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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학 장호원주재소 총검 절취 사건

단순 사기·절도범의 우발적 범죄가 불러온 참화

김선학 장호원주재소 총검 절취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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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모를 코앞에 둔 일요일 밤, 80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순박한 시골 마을 장호원주재소에서 무기 탈취 사건이 일어났다. 100여 명의 무고한 양민이 경찰에 체포돼 고초를 겪고
  • 경기도, 충청남북도 3개 도의 경관 1000여 명이 일주일 동안 수색 작전에 동원됐다. 연말 상여금을 기다리던 장호원주재소 이영재 순사, 오산주재소 고종옥 순사 등 10여 명의 경찰이 파면되거나 징계를 받았다. 그런데 정작 범인은….
김선학 장호원주재소 총검 절취 사건
“이 녀석은 대체 어딜 간 거야?”1930년 12월8일 새벽 1시, 순찰을 마치고 돌아온 장호원주재소 숙직 순사 이영재가 텅 빈 사무실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또 어디 가서 술 퍼마시고 있는 게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술이라면 사족을 못 써서 큰일이야.”

함께 숙직을 서던 열일곱 살 난 사환 최봉애는 밤이면 길 건너 주점에서 술을 마시느라 자주 자리를 비웠다. 이영재 순사는 쯧쯧 혀를 차며 책상에 앉아 순찰 일지를 펴 들었다.

‘이상 무.’

세모를 코앞에 둔 일요일 밤, 80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순박한 시골 마을에서 별일이 생길 리 없었다. 1926년 10월, 스물두 살 청년 이수흥이 장호원에서 100리가량 떨어진 백사주재소에 난입해 권총을 난사한 사건을 제외하면, 이영재 순사가 근무한 지난 10년간 장호원을 비롯한 이천군 일대에서 시국사건이나 강력사건은 발생한 적이 거의 없었다.



두어 시간 추위에 떨며 순찰을 돌다 화로의 따뜻한 온기를 쬐니 갑자기 피로가 엄습했다. 경기도와 충청북도의 경계에 위치한 장호원은 시골 마을치고는 규모가 큰 편이어서 주재소에 순사가 5명이나 있었지만, 소장인 무라타(村田) 경부보를 제외한 일본인 순사 2명과 조선인 순사 2명이 나흘에 한 번씩 교대로 서는 숙직은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오일장이 열리는 새벽이 오기 전에 잠깐이라도 눈을 붙여야 했다. 이영재 순사는 사무실 문을 걸어 잠그고 숙직실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감쪽같이 털린 무기고

새벽 4시, 이영재 순사는 코 고는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시큼한 술 냄새가 숙직실에 가득했다. 언제 들어왔는지 최봉애가 술에 취해 연신 드르렁거리며 자고 있었다. 최봉애의 고개를 좌우로 돌려봐도 자동차 엔진 소리 같은 코 고는 소리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다시 잠을 청하기는 틀렸다고 생각하고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사무실로 나와 소파에 기대어 느긋하게 담배를 피워 물었다. 며칠 후 나올 연말 상여금을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절로 흘렀다.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다가 책상 뒤편 벽면에서 시선이 멈췄다.

“어라!”

벽에 걸어둔 경관용 패검 2자루가 사라지고 없었다. 등골이 서늘해져 잠이 확 달아났다. 이영재 순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무실 안을 샅샅이 뒤졌다. 한 눈에 다 들어오는 비좁은 사무실을 몇 번씩 뒤졌지만 패검은 보이지 않았다. 아차 하는 생각에 사무실 문을 박차고 나가 건물 왼편 무기고로 달려갔다.

이영재 순사는 무기고 문 앞에서 맥없이 주저앉았다. 무기고 자물쇠는 둔기에 맞아 산산조각이 났고, 활짝 열어젖혀진 문은 매서운 북서풍에 흔들리며 삐거덕거렸다. 무기고 안은 휑하니 비어 있었다. 무기대장과 비교해보니 기병용 장총 1자루, 보병용 장총 4자루, 권총 1자루, 실탄 12발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나무상자에 포장해둔 장총 탄환 2500발이 무사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주재소 정문에 세워 둔 관용 자전거도 사라졌다.

이영재 순사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사무실로 돌아가 수화기를 들고 맥없이 전화기 다이얼을 돌렸다.

“이천경찰서 상황실입니다.”

“장호원주재소 이영재 순사입니다. 창고가 털렸습니다.”

“어느 창고 말씀이신지?”

“……주재소 무기고.”

월요일 새벽 이천경찰서에 비상이 걸렸다. 이천경찰서 간다(神田) 서장은 날이 새기도 전에 전 대원을 비상소집해 장호원으로 달려갔다.

오전 일과가 시작되자 경기도 경찰부 가노(鹿野) 경찰부장은 노무라(野村) 형사과장, 사에키(佐伯) 고등과장 등 수뇌부들과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숙의했다. 긴급회의를 마치고 가노 경찰부장이 자신의 방으로 출입 기자들을 불렀다. 월요일이면 으레 하는 대로 경기도 경찰부에 들러 무슨 기삿거리나 없을까 어슬렁거리던 출입 기자들은 별로 신통한 사건이 없어서 그냥 돌아가려고 하던 참이었다. 가노 경찰부장은 기자들에게 정중히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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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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