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호

현장 르포

“소중한 사람 잃은 건 돈으로 환산 못하죠”

도박에 중독된 사람들

  • 구희언 | 동아일보 출판국 전략기획팀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6-09-20 11:4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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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박중독자의 ‘등대’ 강원랜드 중독관리센터(KLACC)
    • 예방, 치유, 자활, 사후관리까지…원스톱 치유 시스템
    • 비슷한 처지 사람들끼리 산행·여행으로 힐링
    9월 5일 오후. 평일인데도 강원랜드 주차장은 차들로 빼곡했다. 업체 차량부터 번호판을 수건으로 가린 택시까지, 다양한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한 종류의 차들이 주차돼 있었다. 지하로 여러 층을 내려가서야 겨우 차를 댈 수 있었다.

    줄을 서서 입장권을 사려는 기자에게 매표소 직원이 “올해 처음 오시는 거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전광판에 나온 ‘업장 내 현황 3980명’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3600여 명이었는데 그 새 400명 가까이 늘었다. 강원랜드 관계자는 “지금은 비수기라 그렇고 많을 때는 (하루에) 2만 명 가까이 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돌아갈 곳 없는 사람들

    카지노 내부를 둘러보다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북적대는 ‘다이사이’ (주사위 3개를 흔들어 나온 수의 합을 맞추는 게임)테이블 앞에 자리를 잡았다. 한 중년남성이 딜러에게 다가와 기자의 한 달치 월급에 가까운 돈을 칩으로 바꿨다. 몇 차례 ‘대’와 ‘소’에 베팅한 그는 20여 분 만에 칩을 전부 잃었다. 그래도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다시 다음 게임. 10초, 9초, 8초…. 5초대로 들어서자 어디선가 나타난 사람들이 헐레벌떡 뛰어와 테이블에 칩을 밀어 넣었다. 타임 오버. 작은 주사위 세 개의 움직임에 모든 이의 이목이 쏠렸다. 8. ‘소’의 승리였다. 테이블 가득 쌓여 있던 칩은 능숙한 딜러의 손놀림 몇 번으로 정리됐다. 수백만 원이 허공으로 사라지기까지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재미 삼아, 호기심에 강원랜드를 찾는다.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내국인 입장이 가능한 유일한 카지노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적당히 즐기고 자리를 뜨지만, 영 못 떠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처음엔 돈을 잃고, 그다음엔 사람을 잃고, 심한 경우 목숨마저 잃는다. 흔히 ‘도박중독자’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치유하고 사회적 부작용을 최소화하려 힘쓰는 곳이 강원랜드 KL중독관리센터(KLACC, 클락)다.

    KLACC은 강원랜드가 사행산업의 역기능인 도박중독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도박중독 예방·치유 활성화를 통해 사회적 부작용을 줄이고자 2001년 9월 25일 설립한 도박중독 전문기관이다. KLACC은 도박중독 예방 홍보 및 교육, 자체 치유 프로그램 운영 및 전문병원과의 연계를 통한 치유 지원, 직업재활 지원 및 조사연구사업 등을 수행한다. 국내뿐 아니라 외국 전문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도박중독에 대한 조사, 연구, 학술 활동 등을 꾸준히 벌여왔다.

    7월부터 이곳을 지휘해온 원종화 KLACC 센터장은 “복권은 당첨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있고, 마권은 주말에만 살 수 있다는 제한이 있지만 도박은 현물 투자를 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답이 나오기 때문에 사람들이 빠져들기 쉽다. 특히 1만 원으로 1000만 원을 만들어본 경험, 한 번이라도 큰돈을 따본 사람이라면 헤어 나오기가 더더욱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도박중독은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도박의 병폐를 항상 주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박 과몰입자들과 상담을 해보면 ‘때때로 도박의 늪에서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사회에 나가 할 일이 없고 가족도 반겨주지 않다 보니 돌아갈 곳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이들은 돈을 다 잃으면 다시 돈을 빌려 베팅하고 또 잃어요. 그렇게 새벽까지 있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태반인데, 그럼에도 당장이라도 뭔가 이뤄질 것 같다는 생각에 손을 떼지 못하는 겁니다.”



    예방 교육 받아야 재출입

    사행산업의 주체(강원랜드)가 운영하는 도박중독관리센터라는 점도 특이하지만, 예방과 치유부터 자활과 사후 관리 프로그램까지 원스톱 시스템을 갖췄다는 것이 KLACC의 가장 큰 특징이다. 월간 출입일수 제한과 매출총량 관리, 각종 출입제한 제도 등을 운영하는 KLACC의 도박중독 관리 프로그램은 해외 카지노에서도 관심을 갖는다고 한다.  

    “2012년부터 카지노 출입일수를 월 15일로 제한했습니다. 두 달 연속으로 한 달에 15일 이상 출입하면 의무적으로 상담과 교육을 받아야 해요. 의무 상담과 교육을 받지 않으면 더는 출입할 수 없지요. 또한 도박중독 위험을 느끼고 자발적으로 출입제한을 신청하면 최소 1년에서 3년까지 카지노 출입이 금지되는데, 다시 출입하고 싶다면 사전 예방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과몰입자들도 예방교육을 받아야 카지노에 출입할 수 있고요. 해외 카지노 관계자들이 우리의 프로그램을 보고 ‘이런 교육도 하고, 이렇게 디테일하게 제한을 하느냐’며 놀라더군요.”



