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초반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대치 및 미국과의 제네바합의 협상과정에서 북한은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핵물질에 관한 정보를 최대한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이 시기 평양의 주요목표가 전략적 모호함을 유지하는 것이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실제 보유량과는 관계없이 국제사회가 ‘한두 개의 핵무기를 만들기에 충분한 핵물질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이는 이 시기 워싱턴의 공식적인 분석결과였다)고 인식하는 동안 평양은 일정 수준의 ‘핵 안전상태’를 누렸다. 이후 시간이 흘렀지만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고 대신 ‘한두 개 핵무기 보유’라는 확신만이 굳어져왔다.
과연 북한의 핵 능력은 어느 수준이며, 이는 어떻게 발전되어 왔고 가까운 시일 안에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이 보고서는 이에 대한 종합 분석을 위해 여러 가지 사항을 검토할 것이다. 우선은 핵보유를 위해 북한이 그간 기울여온 노력을 살펴보고, 영변 핵 단지 내에 위치한 IRT-2000, 5MW, 50MW, 200MW 원자로 등의 시설과 여기서 생산 가능한 플루토늄 양을 분석한다. 또한 플루토늄과 함께 핵무기 원료로 사용되는 고농축우라늄을 확보하기 위한 북한의 프로그램도 점검한다. 덧붙여 북한이 이 핵물질을 재료로 만들 수 있는 핵무기는 어떤 수준인지, 이를 과연 노동미사일 등에 탑재할 수 있을지 등을 살펴보기로 한다.
반세기에 걸친 노력
핵 보유를 위한 북한의 노력은 크게 네 시기에 걸쳐 이루어져왔다. 기초교육과 연구에 초점을 맞춘 첫 번째 기간(1959~80년)에 북한은 대부분의 지원을 소련에 의존했고, 소련은 북한 과학자들을 훈련시키는 한편 소규모 연구용 원자로인 IRT-2000과 방사성동위원소 생산 실험실을 제공했다. 또한 이 시기 북한은 박천과 평산, 선천 등에 우라늄 광산과 가공시설을 마련했다.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의혹은 1980년에서 1994년에 이르는 두 번째 기간에 제기되었다. 1980년을 전후해 북한은 상당한 양의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대규모 시설 건설사업에 착수했다. 영변에 지어진 5MW 원자로와 여기서 나온 폐연료를 플루토늄으로 가공하는 재처리시설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북한은 ‘우라늄 원석 채굴-우라늄 연료 제작-원자로 가동-플루토늄 재처리’라는 일련의 핵물질 자체생산 사이클을 보유하게 되었다. 1985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한 북한은 이러한 시설의 존재를 부인하다가 1992년에 이르러서야 IAEA 전면사찰을 수용했다.
그러나 북한이 그동안의 플루토늄 생산량을 확인하고자 하는 IAEA의 협조요청을 거부함에 따라 1993~94년 이른바 1차 핵위기가 발생했고, 이는 1994년 10월 북미간 제네바합의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영변의 플루토늄 생산시설은 동결되고 IAEA의 감시를 받게 됨으로써 핵위기가 해소된 듯 보였지만, 북한이 그 전까지 얼마나 많은 플루토늄을 확보했는지는 이후에도 확인되지 않았다. 당시 미국은 북한에 대략 핵무기 1~2개 분량의 플루토늄이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세 번째 단계(1994~2002년)는 제네바합의에 따른 핵 동결 시기다. 이 8년 동안 영변에 건설되어 운영중이던 5MW 원자로와 완성 직전이었던 50MW 원자로, 태천에 건설되기 시작한 200MW 원자로 등 플루토늄 생산시설은 모두 가동 및 건설작업이 중단됐다. 5MW 원자로에서 꺼낸 8000여 개의 폐연료봉 또한 IAEA의 감시하에 놓였다. 이로써 플루토늄을 확보할 길이 막히자, 평양은 1990년대 후반 무기급 고농축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는 원심분리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비밀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지막 시기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확보를 위한 비밀계획이 공개됨에 따라 핵 동결이 붕괴된 2002년 말부터 현재까지다. 북한은 그간 멈춰서있던 플루토늄 생산시설을 재가동했고 보유하고 있던 폐연료봉으로부터 플루토늄을 추출했다고 주장해왔다(이러한 주장은 아직 제3의 방법으로 검증된 바 없다). 고농축우라늄 생산능력을 확보하려는 노력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내용은 대부분 베일에 싸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