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호

‘뜨뜻미지근한 여야 리더’ 박희태·정세균 밀착탐구

‘안정 희구’ 월급사장 닮은꼴 …개혁은 논하지 말라

  • 송국건 영남일보 정치부 기자 song@yeongnam.com

    입력2008-08-12 14: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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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대 국회를 이끌 여야 수장이 새로 선출됐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와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공통점이 많다. 두 대표 모두에게 “자기 색깔이 없다” “장악력이 부족하다”
    • “끌려 다닐 것 같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뜨뜻미지근한 여야 리더’ 박희태·정세균 밀착탐구

    동아일보 최남진

    7월3일과 6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잇달아 열렸다. 장소도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으로 같았다. 양대 정당은 전당대회를 통해 임기 2년의 새로운 지도부를 출범시켰다. 한나라당에는 박희태 대표체제, 민주당에는 정세균 대표체제가 들어섰다.

    양당의 전당대회는 새 지도부 선출 외에 또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2006년 5·31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2년 동안 숨 가쁘게 이어진 ‘정치 성수기’가 일단락 지어졌다는 점이다. 정치권은 5·31 선거 후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및 대선, 올해 4·9 총선을 거치는 동안 뒤돌아볼 틈 없이 선거에 매달려왔다.

    앞으로 2년간 선거 비수기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은 ‘친이(친 이명박)’와 ‘친박(친 박근혜)’으로 쪼개져 극심한 내홍을 겪었다. 민주당도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 힘들 만큼의 이합집산을 거쳤다. 당초 ‘대선용 정당’으로 취급받던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은 총선까지 치르면서 ‘야권’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진보 진영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 갈라서는 아픔을 겪었다. 비록 2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격동의 세월’을 보낸 뒤 ‘정치 비수기’가 시작됐다. 2010년 6월 지방선거까지 향후 2년 동안 여야가 전면전을 벌일 선거는 없다. 매년 4월과 10월 각종 재·보궐선거가 치러지지만 국지전일 뿐이다.

    2010년 6월에 지방선거가 끝나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에선 차기 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다시 열리고 2012년 4월에 19대 총선, 같은 해 12월에 18대 대선 일정이 잡혀 있다. 2년 동안의 정치 비수기에도 여야는 부딪칠 일이 많다. 당장 국회에서는 ‘쇠고기 국정조사’가 열리고 있다. 한미 FTA 비준안 처리를 놓고도 한바탕 벼랑 끝 대치가 예상된다. 또 유가 폭등에 따른 경제위기,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에 따른 남북문제, 신구 정권 사이 정면충돌 양상으로 번진 대통령기록물 반출 등 정국을 냉각시킬 현안은 얼마든지 있다. 이외 또 어떤 돌발 이슈가 터질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 박희태,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정치의 양대 축으로 등장했다. 두 사람은 대표가 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리더십 측면에서 유사한 점이 많다. 한마디로 뜨뜻미지근한 이미지, ‘안정 희구’ 월급사장 이미지다. 박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공신 중 한 사람이다.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이명박 캠프의 좌장으로 활동했다. 선대위 공동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중요 전략을 최종 결정하는 ‘6인회의’에도 참여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

    그러나 18대 총선에서 6번째 금배지를 달아 국회의장을 해보려고 했던 그의 꿈은 ‘공천 탈락’이라는 결과를 접하면서 무산됐다. 그는 “내 복이 그것밖에 되지 않는다”며 짐짓 대범한 척했지만 실제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한 언론인은 “갑자기 늙어버렸다”고 했다.

    낙담하고 있던 그에게 절호의 상황 변화가 생겼다. 4·9 총선에서 친이 핵심인 이재오-이방호 라인이 낙마한 데 이어 정두언 의원의 ‘권력 사유화’ 발언 여파로 친이 진영에 권력 공백 상태가 생긴 것이다. 정권 창출에 이어 당을 장악하려 했던 친이 진영에서는 ‘대타’를 물색하게 됐고, 정권 창출의 일등공신이면서도 ‘이명박’ 색채가 옅은 그가 다시 부름을 받게 됐다.

    ‘박희태 카드’는 당내에서 이렇다 할 거부감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친이 진영의 주축세력인 ‘안국포럼’ 출신들 사이에서는 ‘이재오 카드’가 용도 폐기되기 훨씬 전부터 박희태 대표를 염두에 둔 인사들이 있었다. 이재오 전 의원이 당을 움켜쥐고 전권을 행사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차기’를 꿈꾸는 중도파 정몽준 의원에게 당을 맡기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이런 이유로 대권 같은 정치적 욕심이 없는 박 대표가 비수기 2년 동안 당을 무난하게 이끌 적임자로 평가받은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13대 국회부터 친구처럼 지낸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의 지원도 한몫한 것으로 알려진다.

