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호

‘지배하려는 당원’이 정당을 죽인다

[이동수의 투시경] 지방선거 최대 변수로 부상한 ‘당심(黨心)’

  • 이동수 세대정치연구소 대표

    입력2025-12-09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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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與 ‘1인 1표제’ 도입 무산됐지만 여기서 끝 아닐 것

    • 정청래, 나경원의 공통점…국민보다 당원에 인기

    • 당원 수 증가, ‘대중의 정치참여 활발’ 뜻하지 않아

    • 분권‧참여 명분에 반기 어렵겠지만 민심도 수용해야

    2025년 12월 5일 더불어민주당 중앙위원회는 정청래 대표가 추진한 ‘1인 1표제’ 당헌·당규 개정안을 부결시켰다. 중앙위에서 안건이 의결되려면 재적 중앙위원 총 596명 중 과반인 299명의 찬성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날 투표에 참여한 중앙위원 373명 가운데 277명만이 찬성표를 던졌다. 1인 1표제를 놓고 벌어진 이른바 ‘명청대전’이 친명계의 판정승으로 끝난 셈이다.

    대의원제는 민주당에서 항상 뜨거운 감자다. 대의원이 유명무실한 국민의힘과 달리 여전히 막강한 권한을 갖기 때문이다. 동아리로 비유하면 대의원은 간부고, 권리당원은 정회원이다. 민주당에서 간부의 1표는 정회원 1표의 약 20배의 가치를 가진다. 정 대표는 대의원 표심에 약하고 권리당원에서 강하다. 연임을 생각한다면 대의원 표의 가치를 미리 떨어뜨려 놓는 게 좋다. 그런데 중앙위에서 제동이 걸렸다. 그는 “1인 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의 당대표 시절부터 꾸준히 논의했던 사안”이라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강조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정청래, 나경원의 공통점…국민보다 당원에 인기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5년 12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5년 12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정 대표의 맞은편엔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총괄기획단 위원장인 그는 2025년 11월 당원투표 확대를 골자로 한 공천 방안을 지도부에 건의했다. 당원투표 50%, 여론조사 50%를 반영했던 기존 공천 룰을 당원투표 70%, 여론조사 30%로 변경한다는 내용이다. 민심을 반영하는 여론조사 비중이 낮아진 것을 두고 수도권 지역구 의원들을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나 의원은 “당심과 민심은 결코 다르지 않다”며 “당심 안에는 이미 민심이 녹아 있다”고 답했다.

    두 정치인은 정치적으로 정반대 편에 있지만 이해관계는 비슷하다. 이들은 일반 국민보다 핵심 지지층이라고 할 수 있는 ‘당비 내는 당원’에게 인기가 많다. 당이 선명할수록 입지가 탄탄해지고 외연이 확장될수록 불리해진다. 나 의원만 하더라도 2021년 서울시장 후보 경선과 당대표 선거 모두 여론조사에서 크게 밀려 패배했다. 만일 나 의원이 지방선거에 출마한다면 경선에서 당심 반영 비율이 높은 게 유리하다. 그렇지 않더라도 당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당심이 몇 퍼센트 반영되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그 비율이 당내에서 어떤 성격의 그룹이 주도권을 잡을 될 건가를 결정하는 이유에서다.

    정당 권력의 핵심은 공천이다. 공천 여부가 당선에 큰 영향을 끼치는 정치 구조에서 공천권은 그 자체로 거대한 힘을 가진다. 공천 과정에 당원이 참여하게 된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90년대까지 공천을 좌우한 건 각 당의 지도자와 그들 통제 아래 있는 대의원들이었다. 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 정치 지도자들은 공천 권한을 바탕으로 당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당 시스템은 무의미했다. 지도부와 실세들에 의한 사천(私薦)은 숱한 공천 비리를 낳기도 했다.



