남도엔 도지사가 없었다. 지난해 4월 홍준표 당시 도지사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려 사퇴한 이후다. 후임 도지사가 선출되지 못한 것은 홍 전 지사의 이른바 ‘꼼수 사퇴’로 보궐선거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그해 8월 한경호(55) 세종시 행정부시장이 경남도 행정부지사 겸 도지사 권한대행으로 부임했다. 그가 권한대행으로 일한 기간은 10개월. 광역단체장 권한대행으로는 최장 근무 기록이라고 한다. 본의 아니게 이색 기록을 세운 그를 6·13 지방선거를 며칠 앞두고 경남도청에서 만났다. 보수 텃밭 경남에서도 여당 바람이 분다고 언론이 호들갑스럽게 보도할 무렵이었다.

    경남 민심이 많이 바뀌었나. 

    “자유한국당의 텃밭이고 보수의 중심지인데 언론에서 격전지라고 하지 않나. 실제로 민심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는 왜 안 나왔나. 

    “지난해 10월 국회 행정안전부 국정감사 때 나를 참고인으로 불렀다. 자유한국당 의원이 진주시장 출마 여부를 묻더라. 나가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나갈 생각이 없다고 했다.” 

    본인 의지로 결정할 일 아닌가. 

    “선거를 관리해야 할 도지사 권한대행이 선거 때문에 그만둔다는 건 도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도민의 트라우마도 있고. 김두관, 홍준표 전 지사가 대선 출마한다며 중도사퇴하지 않았나.”


    정부, 국회 상대 업무 힘들어

    그는 1인 3역을 했다. 지난해 9월 조규일 경남도 서부(정무)부지사가 지방선거에 출마한다며 사직했기 때문이다. 



    권한대행을 10개월이나 했는데, 별문제 없었나. 

    “일상 업무 보는 데는 문제가 없다. 다만 단체장이라는 자리가 정치가와 행정가 역할을 겸하기에 정무적 부분에서 제약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정부와 국회를 상대하는 게 힘들었다. 민선 자치단체장과 행정관료인 권한대행을 대하는 태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정치인이 아니라 그런지 그의 표정이나 말에는 기름기가 흐르지 않는다. 다소 딱딱해 보이지만 신뢰를 주는 인상이다. 실무형 관료의 전형이랄까. 

    경남도에는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홍 전 대표는 35·36대 경남도지사를 지냈다. 처음에 보궐선거로 당선됐다가 두 번째 임기 도중 사퇴했기에 실제 재임 기간은 5년이 안 된다. 

    홍준표 전 지사의 긍정적, 부정적 유산을 꼽는다면.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는 항공우주산업 국가산업단지(산단)와 나노융합 산단 지정에 애쓴 것은 공으로 인정해줘야 한다. 그런데 채무 제로 정책은 상반된 평가가 있다. 불요불급한 예산을 절감한 것은 긍정적 면이다. 반면 거기에 매몰되다 보니 복지 농업 환경 문화예술에 대한 투자가 위축됐다. 기금 통폐합의 순수한 취지도 변질됐다. 진주의료원 폐쇄도 후유증이 컸다. 행정이란 게 뭔가. 어려운 사람들이나 소외계층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것 아닌가. 단순히 경영수익이 작다고, 노조가 말 안 듣는다고 폐쇄한 건 민주행정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진주의료원 문제는 어떻게 됐나. 

    “지금도 해결되지 않았다. 진주의료원을 대체할 수 있는 의료복지기관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서부경남에 그런 기능을 할 수 있는 거점 종합병원을 짓겠다는 방침만 정한 상태다.”

    갈등 조정이 아니라 조장

    기자의 질문에 자극을 받았는지, 평소 하고 싶었던 얘기였는지 모르겠으나 그가 목소리를 높여 홍 전 지사의 도정 운영 방식을 비판했다. 

