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공동 기획 | 한국 경제학 이슈와 학맥

“중간 지주회사 허용” vs “삼성 위한 특혜”

재벌개혁 방법론 논쟁

  • 윤영호 | 동아일보 출판국 기획위원 yyoungho@donga.com

“중간 지주회사 허용” vs “삼성 위한 특혜”

1/3
  •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와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부 선후배 사이다. 두 사람 다 대표적인 재벌 개혁론자지만, 그 방법론을 놓고 극명하게 대립한다. 크게 보면 점진적 개혁과 구조적 개혁의 대립이다.
“중간 지주회사 허용” vs “삼성 위한 특혜”

◀김상조 교수. ▶박상인 교수. [뉴시스]

국회도서관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 전자도서관에서 ‘경제민주화’라는 키워드로 소장 자료를 검색하면 의외의 결과가 나온다. 국회도서관이 소장한 단행본이나 학위 논문, 학술 기사 등에서 경제민주화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나오는 자료는 4·19 직후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월간 ‘재정’ 1960년 7월호에 실린 최호진 전 연세대 상경대학장의 ‘경제민주화에 따르는 신 경제정책을 제2공화국에 요구한다’는 논문이 그것이다. 2010년 타계한 최 전 학장은 1956년부터 1978년까지 22년간 한국경제학회장을 지낸 우리 경제학계의 거목이다.

그러나 최 전 학장의 경제민주화 주장은 당시의 한국 경제 실상을 반영하듯 ‘소박한’ 수준이다. 4·19 직후의 흥분을 엿볼 수 있는 이 논문에서 그는 “4월 혁명이 정치민주화의 발전 계기를 제공했지만, 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려면 경제민주화가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경제민주화 주장은 누구에게나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권력과 가까운 일부 기업에만 이권을 배분하거나 특혜성 대출을 해준 이승만 정권의 행태를 반복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경제력 집중 자체가 문제”

그의 이런 주장은 지금의 경제민주화 논의와는 차이가 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도하는 현재의 논의는 ‘거대 경제세력의 지배를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박정희 정권 시기의 경제개발 이후에 비로소 재벌이 탄생한 것을 감안하면 최 전 학장의 논문에 재벌 규제 논의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경제민주화 논의는 이처럼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다른 형태를 띤다. 그런 점에서 “경제민주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다”(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고 할 수 있다. 다만 대체로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시장경제체제를 기반으로, 경쟁에서 패한 사람에게도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내용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이 들어갔는데도 최근에 와서야 경제민주화가 국민적 관심사가 된 이유는 뭘까. 경제민주화에 찬성하는 학자들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 심화와 편법·불법 승계 등 전근대적인 행태, 중소·중견기업의 위축 등을 그 배경으로 꼽는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더 나아지지 않는 생활수준, 재벌의 골목상권 침해로 인한 자영업자의 몰락, 40대만 넘으면 언제 짐을 싸야 할지 모르는 고용불안, 노인 빈곤으로 상징되는 희망 없는 미래. 그런 중에도 재벌은 계속 몸집을 불려왔으니 경제민주화가 시대적 화두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경제민주화 논의는 필연적으로 재벌 개혁으로 이어진다. 경제민주화의 전제 내지는 출발점이 ‘경제력이 집중된’ 재벌을 개혁하는 것이라는 인식인 셈이다. “재벌이 경영을 잘해 경제력이 집중됐다면 뭐가 문제냐”는 재벌들의 주장에 대해 재벌 개혁론자들은 “과거 미국이나 일본의 경험을 보면 경제력 집중은 그 자체로 문제”라고 맞선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정책학과 교수의 얘기를 들어보자.

“독점력이나 상당한 시장지배력이 기업의 기술혁신이나 높은 생산성 같은 요인에 의한 것이라면 이를 문제시할 수는 없다. 반면 경제력 집중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된다. 20세기 초 미국의 진보 운동에서도 경제력 집중은 그것이 설사 합법적 결과라 해도 문제 삼았다. 경제력 집중 상태는 필연적으로 시장경제의 기본 질서를 흔들고 정치적 민주주의의 기반도 잠식하게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점진적 개혁 對 구조적 개혁

재벌 개혁론자들은 아울러 재벌 자체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현재처럼 선단식 경영을 통해 잘나가는 계열사가 못 나가는 계열사를 양으로 음으로 지원해 가면서 계속 끌고 갈 수는 없지 않냐는 지적이다. 잘나가는 계열사도 글로벌 경쟁에서 언제 뒤처질지 모르는 판에 뒤처진 형제까지 챙길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재벌 개혁론자들은 재벌 개혁 논의에 앞서 우리 재벌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선 1950년대 이후 한국 재벌과 같은 대규모 기업집단이 사라졌다는 게 정설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만 해도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100% 보유한다. 따라서 자회사라기보다는 단일 기업 GE의 사업부로 보는 게 맞다.

우리 재벌은 어떤가. 가령 A그룹의 계열사 a사와 b사가 있는데 a사는 그룹 총수가 80%의 지분을 가졌고, b사는 a사의 지분이 50%라고 가정하자. 두 회사의 순이익이 각각 100억 원이라면 A그룹 총수는 a사에서는 최대 80억 원(100억 원 × 0.8)의 배당금을 받을 수 있지만, b사에서 받을 수 있는 최대 배당금은 40억 원(100억 원 × 0.5 × 0.8)이다.

이 경우 그룹 총수는 b사의 이익을 a사처럼 자기 지분이 높은 회사로 빼돌리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a사가 b사와 거래하면서 유리한 단가를 받으면 b사의 이익이 a사로 흘러들어간다. 이를 막아야 할 b사의 이사들은 총수와 가까운 사람들이어서 모른 체하고, b사의 소액주주들은 소송을 해봐야 실익이 없어 포기하곤 했다. 한국 재벌에서 배임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재벌 개혁론자인 김상조 교수와 박상인 교수는 재벌에 대한 규율이 필요하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다. 그러나 ‘신동아’ 9월호에 언급했듯 두 사람의 주장이 일치하는 것은 여기까지고, 구체적인 개혁 방법론을 놓고서는 치열하게 논쟁을 펼친다. 점진적 개혁론(김상조) 대 구조적 개혁론(박상인)의 싸움이다.  

“재벌에 대한 규율을 지금까지처럼 행위 규제를 중심으로 할 것인지, 이사회 중심 구조로 할 것인지, 아니면 그런 행위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개혁으로 갈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적어도 행위 규제 중심으로는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했기 때문에 구조적인 접근을 하자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행위 규제를 해왔지만 전혀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비용도 많이 들고 감시하는 데도 어려움이 따른다는 행위 규제 자체의 한계를 보여주는 증좌다. 그렇다면 해답은 뻔하다.”(박상인 교수)


1/3
윤영호 | 동아일보 출판국 기획위원 yyoungho@donga.com
목록 닫기

“중간 지주회사 허용” vs “삼성 위한 특혜”

댓글 창 닫기

2017/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