    정당 공천 시스템이 전환점을 맞게 된 건 2002년 제16대 대선부터다. 당시 한국 정치는 3김의 유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었다. 공천 혁신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이때 새천년민주당이 꺼낸 카드가 상향식 국민참여경선이었다. 대의원 1만5000명, 일반 당원 2만 명에 더해 3만5000명의 일반 국민이 선거인단을 구성하고 전국 16개 시도를 순회하는 지역별 경선을 치러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방식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경선은 초고속 인터넷 보급이 확대되는 상황과 맞물려 다양한 이슈를 만들었다. 특히 노무현 후보의 극적인 승리는 새천년민주당에 상당한 컨벤션 효과를 안겼다. 이 때문에 국민참여경선에 회의적이었던 한나라당도 입장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한나라당은 일반 국민 투표를 50% 반영한 국민경선을 치렀다. 다만 새천년민주당만큼의 인상은 남기지 못했다. 새천년민주당에서 노 후보가 ‘이인제 대세론’을 꺾으며 돌풍을 일으켰던 것과 달리, 한나라당에서는 이회창 후보가 무난히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성공 신화 이후 국민·당원이 참여하는 경선은 한국 정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3김이라는 거인들의 퇴장으로 생긴 권력의 공백을 국민과 당원으로 메운 것이다. 정당으로서도 마다할 이유가 딱히 없었다. 밀실에서 행해지던 공천권을 주권자인 국민에게 돌려줌으로써 정치적 명분을 확보할 수 있었고, 경쟁 과정에서 이목을 집중시켜 홍보 효과도 챙길 수 있었다. 후보 간 경쟁 과열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그 치열한 갈등이 유권자의 참여를 극대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어쩌면 이때 각 정당이 경험한 효능감이 한국 정치에서 경선제도가 빠르게 정착하는 계기가 됐는지도 모른다.

    당원 수 증가, ‘대중 정치참여 활발’ 뜻하지 않아

    2022년 6월 6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앞에 지지자들이 보내온 화환들이 놓여있다. 뉴스1

    2022년 6월 6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앞에 지지자들이 보내온 화환들이 놓여있다. 뉴스1

    2002년 실험적으로 단행된 경선제는 2004년 총선과 2006년 지방선거를 거치며 지속적으로 확대됐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대부분의 정당에서 경선제가 안정적으로 정착했다. 대선이나 총선은 물론 기초의원 단위에서도 경선이 진행됐다. 지도부에 의한 전략공천은 ‘뭔가 구린 구석이 있는 일’인 것처럼 취급됐다.

    경선제도의 확장은 대중정치의 시대를 열어젖혔다. 과거엔 지도부에 눈도장을 찍거나 소수 대의원을 잘 구워삶기만 하면 공천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경선이 치러지면서 경선에 참여하는 국민과 당원 등 다수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 더 중요해졌다. 달리 말하면 정치적·정책적 역량을 갖추는 일보다 대중적 인지도를 확보하고 당원을 많이 모으는 게 공천 확률을 높이는 길이 됐다.

    정당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당원 가입 문턱을 낮추었다. 당원들이 투표권을 얻는 데 필요한 기준을 완화하는가 하면, 온라인을 통해서도 당원 가입의 문호를 열었다. 이 같은 변화는 주로 2010년대 중반에 이뤄졌는데, 우리나라 정당의 당원 숫자는 이 시기를 거치며 크게 늘었다. 이런저런 정당에 가입한 당원 수는 2015년만 해도 583만 명 정도였다. 그런데 불과 6년 뒤인 2021년, 약 1042만 명으로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유권자 넷 중 한 명이 정당에 가입한 ‘1000만 당원’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독일의 정치학자 빌헬름 호프마이스터는 정당 수는 늘고 당원은 줄어드는 게 오늘날 정당정치의 지배적 경향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정반대다. 당원 수는 계속 늘고 있지만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과점 구도는 여전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각 정당에 가입한 당원 숫자는 약 1128만 명이었다. 이 중 83%가량이 민주당과 국민의힘 소속이었다.

