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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리포트

SK ‘재벌개혁 실험’ 1년 현주소

날개 단 사외이사, 발품 파는 회장님, 직원들은 관망중

  • 글: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ans@donga.com

SK ‘재벌개혁 실험’ 1년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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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요된 투명화’의 급발진. 2003년 6월, SK그룹이 개혁을 선언했다. 구조조정본부 해체, 투명경영, 독립경영을 내걸었다. 분식회계, 총수 구속, 소버린의 경영권 위협 등 거센 폭풍우에 벼랑 끝까지 내몰리다 힘겹게 붙잡은 끈이었다.
  • 그후 1년. 한국 재벌개혁의 시금석이 될 SK는 어떤 길을 가고 있을까.
SK ‘재벌개혁 실험’ 1년 현주소
지난해 6월, 재계 3위의 SK그룹은 구조조정본부 해체와 계열사들의 독립·투명경영을 뼈대로 한 ‘기업구조 개혁방안’을 내놓았다. 계열사별로 이사회 중심의 독립경영을 유도해 그룹을 ‘SK 브랜드와 기업문화를 공유하는 독립기업들의 네트워크’로 변신시킨다는 것.

또한 회계 정보의 투명성을 높이고 내부 감사 기능과 사외이사의 내부 거래 감시제도를 강화해 투명경영체제를 정착시키며, 이사회 내 윤리위원회 설치 등을 통해 윤리경영의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지천명(知天命)에 홍역을 앓은 SK로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SK는 창립 50주년인 지난해 창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과 SK해운 등의 대규모 분식회계가 드러나고 그룹 오너인 최태원 SK(주) 회장이 구속되는 이른바 ‘SK사태’ 와중에 외국계 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이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SK(주) 주식을 집중 매입, 일약 2대 주주로 올라서면서 경영권을 위협받는 지경에 처했다.

이런 상황에서 SK사태의 원인으로 지적된 옛 재벌 시스템으로는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사실상 그룹경영체제의 해체를 선언하기에 이른 것이다. 아울러 소버린과 시민단체들이 SK 경영진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문제삼으며 압박해옴에 따라 생존 차원에서라도 투명경영을 표방해야 했다. ‘투명해야 살아남는다’는 절박한 현실을 온몸으로 깨친 것이다.

비록 외부의 자극으로 ‘강요된 개혁’이긴 해도 SK가 내건 약속은 주목할 만하다. 그대로 실천하기만 한다면 새로운 형태의 선진적인 기업 지배구조 모델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SK가 약속한 개혁, 그리고 SK에게 요구되고 있는 개혁이 워낙 폭도 넓고 강도도 높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SK 개혁을 한국 재벌개혁의 시금석으로 보는 이도 적지 않다.

개혁을 선언한 지 꼭 1년이 지난 오늘, SK의 ‘주소’는 어디일까.

이사회 사상 첫 부결

“사외이사로서의 존재 이유를 실감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SK(주)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이화여대 서윤석 경영대학장의 말이다.

“여러 기업에서 사외이사를 해봤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기업 정관에는 대부분의 안건을 이사의 과반수 혹은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통과시키게 돼 있는데, SK(주)는 이사 10명 중 7명이 사외이사라 사외이사들이 사실상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더욱이 이사회에서 의장인 최태원 회장은 거의 발언하지 않고 사외이사들의 얘기를 듣기만 하는 편이다. 몇일 전에는 회사에서 올린 안건 하나를 부결시키면서 그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더니 최 회장을 포함한 사내이사들이 이의를 제기하기는커녕 ‘우리가 놓친 것까지 챙겨줘서 고맙다’고 했다. 솔직히 우리도 그런 반응에 놀랐다.”

SK(주) 이사회가 안건을 부결시킨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2001년 38회, 2002년 26회, 2003년 34회의 이사회를 열었지만 지금껏 안건이 부결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번에 회부된 안건은 부채규모 축소를 목적으로 한 모종의 거래였는데, 사외이사들은 회계자료 등을 꼼꼼하게 검토한 끝에 ‘거래조건이 명확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부결시켰다. 실무 차원에서 미처 챙기지 못한 부분을 사외이사들이 회계, 법률 분야 등의 전문성을 발휘해 짚어낸 것. 서윤석 교수는 이 과정에서 몇 가지 ‘건강한 신호’를 발견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사회가 더 이상 ‘거수기’가 아니라 브레이크를 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실무 임직원들에겐 안건을 대충 만들어 올렸다간 낭패를 보게 된다는 경각심을 갖게 했을 것이다. 또한 사외이사들이 기업에 대한 감시·견제 기능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컨설팅 기능까지 수행할 수 있다는 것도 입증했다. 사외이사제가 뿌리내린 미국에선 사외이사들이 단지 사내이사들과 대결구도를 갖추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이 장기 전략을 수립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독립·투명경영을 위한 핵심장치라 할 이사회의 운영 의지와 방향에 있어서는 일단 합격점을 받은 셈이다.

지난 1월말 SK(주)는 사외이사 비중을 올해는 과반수로, 2006년부터는 70%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지배구조 개선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2월22일 열린 이사회에서 최태원 회장이 “어차피 할 거라면 2006년까지 미룰 것 없이 당장 올해부터 실시해보자”고 제안, 2년 앞당겨 시행하게 됐다. 코 앞으로 다가온 3월 주주총회에서 소버린과 표 대결을 벌일 것에 대비한 포석이었다.

마침내 주총 표 대결에서 승리한 SK측이 일반 주주 등의 추천과 사외이사 후보 추천자문단의 검증을 거쳐 선임한 사외이사는 조순 전 부총리, 박호서 전 유공 이사, 남대우 전 광업진흥공사 이사, 한영석 변호사, 오세종 전 장기신용은행장, 김태유 서울대 공대 교수, 서윤석 이화여대 경영대학장 등 7명. 남대우 사외이사는 주총에서 SK와 소버린이 함께 추천한 인물이다.

대표이사가 겸임하던 이사회 의장은 이사회에서 선임하도록 해 경영과 감시의 ‘역할분담’을 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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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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