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6월호

대한민국 상류층

재산 40억 이상, 최고급 사교클럽 멤버십 필수, 결혼은 ‘투자’

  • 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03-05-23 17: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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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류층’의 요건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경제력, 전문직업, 명문가 출신, 빼어난 문화적 소양, 명예’를 고루 갖춰야 상류층에 낄 수 있다는데…. 한국의 상류층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가치관, 직업의식, 취미생활, 사교클럽, 결혼 풍속도, 육아와 교육법 등 그들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들여다봤다.
    대한민국 상류층
    30대 중반의 치과의사 김모씨는 이름난 의사 집안 출신이다. 할아버지는 일제시대에 서양 의료기술을 들여와 병원을 운영했고, 가업을 이어받은 아버지는 서울 강남의 유명 종합병원 원장이자 의과대학 교수다. 김씨도 강남에 개원했다. 그의 형제, 사촌들 중에도 의사가 여럿이다.

    김씨의 남편인 강모 변호사는 법조인 집안의 일원이다. 그의 부친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변호사. 강씨는 어릴 때부터 법대 진학을 당연하게 여겼고,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사법시험을 준비해 두 번의 실패 끝에 합격했다. 검사생활 7년째 되던 해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두 사람은 중매로 만났다. 강남의 유명 ‘마담뚜’가 다리를 놨다. 시작은 중매였지만, 과정은 연애결혼과 다를 바 없었다. 무엇보다 자라온 환경이나 부모와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가 비슷해 말도 잘 통했고 취미며 관심사도 잘 맞았다. 그래서인지 결혼 10주년을 눈앞에 둔 지금도 서로를 아주 만족스러워한다. 두 사람은 초등학교 1학년인 딸과 강남의 50평대 아파트에 산다.

    김씨는 교육열도 남다르다. 올봄 딸아이를 상류층 자제가 많이 다닌다는 사립 초등학교에 어렵사리 입학시켰다. 김씨도 사립 초등학교를 나왔다. 딸은 지난해까지 영어 유치원과 어린이 레포츠클럽에 다녔다. 영어 유치원 수업료는 월 80만원. 레포츠클럽은 연회비가 350만원이지만, 해외 연수 등 다양한 이벤트에 참가할 때는 따로 돈을 내야 했으므로 실제로는 1년에 1000만원 정도 들었다. 이젠 ‘국제적 수준의 문화적 소양’을 학교에서 가르쳐준다고 하니 김씨로서는 여간 마음 편한 게 아니다. 중학교부터는 외국으로 유학을 보낼 계획이다.

    그는 상류층 사교클럽인 S클럽 멤버다. 어렸을 적부터 드나든 클럽이라 이젠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진다. 고만고만한 수준의 사람들과 외국 대사, 기업인들을 많이 접할 수 있어 온종일 병원 울타리에 갇혀 지내는 김씨로선 인맥 쌓기에 그만이다. 특히 엄마를 따라온 아이가 자연스럽게 영어를 배울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일요일이나 휴가 때는 가족과 함께 RV를 몰고 교외로 놀러간다. 차를 살 때 RV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여가시간은 꼭 가족과 함께 보내려고 노력한다. 가끔 친구나 동료들과 어울리지만 밤 늦게까지 과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회식이 있어도 저녁식사에 와인 한 잔 곁들이는 정도다. 약속이 없는 저녁이나 주말에는 멤버십 피트니스센터나 수영장 등에서 운동을 한다.

    돈, 명예, 문화적 소양

    하지만 여가시간에 레저만 즐기는 것은 아니다. 1년에 두세 차례 의료봉사활동을 떠나기도 한다. 그때마다 딸을 데려간다. 지난해에는 외국의 오지 마을로 딸과 함께 의료봉사를 다녀왔다. 딸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나도 커서 불쌍한 사람들 도와줄거야”하고 말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뿌듯했다. 김씨는 틈만 나면 딸에게 “우리가 가진 것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살아야 한다”고 말해준다.

    돈은 많이 벌지만,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잘 사지 않는다. 사실 돈을 쓰고 다닐 시간적, 심적 여유가 없다. 그래서 옷도 주로 단골집에서 맞춘다. 구입한 옷을 집이나 직장까지 배달해주니 편하다. 물론 좋아하는 브랜드만 입는다. 유행을 쫓는답시고 익숙지도 않고 비싸기만 한 옷을 살 생각은 없다.