    당원 수가 늘고 있다는 게 대중의 정치 참여가 활발해지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당원 중에는 선거를 앞두고 동원된 이들도 적지 않다. 당원 표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가 경선의 승패를 가르게 되면서, 각 후보가 선거를 앞두고 공약을 개발하기보다 당원을 끌어들이는 데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새 당원에 가입되는 일도 빈번하다. 경선에 나서는 지인에 의해 당원으로 가입되었거나, 종교·동문회·체육회 등 직능단체를 매개로 동원되는 경우다. 입·탈당을 관리하는 각 정당 시도당에는 선거를 앞두고 당원 가입 신청이 쇄도했다가, 선거가 끝나면 우르르 빠져나가는 촌극이 빚어지기도 한다. 경선은 국민과 당원의 참여라는 포장지를 두르고 있지만 실상은 표 대결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경선을 통해 선출된 정치인들의 수준이 예전보다 높아지기라도 했나.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국회미래연구원은 2023년 발간한 보고서 ‘만들어진 당원: 우리는 어떻게 1천만 당원을 가진 나라가 되었나’에서 우리나라의 대규모 당원을 세 유형으로 분류했다. 당적 여부에 관심이 없거나 자신이 모르는 채 가입된 ‘당원 아닌 당원’, 선거철 경선에 동원된 ‘매집된 당원’, 의원이나 당직자들의 행동에 관여하고 이들을 통제하려고 하는 ‘지배하려는 당원’이다. 최근 눈에 띄는 건 세 번째 유형이다. 지난 몇 년 사이 팬덤 정치가 보편화하면서 자신이 지지하는 인물을 밀기 위해 정당에 가입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이들은 당의 오랜 체계를 무너뜨리고 의원들에게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길 원한다. 당원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과정에서 대의제 기반이 흔들리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이런 경향은 당원의 규모나 참여 강도가 상대적으로 더 강한 민주당에서 부각됐다. 민주당이 제22대 국회 개원 이후 국회의장 선거와 원내대표 선거에서 당원투표를 반영키로 한 게 대표적이다. 국회의장은 특정 정당이 아닌 국회 전체를 두루 대표하는 자리다. 원내대표는 ‘의원들의 반장’으로서 상대 당과 협상을 주도하는 위치다. 이들을 뽑는 과정에 당원들의 목소리가 반영된다면 필연적으로 선명성 경쟁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협치 가능성은 점점 줄어든다.

    분권‧참여 명분에 반기 어렵겠지만 민심도 수용해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2025년 11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독립외교 40년 : 이승만의 외로운 투쟁' 시사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2025년 11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독립외교 40년 : 이승만의 외로운 투쟁' 시사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뉴스1

    무엇보다 큰 문제는 당심이 민심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경선을 하느냐 마냐가 중요했지, 일반 여론조사와 당원투표 비율은 핵심 이슈가 아니었다. 국민 여론과 당원 여론이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심과 당심이 괴리되면서 당원투표를 몇% 반영하느냐가 당내 선거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부상했다.

    국민의힘은 2023년 제3차 전당대회에서 여론조사를 절반가량 반영해 오던 기존 관례를 뒤집고 당원투표 100%로만 선거를 치렀다. 스스로 민심과 괴리됐다는 걸 자인한 꼴이었다. 당시 전당대회에서는 이른바 ‘윤심’을 등에 업은 김기현 의원이 대표로 선출됐다. 여론조사에서 앞섰던 인물들은 고배를 마셨다. 국민의힘은 이후 모든 선거에서 처참히 패배했다. 외연을 넓힐 수 있는 인물들이 본선에 나서질 못하니 중도 민심을 얻지 못하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정당의 의사결정에서 당원들의 입김이 거세지고 있는 흐름은 거스르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분권과 참여라는 명분에 반기를 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정청래 대표의 1인 1표제 도입 시도는 당장은 제동이 걸렸지만, 완전히 매듭지어진 사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국민의힘에서도 “경선에서 당심 반영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은 계속될 것이라 감히 단언한다.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당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정치인들은 더욱 선명한 메시지를 내보낼 것이다. 자연스레 갈등과 증오의 정치는 더욱 심화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대결 구도는 개별 정치인에게는 이익일 수 있겠으나 정당에는 손해다. 정치인 개인은 당원들의 지지만 얻으면 당내에서 요직을 꿰차고 공천권도 따낼 수 있지만, 정당은 그것만 가지고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다가오는 지방선거도 당원들의 거센 요구를 적절히 통제하고 민심을 적극 받아들이는 정당이 승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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