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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축구 인생은 최강희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

35세 國代 이동국

“내 축구 인생은 최강희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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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잉글랜드 리그 미들즈브러에서 성남 일화로 복귀할 때 구단과 1년 5개월의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3개월 만에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됐다.

“어찌 보면 내 축구 인생은 최강희 감독님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미들즈브러에서 힘든 시간을 보낸 후 국내 무대로 복귀했을 때는 그라운드에서 뛰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나 성남에선 내가 예상한 만큼의 출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위축됐고, 결국 ‘퇴물’ 취급받으며 벤치에 머무르다 ‘다른 팀을 알아보라’는 구단의 얘기를 전해 들었다. 황당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그때 내게 손을 내밀어준 분이 최강희 감독님이다. 감독님께서 내 소식을 듣고 영입 제안을 하려 직접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 당시만 해도 전북 현대는 선수들 사이에서 지금처럼 매력 있는 팀이 아니었다. 클럽하우스도 없었고, 지방 구단인 데다 우승 전력을 갖추지 못한 팀이라 대부분 꺼리는 분위기였다. 그런 점이 마음에 걸리진 않았나.

“그때는 전북의 팀 환경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일단 당장 뛸 수 있는 팀을 알아봐야 했다. 물론 다른 팀의 제안도 있었지만, 최 감독님이 보인 진심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감독님이 해주신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네가 다시 선수로 뛸 수 있게끔 만들어주고 싶다. 경기장에서 더 이상 뛰기 힘들다고 손을 들 때까지 뛰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성남에서 주전으로 뛰지 못하며 90분 풀타임 출전에 대한 갈증이 있던 나로선 최 감독님의 약속을 믿고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이동국은 전북 현대 입단 후 곧장 일본 전지훈련에 합류했다. 전지훈련 중 일본 클럽 팀과 여덟 차례 연습경기를 치렀는데 단 한 골도 터뜨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최강희 감독은 이동국을 주전에서 제외하지 않았다. 매 경기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 그 후 정규시즌이 시작됐고, 최 감독의 약속은 변함이 없었다. 이동국이 공격수로서 제 구실을 하지 못해도 계속 주전으로 내보냈다. 그때 이동국은 이런 결심을 굳혔다. ‘앞으로 난 이분을 위해 무엇이든 다 할 것’이라고.



성남 일화에서 상처만 안고 나온 이동국에게 최강희 감독은 ‘아버지’나 다름없었다. 실수를 해도, 나락에 떨어져도 한없이 기다려주고 믿어주는 아버지 같은 존재 말이다. 결국 이동국은 전북 현대로 이적한 첫해 K리그 득점왕과 MVP에 오르며 성적으로 최 감독에게 보답했다. 당시 최 감독은 “처음에 동국이를 영입할 때만 해도 구단이나 전북 팬은 ‘감독이 미친 거 아니냐’며 격한 반응을 보였지만, 난 동국이를 굳게 믿었다. 누구보다 재기 의지가 강했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기에 재기를 확신했다”고 말한 바 있다.

돈을 좇기보다 돈이 따라오게

전북 현대와 재계약을 앞둔 2011년 11월, 이동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클럽으로부터 40억 원 넘는 몸값을 제시받는다. 그러나 이동국은 제안을 거절하고 전북에 남기로 결정했다. 이유는 단 하나, 나락으로 떨어진 자신을 구해준 최 감독에 대한 의리 때문이다.

▼ 당시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나. 물론 전북과 고액 연봉 재계약을 맺었지만, 외국 팀의 오퍼와는 금액 차이가 아주 컸다.

“돈을 좇아가기보단 돈이 따라오게 만들어야 한다는 게 내 신념이다. 돈에 얽매이다보면 내가 할 일을 놓치게 되고, 돈 때문에 축구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싫었다. 특히 최강희 감독님과 더 오래 인연을 맺고 싶었다. 주위에서 반대했는데도 전북과 재계약을 하고 나니 감독님이 대표팀으로 가버리시더라.(웃음)”

최강희 감독은 조광래 감독의 대표팀 사퇴로 인해 갑자기 대표팀 감독으로 ‘차출’돼 1년 6개월간 팀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 성남 일화에서 방출되다시피 했을 때 사령탑이 신태용 전 감독이었다. 그런데 그를 ‘슈틸리케호’(현 대표팀 코치)에서 다시 만났다. 슈틸리케 감독이 오기 전 신태용 전 감독이 대표팀의 임시 사령탑을 맡았는데, 이동국 선수를 선발해 A매치 경기를 치렀다. 그 경기에서 A매치 100경기 출전을 달성, 센추리클럽에 가입했다. 참으로 재미있는 인연이다.

“베네수엘라와의 친선경기에서 2골도 기록했다.(웃음) 신태용 감독이 비록 임시였지만, 대표팀을 맡아 나를 선발해주셨고, 그 경기에서 축구 인생에 기록으로 남을 만한 센추리클럽에 가입했다. 신 감독님, 아니 코치님께서 내게 오해를 풀라고 하셨다. 성남 일화에서 날 내보낼 때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는 구단의 결정이었고, 자신은 ‘초짜’ 감독이라 구단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또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이동국을 내보낸 것처럼 알고 있다면서 안타까워하셨다. 이제 다 지난 일이다. 나로선 오히려 성남의 그 결정 때문에 지금까지 선수생활을 오랫동안 이어가고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만약 그곳에 계속 남았다면 일찍 은퇴의 길을 걸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성남 일화에는 전혀 감정이 없다.”

“내 축구 인생은 최강희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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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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