    김씨는 “내가 한국의 상류층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돈만 많은 졸부는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어쩌다 운이 좋아 벼락부자가 된 게 아니라 할아버지대부터 열심히 노력해서 부를 축적했다는 것이다. 물론 자신도 의사가 되기까지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었고, 지금도 환자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다른 병원보다 진료나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은 자존심 때문에라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돈과 명예, 문화적 소양을 갖추고, 이를 사회에 환원할 줄 알아야 진정한 상류층”이라며 “그런 상류층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대한민국 상류층
    사실 상류층을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물론 수치화가 가능한 부(富)를 기준으로 상위 몇%를 가를 수는 있다. 지난해 메릴린치증권이 발간한 ‘세계의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 10억원 이상의 금융자산을 가진 부자는 5만여 명이다. 이는 전체 가구수의 약 0.5%에 해당한다. 부자들의 금융자산이 전체 재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30% 정도라고 보면 그들의 재산 규모는 40억원이 넘는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나라의 부자, 즉 상류층은 40억원 이상의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다. ‘리치(Rich)’라는 잡지는 상류층의 범위를 이보다 훨씬 좁게 잡았다. 최소한 현금 10억원, 부동산 1000억원 이상을 보유해야 상류층으로 볼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상류층의 요건에는 앞서 김씨가 지적한 것처럼 직업, 가문, 명예, 문화적 소양, 책임의식 등 재산 외적인 다양한 자질들이 포함된다. 프랑스에서 경제철학을 전공한 d2k솔루션 허경회 대표는 “상류층은 글자 그대로 ‘사회 지도층’이라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부자들 중에 민중을 이끌어간다고 할 만한 이가 얼마나 되나. 돈만 많았지, 국가와 사회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없다면 상류층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의 지나친 평등주의가 상류층이 설 자리를 없앤다고 보기도 한다.

    한국에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주(상류층의 책임과 의무)’를 실현하는 진정한 상류층은 과연 존재할까.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을 영위하고 있을까.

    평소엔 구두쇠, 큰일엔 팍팍 쓴다!

    영화 ‘하늘정원’을 제작한 두손드림픽쳐스의 손정은 대표(48). 이화여대 무용과 출신으로 1978년 미스코리아 진에 뽑혀 화제를 모았던 인물이다. 그는 자칭타칭 상류층이다. 경제력을 갖췄을 뿐 아니라 문화사업가로서 자신의 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있기 때문.

    지난 5월초 서울 하얏트호텔의 한 일식집에서 손씨를 만났다. 영화 홍보차 다음날 미국 출장을 간다는 그는 사업 관계자들을 만나느라 정신이 없었다. 기자와 2시간 남짓 있는 동안에도 식당으로 그를 찾아와 인사를 건넨 사람이 10여 명이나 됐다. 손씨는 “저 보러 오셨는데, 제가 계산을 해야지요”라며 그들 모두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아버지는 오래 전부터 제게 ‘어느 자리든 네가 돈을 낼 수 없다면 방 문을 나서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래야만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주눅들지 않고 소신껏 행동할 수 있다는 뜻이죠.”

    조상 대대로 서울 사대문 안에서 살았다는 그는 재력가인 아버지 덕분에 어릴 적부터 발레, 피아노, 영어, 해외여행 등 다양한 문화 생활을 접했다. 하지만 집 안에서도 옷을 제대로 차려입어야 했을 만큼 철저한 예절 교육을 받았다. 또한 늦은 저녁에는 아버지의 엄명으로 반드시 전깃불을 꺼야 했고, 어지간히 추운 날씨에도 보일러를 때지 못했다. 아버지는 동전 하나도 함부로 하지 않는 구두쇠였지만, 정말 중요한 일에는 아낌없이 돈을 썼다.

    “미스코리아로 뽑혀 세계대회에 나갈 때 아버지는 ‘너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니 밖에 나가서 기 죽으면 안된다’며 당시로선 만져보기도 힘든 큰돈을 주셨어요. 그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저도 평소에는 구두쇠로 통하지만, 필요하다 싶으면 손이 커져요. 조만간 우리 영화사 직원들과 발리로 MT를 갈 예정이에요. 그 동안 너무들 고생했거든요. 칸 영화제에도 참석할 겁니다. 훌륭한 영화를 많이 봐야 좋은 기획 아이템을 내지요. 이런 경우에는 결코 돈을 아끼지 않아요. 투자니까.”