    강원랜드 고객 중 상당수가 가정에서 ‘가장’ 노릇을 할 법한 40~50대 자영업자 남성이다. KLACC을 찾는 사람도 40~50대 남성이 가장 많다. 2003년부터 이곳에서 도박중독자 상담을 도맡아온 KLACC 상담전문위원 강성군 파트장은 “처음부터 도박에 중독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관광차, 휴가차, 호기심으로 접근했다가 빠져드는 것”이라며 “승부욕이 지나치게 강하거나, 심리적인 열등감을 돈으로 회복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도박에 중독될 위험이 크다. 여성 중에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 도박에 빠져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KLACC은 과몰입자를 대상으로 ‘희망씨앗 찾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명상과 트레킹을 통해 도박중독에 대한 회복과 치유 효과를 끌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 밖에도 단비모임(단도박으로 비상하는 모임), 여행모임(여성들의 행복준비 모임), 희망밴드(재능기부 동아리) 등을 운영한다. 강 파트장은 “도박 중독 당사자와 직계 가족의 병원 치료비 지원, 사회 복귀를 위한 재활 지원, 재무법률 상담 등의 프로그램을 마련해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원스톱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오랜 기간 도박중독자들을 상대해온 강 파트장에겐 경력만큼이나 기억에 남는 사람이 많다. 어머니의 전 재산 수억 원을 도박으로 전부 날리고 KLACC의 지원을 받아 숲 해설가로 활동 중인 사람부터 중견가수로 활동하다 도박으로 전 재산을 잃고 섬에서 다시마를 따며 생활하는 사람까지…. 명망 있는 고위 공무원이나 의사도 도박중독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인생은 결코 게임처럼 쉽지 않았다.

    “카지노 영구 출입정지를 당하고 사회로 복귀해 트럭 운전을 하며 살아가는 분이 제게 문자로 보내온 내용이 기억에 남아요. ‘선생님, 바깥세상에는 빠꾸(후진)가 없습니다’라는. 카지노에서는 돈을 땄다가도 잃고, 다시 따도 또 잃는데 사회에서는 그럴 일이 없잖아요.”

    이날 KLACC 단비모임에 참여하고자 이곳을 찾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12년 전 강원도 여행 중 카지노에 구경 삼아 들렀다가 도박에 빠졌다”는 한 여성은 “처음에는 돈을 끌어모아 도박을 하다가 막판에는 재산을 처분해 카지노 근처에 방을 잡아놓고 게임을 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그는 “망가지더라도 나만 망가져야지, 아이들까지 망가지게 하면 안 되겠다 싶어 이곳을 찾게 됐다. 그동안 돈도 많이 잃었지만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건 돈으로도 환산할 수 없을 것”이라며 회한 어린 표정을 지었다.

    4년 전부터 KLACC과 인연을 맺었다는 또 다른 여성은 “KLACC의 도움으로 재활교육을 받으며 카지노 바깥세상에 다른 삶이 너무나 많이 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KLACC을 찾는 사람 중 금전적으로 도움을 받고자 하는 이는 거의 없어요. 도박으로 밑바닥까지 간 사람들이라 돈으로 뭔가를 개선하기는 어려운 상황이거든요. 그런데 이곳에선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모임에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주고, 여러 가지 지원을 해주더라고요. 가족도 다 떠나버려 홀몸으로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만나 서로 지지하고 격려하면서 위안을 얻을 수 있었어요.”



    걸음마부터 다시 시작

    그는 “과거에는 카지노에 오는 사람 대부분이 50대였는데 최근 20~30대 젊은 층이 늘었다”며 우려했다.

    “젊은 사람들이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게임을 많이 하다 보니 게임 자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운만 좋으면 돈을 딸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 같아요. 처음엔 다들 그렇게 시작하죠. 설사 돈을 잃어도 ‘한 번은 따겠지’ 하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죠. 그래서 도박이 무서운 거예요. 답이 없다는 걸 빨리 알면 좋겠는데….”

    강 파트장은 “도박에 중독돼 불나방처럼 테이블로 뛰어드는 이들을 보다 보면 ‘불가항력’적인 부분이 느껴질 때도 있다”고 했다. 도박 중독은 혼자서는 결코 헤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도박중독자들은 자신의 문제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아요. 출입일수가 늘어나거나, 가족에게 점점 더 거짓말을 하게 되거나, 스스로 정해놓은 룰을 어기는 것 같다면 전문기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죠. 그렇지 않으면 회오리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들고 말아요. 조금이라도 그런 느낌이 든다면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세요. KLACC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도박으로 모든 것을 잃고 바닥까지 추락한 사람들. 아무것도 손에 쥔 게 없지만 그래도 세상을 다시 살아가겠다는 마음을 먹고 용기를 낸 사람들이 걸음마부터 다시 시작하도록 돕는 게 KLACC이 하는 일이다. 이들에게 ‘등대’ 같은 존재가 돼 다른 중독자에게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 KLACC의 존재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 센터장은 “도박중독으로 절망적이고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린 이들에게 KLACC가 부모 같은 존재가 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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