    박 대표의 ‘용도’는 7·3 전당대회 직전 기자와 만난 강재섭 전 대표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강 전 대표는 ‘현 시점에서 요구되는 당 대표의 리더십’을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밝혔다. 다분히 박희태 카드를 염두에 둔 듯 보였다.

    “지금은 전쟁 시기가 아닙니다. 정권을 차지했기 때문에 이제는 잘 꾸려나갈 수 있는 사람이 당을 맡아야죠. 당·정·청 사이에 소통과 조율이 잘 돼야 해요. 자기 개성을 살려서 분란을 일으키면 안 되기 때문에 인내력이 충분한 인물이 적합한 것이죠. 내가 대표 할 때는 80은 참고 20은 성질을 냈는데, 지금 선출되는 대표는 많이 참아야 해요. 인화·단결·소통을 할 수 있는 노련한 정치력이 필요한 시점이지요.”

    강 전 대표가 당·정·청 소통과 조율을 강조했지만 박 대표는 한발 더 나아가 ‘당·정·청 일체’를 지론으로 갖고 있다. 그는 대표 당선 기자회견에서 “이제 여당이 됐으니 당과 청와대의 관계가 변해야 한다. (대권-당권 분리를 규정한) 지금의 당헌·당규는 야당 때, 대통령이 없었을 때 만든 것인 만큼 그런 당헌·당규를 갖고 당·청 관계를 운영할 수 있는지 검토해 봐야 한다”고 첫 일성을 울렸다.

    한나라당 당헌 제7조에 규정된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그 임기 동안에는 명예직 이외의 당직을 겸임할 수 없다’는 당·정 분리 조항은 야당 시절에 맞는 것이고 이제 집권 여당이 된 만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에도 “노무현 대통령이 실패한 원인 중 하나는 대권과 당권을 분리하는 바람에 원활한 국정운영에 차질을 빚었기 때문”이라며 당·정·청 일체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당시 강재섭 대표와 박근혜 전 대표의 강한 반발을 샀지만, 아직도 그런 지론에 변함이 없음이 기자회견에서 나타났다.

    ‘뜨뜻미지근한 여야 리더’ 박희태·정세균 밀착탐구

    이명박 대통령(오른쪽)이 7월10일 청와대에서 한나라당 새 지도부와 오찬을 하기에 앞서 박희태 대표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김성조에겐 미안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당내 친박 진영도 ‘적장(敵將)’이었던 박 대표의 당권 장악에 동의 차원을 넘어 은근히 지원했다는 점이다. 이른바 ‘대안 부재론’ 때문이다. 최근 복당된 친박 진영의 핵심 인사는 사석에서 박희태 카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7·3 전당대회 때 그는 당 밖에 있어서 ‘투표권’은 없었지만 당 안의 친박 계열은 대부분 그의 영향권에 있었다).

    “친이 쪽에서 박희태 대표만큼 우리와 대화가 통하는 사람도 없다. 그는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다. 박희태 대표 체제가 돼야 우리의 살 길이 생긴다. 만일 정몽준 의원이 대표가 되면 우리는 설 땅이 없게 된다. 우리 쪽에서 허태열 의원이 출마했지만 어차피 대표는 안 된다. 그럴 바에야 박희태를 밀어야 한다.”

    이 인사는 당내 친박 의원들을 만나서도 이 같은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친박 진영에선 이번 지도부 경선을 ‘두 개의 시장’으로 파악하고 대응했다고 한다. 6명의 후보를 놓고 투표를 실시해 최다 득표자가 대표최고위원이 되고, 2~5위가 최고위원이 되는 방식이지만 어차피 대표 자리는 박희태-정몽준 후보가 맞대결하는 구도라고 판단해 대의원이 던지는 1인2표 중 한 표는 박희태 후보에게, 나머지 한 표는 자파인 허태열 후보에게 찍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나타났다. 친박의 지원을 기대하고 출사표를 던진 후보가 또 한 사람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인 구미 출신 김성조 의원이다. 김 의원은 강재섭 전 대표와 가까워 ‘친강’으로 꼽히지만 친이-친박 구도에선 친박임에 틀림없다. 그는 친박계 대의원들이 ‘허태열-김성조’ 조합에 각각 한 표씩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6명의 후보 중 유일하게 낙선했다. 친박 세력이 ‘허태열-김성조’가 아닌 ‘박희태(대표)-허태열(최고위원)’ 조합을 선택한 결과였다. 김 의원은 대의원 투표와 일반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합쳐 5위를 차지했지만 선출직 최고위원 5명(대표 포함) 중 한 명은 여성에게 줘야 한다는 당헌·당규에 따라 꼴찌를 한 박순자 후보가 최고위원이 됐다.