    “도민과 소통이 부족했다. 일방통행이었다. 아군과 적군을 가르는 이분법적 접근이었다. 광역단체장은 다양한 현안에 대한 갈등과 이견을 조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18개 시군을 비롯한 각종 단체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갈등을 조장했다는 비판을 들었다. 나는 권한대행으로서 소통과 협치를 중시하고, 참여 도정(道政)을 강조했다.” 

    반면교사로 삼았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그런 걸 도민이 인정해줬다. 권한대행은 정치를 하는 자리가 아니다. 행정은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본다.”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을 묻자 먼저 경제 분야 성과를 얘기했다. 

    “비록 권한대행이지만 지역경제를 살리려 도의회, 도민과 합심해 열심히 뛰었다. 침체된 조선업 정상화에 최선을 다한 결과 STX와 성동조선이 위기를 모면했다. 정부에 지속적으로 건의해 지난 4~5월 조선업이 집중된 창원 진해구, 거제, 통영, 고성 4개 지역이 고용위기특별지역 및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으로 지정됐다. 사천의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항공정비사업(MRO) 사업자로 선정되게 한 것도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문화사업은 각별한 애착을 갖고 추진해 주목을 받았다. 

    “경남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확보하는 차원이었다. 지난 1월 가야사연구복원추진단을 만들었다. 그간 가야사는 삼국사에 가려 소외됐다. 가야 유적을 발굴하고 가야사를 체계적으로 정비해 경남 대표 브랜드로 내세우려 한다. 남명 조식 선생의 선비정신 계승 사업도 적극 추진했다. 남명은 합천에서 태어나 산청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남명의 선비사상과 구국충절 정신을 도민정신으로 승화하기 위한 종합계획을 세우고 하나하나 추진 중이다. 관련 유물을 찾아내고 유적지를 복원하고 관광코스도 개발한다. 산청 남명선비마을에서 도민을 대상으로 교육도 한다.” 

    무엇보다도 그가 자부심을 갖는 분야는 행정 개혁이다. 

    “행정 패러다임을 바꿨다. 홍 전 지사 시절의 공급자 중심 행정을 수요자 중심으로 바꿨다. 불통을 소통으로 바꿨다. 도의 일방행정을 민관 협치로 바꿨다. 국정과제로 선정된 9개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9개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민(民) 중심으로 운영한다. 아울러 도민행복위원회를 신설했다. 저소득층 장애인 노인 아동 여성 등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는 기구다. 주제별로 7개 행복분과위원회를 뒀다. 각 위원회는 대상자들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한다. 예컨대 장애인분과위원회에는 장애인이 직접 참여한다. 내가 추진한 업무 중 가장 자부심을 갖는다.”

    도의회와 무상급식 충돌

    도민행복위원회와 더불어 참여 도정을 대표하는 기구가 도민안전제일위원회다. 지난 1월 46명의 목숨을 앗아간 밀양 세종병원 화재사고가 계기였다. 공무원과 민간인이 함께 이끌어가는 안전위원회는 민간에서 실현 가능한 정책을 개발하고 평가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행정의 기본은 주민 안전을 책임지는 것 아닌가. 밀양 화재는 내게 뼈아픈 일이었다. 그 사건 직후 도정의 중심을 안전으로 규정하고, 도민안전제일위원회를 꾸리는 한편 도에 안전 업무를 전담하는 안전점검단을 구성했다. 안전의 해법은 사전예방이다. 안전상설점검단은 취약지구를 상시 점검한다. 아울러 도민의 안전 평생교육을 이끄는 TF팀을 만들었다. 이 기구는 안전에 관한 교육과 홍보를 맡는다. 지진이나 화재 시 대피요령 등 교육을 통해 주민 스스로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신공항을 둘러싸고 지역 간 갈등이 심했다. 현재 어떤 상황인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국토교통부가 제시한 V자형 활주로 신설 방안은 도심지를 통과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김해시의 소음 피해 면적이 6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대책이 절실하다. 경남도는 신설 활주로를 국토부 안보다 뒤로 3㎞ 빼는 안 등 3가지 방식을 제안했다. 그런데 활주로를 뒤로 빼면 고속도로가 걸린다. 고속도로를 지하로 돌리는 비용이 만만찮다는 단점이 있다. 도민 중에는 가덕도 신공항이 낫다는 사람도 많다. 경남도지사와 부산시장이 새로 취임하면 가닥이 잡히리라 본다.” 

