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호

결단의 순간 떠올리는 서늘한 진리, ‘고객은 언제나 옳다’

  • 글: 이성규 (주)팬택 대표이사

    입력2003-04-28 14:2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고객이란 최종 소비자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 제품 기획에서 개발, 생산, 영업에 이르기까지 전과정에 참여한 동료들도 고객이다.
    • 그들 모두로부터 인정받아야 진정한 ‘고객만족’을 실천한 것이다.
    • 그들이 외면하면 생존할 수 없다.
    결단의 순간 떠올리는 서늘한 진리, ‘고객은 언제나 옳다’

    팬택 이성규 사장(왼쪽)과 팬택&큐리텔 송문섭 사장이 올해 선보일 자사 휴대전화 신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누군가 내게 “경영의 요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이윤 창출”이라고 답할 것이다. 어려운 질문에 대해 너무 쉽게 답변하는 것 같아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군(軍)의 목적이 ‘국가 보위’이고, 경찰의 목적은 ‘치안 확립’이듯이 기업 경영의 목적으로는 당연히 이윤 창출을 가장 앞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업 경영을 통한 이윤 창출이 도덕성에 기초를 두고 이뤄져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기업은 고용을 창출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고 좋은 제품을 만들어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며, 주주에게는 이익을 실현해주고, 회사의 미래를 위해 투자를 지속할 수 있도록 이윤 창출을 이어가야 한다.

    일체감과 목적의식

    그런데 문제는 왕성한 기업활동을 통해 이윤 창출을 지속적으로 이뤄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전세계가 하나로 연결되는 인터넷 시대를 살고 있다. 기업 간의 경쟁은 이미 국경을 넘어선 지 오래이고, 이른바 성장성이 높은 업종에서의 생존경쟁은 거의 무한경쟁에 가깝다.

    내가 몸담고 있는 휴대전화 업종도 예외가 아니다. 이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초일류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기업 경영의 영속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2001년 9월 (주)팬택의 CEO로 합류했을 당시 우리 회사는 정보통신 분야에 뿌리내리고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지만, 세계적인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부족했다. 또한 고속 성장이 계속되다 보니 전 임직원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에만 몰두하느라 전후좌우를 살피고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조직이 빠른 속도로 커지면서 구성원의 일체감도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래서 부임 초기에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팬택이라는 기업문화 속에서 모든 구성원이 일체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내가 경영인으로서 회사 임직원들에게 가장 먼저 묻고 싶었던 것은 ‘우리는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목적의식이다. 조직의 구성원은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인데, 배를 끌고 가는 사람, 노를 젓는 사람, 방향키를 잡고 있는 사람 등 각자가 따로따로 생각하고 움직인다면 배는 목적지가 아닌 엉뚱한 곳으로 향해 갈 것이기 때문이다.

    무한경쟁의 시대에 조직 구성원의 일체감 형성은 말 그대로 기업 경쟁력의 기본이다. 기본을 갖추지 않고 싸움에 나선다면 운좋게 한두 번의 단기전에서 승리할 수는 있겠지만, 결코 최후의 승자가 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임직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면, 그리고 뚜렷한 목적의식 아래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세계시장에서 부딪히게 될 난관은 결코 큰 장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홍보조직을 신설하고 사보(社報)를 발행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기업문화를 전파시킨 것도 임직원들이 일체감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부임한 지 1년6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간 많은 변화가 있었던 듯하다. 무엇보다도 임직원들이 자신감을 갖고 자기 일을 능동적으로 수행한다는 사실이 내겐 더없이 큰 보람이다.

    요즘 나는 임직원들에게 ‘고객만족’을 강조한다. 이는 최종 소비자에 대한 고객만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업에는 제품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개발, 생산, 영업 등 다양한 업무가 공존하는데, 각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 모두가 고객이 될 수 있다. 즉, 기획이나 개발담당자들은 다음 단계인 생산 파트 담당자들이 제품을 제대로 만들어낼 수 있도록 기획과 개발에 최선을 다해야 비로소 고객만족을 실천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생산 부문에서도 영업 부문이 요구하는 적정한 시기에 맞춰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원활한 영업활동을 가능케 해야 자신의 임무를 다한 것이다.

    다시 말해 비단 최종 소비자뿐만 아니라 회사 동료들도 내 고객인 만큼 이들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그러한 과정을 통해 최종 소비자에 대한 만족 또한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수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10년이란 세월의 장구함을 뜻할 텐데, 이제는 10년이 아니라 하루아침에도 강산이 변할 수 있는 세상이다. 특히 정보화가 급속도로 진전되면서 한순간에 모든 것이 변할 수 있게 됐고, 그러한 변화의 흐름에 발맞추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게 평범한 진리로 자리잡았다.

    이렇게 모든 것이 변하는 시대에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진실이 바로 고객만족이다. 고객에게 외면당하면 기업은 더 이상 생존을 보장받지 못한다. 그래서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경영 시스템 전반을 고객 지향적으로 재편해 고객만족을 위해 총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기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뛰어난 신기술이라고 해도 고객에게 편의를 제공하지 못하는 기술은 무가치하다. 미국의 한 식료품업체 CEO는 고객만족에 대한 자신의 두 가지 원칙을 상점 벽에 붙여놓았다. 이런 문구다.

    ‘제1조:고객은 언제나 옳다.

    제2조:만약 고객이 옳지 않다는 확신이 서면 원칙 제1조를 보라.’

    그러나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고객보다는 자기들의 편의대로 일을 처리한다. 고객은 그저 ‘물주’ 정도로나 여긴다.

    그들에게 선택받고 싶다

    팬택은 연간 수십 종에 달하는 신형 휴대전화를 개발한다. 직원들이 땀흘려 만든 신제품 하나 하나가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 회사에서 만든 제품 모두가 소비자의 기호를 충족시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우리의 개발전략이 우수하고 첨단 기능으로 무장했다 하더라도 소비자가 외면한다면 우리는 잘못한 것이다. 다시 말해 ‘고객은 언제나 옳다’. 이들 ‘언제나 옳은 고객’으로부터 선택받을 수 있다면 그 회사는 이윤 창출이라는 기업 경영 본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고객들에게 선택받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경영자에게는 많은 결단의 순간들이 닥쳐온다. 물론 다양한 정보와 스태프 조직의 조언, 임직원들과의 의사교환 등이 결정을 돕는다. 하지만 결국 최종적인 의사결정은 경영자의 권리이자 의무다. 때로는 그런 결단이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중차대한 사안일 수도 있다. 그런 판단을 내려야 할 때는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갈등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원칙만 확고하게 지킨다면 의외로 쉽게 결정에 이를 수 있다. 내 판단이 과연 고객으로부터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인가. 그래서 회사의 이윤 창출에 보탬을 줄 수 있는 것인가. 어떤 판단도 이 기준을 벗어날 수는 없다.

    팬택은 ‘존경받는 기업’이라는 비전을 실현하려 노력하고 있다. 인재와 기술을 중심으로 고객 지향적인 기업 활동을 펼침으로써 고객으로부터 “저 회사는(혹은 ‘우리 회사’는) 이 시대에 꼭 있어야 할 기업이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그 꿈을 이루는 데 앞장서고 싶다. 비록 고독한 결단의 순간들이 끝없이 닥쳐올지라도.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