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항 청사를 빠져나오니 바다 냄새를 머금은 바람이 시원하게 얼굴을 스친다. 멕시코 남부 유카탄 반도 끝자락에 자리잡은 칸쿤 해안은 멕시코 정부가 1970년부터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를 의식해 개발한 세계적인 해변 휴양지다. 마야문명 최대 유적지인 치첸이사(Chichen Itza)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이곳은 연평균 기온이 28℃이고 습도가 낮아 사계절 내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지렁이처럼 구부러진 해변을 따라 세계적인 특급호텔과 리조트가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데, 연 250만명이 이곳을 찾아 멕시코 전체 관광수입의 30%를 올려준다.
호텔에 여장을 풀자마자 짧은 바지로 갈아입고 카리브해의 푸른 물결이 끊임없이 밀려와 흰색 포말로 부서지는 순백의 해변을 걸었다. 해변 카페에서 마티니 한 잔을 마시며 흰구름이 한가롭게 떠 있는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밤이 되자 유흥가의 요란한 조명과 가로등 불빛이 호수에 드리워져 휘황찬란하기 그지없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했지만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어 이리저리 뒤척이다 새벽녘에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산호초 섬 위의 골프장
창으로 들어오는 강렬한 아침햇살에 깨어나 맨발로 해변을 걸으니 상쾌하기 그지없다. 가벼운 아침 산책은 여행의 고단함을 씻어내고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기에 그만이다. 호텔 뷔페식당에 들어가니 멕시코 음식과 각종 과일이 지천이어서 무엇부터 먹어야 할지 모를 정도다. 가벼운 시장기가 돌아 이것저것 먹어보다 작은 멕시코 고추를 하나 입에 넣으니 매우면서도 상큼해 텁텁했던 입안이 금세 개운해진다.
낭만과 휴양의 도시 칸쿤에서 골프를 친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다. 더운 날씨여서 골프복장으로는 짧은 바지가 편한데, 혹시 드레스코드(dress code)로 인해 클럽하우스 입구에서 출입을 제지당하지나 않을까 걱정됐다. 호텔촌과 호수를 사이에 두고 만들어진 중앙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20여 분 달리니 칸쿤 골프클럽이 나타난다.
흰색의 나지막한 클럽하우스에 들어서자 멕시코 모자에 수염을 기른 종업원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반바지가 괜찮으냐고 묻자 “여기는 수영복도 좋다”고 조크를 한다. 이른 아침인데도 골프장은 골퍼들로 붐볐다. 칸쿤에는 골프장이 힐튼 골프클럽과 칸쿤 골프클럽밖에 없는데, 힐튼 골프클럽은 보수공사 중이라고 했다.
칸쿤의 자나 레라존에 있는 칸쿤 골프장은 내륙의 호수와 카리브해 사이에 떠 있는 T자 모양의 산호초 섬 위에 만들어져 있어 18홀 내내 호수와 바다를 보며 라운드할 수 있는 낭만적인 골프장이다. 1976년 로버트 트랜 존스 주니어가 해변 경관을 그대로 살려 설계한 것으로 아름다우면서도 도전의욕을 자극하는 자연친화적 골프장으로 평가받는다. 18홀 파 72, 전장 6750야드로 국제규격을 갖췄다. 이곳을 찾은 골퍼들은 칸쿤 지역에 머무는 호텔 고객이 대부분이어서인지 멕시코인은 거의 없고 대부분 백인이었다. 가끔 일본인이나 한국인 몇 명이 눈에 띌 정도다.
일행 3명이 각자 미화 150달러의 그린피를 내고 1번 홀 스타터로 이동하니 얼굴이 까무잡잡한 캐디가 우리를 반겼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캐디가 “쟈폰니스(일본인)?” 하고 물어 “노, 코리언”이라고 하자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고 발로 축구하는 시늉을 하며 연신 “코리아 넘버원”이라고 외쳐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