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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동아일보 親日論에 할 말 있다

압수 400여건, 정간 4차례, 폐간압력 시달린 東亞

일제하 동아일보 親日論에 할 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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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 치하에서 조선인이 신문을 발행한 것은 일제에 순응한 반민족적 행위일까, 억압과 핍박에 맞서 국민의 항일의식을 고취하려는 민족적 용단일까. 지난 8월 KBS 특별기획 ‘일제하 민족언론을 해부한다’ 방영 이후 이러한 논란이 다시 대두되었다. 과연 일제 총독부는 ‘동아일보’와 같은 민족지를 어떻게 다루었을까.
  • 총독부는 동아·조선이 발행된 1920∼40년에 끊임없이 언론통제와 폐간압력을 가해왔음을 역사적 자료를 통해 살펴보았다(편집자).
일제하 동아일보 親日論에 할 말 있다
최근 KBS를 비롯한 일부 언론이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일제시대 논조를 문제삼는 경우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 일제 강점기 35년 가운데 동아·조선은 1920년 창간되어 1940년까지 20년간 발행됐다.

독립국가에 살고 있는 오늘의 관점에선, 총독부 허가를 받아 발행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두 신문이 ‘총독부의 정책에 순응했다’고 매도할 수 있다. 동아·조선이 일제 통치를 전면 부인하는 비타협적인 항일투쟁을 벌인 게 아니라, 그들이 내준 ‘허가장’을 받아 신문사를 운영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동아·조선이 일제 치하에 존속했다는 것 자체가 씻을 수 없는 원죄’라는 극단적 비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당시 언론통제의 주무관청이었던 총독부는 동아·조선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동아일보는 게재 기사가 문제가 되어 창간 보름째인 4월15일자 신문에 대해 처음으로 발매금지 처분을 받았다. 이어 사흘이 멀다 하고 삭제·압수 처분을 받다가 창간 6개월을 맞기 전 ‘무기정간’ 처분을 받았다. 총독부는 9월25일자로 동아일보에 정간처분을 내리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창간 이래 총독부는 누누이 주의를 환기시키고 8월에도 발행인을 소환하여 최후 경고를 전달한 바 있음에도 동아일보는 일제의 조선 정치를 부정하는 기사를 계속 실었다. 로마의 흥망을 거론하며 조선의 부흥을 말하고, 이집트 독립과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들어 조선의 인심을 자극하고, 영국에 맞선 반역자를 찬양하여 반역심을 자극하는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총독정치를 부정하여 일반의 오해를 깊게 함에 노력했다.”(동아일보 1921년 2월21일자)



강제 폐간을 당하던 1940년 8월에도 총독부의 눈에는 동아·조선의 근본적 태도가 바뀌지 않은 것으로 비쳐졌다. 총독부는 두 신문을 폐간시키려는 계획을 세우던 당시 극비문서 ‘언문신문통제안’에서 이렇게 말했다.

“두 신문은 전쟁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언론기관으로서의 사명을 완수하려는 책임감과 열의가 부족하다. 적극적 불온성은 줄어들었지만 소극적 불온성을 여전히 지속하고 있어(기사를) 차압 또는 삭제당한 일이 여러 차례에 이른다. 나아가 동아·조선이 존재하는 한 언젠가는 민족의식이 넘쳐 흘러 매일신보를 복멸(覆滅)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에 두 신문을 폐간시킴으로써 민족의식을 잘라 없애고 매일신보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이와 같이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는 동아·조선과, 총독부가 감시의 눈초리로 지켜보는 동아·조선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총독부, 제목 크기까지 문제삼아

일제하 동아일보 親日論에 할 말 있다

동아일보를 창간한 仁村 김성수

일제 치하에서 신문 통제의 주무부서는 총독부 경무국 도서과였다. 도서과는 신문의 논조와 제작의도를 샅샅이 분석할 뿐 아니라 그들이 내린 언론 통제 실적을 집계해 해마다 ‘조선출판경찰개요’란 비밀문서를 발행, 식민지 통치 자료로 활용했다. 또 경무국은 압수한 기사를 10년치(1920∼30), 2년치(1931∼32), 4년치(1933∼36)로 각각 묶어 ‘언문신문차압기사집록(諺文新聞差押記事輯錄)’이라는 또 다른 비밀문서를 만들었다. 이 기사모음집 서문에는 ‘조선에서 발행되는 언문신문의 논조를 조사하면 조선 통치에 가장 좋은 참고자료가 되며, 조선과 조선민족의 연구에도 도움이 된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는 바로 신문 검열을 통해 조선인들의 생각과 불평을 파악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총독부는 기사와 논설뿐 아니라 문예작품, 심지어는 어린이 작문까지 경계의 눈초리를 번득였다.

총독부의 일관된 정책은 언론 탄압을 통해 항일의식을 억누르는 동시에 언론을 식민통치에 유리한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역대 조선총독들은 이같은 정책에 따라 ‘경성일보’(일본어) ‘매일신보’(한국어) ‘서울 프레스’(영어) 등 3개 기관지를 직접 관할하는 한편, 민간 신문에 대해서는 철저한 통제를 가했다. 이러한 일제 치하의 언론 상황은 크게 3개의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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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진석 한국외대 교수 ·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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