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호

박관용 국회의장 “구두·명패 날아왔지만 피하고 싶은 생각 없었다”

  • 글: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4-03-26 13: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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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당대표회담 거절한 노 대통령에 크게 서운
    • 대통령 지지자들의 고통 이해
    • 충청 수도이전법 내용 없어, 이전 불투명
    • 북핵 해결 시 남북국회, 통일헌법 논의
    박관용 국회의장 “구두·명패 날아왔지만 피하고 싶은 생각 없었다”
    2004 년 5월이면 정계를 은퇴하는 박관용 국회의장이 3월 초 ‘신동아’와 자신의 정치인생을 되짚어보는 내용의 인터뷰를 가졌다. 이 때만 해도 그가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하는 의사봉을 두드리게 되리라곤 그 자신이나 기자나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탄핵을 결정한 본회의 폐회 다음날인 3월13일 박 의장으로부터 탄핵안 처리와 관련된 이야기를 별도로 들었다. 격동의 정치현장에서 ‘뜻하지 않게’ 주인공 역할을 한 박 의장은 탄핵안 가결 전후의 심정, 당시 상황, 30년 의정활동의 일화를 주제로 두 시간 동안 담담히 인터뷰에 응했다.

    박관용 국회의장은 국가 권력서열 2위지만, 인터뷰 전 서면 질문서를 요구하지 않는다. 기자가 이메일로 질문지를 보내면 이 질문, 저 질문은 빼달라고 하거나 인터뷰 도중 질문이 마음에 안 든다고 그만하자는 유력 정치인이 적지 않다. 그러나 박 의장은 다르다. 그는 가벼운 티타임을 갖듯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인터뷰한다. 박 의장은 ‘인터뷰어’를 편하게 해주는 드문 ‘인터뷰이’이다. 그가 강조하는 ‘대화정치’와 맥이 닿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먼저 그에게 탄핵안 가결에 대해 물어봤다.

    -탄핵안을 가결시킨 당사자로서 현재 심정은.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한 뒤 마음의 고통이 심합니다. 그러나 의원 다수의 의사표시 기회를 부여하는 일은 법이 정한 국회의장의 책무였으므로 그대로 실천한 것입니다. 무척 가슴 아픕니다. 국민들께서 감성보다는 이성으로 대처해주시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겸허히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탄핵안 가결 이틀 전, 노무현 대통령의 기자회견 하루 전인 3월10일 국회의장이 제의한 대통령-4당대표 회담을 대통령이 거절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정치를 하는 데 있어 아무리 나쁜 대화도 대화를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내가 노무현 대통령을 만날 때마다 이 말을 해드렸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아직도 이 고언(苦言)을 이해하지 못한 듯합니다. 기자회견 전에 4당 대표를 먼저 만나라고 대통령비서실장을 통해 제의했습니다. 낮이든 밤이든, 관저든 어디든 오라고만 하면 4당 대표를 모시고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지쳤다’며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그 때의 서운함이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 만남이 성사됐다면 탄핵까지 가지 않았을 수도 있을까요.

    “나는 진심으로 제안한 것입니다. 대통령이 그들을 만났다면 이렇게 안 됐지. 얘기하다보면 파국을 막을 해법이 나오게 되거든요.”

    총선 출마를 선언한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이 사퇴한 이후 청와대는 ‘대(對) 국회 창구역’인 정무수석을 공석으로 뒀다. 그후 정치권에선 ‘대통령과 국회 사이의 대화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얘기가 나왔다. 거야(巨野)의 일방주의 정치, 대통령의 의도성 있어 보이는 ‘야당과의 단절’ 등이 탄핵을 무르익게 한 환경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박 의장은 같은 이유로 열린우리당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야권의 탄핵국면 조성은 자멸의 악수(惡手)로, 이를 돌파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고 신기남 상임중앙위원은 “탄핵 추진은 자멸의 지름길. 오히려 야권이 반대 여론을 의식해 탄핵을 안 하겠다고 할까 걱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자업자득” 호통 친 이유

    -본회의에서 탄핵안을 발의할 때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항의하자 의장은 ‘자업자득’이라고 호통을 쳤는데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우선 열린우리당은 대선 이후 여당을 두 조각 냈습니다. 그것도 원수가 되어 이혼했습니다. 가뜩이나 소수 여당인데 그 당마저 두 조각을 냈으니 향후 국정 운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상황을 자초했습니다. 국회 다수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모를 리 없는데 스스로 5분의 1쪽짜리 여당의 길로 간 것입니다. 이것이 탄핵으로 이르게 된 1차적 자업자득입니다. 이후 대통령과 거대 야당들이 탄핵을 놓고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열린우리당은 양쪽의 대화를 이끌어내는 중재 역할을 해야 함에도 모른 체했습니다. 열린우리당은 소수정당인 만큼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놓고 막상 탄핵안이 상정되자 물리력을 동원해 의장석을 일방적으로 점거했습니다. 그래서 열린우리당을 향해 ‘자업자득’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발언은 작심하고 특별한 의도를 갖고 한 말은 아닙니다.”