    그때 이광희부티크 옷을 들고 직원이 방으로 들어왔다. 손씨가 미국에서 입으려고 맞춘 옷이다. “디자이너 이광희씨의 옷을 주로 입느냐”고 물었더니 “그렇진 않다”고 했다.

    “미국 출장 때문에 특별히 맞춘 거예요. 미국 바이어들을 많이 만나야 하는데, 평범한 옷차림으로 갈 순 없잖아요. 그쪽 사람들, 옷이나 신발, 가방 같은 걸로 사람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상류사회일수록 더 그래요. 여기 한국에 있을 때는 명품 옷뿐만 아니라 보세 옷도 종종 입어요. 5000원짜리 티셔츠에 100만원이 넘는 재킷을 걸치기도 하죠. 얼마나 비싼 옷이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 어울리게 입느냐가 포인트니까요.”

    손씨는 동네에 나갈 때도 단정한 차림새를 갖춘다. 또한 평소 헬스클럽 등에서 꾸준히 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지금껏 군살 하나 없는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몸이 곧 나를 말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목표는 종합예술을 추구하는 제대로 된 연기학원을 만드는 것. 연기에 자질이 있는 인재들을 일찌감치 발굴, 세계적인 배우로 키워내겠다는 게 꿈을 갖고 있다.

    “유망한 연기 지망생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겁니다. 이것 또한 제 나름의 방식으로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죠.”

    대한민국 상류층

    두손드림픽쳐스의 손정은 대표는 자칭타칭 상류층이다.

    손씨는 “상류층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상류층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이 가진 부와 문화적 소양을 제대로 쓰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는 “상류층이 그들만의 이너서클 안에 머물며 폐쇄적인 성향을 지닌 것도 우리 사회가 상류층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 리서치 연구소 관계자는 “상류층을 대상으로 하는 리서치 작업은 정말 힘들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묻는 설문에는 좀처럼 응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해 초 부자들의 의식에 대한 리서치를 하면서 서울 성북동의 부촌 가구들에 “50만원을 수고료로 줄 테니 설문에 답해달라”고 사정했지만, 단 한 집도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정이야 어떻든 한국의 상류층이 그들만의 이너서클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의 부자들’을 쓴 한상복씨는 “상류층 사람들은 대개 2개 이상의 사교클럽에 들어 있다”며 “자기들끼리 함께 어울려 여가를 즐기기도 하지만, 이들이 사교클럽에 나가는 가장 큰 이유는 비즈니스와 관련해 서로 도움을 주고받기 위해서다”고 설명했다.

    “부부동반 모임이 많습니다. 대개 국내외로 골프를 치러 다니죠. 그런데 이들에게 골프 투어는 그저 레저가 아니라 하나의 비즈니스예요. 부인들끼리의 모임도 활발해요. 주로 해외여행을 같이 다니거나 쇼핑을 하죠. 요즘에는 문화센터나 요리학원 등에서 뭔가를 함께 배우려는 모임이 많아졌어요.”

    회원권 5000만원, 연회비 500만원

    재벌가 같은 최상류층 2∼3세들은 어릴 적부터 이너서클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초·중·고교 시절에 과외로 묶여 하나의 클럽을 형성하고, 그 관계가 성인이 되고 나서도 이어진다는 것.

    이들 대다수는 미국 등지로 유학을 가는데, 비슷한 집안의 자녀들끼리 함께 공부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1990년대 중반에는 전직 대통령의 손자와 유명인사의 자녀들이 미국 뉴욕의 최고급 아파트 한 개 층을 통째로 빌려 함께 유학생활을 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이렇게 유학시절 형성된 커뮤니티는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후에도 끈끈하게 지속된다. 이들은 서울클럽, 남송클럽, 현대백화점 자스민클럽, 신라호텔 YNC 등의 사교클럽 멤버로 가입해 돈독한 친분을 맺기도 한다.

    서울클럽은 1904년 구한말 고종황제가 만든 국내 최고(最古)의 대표적 사교클럽이다(상자 기사 참고). 회원권이 5000만원이고, 연회비가 350만∼500만원이다. 가족 회원권이라 직계가족이 모두 클럽을 이용할 수 있다는 면에서 보면 신규 클럽들보다 ‘저렴한’ 편이다. 하지만 돈만 낸다고 해서 회원으로 받아주는 게 아니다. 2명 이상의 회원으로부터 추천을 받아야 회원 신청을 할 수 있고, 클럽 이사회가 신청자의 재력은 물론 가문, 사회적 지위, 문화적 소양 등을 두루 살펴본 후 만장일치로 찬성해야 가입할 수 있다.

