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무인기가 뭐 그리 대단한가. 우리 대학생 동아리에서 만드는 것보다도 조악한 수준이다. 청와대를 촬영했다지만 구글어스보다 못한 사진을 찍었다. 우리 무인기인 ‘송골매’를 보라. 유치원과 대학원생 이상의 차이가 난다. 잽도 안 되는 것을 갖고 너무 호들갑 떤다.”
그러나 북한의 무더기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않는다. “미사일을 저들의 바다로 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지 않으냐”는 답변만 할 뿐이다. “무인기를 투입한 북한이라면 미사일도 한국으로 발사할 수 있지 않을까?”란 질문에는 아예 답변하지 않는다. 기껏 한다는 소리가 ‘설마’이다. “그렇게 되면 전면전으로 치닫게 되는데, 김정은이 자기 죽음을 재촉할 전쟁을 하겠는가”라며.
‘설마’ 때문에 우리는 여러 번 당했다. 북한의 유고급 잠수정은 침투용이지만 상어급은 공격용 잠수함이다. 유고급에는 수중(水中)으로 공작원을 내보내는 해치만 있으나, 상어급은 어뢰발사관도 갖고 있다. 우리 군은 오랫동안 ‘북한이 공작원 침투를 위해 유고급 잠수정은 투입해도 상어급은 보내지 않는다. 공격 잠수함의 침투는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고 침략이기 때문이다’란 고정관념에 젖어 있었다.
‘설마’에 당한 우리 군
1996년 강릉 해안에서 상어급 잠수함이 좌초한 상태로 발견됐을 때의 일이다. 당일 아침 TV로 현지 상황을 살펴보던 합참의 핵심 간부는 “침투용 (유고급) 잠수정이야. 북한이 공작원을 집어넣으려고 보냈는데 운 나쁘게 좌초한 것이야”란 설명을 반복하다가, “합신조가 (공격용인) 상어급 잠수함으로 판단했다”는 현지발(發) 보도가 나오자, “뭐야! X발~. 전쟁하자는 거야, 뭐야!”라고 당황해했다.
2000년대 들어 인민군은 유고급보다는 크고 상어급보다는 작은, 어뢰발사관 2개를 갖춘 공격 잠수정을 만들었다. 정찰작전으로 이 잠수정의 실체를 확인한 우리 군은 이를 ‘연어급’으로 명명했다. 그 시기 이란은 걸프 만에 들어와 작전하는 미국 5함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서 미국 함대에 맞설 요량으로 북한에서 연어급 잠수정을 수입해 ‘가디르급’으로 명명했다.
이는 외신 보도는 물론이고 이란 해군이 공개한 유튜브 동영상으로도 확인된 사실이다. 그런데도 우리 군은 연어급을 공격형으로 분류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잠수정이 북한 기지에서 출발해도 상어급이 사라졌을 때 발령하는‘대잠(對潛)경계 태세’를 발령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내다가 당한 것이 천안함 사건이다.
그런데도 우리 군은 ‘내 안목으로만 북한군 의중을 판단하는 실수’를 거듭했다. 연평도 포격전이 벌어지기 직전 북한군은 ‘남측의 연습사격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를 보냈다. 천안함 사건 두 달 전에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향해 ‘일제타격식 포사격’(북한식 표현)을 반복했다.
우리가 예정대로 연습사격을 하자 북한군은 K-9 포대는 물론이고 전 연평도를 향해 일제타격식 포사격을 했다. 북한은 서해 5도 주변을 자신들이 선포한 서해해상군사분계선에 따라 영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니 그들의 바다로 포탄을 쏜 우리 군의 포격원점을 3배로 타격한 것이다. 설마 하다 또 당한 우리 군은 그제야 ‘적이 도발하면 포격원점을 3배로 공격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북한은 연평도 포격전처럼 공개 도발을 할 때는 ‘반드시’ 이유를 만든다. 3월 27일 북한은 군관(장교 2명)과 군무원(1명)이 분명한 이를 어부로 위장시켜 어선을 몰고 백령도 동쪽의 NLL을 넘어가게 했다. 해군은 돌아갈 것을 종용했다. 그런데도 버티고 돌아가지 않은 가운데 해가 저물자, 해군은 어쩔 수 없이 북한 어선을 나포했다.
나포 당시 3인이 쇠파이프를 들고 덤벼들었기에, 배에 올라간 UDT 대원들은 진압봉을 빼들고 제압했다. 그리고 배를 끌고 가자 북한에서 경비정 한 척이 달려와 NLL을 넘나들며 ‘납치해가지 말라’는 뜻으로 위협 기동을 했다. 조사를 받게 된 3인은 “배가 고장 났다. 귀순한 것이 아니다”라며 돌려보내줄 것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