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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민 교육의 빛과 그림자

사기 피해는 남한 사회 신고식? 자본주의 실용경제 교육 절대 부족

새터민 교육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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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새터민 홍은희(가명)씨는 남한에 입국하기 전, 몇 해 동안 중국에서 지냈다. 남한에 들어온 뒤로는 중국으로 자주 국제전화를 걸었다. 비싼 국제전화 요금에 고민이 많던 홍씨는 시내요금으로 국제전화를 쓸 수 있는 휴대전화가 있다는 주변 사람의 말에 전화기를 구입했다. 휴대전화 가격이 130만원이나 했지만 자주 이용하면 손해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한 달 뒤 청구된 요금은 무려 80만원. 홍씨는 뒤늦게 사기당했음을 깨닫고 휴대전화를 판 사람에게 해지를 요구했다. 그러나 오히려 요금을 빨리 내라는 독촉만 받았다. 심지어 요금을 내지 않으면 재산을 차압하겠다는 협박까지 당했다.

#22007년 6월 하나원 교육을 막 수료한 새터민 김철수(가명)씨는 정착금을 안전하게 보관할 방법을 찾았다. 북한은 개인을 상대로 예금업무를 하지 않기 때문에 남측의 은행 시스템이 낯설었다. 그는 하나원 시절부터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이영희(가명)씨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이씨의 소개로 만난 금융 투자자는 ‘원금 500만원을 내면 월 12% 이자로 다달이 60만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김씨는 그 말을 믿고 투자를 결심했다. 한 달 뒤 김씨의 통장에 60만원이 입금됐다. 그러나 3개월째부터 이자가 들어오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전화를 했다. 없는 번호라는 자동응답 소리가 나왔다. 찾아간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그렇게 김씨는 투자금 500만원을 떼였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장준오 박사와 청주대 사회학과 이정환 교수가 2007년에 낸 ‘북한 이탈주민의 범죄피해 실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새터민 4명에 1명 꼴로 ‘사기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21.5%)고 답했다. 남한 사람의 사기 피해율이 0.5%인 것에 비하면 40배 이상 높은 수치다. 이 때문에 새터민 사이에선 “사기는 남한 사회 신고식”이란 말이 돌 정도라고 한다.

새터민 4명에 1명은 사기 피해자

사기를 당한 새터민은 대부분 자본주의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아 피해를 본 경우다. 이들의 부족한 경제지식을 악용해 접근하는 남측 사람도 있고, 먼저 남한에 정착해 살면서 사기를 당했던 새터민이 훗날 다른 새터민을 속이는 사례도 있다. 금액은 몇십만원대부터 천만원대까지 천차만별이다.



“우리가 듣기에는 터무니없는 이야기인데도, 남한 자본주의 경제에 익숙하지 않고 또 수입도 적다 보니 그런 말에 솔깃하는 새터민이 많아요.”

새터민 정착 지원 활동을 하는 NGO ‘새롭고 하나된 조국을 위하여(이하 새조위)’의 신미녀 부회장의 말이다.

그나마 중국에서 몇 년씩 살다가 남한에 온 경우는 비교적 쉽게 남한 사회에 적응한다고 한다. 중국 사회에서 돈이 돌아가는 원리를 어느 정도 익힌 덕분이다. 그러나 최근엔 탈북한 지 한 달도 안 돼 곧바로 남한으로 오는 사례가 많아져 남한사회 적응기간이 길어지고, 시행착오도 더 많이 겪는다고 한다. 세대별로도 적응 속도에 차이가 크다.

“북한은 공동생산 공동분배로 유지되는 체제입니다. 북한에서 미국 경제를 기본으로 한 자본주의 경제는 실패했다고 배웠어요. 그러다 보니 처음 남한에 왔을 때 당황했죠. 모든 게 개인 위주로 돌아가는 게 너무 낯설었고요. 그래도 나이가 적을수록 이곳 생활에 빨리 적응하는 편입니다.”

대학원에 다니는 새터민 주영호(가명·35)씨는 “40~50대에 남한으로 넘어온 사람들은 북한에서 형성된 관념이 뿌리깊다. 이런 사람들에게 무작정 빨리 변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했다. 중국에서 6년을 보낸 후 한국에 들어와 정착한 지 4년째인 한성주(가명·29)씨는 “적응이라기보다는 익숙해진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 같다”면서 “한국 사람도 처음 미국에 가면 혼란을 겪듯이 북에서 온 사람도 비슷하다. 스스로 체득해가고 익숙해지는 건데 자꾸 주변에서 빨리 적응하라고 압박을 주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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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지 신동아 인턴기자(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smileeunj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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