    대기업, 외국계 회사, 언론사 등의 CEO와 학계, 의료계, 법조계, 정치계, 문화계, 금융계 명사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주한 외교관과 명품 브랜드 한국지사장들도 주요 회원. 한국인과 외국인의 비율은 5대 5 정도다. 주한 외교관의 경우 국내 입국하자마자 가입을 서두를 만큼 특히 외국인들 사이에 유명하다. 현재 150여 명의 가입 신청자들이 대기자 명단에 올라 ‘낙점’을 기다리고 있다. 회원권이 곧 상류층의 ‘증표’가 되는 클럽이다.

    YNC(Young Noblian Club)은 2000년 6월 신라호텔에서 결성된 젊은 상류층을 위한 클럽. 당시 자신을 상류층으로 여기는 20대에서 30대 초반의 미혼남녀 300여 명이 문을 두드렸으나, 엄격한 심사 끝에 80명만이 회원이 될 수 있었다. 멤버들 중 상당수는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고, 국내파들도 명문대나 의대, 한의대 출신이 주류다. 가입 신청을 할 때 내는 자기소개서에는 부모의 직업과 재산까지 적어야 했고, 호텔측은 이를 상당 비중 반영했다는 후문이다.

    이 클럽은 결성된 지 1년여 만에 해체됐다. 클럽 결성과 관련한 언론 보도가 나간 후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생겼고, 이에 호텔에서 회원들에게 의사를 물어본 뒤 해체하기로 결정했다는 것.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해체됐어도 YNC는 친목 모임 형태로 계속 만남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5월10일 저녁 8시, 서울 삼성동의 고급 레스토랑. ‘파티 문화의 전도사’로 불리는 클럽프렌즈의 스탠딩 파티가 한창이었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젊은이들이 와인 잔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200여 명. 30세 전후가 대다수지만, 더러 40대 이상이나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2년간 클럽프렌즈 활동을 해왔다는 무역회사 대표 김규형(35)씨는 “늘 무역 분야 사람들만 만났는데, 이곳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 좋다. 특히 각자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 엘리트들이 많아 사업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 파티에 나왔다는 변호사 김모(43)씨는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이렇듯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젊은이들과 함께 있으면 나도 덩달아 젊어지는 것 같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1997년 당시 서울대 경영학과 대학원생이던 하승호씨가 ‘새로운 파티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로 설립한 클럽프렌즈는 현재 1000여 명의 정회원과 8만명의 인터넷 회원을 가진 거대 클럽으로 성장했다. 정회원의 1년 회비는 45만원이다.

    정회원이 되려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 온라인으로 가입 신청을 한 후 전화 인터뷰, 에세이 평가, 대면 인터뷰를 모두 통과해야 한다. 클럽 관계자는 “보통 신청자의 20% 정도만이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비슷한 환경’이 결혼의 최우선 조건

    물론 직업, 외모, 성격, 매너, 학력 등도 주요 평가 항목이다. 가입 조건에 ‘연봉 얼마 이상’이라고 명시돼 있진 않지만, 회원 중에는 고액 연봉을 받는 전문직 종사자가 상당히 많다. 외국 유학파도 전체 회원의 40%에 이른다. 하지만 클럽프렌즈 임정선 기획이사는 “처음 만나는 사람과 잘 어울리고 자신을 스스럼없이 표현할 수 있는 오픈 마인드와 사교성을 가졌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이날 처음 클럽프렌즈의 파티에 참가했다는 김모(29)씨는 “솔직히 말하면 함께 유학 갈 여자를 만나기 위해 왔다”고 털어놨다. 그는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끼리 모였으니 비슷한 욕구를 가진 사람도 많지 않겠냐”고 했다. 그러자 한 여성 회원이 “외국 유학을 준비하는 사람들끼리 소모임을 만들어 도움을 주고받고 있다. 그곳에 참가해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고 즉석에서 조언했다.

