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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청와대 습격사건 생포자 김신조 전격 증언

“北 도주자 1명은 2000년 송이 들고 서울 온 박재경 인민군 대장”

  • 글: 엄상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angpen@donga.com

1·21 청와대 습격사건 생포자 김신조 전격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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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8년 ‘1·21 청와대 습격사건’ 당시 유일하게 생포되었던 김신조(62)씨가 오랫동안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비밀’을 털어놓았다. 당시 북한으로 도주한 1명의 무장공비가 북한인민군 대장 박재경 총정치국 부총국장이라는 것. 박 부총국장은 2000년 9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자격으로 남한을 방문한 김용순 당 중앙위 비서를 수행해 송이버섯을 전달했던 인물로 북한 군부 최고 실세 중 한 사람이다.
  • 김씨는 또 “남북정상회담과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의 방북 당시, 김정일 위원장이 1·21사건 책임자를 모두 숙청했다고 했는데 그건 사실과 다르다”며 “1·21사태를 주도했던 책임자들은 지금까지도 북한 군부 실세로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1·21 청와대 습격사건 생포자 김신조 전격 증언
‘684북파특수부대’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실미도’가 흥행가도를 달리며 보름 만에 관객 400만명을 돌파했다. 이것은 한국영화사상 최단기간이다. 이 영화를 있게 한 장본인이나 다름없는 인물이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한다.

1968년 1월21일 밤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중무장한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이 남하했다. 이들은 한미 군·경합동수색대와 교전중 대부분 사살됐다. 당시 유일하게 생포된 김신조씨. 그가 없었다면 북파특수부대가 만들어지지 않았고, 시나리오의 바탕이 된 ‘실미도 특수부대원 반란사건’도, 영화도 없었을 지 모른다. 영화 속에서 김신조 역을 맡은 연기자는 군인들에게 체포돼 입에 재갈이 물리고, 잠시 후 기자회견장에서 섬뜩한 한마디를 내뱉는다. “박정희 목따러 왔수다.”

1968년 사건 당시 신문보도 내용에 따르면 김씨는 1월22일 새벽 3시에 생포되었고 16시간 뒤인, 같은 날 오후 7시부터 30분간 육군방첩부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당시 기자회견 내용 중 일부다.

-성명과 연령, 본적, 주소는.

“김신조, 27세입니다. 본적은 함북 청진시 어항동이고, 주소는 청진시 청암3구역 청양동 제3반입니다. 생년월일은 1942년 6월2일.”

-소속과 계급은.

“조선인민군 제124군부대, 소위입니다.”

-북한에 부모는 있는가. 그 밖의 가족들은.

“부모님은 청진시에 계십니다. 아버지는 김중엽, 어머니는 이분옥인데 직조공장 노동자입니다. 경숙 등 3명의 누이동생이 부모님과 같이 삽니다.”

-자하문에서 경찰과 충돌하기 전까지 군·경 수색대를 본 적은 없는가.

“아무도 만나지 못했고 간첩작전을 벌이고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당초 계획대로 내려왔는데 막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이번 임무는.

“박정희 모가지를 떼고, 수하간부들을 총살하는 것입니다.”

-청와대 습격작전 계획은.

“31명이 5명 내지 7명씩 6개조로 나뉘어 1조에서 5조까지는 청와대의 1층, 2층, 경호실, 비서실, 정문위병소의 격파를 분담하고 나머지 1개조는 습격이 성공했을 때 청와대 수송부의 자동차를 탈취해 문산까지 나가 임진강을 도강하는 것입니다.”

-성공할 줄 알았는가.

“실패는 생각지도 않았고, 만약의 경우 죽음은 각오했습니다.”

-지금 심경은.

“아무렇게나 처리해도 좋습니다. 여기 인민들에게는 많은 죄를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난 체포되지 않고 투항했다”

그로부터 36년이 지난 지금, 김신조씨는 남양주성락교회에서 목사로 일하고 있다. 김씨는 영화 ‘실미도’가 흥행하는 것이 무척 못마땅하다. 특히 자신의 이름이 다시금 언론지상에 오르내리면서 일반인의 주목을 받는 것 자체를 무척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북한에 두고 온 가족, 함께 남파됐다 사살된 부대원들의 시체 등 악몽 같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까닭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아픔도 겪어야 했다. 김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영화 ‘실미도’ 때문에 아들이 파혼당했다”며 “이 영화를 보면 어린 외손자들이 할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태산”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김씨는 또 “남북 대치라는 역사적 상황에서 개인이 희생당한 사건이 많지 않았나. 사건 발생 36년이 지난 후 상업적으로 제작된 한 편의 영화로 인해 (아픈 과거가 되살아난다면) 행복하게 살아온 가족들에겐 너무 가혹하다”고 말했다.

영화내용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다. 군·경에 의해 강압적으로 체포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투항한 것이라는 게 김씨의 주장. 그는 1994년 발간한 자전적 에세이 ‘나의 슬픈 역사를 말한다’에서도 사건 당시 군 당국이 ‘생포’라고 발표한 것에 대해 “체포된 것이 아니고 손을 들고 순순히 투항한 것이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김씨는 영화로 인해 받게된 정신적 피해와 왜곡된 내용에 대한 법률적 대응을 위해 변호사에게 자문했지만 현행 국내법상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답변을 듣고 법적 대응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연말, 한 송년회 모임에 참석한 김씨는 매우 새롭고도 중요한 사실들을 언급했다. 이날 초청강사로 나선 김씨는 영화 ‘실미도’를 의식한 듯 1·21사건 당시 상황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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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엄상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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