    박희태-허태열 조합을 유도한 친박 핵심인사는 “김성조에게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박 대표가 취임하자마자 서둘러 당 밖 친박 인사들의 무조건 일괄복당을 밀어붙여 불과 1주일 만에 전격 성사시킨 것도 이런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열린우리당계의 전폭 지원

    다음은 정세균 민주당 대표. 그가 대표 경선 과정에서 일찌감치 ‘대세론’을 탈 수 있었던 것은 당내 다수파인 열린우리당계가 전폭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이다. 그도 한나라당 박 대표와 마찬가지로 ‘변방 주류’였지만 열린우리당계의 핵심인 ‘386’은 물론 구(舊)민주당계의 한 축인 박상천 전 대표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정 대표 대세론에 날개를 달아준 세력도 한나라당 박 대표 지지자들과 비슷한 생각을 했다. 지금은 본격적인 대여(對與) 투쟁에 앞서 당을 추슬러야 하는데 그 적임자는 ‘정세균’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견제하고 투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 비수기 때는 대선과 총선 참패로 흐트러진 당을 단합시키는 것이 선결과제라는 그들의 판단은 결국 온건합리주의자인 정 대표가 대세론을 타게 했다.

    정 대표도 열린우리당계와 구(舊)민주당계의 ‘화학적 통합’을 강조하는 경선 전략으로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획득, 여유 있게 당권을 잡았다. 박상천 전 대표계를 제외한 구 민주계가 ‘투쟁’ 이미지의 ‘추 다르크’ 추미애 의원과 화합형인 정대철 전 의원을 밀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지난 2001년 ‘정세균이 바라보는 21세기 한국의 리더십’이란 책을 내기도 한 그는 통합의 리더십, 화합의 리더십을 주창한다. 언론사 정치부 기자들의 투표로 매년 뽑는 ‘백봉신사상’을 6차례나 수상했다는 점에서 그의 스타일이 읽힌다.

    정 대표의 정치기반인 호남권의 한 언론인은 그에 대해 “화를 내는 모습은커녕 인상을 쓰는 모습도 본 적이 없다. 정치를 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차례 희로애락이 생길 법한데, 그는 항상 웃는다. 적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또 소문난 ‘워커홀릭’이다. 일이 없으면 일을 만들어낸다. 그것도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벌여 몰두한다.

    그의 보좌관은 “정 대표의 하루는 일로 시작해 일로 끝난다. 오전 5시30분에 어김없이 눈을 떠 그날의 일정표와 필요한 보고서들, 조간신문을 챙겨 본다. 어떤 날은 보좌진조차 하루에 5분도 얼굴을 못 본다”고 했다. 쌍용그룹 상무를 끝으로 1996년 정치에 입문한 이래 지난 12년 동안 당 정책위 의장을 거쳐 예결위원장·원내대표·당 의장을 지내고 노무현 정부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을 역임한 것도 특유의 성실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가 산자부 장관 취임식 때 “일하다가 접시를 깬 사람은 용서하겠지만 일을 하지 않아서 접시에 먼지가 낀 사람은 용서하지 않겠다”고 경고한 말은 유명하다.

    여러 갈래인 열린우리당계의 결집된 지지를 받고 구 민주당계 박상천 전 대표 지지를 이끌어낸 것도 ‘친화력과 성실성으로 당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을 것’이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박상천 전 대표가 그를 지지한 이유는 국회부의장직을 염두에 둔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정 대표에게 카리스마나 조직을 일사불란하게 이끌어가는 리더십은 없다. 다만 누구의 말이라도 귀담아 듣고 적대 세력과도 절충점을 찾아내는 능력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 대표가 취임 직후인 7월11일 최고위원들을 데리고 김해 봉하마을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러 간 것도 현시점에서 대표로서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덧붙였다.