    이처럼 자신과 비슷한 조건의 배우자를 찾고자 하는 상류층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앞의 경우처럼 상류층 젊은이들의 모임을 통해, 혹은 결혼정보회사의 노블 클래스에 가입해 자신에게 맞는 배우자를 찾아나선다. “어차피 오랜 세월 같이 살아갈 배우자라면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 중에서 고르는 것이 ‘위험’ 소지를 줄이는 방법”이라는 게 이들의 의견이다. 또 “결혼도 하나의 투자인 셈인데, 굳이 배경이 떨어지는 사람을 만나 손해볼 까닭이 있겠냐”고 당당히 되묻는다.

    결혼정보회사 선우의 ‘명문가팀’에 가입한 백모(30)씨는 사업가인 아버지 밑에서 풍요롭게 자란 전형적인 강남 상류층 2세대. 그는 사립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대학까지 그곳에서 마쳤다. 외국계 기업에 입사하면서 귀국한 백씨 역시 배우자감의 최우선 조건으로 ‘비슷한 환경’을 꼽았다.

    “물론 외모가 뛰어나거나 똑똑한 여성도 좋지요. 하지만 제겐 그 사람이 어떤가보다는 가풍이 저희 집과 비슷하냐 아니냐가 더 중요합니다. 본인의 장래성도 보지만, 부모·형제들의 학벌과 직업, 사회적 지위나 명예 등에 더 비중을 둔다는 거죠. 비슷한 사람과 결혼해야 결혼생활도 평탄하지 않겠어요? 가령 저는 어릴 때부터 주말마다 아버지와 골프를 치러 다녔는데, 아내가 그런 생활 패턴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곤란한 일이죠.”

    선우 명문가팀은 신청자의 경제력, 직업, 가정환경, 외모 등을 두루 살펴본 후 가입 여부를 결정한다. 일반적으로 부모가 70억원 이상의 재산을 가져야 하고, 서울 명문대를 졸업했으며, 사업가, 의사, 변호사, 교수, 2급 이상 공무원 등 탄탄한 직업을 갖고 있어야 한다. 실제로 재벌 오너나 수천억원대 재산을 가진 사람의 자녀들이 꽤 많이 가입해 있다고 한다.

    당사자에 대한 기준도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남자의 경우 이른바 ‘사’자로 끝나는 전문직이거나 사무관 이상의 공무원, 대기업 부장급 이상, 그리고 부모의 회사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경우가 가장 많다. 여성의 경우 능력에 대한 기준은 남성보다 조금 낮지만, 대신 ‘외모’라는 특별조건이 추가된다.

    ‘사’자 직업 남성의 경우 집안에 재산이 많지 않아도 가입은 가능하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여성 회원들의 선호도는 떨어지는 편. 또한 의외로 벤처사업가는 명문가팀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한다. 명문가팀 담당 커플 매니저 전선애씨는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본인의 힘으로 상류층에 진입해야 하는 사람보다는 이미 상류층에 속해 있는 사람이 배우자로 더 선호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여성 회원들이 이른바 ‘사’자 돌림을 최고의 신랑감으로 쳤는데, 이젠 달라졌어요. 직업은 좀 못해도 상류층 가정에서 자란 사람을 더 좋아해요. 상류층 여성들일수록 그런 경향이 더하죠. 무엇보다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과 만나기를 원하니까요.”

    서울 방배동에서 30여 년간 상류층을 대상으로 중매를 해온 방배결혼연구소 차일호 소장도 비슷한 얘기를 들려줬다.

    대한민국 상류층

    라크로스, 스킨스쿠버, 승마 등 다양한 레포츠 활동을 즐기고 있는 아이들

    “졸부들은 ‘사’자를 좋아해요. 하지만 진짜 상류층들은 집안부터 살핍니다. 어떤 집에선 자녀 배우자감의 형제나 자매 중에 고졸이나 전문대졸이 있으면 안 된다는 조건을 내세우기도 하죠.”

    이렇게 맺어진 상류층의 젊은 부모들은 자녀 교육에 대단한 열정을 갖고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자신들이 ‘최고급 교육’을 받았기에 그것이 삶에 주는 혜택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2001년 10월 제일기획의 소비자 조사 결과 ‘자녀의 성공은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라는 항목에 전체 응답자의 63.5%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월수입 400만원 이상 고소득층의 경우 ‘그렇다’는 응답이 72.0%로 평균치보다 거의 10%나 높게 나타났다는 것. 또한 제일기획의 마케팅 보고서 ‘신인류 탐구-코보스를 찾아라’에 따르면 ‘코보스(한국의 보보스, 즉 한국의 신상류층)는 자녀에게 물고기도 주고, 물고기를 잡는 법도 가르친다’고 한다.