    박관용 국회의장 “구두·명패 날아왔지만 피하고 싶은 생각 없었다”

    국회의장실에서 ‘신동아’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박관용 의장.

    -경호권 발동은 언제 결심했습니까.

    “경호권을 발동해야겠다는 생각은 한번도 안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4당대표회담 제의를 거절하고 다음날 아침 기자회견 하는 것을 봤는데 다 보고 나서 국회에서 충돌을 면키 어렵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본회의장에 들어가는 순간 살벌한 분위기를 보면서 의원들간 충돌이 있겠다고 우려를 했습니다. 동시에 의원의 의사표현을 방해하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달 남은 국회도 국민대표 기관”

    -국회 경호요원들이 3명1조로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한 명씩 의장석에서 끌고 내려와 15분 만에 의장석을 확보했습니다. 사전에 연습이나 준비를 했나요.

    “사전 준비는 없었습니다. 다만 국회 사무처 총장에게 ‘의장이 사회를 볼 수 있도록만 해달라. 그러나 절대 무리하게는 행동하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경호권을 발동하지 않으면 의원들 사이에 불상사가 발생할 것 같았습니다. 국회 경호요원들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을 겁니다.”

    열린우리당 김성호 의원은 탄핵안이 가결되자 신고 있던 구두를 의장을 향해 던졌다. 이어 명패도 던졌다. 김 의원은 한 인터넷언론에 보낸 글에서 “내가 신고 있는 신발보다도 쓸모 없는 국회와 의장에 대한 분노의 표시였다”고 당시의 소회를 피력했다. 또 다른 당사자인 의장은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물어봤다.

    -탄핵안 가결을 선포한 직후 열린우리당 김성호 의원이 구두를 벗어 의장을 향해 던졌습니다. 그때 심정은.

    “무엇인가 둔탁한 물건 몇 가지가 날아오는 것 같던데 피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맞을 각오로 당당하게 서서 본회의 사회를 매듭지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대통령을 탄핵한 국회는 청산대상’이라는 주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대통령 지지자들은 대통령을 끝까지 지키고 싶었는데 직무정지가 되었으니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들을 위로해주고 싶습니다.”

    - ‘임기 한 달 남은 국회가 4년 남은 대통령을 탄핵해선 안 된다’는 주장에 대한 견해는.

    “국회의원의 임기가 얼마나 남았는지는 의정활동의 가치와는 전혀 연관이 없습니다. 국민주권이 위임된 국회의 결의는 국회 임기가 4년 남았든 한 달 남았든 똑같이 존중받아야 합니다.”

    -탄핵안 통과 직후 탄핵 반대 국민여론이 70%에 이르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라 국민들이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한 것은 의회주의의 기본정신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탄핵안을 가결하면서 ‘대한민국은 전진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탄핵안 가결이 반드시 실망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며 국민들이 협력하면 점차 긍정적인 면이 나타날 것으로 봅니다.”

    진대제 장관, 방송법 개정안 통과 부탁

    박 의장은 노무현 대통령과는 우호적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 대통령이 국회를 자주 찾아 연설을 한 것도 역대 정권과는 달라진 점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박 의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수행 방식에 대해 상당히 실망했다. 그럼에도 박 의장은 노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것은 원하지 않았으며 막판까지 탄핵 가결을 막으려 의장으로서 노력했다고 말한다. 다음은 탄핵 발의 이전인 3월 초순 박 의장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잘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대통령은 국민에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확고하게 실현시켜가겠다는 정체성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노무현 대통령에게 그런 정체성이 모호합니다. 노조와의 마찰을 기피하거나 한미동맹이나 대북 문제에서 드러낸 예측하기 어려운 행보들, 특히 자주외교를 한다며 외교부장관과 국장을 교체한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의 정체성을 의심할 만한 언행을 대통령 스스로 합니다. 정체성이 흔들리면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흔들립니다.”

    -국회의장이 FTA와 파병동의안 통과에 가장 적극적이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언론은 국회가 FTA와 이라크파병 동의안 가결을 미뤘다고 비난하는데, 사실 노무현 대통령도 실망스러웠습니다. 대통령은 두 개의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만 해놓고 가결시켜달라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옆에서 지켜본 의장으로선 대통령이 두 동의안을 가결시킬 마음을 갖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웠습니다.”

