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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 기자의 사람 속으로

0.001초까지, 절박하다 그 목청

장아찌 같고 성난 파도 같은 소리꾼 장사익

  • 글: 이나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byeme@donga.com

0.001초까지, 절박하다 그 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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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익의 집을 처음 찾았을 때, 2층 툭 트인 통유리창 밖 풍경을 보곤 한동안 입을 못 다물었다. 서울에 이보다 더 풍취 좋은 집이 있을까. 인왕산이 겸재의 ‘인왕제색도’ 꼭 그 모양새대로 앞을 비껴 우뚝 서 있고, 탕춘대성 이끼 낀 옛 성곽이 마치 울타리인 양 둘러쳐 있다. 내려다 뵈는 뜰로는 집채만한 바위가 쳐들어와 뒷심을 든든히 받쳐주고, 지천인 민들레 토끼풀 강아지풀 사이로 풍경(風磬)이 울고 잔돌맹이가 구른다. 무엇보다 성곽 뒤, 사람 키 열다섯 곱은 족히 될 아카시아나무 세 그루가 ‘그림’의 중심에 서 완벽한 구도를 이루고 있었다.

“너무 좋지유. 근디 우리 집선 볼 게 얘덜밖엔 없어요. 이거 하나 보구 집을 샀는디…. 내 인생 최고, 최대 사치지유.”

장사익은 마치, 너무 좋은 집에 살아 죄송하다는 듯 코를 찡그리며 수줍게 웃었다. 곁에 섰던 아내 고완순씨가 말을 거들었다.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모셔오고 싶었는데 살던 집이 너무 좁아 이사를 해야 했어요. 한번 구경이나 하자 하고 올라왔다가, 그만 이 경치에 홀딱 반해 웃돈까지 주고 계약했지 뭐예요. 근데 막상 이사를 오려 하니 문제가 한둘이 아닌 거예요. 보일러부터 골조까지 성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어요. 아이고, 말도 마세요. 집값만도 불감당이었는데 수리비까지 엄청나게 들어가고…. 그러니 어쩌겠어요. 이이가 저리 좋아하는걸.”

“쟤들이 다 제 스승이예유. 하루 종일 이 창 앞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흘러가는 구름도 보구, 산도 보구 풀꽃도 보구. 잘 놀 궁리만 해도 하루 해가 짧기만 해요. 집을 이고 갈 건가 지고 갈 건가, 참말 더 큰 욕심은 이제 없시유.”



장사익이 말을 받았다.

그는 “풀들에게 미안해 잔디를 심지 못했다”고 했다.

“전번에 이이가 한번 호미를 들고 나선 적이 있거든요. 싹 정리한 담에 잔디 심겠다구요. 그런데 한참을 그냥 앉아있다 들어오는 거예요. 왜 그러냐 했더니, 풀들마다 꽃망울이 맺혔는데 맘이 아파 도저히 못 캐내겠더래요. 그래서 그냥 놔두기로 했어요. 근데 저 상태로도 이쁘죠. 전 아주 맘에 들어요.”

다시 아내의 설명이다.

이들 부부는 뜰에 가득 깔린 풀들을 잡초라 부르지 않았다. 풀들도 다 생명인데 ‘잡스럽다’ 하면 얼마나 섭섭하겠냐는 것이었다. “쟤들도 하나하나 이름이 있다, 이름대로 불러줘야 마땅하다”고 했다. 부창부수다.

서울 생활이 벌써 40여 년을 헤아리건만, 장사익의 말투는 갈데 없는 ‘충남도민’이다. 그 중에서도 홍성군 광천읍 광천리 삼봉마을.

“지가 서울 생활 한 지가 1965년부터, 그러니께 벌써 몇 년이여, 38년인디, 지가 서울 말을 못 허는 게 가족들이 여기 다 있응께. 동생애덜은 인자 거의 안 혀유. 나는 발전이 안 되는 것 같어. 만날 개구락지 우는 소리, 소쩍새 우는 소리, 낙엽 지는 소리… 그런 것만 생각하며 사니께. 거기 그냥 꽉 하고 단단히 묶여 있응께….”

“고래 같구 태산 같은 우리 아부지…”

그는 맏아들이다. 위로 누나 한 명이 있고 밑으로 남동생 둘, 여동생 셋이 있다. 집안 형편은 “그냥 시골에서 밥 먹고 사는” 정도였다 했다.

“아부지가 뭔 사업을 하시다가 1950년대에 쫄딱 망해가지구, 그 담부터는 가축 장사를 허셨어요. 소 장사, 돼지 장사. 젤 핫빠리 직업이지유. 그걸 가장 하찮게들 봤는디, 그래서 밥만 먹고 살았는디, 그래도 재미있었지유 뭐.”

그의 아버지는 부지런했다. 자전거를 타고 하루 50리, 70리 길을 오가며 장사를 했다.

“지가 가끔 공연할 때 하얀 두루매기 입고 중절모 눌러 쓰고, 자전거 따릉따릉 하믄서 무대에 오를 때가 있어요. 다 아부지 생각 나서 그러는 건데, 참 목가적이고 좋잖여유.”

어린 시절 그는 모범생이었다. 하나 하라면 꼭 그것만 하는 착한 아들.

“아부지가 농악을 치셨시유. 광천 쪽에서는 우리 동네 농악대가 젤로 쎄거든유. 아부지가 장구를 허셨는데 그게 전 되게 자랑스러웠시유.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걸립이라 해서 하루 종일 마을을 돌거던요. 그걸 매일 쫓아다녔는데 동네 애들 중에 거기 취미 있는 애는 지밖에 읍었시유.”

동네에서 신망 받던 아버지는 썩 훌륭한 장구잽이였다. 그래서일까, 그가 아주 풍류길로 나서마 했을 때도 아버지, 어머니는 “잘 되았다” 박수를 쳐주었다.

“우리 부모님이 신명 있는 분들이셨거든유. 지가 잘 노는 게 그냥 좋은겨. 우리 엄마는 그러잖여요. ‘점을 봤는디 니가 전생에 기생이었디야’. 그 날 그 얘기를 들으믄서 ‘그려, 나는 어릿광대다. 넘들 앞에서 참 즐겁게 해주고 그러는 게 내가 세상에 난 이치고 이유다’ 그렇게 생각을 확실히 가졌지유.”

아버지는 맏아들을 무척 예뻐했다. 초상집, 잔치집 할 것 없이 자전거에 싣고 다니며 인사를 시키곤 했다. 장사익은 그런 과정을 통해 “어른헌티 인사하는 법이라던가, 초상 치르고 밥 먹는 예절이라던가” 그런 것들을 아주 제대로 배웠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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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나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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