    ‘뜨뜻미지근한 여야 리더’ 박희태·정세균 밀착탐구

    7월6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새로 선출된 정세균 당 대표(오른쪽에서 네 번째)와 5명의 최고위원이 대의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온기는 있지만 소신은 없다

    결국 한나라당은 친이-친박 사이는 물론, 당-청 간 소통을 원활하게 할 ‘대화의 리더십’이 필요해서 박희태 대표를, 민주당은 열린우리당계와 구 민주당계의 이익을 조율할 ‘절충의 리더십’이 아쉬워서 정세균 대표를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두 대표는 지금까지 양당의 대표를 역임한 인사들과는 달리 당내에 계보가 없다. 5선 의원 출신인 박 대표나 4선 고지에 오른 정 대표는 ‘무색무취’한 편이기 때문에 선수(選數)에 걸맞지 않게 주변에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 물론 정치적 욕심이 없음을 공공연하게 내비치는 박 대표와 달리 정 대표는 차기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두 사람 모두 관리형 대표임은 분명하다. 박 대표와 정 대표가 자타가 공인하는 차기 대권 주자인 정몽준 최고위원과 추미애 의원을 각각 꺾은 공통점도 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이끌 정국은 어떻게 흘러갈까. 또 양당은 내부적으로 과연 대화하고 절충할 수 있을까. 정치권에서는 일단 정국에 ‘온기’가 흐를 것으로 본다. 대선과 총선을 거치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져 냉기만 가득했던 전임 지도부와 달리 서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당의 전당대회가 끝나자마자 40여 일 동안 개점휴업 상태에 있던 18대 국회가 전격적으로 정상화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앞으로도 여야 사이에 일상적인 대치와 반목은 있겠지만 일단 두 대표의 정치스타일만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정치가 복원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대신 여·야를 막론하고 당분간 정치권에 ‘개혁 논의’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한나라당의 경우 정두언 의원의 ‘권력 사유화’ 발언이 여권 내부에서도 비판을 받으면서 개혁소장파들의 입지가 좁아진 상황에서 개혁과는 거리가 먼 지도부가 들어섰다.

    민주당도 정 대표는 물론이고 송영길·김민석·박주선·안희정·김진표 최고위원 모두가 강성 개혁론자는 아니다. 이 부분도 향후 정국이 파국을 불러올 정도의 대치 없이 무난하게 굴러갈 것이란 추측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당내 문제에서는 조금 다르다. 두 사람 모두 당을 소신 있게 장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끊임없이 화합 모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겠지만 당내 계파 간 대립은 어쩔 수 없이 불쑥불쑥 불거질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박 대표의 경우 자신이 앞장서 받아들인 친박 복당파 의원들이 그의 당권을 굳건히 하는 데 최대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4·9 총선에서 당선된 친박연대 소속은 14명, 친박 무소속은 12명이다. 복당한 인사들 중에 호락호락하지 않은 중진이 상당수다. 친박의 좌장인 김무성 의원을 필두로 하는 박종근·이해봉·이경재 의원 등 4선 그룹과 6선의 홍사덕 의원이 복귀하는 만큼 한나라당 내 역학 구도는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달라진다. 이들은 당 밖에 있을 때는 박희태 대표 카드를 ‘차선’으로 봤지만 막상 당에서 일정한 위치를 점하게 되면 박 대표와 이런저런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다.

    친박계 “親 청와대 용납 못해”

    특히 박 대표가 당·정·청 일체화를 신념으로 ‘친청와대’‘친행정부’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크게 부딪칠 수 있다. 여당 속의 야당을 지향할 수밖에 없는 친박 의원들이 박 대표의 이런 노선에 순순히 따를 리 없기 때문이다. 한 한나라당 의원은 “한나라당이 청와대의 거수기가 되려 한다면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한나라당이 죽는 길”이라고 했다.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당선된 후 주요 당직을 맡은 한 의원도 비슷한 우려를 했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의 여진이 이어지고 경제위기가 본격화하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정 협의 절차다. 국민 여론을 우선 생각해야 하는 당으로선 청와대와 정부를 상대로 ‘군기’를 잡아야 한다. 그러나 박 대표의 입장이나 성격으론 그런 일을 하기 어렵다고 본다. 물론 다른 당직자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겠지만 박 대표의 친청와대, 친행정부 성향이 심하면 당내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친박 세력뿐 아니라 지도부 경선에서 2위를 한 정몽준 최고위원의 존재도 박 대표에게는 부담이다. 차기 대권을 꿈꾸는 정 최고위원은 “이제부터 정치를 하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만일 박 대표가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에 맞춰 당을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언제든 반기(反旗)를 들 수 있는 형국이다. 홍준표 원내대표도 사사건건 제동을 걸 태세다. 한나라당 한 당직자는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인 홍 원내대표의 견제가 박 대표에게 최대 난관이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렇다고 박 대표가 사면초가에 처한 것만은 아니다. 친이 진영이란 바람막이가 있고, 그의 고향인 PK(부산·경남) 세력이 당·정·청에 대거 포진한 반면, 친박의 지역적 기반인 TK(대구·경북) 세력은 상대적으로 위축돼 있는 것이 위안(?)거리다.