    16대 국회 막바지에 방송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위성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이 가능한 법적 기반이 구축됐다. 한나라당은 KBS 시청료 분리징수안이 함께 처리되지 않으면 방송법개정안 전체를 통과시켜줄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었다. 반대로 국회 문광위 사회권을 쥔 열린우리당은 KBS 시청료 분리징수안은 절대로 통과시켜줄 수 없다고 밝힌 상태였다. 따라서 방송법개정은 불투명한 상태였다.

    -방송법 개정안을 국회의장이 이례적으로 직권 상정해 통과시켰는데….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내게 찾아와 ‘이미 인공위성을 띄운 상태에서 국회가 DMB가 가능하도록 방송법을 개정해주지 않으면 국내 통신업체들이 많은 손실을 보게 되고 일본에도 뒤처지게 된다’며 도움을 요청해왔습니다. 들어보니 진 장관의 얘기가 맞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에게 전화해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한나라당 홍사덕 원내총무를 불렀습니다. ‘방송법의 여러 개정안 중 DMB 관련 개정안만 국회의장이 본회의에 상정해 통과시키면 KBS 수신료 분리징수를 강하게 요구해온 한나라당의 자존심을 지키면서 국익에도 도움이 되는 일 아니냐’고 했습니다. 홍 총무도 국회의장이 상정한다면 우리도 막지 않겠다고 동의했습니다. 열린우리당도 DMB관련 개정안만 통과되는 것이어서 막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방송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입니다. 모 방송사 노조 간부들이 내게 와서 특정업체 이익에 앞장서는 것이라며 항의했는데 그런 말하려거든 썩 물러가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일본도 수도이전법 3개나 제정”

    16대 국회가 통과시킨 법률안 중 상당한 파장을 일으킨 것은 바로 신 행정수도 이전 특별법이다. 이 법안의 통과를 전후해 신 행정수도 이전 후보지로 거론되어온 대전, 충남, 충북 몇몇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 그러나 이 법안 통과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박 의장은 법안 통과의 의미를 평가절하했다. 총선용으로 급조된 알맹이가 없는 법으로, 이 법의 제정으로 행정수도 이전이 앞당겨지는 효과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박 의장은 행정수도 이전은 현 단계에선 시기상조라는 쪽에 가까운 입장을 보였다.

    -신 행정수도 이전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충청권이 들썩이고 있는데.

    “사실 상당히 정치적 목적에서 통과된 법안 아닙니까. 선거 때만 되면 나오는 얘기에 불과한 것 아닌가 합니다. 정부나 열린우리당은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 행정수도 이전을 보다 가시화시켜줌으로써 충청권에서 지지율을 높이려 한 것 같습니다. 한나라당 역시 법안 통과에 반대하면 충청권 선거가 어려울 것 같아 지지한 것 아닙니까.”

    -신 행정수도 이전 특별법 통과의 효과는 어느 정도로 봅니까.

    “행정수도 이전을 위한 특별기구를 정부내에 둔다는 것 외엔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언제,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의 재원을 들여서 행정수도를 짓겠다는 핵심 내용이 모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수도권에 신도시 하나 만드는 데 필요한 법안 정도의 가치입니다. 국회를 옮기는 것도 정부 마음대로 하는가요. 행정수도 이전의 진정한 의지가 있다면 매일 공청회를 여는 등의 모습을 보여야 할텐데 그런 움직임이 전혀 없습니다. 더구나 고건 국무총리는 통일수도는 서울이 되어야 한다며 정부 내에서도 다른 소리가 나왔습니다. 최근 일본의 모리 전 총리 일행이 방한해 나와 식사를 함께한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모리 전 총리는 ‘한국에서도 행정수도를 이전한다고 하는데 그거 잘 되겠습니까’라며 비관론을 폈습니다.”

    -그래도 관련법이 통과됐으므로 충청권에선 행정수도 이전이 한층 가시화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일본에서도 수도이전 관련법이 이미 3개나 제정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수도 이전을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법률안 하나 만들었다고 수도이전이 가시화됐다고 보기 힘듭니다. 우선 충청권으로의 수도이전이 필요한 이유를 정부는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고 국민적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기부 돈, YS와 강삼재만 아는 일”

    16대 국회는 방탄국회, 식물국회, 차떼기 국회 등으로 불리며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국회개혁을 향한 일보의 전진은 있었다고 박 의장은 자평한다.

    -16대 국회는 개혁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습니까

    “의원 비서관, 국회 전문위원 생활을 각각 6년씩 한 내게 국회개혁은 꼭 이뤄내고 싶은 한(恨)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의장의 중립성 지키기입니다. 중립성을 지켜내기 위해 국회의장 임기를 끝낸 뒤 한나라당으로 돌아가지 않고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미리 선언을 한 것입니다.”

