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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연애를 혁명처럼 혁명을 연애처럼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와 산타클라라

  • 글 · 사진 오동진 | 영화평론가

연애를 혁명처럼 혁명을 연애처럼

3/3
역설적으로 게바라가 볼리비아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 둘을 영원한 혁명 동지의 상징으로 만들어놓는 데 일등 공신 노릇을 한 셈이다. 그건 슬프고도 가슴 아픈 얘기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딱 들어맞아 보인다. 같이 살기보다는 한쪽의 희생으로, 그나마 얻은 혁명의 가치를 유지한다면 그걸 선택해야 하는 법이다. 역사는 그런 것이며 때론 냉혹한 것이 더 인간적일 수 있다.

카스트로 정권이 게바라의 무덤을 혁명의 수도 아바나에서 400km쯤 떨어진 산타클라라에 조성한 것도, 그를 가깝게 하면서도 동시에 멀리 떼어놓음으로써 자신들의 혁명 이상을 ‘갈등 없이’ 지킬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 아닐까. 전 세계에서 체 게바라를 자본주의적 상품의 아이콘으로 만든 것도 그의 대중적 인기를 높여 쿠바 혁명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킴과 동시에 그를 그 정도로 ‘전락’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아성을 더욱 공고화하려는, 교묘한 전략 전술은 아니었을까.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하지만 모든 것은 골백번 읽고 생각하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최고다. 산타클라라의 체 게바라 혁명광장에 들어서면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체 게바라 기념관 앞에 건립된 거대한 동상 아래 서면 더욱 더 그렇다. 젊은 나이에 죽은 그이기에 이상하게도 더욱 친밀한 느낌이 들며 대화를 하고 싶은 듯한 마음이 든다.

오른손에 소총을 들고 그의 상징인 베레모를 쓴 채 어딘가를 향해 걷는 듯한 포즈의 게바라는 그다지 용맹스럽거나 뭔가 투지에 차 있거나 한 표정이 아니다. 왼팔에는 붕대가 감겨 있다. 부상 때문일까. 오히려 그냥 덤덤하다. 그에게 혁명은 영속적인 것이니까. 그에게 변혁이란 늘 일상이니까. 그에게 세상의 변화란 죽을 때까지 해나가야 할 하루하루의 노동과 같은 일이니까. 그 과정에서 부상을 당하는 일은 부기지수였을 테니까.

체 게바라의 기념관에는 볼리비아에서 같이 ‘학살’당한 부하, 동지들의 무덤이 조성됐다. 그는 당시 24명의 부하와 함께였다. 묘역 안에선 한마디로 게바라의 모든 것을 일람할 수 있다. 어린 시절의 사진부터 카스트로와 함께한 시절의 사진과 편지, 일기 등등. 하지만 묘역 안에서는 왠지 모르지만 촬영이 금지돼 있다.



빔 벤더스의 ‘부에나비스타소셜 클럽’ 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건 이 여정이 끝나는, 쿠바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아바나로 ‘귀경’한 이후의 얘기다. 그때 가서야 그 유명하다는 클럽, 부에나비스타소셜 클럽을 가기 때문이다.

관광객 대부분은 거길 가기 위해 때 빼고 광을 내는데, 그중 하나가 거기까지 한 번 타는 데 40쿡(CUC),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5만 원이 드는 ‘올드카’를 타고 간다는 것이다. 대부분 바티스타 정부 때 미국 마피아들, 카지노 자본가들이 남기고 간 차들인데 지금은 찾아볼 수가 없는 ‘클래식카’들을 쿠바 정부가, 아니 쿠바 사람들이 알아서 관광용으로 개발해놓은 것이다.

차는 참 그럴듯한데 이게 참 좋다고 말해야 할지 나쁘다고 말해야 할지, 아무튼 애매모호한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오픈카인만큼 앞차가 내뿜는 매연을 감당해야 한다. 쿠바의 거리는 우리의 1970년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자칫 거리에 잘못 서 있다가는 콧속이 새까매질 수 있다.

아르헨티나도 아니고 브라질 사람인 월터 살레스가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만든 것이 생각해보니 특이하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니 특이하지 않다. 그건 쿠바 혁명이 가진 세계성 때문일 것이며 바로 그 점이야말로 체 게바라적 정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기야 이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멕시코인이다.



오토바이로 쓴 혁명일기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특징은 오히려 전혀 혁명적이지 않다는 데에 있다. 퓨세라는 애칭의 에르네스토 게바라와 알베르토 그라나도가 오토바이 한 대로 8000km에 이르는 여행을 한 것을 촘촘히 담아내는, 기록물과도 같은 극영화다. 장르적으로는 일종의 로드 무비인데 이런 유의 영화답게 때로는 풍광도 아름답게 담고, 때로는 중간에 여자와 만나 사랑도 나누며(젊은 애들인데 아무렴), 또 어떤 때는 고초를 겪기도 한다.

월터 살레스 감독이 담으려 한 것은 아마도 그 모든 과정을 가슴속에 깊이 새겼던 게바라의 ‘인본주의적 태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궁극적으로 혁명이란,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나 영원히 그렇게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주연을 맡은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게바라처럼 위풍당당한 모습이 아니라 작고 (남자치고는) 예쁘며 가녀린 모습이다. 이런 친구가 혁명아가 됐다는 것은 그가 그러려고 했다기보다 시대가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여정이 많이 남았다. 내일은 트리니다드를 거쳐 또 다른 혁명지인 시엔푸에고스를 가야 한다. 오늘은 호텔에 아예 짐을 풀지 말아야 한다. 근데 그럴 수 있을까. 아바나에 돌아가 부에나비스타소셜 클럽에 가서 진탕 놀(?) 생각이 머리에 어른거린다. 미인이 얼마나 많을까. 이곳 위스키인 ‘하바나 클럽’은 몇 년산이 맛있을까. 꿈인지 생시인지, 그러다 까무룩 잠이 든다. 쿠바의 열대야가 또다시 깊어진다.  

※쿠바 이야기는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신동아 201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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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사진 오동진 |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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