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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지리산 빨치산 할머니 고계연

“내가 살아남아 1m짜리 농어 잡을 줄 빨치산 동지들이 짐작이나 했겠나”

  • 글: 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지리산 빨치산 할머니 고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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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천포 부잣집 막내딸은 아버지와 오빠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지리산 빨치산이 되었다.
  • 토벌대의 집중사격에도, 국군의 사살에도, 경찰의 집요한 추적에도 질기게 살아남아 열아홉 소녀는 이젠 일흔셋의 ‘역사’가 되었다.
지리산 빨치산 할머니 고계연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까.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엔 분홍빛 구름 같은 자귀나무 꽃이 산자락에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바람은 세찼고 간간이 빗발이 흩뿌렸다. 험한 날씨 속에서 자귀나무 꽃은 할말을 잔뜩 품고 아우성을 지르듯 비극적인 모습이었다.

아까 고계연씨는 내게 저 붉은 꽃을 뭐라고 부르는지 물었다. “자귀나무요”라고 대답하면서 나는 얼른 “그때 지리산에도 저 꽃이 있었더냐”고 물었다.

“그때는 꽃을 들여다볼 새가 없었네요. 이제사 보이네요. 저 꽃이 저렇게 소란을 부리는 게….”

때가 되면 꽃은 절로 피고 진다. 세월 따라 사람도 쉼 없이 나고 죽는다. 천지는 불인(不仁)하다. 그게 자연인 것을. 새삼 들먹이는 것조차 쑥스러운 노릇이다.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고민하다 나는 결국 발가락 이야기부터 먼저 꺼내기로 한다. 그것만이 또렷하게 남아 그날을 증거하니까. 다른 흔적들은 모두 사라졌다. 벗도 노래도 이념도 고통도. 눈에 보이는 건 오로지 발가락이 다 떨어져나간, 몽당하게 짧아진 못난이 발뿐이다.

고계연씨의 오른발에는 발가락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왼발도 반 너머 뭉개졌다. 동상 후유증이다. 전쟁 나던 그 해부터 세 해 겨울을 산에서 양말도 없이 눈 속을 뛰어다녔더니 살은 얼고 뼈는 삭고, 그걸 반복하다 마침내 썩어버렸다.

그렇게 생살이 썩는 아픔을 감당하면서 그는 20대의 전반부를 넘겼다. 포로수용소에 잡혀 들어갔을 때 참혹한 고통을 견딜 수 없어 제 손가락으로 제 발가락을 툭툭 분질러 뽑아내 버렸다.

“하니까 되데요. 감각이 없어 아프지도 않았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하지만 그는 이내 슬쩍 진저리를 쳤다. 이야기마다 상상을 초월하는 극한상황이라 듣는 나도 숱하게 진저리를 쳐야 했다.

발가락이 하나도 없는 발

“그래도 이 발이 나를 구했네요. 포로로 잡히던 날 날이 저물자 군인들이 대충 천막을 치데요. 내 발에서 썩는 냄새가 지독하게 났제. 그러니까 ‘뭐 이런 게 있어?’하면서 날 천막 안에 들여놓지 않고 문 앞에 팽개치데요. 한밤중에 군인들이 천막 안으로 들어가더니 여자 몇 명을 끌고 나갔어요. 끌려나갔다 온 젊은 여자들은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채 바닥에 엎드려서 울고…. 그게 뭔지 내가 다 알았네요. 내가 그런 일을 당했더라면 산에서 굴러버렸을지도 모르는데 이 발이 날 살렸제요.”

포로수용소에서는 동상 걸린 사람들이 모두 한방에 수용됐다. 살이 썩어 들어가는 고통으로 다들 말이 아니었다. 치료라고는 고작 머큐로크롬을 발라주는 정도였다. 약품이 귀한데다 굳이 살려낼 가치도 없는 포로들이었으니.

“가끔 의사가 들어와서 이렇게 말하네요. ‘다리 잘라주기 원하는 사람!’ 그러면 사람들이 손을 들어요. 하도 고통이 심하니까. 내 곁에 누워있던 모스크바대학 나온 여자도 손을 들었어요. 다리를 몽땅 잘라 갖고 와서는 아프지 않아 살 것 같다고 좋아하데요. 나는 암만 아파도 다리 자르기는 죽기보다 싫데요.”

내가 질문할 여지도 없이 고 선생은 이야기를 곧잘 풀어나갔다. 현재에서 전쟁 때로, 자식에서 친정오빠로, 낚시에서 이불집으로. 화제는 이리저리 점핑했지만 그 때문에 더욱 흥미진진했다. 우리는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다. 한 사람의 개인사가 이렇듯 드라마틱할 수 있는 시대란 불운한 시대임이 분명하지만 이렇듯 사무치는 개인사가 한 인간을 커다랗게 키워놓은 것도 사실이다.

그는 여느 할머니와는 썩 달라 보였다. 거침없고, 의연하고, 총명했다. 1932년생이니 일흔셋이지만 노인이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정정했고 열정에 넘쳤다.

“우리 딸(둘째딸 김민정씨는 이탈리아에서 주목받는 화가로 활동중이다)에게 모스크바 전시를 한번 하라고 말해요. 바이칼 호수에서 낚시 한번 해보게. 내가 알래스카 연어낚시도 가고 세계 어느 곳 안 가본 데 없이 다녔는데 바이칼에만 못 갔네요. 젊어서 부르던 노래가사에 노상 나오던, 그 바이칼에 꼭 한번 가보고 싶네요.”

그의 자제들은 엄마가 낚시터에만 가면 기분이 좋아지는 걸 잘 알아 낯선 나라에 도착하면 일단 그를 낚시터부터 데려간다.

“날 거기 부려놓고 저네끼리 실컷 놀다오면 나는 종일 꼼짝 않고 거기에만 앉아 있제요. 난 외국 가서도 어설프게 영어 씨부리지 않고 딱딱 한국말만 해요.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래도 다 알아듣던데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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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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