    -보스정치 타파, 원내정치 구현은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까.

    “의원들이 국민을 대표해야 함에도 정당 대변자 노릇만 해왔습니다. 아침에 정당 지도부회의에서 결정을 하면 의원들은 그대로 따르는 식입니다. 국회내 의원총회를 최고의결기구로 하도록 노력을 했고 각 정당에서 일정부분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정당기자실보다는 국회기자실을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습니다.”

    박관용 국회의장 “구두·명패 날아왔지만 피하고 싶은 생각 없었다”

    박관용 국회의장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많은데.

    “다양한 국민의 대표가 모인 기구가 국회인 만큼 의원들이 모두 특정분야 전문가일 수는 없습니다. 이 문제는 의원에 대한 입법-정책보좌기능을 대폭 강화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수 명의 보좌관-비서관으로부터 보좌를 받는데 향후 국회는 의원을 조직적, 체계적으로 보좌하는 전문기구를 갖추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16대 국회에선 국회예산정책처를 신설했습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입법, 정부예산심의, 정부정책에 대한 감시 등 의원활동을 보좌하기 위해 60여명의 박사 등 120여명의 전문인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언제 시작됐습니까.

    “부산중 1년 선배인 이기택 의원이 7대 의원에 당선되면서 함께 일하자고 제의해 이 의원의 비서관이 됐습니다. 말하자면 이기택 계보였는데 이 의원이 김 전 대통령(YS)과 사이가 나빴으니 나 역시 YS와 특별한 인연이 있을 리 없었습니다. 그러나 1992년 대선 때 내가 대선홍보위원장을 맡으며 YS와 가까운 사이가 됐습니다. 대선 승리 후 YS는 ‘박관용이 일등공신’이라며 대통령비서실장에 임명한 것입니다. 대선 이전인 1989년 YS가 북한 허담 비서를 만날 때 내가 면담 준비 및 수행을 했는데 그때 일을 매끄럽게 처리했다고 YS가 칭찬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측과 강삼재 의원간에 1996년 신한국당 총선 지원금이 안기부예산인지 아닌지를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데.

    “YS는 보안의식이 철저한 분입니다. 그 사건의 진실에 대해선 YS와 강 의원 외엔 아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국회, 통일에 기여할 것”

    -대통령비서실장 재직 시절에도 북핵 위기가 있었지요. 현재의 북핵위기 해법은 무엇이라고 보나요.

    “북한이 핵을 이용해 흥정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때나 지금이나 성격은 같습니다. 그러나 그때와 다른 점은 미국이 선물을 주거나 적당한 미봉책으로 북한 핵문제를 덮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핵의 완전폐기를 원하므로 핵동결을 대가로 흥정을 하려는 북한의 입지는 그때보다 더 어려워진 듯합니다. 쉽게 해결될 사안이 아닙니다.”

    -1985년 남북국회예비회담 대표를 맡은 적이 있는데.

    “남북한 국회접촉은 11번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북한은 정부간 남북회담이 잘 안될 때 주로 국회 회담의 형식을 빌려 남북간 접촉을 선전했습니다. 지금 핵문제로 미국과 대립관계에 있으므로 북한은 아마 남북교류가 활성화되는 모습을 미국에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남북국회회담에 응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북한에 남북국회회담을 제안할 생각은 없습니다.”

    -헌법과 법률 개정권이 있는 남북 국회간 협력은 상당한 의미가 있을 수 있는데.

    “북한 핵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남북 국회가 만나 통일헌법제정에 대해 논의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먼저 남북한이 할 일이 있습니다. 16대 국회는 막바지에 남북이산가족 생사확인에 대한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번이 네 번째 결의안이었습니다. 이산가족 생사확인은 남북문제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합니다. 이산가족 문제는 현재의 이벤트성 상봉 형식이 되어선 안 되며 모든 이산가족을 대상으로 한 생사확인, 주소확인, 서신왕래, 상봉, 자유의사에 의한 결합의 형태로 해결되어야 합니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과는 인연이 있습니까.

    “국회 통외통위 의원시절 당시 MBC 기자인 정동영 의장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요. 상당히 생기있고 똑똑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빨리 당 의장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정 의장이 잘 하리라고 봅니다.”

    -의장 퇴임 후 계획은.

    “약속한 대로 한나라당에 입당하지 않을 것이며 정계를 은퇴할 생각입니다. 2~3개 대학에서 석좌교수로 와달라는 요청을 받아놓고 있어요. 문민정부 시절 장·차관 출신자들의 모임인 마포포럼 등 몇 가지 사회단체에 소속되어 활동할 계획이며 두어 가지 사회봉사활동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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