    무상급식 갈등은 진정됐나. 도와 교육청, 시군이 비용 분담 비율을 놓고 다퉜는데. 

    “도의회와 협의를 거쳐 결정한 뒤로는 좀 조용해졌다. 다만 분담 비율은 좀 더 논의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지사가 취임하면 결정할 것으로 본다.” 

    도의회를 자유한국당이 장악해 분담 비율 재조정이 어려웠던 걸로 안다. 

    “도의회와의 관계가 힘들었다. 도의원 55명 중 49명이 자유한국당 소속이었다. 그들 보기에 나는 민주당 사람이나 현 정부 사람이었다. 뭐 하나 협의하는 게 힘들었다. 뭐든 부정적으로 봤다. 전임 도지사 흔적 지우고 정부 도와주려는 것 아니냐고.” 

    그래서 못 지웠나.(웃음) 

    “못 지웠다. 몇 가지 지우긴 했지만.(웃음) 자신들이 밀리면 지방선거에서도 손해 본다고 생각한 듯싶다. 마음고생이 많았다.” 

    의회와 가장 크게 부딪친 일이 뭔가. 

    “역시 무상급식이다. 예산을 확보하려면 당정 협의를 거쳐야 한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인신공격을 했다. 면전에서 경고도 하고. 정부 편들지 말라고.” 

    그는 “권한대행 자리는 독배”라고 말했다. 민선 단체장과 달리 한 번 실수하면 나락에 빠진다며. 그가 스스로 소심한 성격이라고 하기에 “그런 성격이 실수는 덜 하지 않느냐”고 덕담을 건네자 “오랜 공직 경험이 혼란기, 과도기에 도움이 된 듯싶다”고 자평했다. 그의 공직 생활은 올해로 33년째다. 1985년 기술고시에 합격한 뒤 공무원 외길을 걸어왔다. 경남도를 비롯해 행정안전부, 국무총리실 등 중앙과 지방 업무를 두루 경험했다. 

    10개월 권한대행 점수를 스스로 매긴다면? 

    “51점.(웃음)” 

    겸양이 지나치다.(웃음) 

    “잘했다기보다 최선을 다했다. 사심 없이. 더러 실수도 했지만.”

    기본과 원칙에 충실

    오랜 공직 생활에 따른 철학이 있을 법하다. 무엇을 가장 중시하나. 

    “늘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자는 거다. 또한 상대에 대한 배려를 중시한다. 정책을 만들 때 주민이 어떻게 생각할지 고려한다. 어느 조직이든 독불장군은 힘들다. 아무리 똑똑해도 조직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소용없다. 그런 점에서 상사나 부하직원, 동료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부당한 일도 많이 당했을 텐데. 

    “부당한 일보다는 설움을 많이 겪었다. 중앙부처에 가보니 나처럼 지방대 나온 기술고시 출신이 드물었다. 그래도 운이 좋아 중요한 자리를 많이 맡았다.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그저 내 일을 열심히 하고 주변 인간관계가 좋았던 것을 위에서 인정하지 않았나 싶다.” 

    더 해보고 싶은 공직이 있다면? 

    “33년 했는데 뭘 더하겠나.(웃음) 내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잖나.” 

    선출직은 못 해봤는데… 공직을 더 하고 싶나, 선출직에 도전하고 싶나. 

    “두 개 다 해보고 싶다. 너무 노골적인가.(웃음)” 

    그간 도정 경험을 바탕으로 새 도지사에게 일러주고 싶은 게 있다면? 

    “내가 조언할 처지는 아니다. 부임하면 대화 과정에 자연스럽게 말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계획은? 

    “새로 지사가 부임하면 정부 인사에 따라 움직여야 하니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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