    박 대표가 당·청 관계에서 청와대에 끌려만 다닐 것이란 우려는 기우(杞憂)라는 시각도 있다. 검사 출신인 박 대표에게는 내면에 강골 기질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 대표는 취임 직후인 7월10일 이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첫 회동을 한 자리에서 “7·7 개각 때 (경제정책 실패 책임을 지고 있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왜 교체하지 않았느냐”고 캐묻는 강단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박 대표는 “앞으로 인사 문제에 대해 미리미리 잘 알려달라. 결론이 난 뒤에도 알려주면 구체적인 건의를 할 수 있고, 방향이 잘 잡히도록 할 수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박 대표는 강 장관 문제를 거론하며 “왜 기획재정부 차관을 경질하는데 다른 장관하고 같이 넣어서 동시에 발표했느냐. 내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안 간다. 강 장관 유임에 대해선 국민이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아시지 않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대리 경질’ 시비가 일어난 타이밍의 문제를 인정한 뒤 “강 장관 문제에 대해선 깊이 고심했지만 중도하차시키기에는 매우 어려운 사정이 있었다”고 답했다. 당·청 관계에 대해서도 박 대표는 “대통령과 당 대표가 만나는 것은 날을 받아 주례회동을 하지 말고, 필요하면 면담을 요청하고 또 급하면 전화로 하고… 상시회동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접촉을 강화해서 민심이 ‘청심(청와대 마음)’이 되도록 할 테니 이해해달라”고 통보하듯이 말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자주 만나고 필요하면 긴밀한 협조를 해서 당·청이 슬기롭게 대처하자”고 화답했다.

    국정실패 세력에 포위돼

    정세균 대표는 어떨까. 그의 앞날도 결코 순탄치 않다. 대표 경선 당시 추미애 후보의 핵심 참모였던 구 민주계 인사는 “정 대표는 2년 내내 ‘빚’에 시달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선 때 정 대표를 도운 송영길 최고위원을 비롯한 열린우리당계 386 세력과 박상천 의원 등 일부 구 민주계 인사들이 채권자다. 그는 “정 대표의 경우 386을 비롯해 열린우리당을 망친 세력, 이인제 의원을 대선후보로 내세움으로써 구 민주당을 지리멸렬하게 만들었던 세력의 도움으로 당선됐다. 두 세력 모두 국민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는데, 정 대표가 제대로 대안정당을 만들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특히 그는 정 대표의 스타일을 거론하며 “앞으로 국정(國政)실패 세력이 정 대표를 에워싸고 있는 민주당은 윗돌 빼서 아랫돌 막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정당이 되기 쉽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 대표 체제의 연착륙을 점치는 의견도 있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구조적으로는 정 대표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러나 정치 상황이 정 대표 편이기 때문에 2010년 지방선거까지 당을 무난히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2년 동안 큰 선거가 없고 당분간 여론이 이명박 정부에 등을 돌릴 것으로 보이는데다, 유권자의 여권 견제심리도 있기 때문에 정세균 선장의 민주당호(號)가 순항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민주당 당직자는 결론적으로 “정 대표가 2010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 뒤 다음 지도부에 당을 넘겨줄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7·6 전당대회를 통해 구 민주당계가 사실상 소멸된 것도 정 대표가 당을 이끌어가는 데 큰 보탬이 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민주당 대표체제가 공동대표에서 단일대표로 바뀐 데다 최고위원단에 송영길·김진표 등 ‘친정세균’ 성향 인사가 포진했다는 점도 정 대표에게는 희망적이다. 박희태 대표가 당내 문제 외에 청와대와의 관계 정립이 순항의 걸림돌이라면 정 대표는 대여 관계를 어떻게 이끌어갈지에 따라 성패가 갈릴 수밖에 없다.

    국민을 등에 업고?

    한나라당은 국회의원 180여 명을 거느리는 거대 여당이 된다. 여기다 자유선진당(18석)과 친여 무소속(김형오·최연희·김일윤 의원)까지 합치면 범보수 진영은 개헌선(전체 299명의 3분의 2인 200명)을 넘어서게 된다.

    반면 민주당 의석은 81석에 불과하다. 정 대표는 “국민을 등에 업고 싸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원내에서 견제·균형을 행사하기 힘든 만큼 시민사회·종교계·노조·직능단체 등을 상대로 한 대외협력을 강화하고 외연을 넓혀 싸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각종 여론조사 결과 민주당 지지율은 20%선에 그치고 있다. 장외 투쟁의 병행은 민주당 지지율을 더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외형적으로 정 대표가 정국 주도권을 잡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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