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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화 원류 탐험기 ⑪

‘3차원 세계’ 내디딘 라이트 형제와 키티호크

문자 발명 이래 인류 최대의 업적, 비행(飛行)

  • 신문수 서울대 교수·미국문학 mshin@snu.ac.kr

‘3차원 세계’ 내디딘 라이트 형제와 키티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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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원 세계’ 내디딘 라이트 형제와 키티호크
인간의 제반 사회적 관계도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바다와 산, 강과 절벽이 갈라놓은 지형적 장애가 무의미해지면서 국가의 경계를 포함한 모든 인위적 장벽 또한 하찮은 것이 되어갔다. 그러기에 1909년 7월25일 블레리오(Louis Blriot)가 영국 독자성의 표상이던 영불해협 횡단 비행에 성공하자 프랑스인들은 열광했다. 미증유의 살상을 초래한 제1차 세계대전도 기실 이 기술혁명으로 재편된 새로운 사회적 질서가 부정적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전 지구를 하나의 공동체로 묶는 세계화·국제화는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플라이어가 키티호크의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이미 시작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키티호크는 낯선 이름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을 뒤바꾼 기술혁명의 진원지 키티호크가 정작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버지니아 체사피크 만 남단에서 대서양을 향해 아래로 ‘혜성의 자취처럼’ 길게 뻗어 내려간 반도를 찾아보라. 이 반도는 노스캐롤라이나의 해안을 봉긋한 젖가슴 모양으로 감싸면서 점점이 섬들로 이어져 저 아래 남단 윌밍턴에 이른다. 그 형상 그대로 아우터뱅크스라 불리는 이 방파제가 남쪽으로 잠시 내려가다가 안으로 넓게 열린 앨버말 만과 만나는 곳, 그 해안가에 수줍은 듯 숨어 있는 작은 도시가 키티호크이다.

바람의 도시 키티호크

라이트 형제가 비행 시험을 한 곳은, 더 정확히 말하면, 키티호크에서 4마일 가량 더 남쪽으로 내려간 곳에 있는 킬데블힐스의 모래벌판이다. 이 지역은 오늘날 해안 별장과 콘도미니엄이 즐비한 휴양지로 탈바꿈했지만, 라이트 형제가 오하이오의 데이턴에서 이곳을 처음 찾은 20세기 초엽만 하더라도, 대서양의 거친 파도에 밀려 좌초한 배들의 용골이 흉물스럽게 나뒹구는 해안을 따라 6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작은 어촌에 불과했다.

라이트 형제가 열어놓은 하늘길을 타고 먼 동방에서 키티호크로 날아온 길손이 그의 업적을 기념하는 공원(Wright Brothers National Memorial)을 찾은 것은 2002년 9월 초순의 어느 날이었다. 인근의 로아노크 섬에 들러 롤리 유적지를 둘러보고 워싱턴 바움 다리를 건너니 바로 장장 250마일에 이른다는 아우터뱅크스가 좌우로 펼쳐져 있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길게 뻗은 이 모래벌판의 중앙을 관통하는 지방도 158번을 타고 북쪽으로 20분쯤 달리자 라이트 형제 기념공원이 자리한 킬데블힐스가 보인다.



가로의 양옆으로 들어선 가게와 숙박시설 때문에 바다가 곧바로 보이지는 않지만, 건물 사이로 이따금 보이는 모래벌판과 짙푸른 하늘을 나는 갈매기떼가 바닷가에 와 있음을 실감케 한다. 킬데블힐스는 오늘날 독립된 시가지로 성장했으나, 1900년 초 당시에는 키티호크 외곽의 황량한 모래벌판에 지나지 않았다. 이 모래벌판에 솟아 있던 4개의 작은 언덕 중 제일 높은 곳을 이곳 사람들은 킬데블힐이라고 불렀다. 이런 험악한 이름을 얻게 된 것은 ‘킬데블’이라는 상표의 럼주 병이 파도에 밀려와 인근 해안가에 쌓이곤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늘을 정복하고자 꿈을 꾼 다빈치의 후예 라이트 형제가 멀리 오하이오에서 굳이 이 오지를 찾은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무엇보다 바람 때문이었다. 비행에 뜻을 두면서부터 형제는 연과 글라이더로 비행 실험을 여러 번 했다. 커다란 연과 글라이더를 띄우기 위해서는 적어도 시속 15마일 정도의 바람이 불어줘야 하는데, 그들의 고향 오하이오 데이턴에는 그런 강한 바람이 부는 날이 많지 않았다. 그들은 기상청에 비가 자주 오지 않으면서 바람이 늘 일정하게 부는 지역이 어디인지 거듭 문의했다. 그래서 추천을 받아 정한 곳이 이곳 키티호크였다.

그들을 키티호크로 부른 또 다른 요인은 이곳의 모래벌판이다. 널따랗게 펼쳐진 모래벌판은 글라이더의 파손이나 신체 부상의 위험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무가 별로 없이 모래밭이 적당한 구릉을 이루고 있는 점 또한 그들의 마음에 들었다. 이런 기상적·지형적 장점에 덧붙여 키티호크의 격절된 환경 또한 비행 실험 장소로 이상적이었다. 사람들의 과도한 관심과 이목을 피해 마음놓고 실험할 수 있고 또한 새로운 비행 기술 개발의 소문이 새어나갈 염려가 없었기 때문이다.

키티호크의 이런 여러 가지 이점은 배를 타야 출입이 가능한 교통의 불편함이나 모기떼가 극성을 부리는 생활 환경의 열악함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최종적으로 키티호크를 실험 장소로 정하고 수많은 글라이더 실험을 계속해가면서 라이트 형제는 그들의 결정이 현명한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를 이어 고기잡이로 생계를 꾸려온 순박한 키티호크 사람들은 낯선 이방인 형제의 야심찬 도전을 반신반의하면서도 묵묵히, 헌신적으로 도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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