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호

이 사람

‘금송계 사례연구’ 펴낸 배수호 성균관대 교수

“조선시대에도 ‘山林 협동조합’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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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20-01-2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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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배수호(49)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가 최근 ‘한국적 지역공동체 사례연구 - 복내이리송계(福內二里松契)’라는 책을 펴냈다. 

    1803년 전남 보성군 복내면(福內面) 이리(二里)에서 결성된 ‘금송계(禁松契)’가 지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규명한 최초의 연구다. 금송계는 마을마다 산림자원을 보전 · 운영한 전래 협동조직(松契)으로, 이리송계 역시 방동산 가야산 등 마을 주변 4좌(座)의 산을 관아로부터 허가 받아 운영한 금송계였다. 

    농경 사회에서 산은 퇴비와 땔감, 식량 등을 제공하는 ‘자원의 공리지(共利地)’였지만, 조선 후기로 갈수록 화전(火田), 분묘 등으로 산림자원이 황폐화되면서 백성들도 금송계를 결성해 대응했다. 

    산림을 보전하려는 200년 전 조상들의 지혜는 흥미롭다. 이리송계를 만들 당시 4개 마을 383명이 계원으로 참여했는데, 벌목을 하려면 큰 소나무값 1냥, 중간 소나무값 7전 등 돈을 내야 했다. 묘를 쓸 때에도 계원은 5냥, 외지인은 10냥씩 냈고, 산지기 16명은 화전 개간을 할 때 현장 감독자 노릇도 했다. 산불이 났을 때 소방(消防) 작업에 불참하거나 지각하면 땔감 채취를 금지하는 등 벌칙도 있었다. 

    “이렇게 걷힌 자금은 세금을 내거나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등 공동체 현안 해결에 썼습니다. 결국 금송계는 우리 공동체 정신이 살아 있는 협동조합이자 퇴비와 목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체계적 산림 관리 방식이었던 거죠.” 



    앞서 배 교수는 같은 대학 이명석 교수와 함께 전국 258개 금송계를 확인했고, 26개 사례를 분석했다. 그러나 금송계 연구는 전국을 돌며 송계책과 계원 회의록을 수집하고, 한자를 해독하고 심층면접을 하는 등 시간과 자금을 요하는 ‘묵직한 연구’다. 

    “자료를 발굴하고 스캔해서 번역한 뒤 연구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해요. 그래도 암묵지(暗默知·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지식)로 전승된 공동체의 지혜를 연구하는 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봐요. 100년 뒤 누군가가 제 연구를 참고한다면 만족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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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수강 편집장

    배수강 편집장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평범한 이웃들이 나라를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남도 나와 같이, 겉도 속과 같이, 끝도 시작과 같이’ 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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