    공인회계사 송모씨는 “나는 아이들에게 많은 투자를 해서 어떤 게 더 좋은 것인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 다양한 고기를 먹여주고, 그 중에서 가장 먹고 싶은 고기를 찾게 만들어야 한다. 물고기를 잡는 법은 그 후에 알려주는 것이 순서다”고 말한다. 귀족 마케팅 전문가이자 VIP 매거진 ‘코리아 태틀러’ 대표인 박성희씨는 “예전에는 개천에서 용 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일이 거의 없다. 좋은 부모와 가풍 아래서 자라는 아이들이 상류층으로 커가는 것 같다”고 했다.

    어린이 멤버십클럽 싸이더스 스포츠 리틀즈는 아이들에게 ‘차세대 리더’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소양을 가르쳐준다. 영어와 국제 매너 교육은 기본이고 매주 일요일마다 모여 골프, 승마, 수상스키, 산악자전거 등 다양한 레포츠를 경험하게 한다. 현재 500여 명의 어린이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연회비는 대략 350만원이지만 이벤트마다 일정액의 참가비를 내야 한다. 특히 방학 때는 미국이나 영국 등지에서 열리는 영어 캠프에 참가하는데, 비용이 600만원 정도다. 이래저래 1년 동안 들어가는 돈이 최소 1000만원선이지만, 부모들은 “전혀 비싸지 않다”고 한다. 서울 반포동에 사는 주부 김모(36)씨의 말.

    “지난 겨울방학 때 아이가 영국으로 영어 캠프를 다녀왔습니다. 오전에는 원어민 강사에게 영어를 배우고, 오후에는 호텔 매너, 파티 예절 등을 배웠어요. 여가시간에는 스노클링, 스킨스쿠버다이빙, 골프, 승마 등을 배웠고요. 아이가 참 즐거워했어요. 특히 아이가 승마를 좋아해서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계속 가르쳤더니 이젠 ‘속보’ 수준이 됐어요. 캠프에서 사귄 외국인 친구와는 지금도 이메일을 주고받아요. 이렇게 양질의 교육을 받는데 1000만원이 비싸다곤 할 수 없죠.”

    삶의 본질은 다르지 않아

    리틀즈의 이원형 대표는 “상류층 부모들은 자녀가 국내에서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 가서도 상류층으로 살아가길 원한다”고 했다.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으면 어디에 내놔도 주눅들지 않고 외국 친구들과도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것, 또 비슷한 경제적 수준을 지닌 집안의 친구들과 사귈 수 있다는 것도 부모들이 꼽는 장점이다.

    1999년 한국학술문화연구원이 발표한 ‘계층별 교육열’ 보고서를 보면 상류층 학부모들은 자녀를 해외로 유학 보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외국인 회사의 이사급으로 근무하는 김모씨는 “지금 아이를 사립 유치원에 보내고 있는데, 초등학교도 사립에 보낼 계획”이라며 “중학교 이후에는 아이를 미국으로 유학 보낼 생각이다. 그래서 한국과 미국 문화에 두루 익숙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상류층은 아이들의 패션에 대해서도 각별한 신경을 쓴다. 오일릴리키즈, 폴로보이즈, 겐조정글, 게스키즈, 압소바, 타티네쇼콜라 같은 유아 및 아동용 수입 브랜드는 원피스 하나에 20만원이 넘는 고가이지만 신세대 상류층 엄마들에겐 없어 못 팔 지경이다.

    국내 모 자동차 회사의 광고에 ‘대한민국 1%를 위한 가치’라는 문구가 있다. 1%만을 대상으로 했다는 말은 1%의 삶과 나머지 99%의 삶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에는 분명 상류층이 존재한다. 그들은 그들만의 성채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나머지 99%들은 1%가 도대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한다.

    하지만 상류층 취재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알게 된 사실은 1%라 해서 본질적으로 99%와 특별히 다른 점은 없다는 것이다. 그들 1%는 단지 99%보다 경제적 여유가 있기에 좀더 다양한 사회적·문화적 경험을 할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다소 결여됐다고 해서 ‘삶의 본질’ 자체가 달라지거나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1%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면 그들 역시 자꾸 성채 속으로만 들어가려고 할 것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부와 문화적 소양을 단지 자신들만을 위해 쓰느냐, 다른 이들을 위해 쓰느냐는 나머지 99%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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