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 고부가가치사업인 우주개발은 국가전략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 미국 유럽 등 우주 선진국뿐 아니라 일본 중국 등 한반도 주변국들도 우주개발에 매년 수조원을 투자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낮은 기술수준과 턱없는 예산책정으로 초보단계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정부의 이러한 우주프로젝트는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편에선 “세계가 앞을 다투어 화성에 유인 우주선을 보내고 있는 터에 우주인을 양성하겠다는 계획이 과연 국민에게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겠냐”는 비판적 목소리도 적지 않다.
또 일각에서는 국민소득 1만달러라는 ‘마의 벽’에 부딪쳐 있는 경제현실에서 천문학적인 규모의 돈을 무한대로 투자해야 하는 우주개발 프로젝트가 타당한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막대한 투자비용에 비해 막상 과학기술 발전에는 큰 도움이 안 되는 ‘전시 행사’라는 비판도 없지 않다. 한국 우주개발산업의 현주소를 기술, 예산, 정책, 기업투자 측면에서 살펴봤다.
【기술 수준】선진국의 기술이전 거부, 자체 기술은 초보단계
우리나라 우주개발의 역사는 이제 겨우 14년이다. 선진우주국들의 30∼40년 연구경험에 비한다면 부끄러운 수준이다. 선진우주개발국이라는 명함을 내밀려면 적어도 3가지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 위성체, 위성체를 탑재한 로켓, 로켓을 쏘아올리고 통제할 수 있는 우주발사대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발사장이 없어 타국의 발사장에서 타국의 로켓에 실어 위성을 발사했다. 다행히 내년에 전남 고흥 외나로도 우주센터가 완공되면 외국 발사장에 신세지는 일은 면하게 될 전망이다. 로켓 개발의 경우, 1987년 미사일 확산방지를 위해 미국 독일 영국 이탈리아 일본 캐나다 프랑스 7개국이 설립한 MTCR(미사일기술통제체제)의 제재(탄도무게 500kg, 거리 300km)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현재 항공우주연구원이 로켓 기술 축적을 위해 시험 모델 개발에 주력하고 있지만 우주선진국에 비한다면 초보 수준이다.
2002년 항공우주연구원이 개발한 과학로켓(KSR-Ⅲ)에 대해 핵심 연구원 A씨는 “100% 국내기술로 개발했다는 데 의의가 있을 뿐 13t급 액체추진 로켓으로는 인공위성을 발사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 화성탐사, 2030년에나
현재 우리나라는 우리별 1, 2, 3호와 무궁화 위성 1, 2, 3호, 아리랑 1호, 과학위성 등 모두 8기의 위성을 보유하고 있지만 대체로 외국에서 사왔거나 우주선진국의 기술을 그대로 옮겨와 개발한 것들이다. 과기부 산자부 정통부의 지원 아래 항공우주연구원에서 개발하고 있는 지구관측 위성 아리랑 2호의 경우 고해상도 카메라(MSC) 개발이 지연된 탓에 예정보다 발사가 늦어질 것으로 내다보인다.
아리랑 2호에 장착될 카메라는 해상도 1m급으로, 1999년 미국 반 덴버그 공군기지에서 발사된 1호의 카메라(해상도 6.6m)에 비해 약 40여배 더 선명하게 찍을 수 있다. 아리랑 2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될 경우 고도 685km, 궤도 경사각 98.13도의 태양동기 원 궤도를 돌면서 한반도의 고해상도 영상 자료를 지구로 전송하게 된다. 그러나 세계적인 첩보위성 기술에 비하면 크게 떨어지는 수준이다.
항공우주연구원 다목적위성사업단 이주진 단장은 “우리나라의 위성용 카메라 기술수준은 초보단계다. 스폿 위성첩보용 카메라는 고도의 기술이며 군사전략상 비공개로 연구되고 있어 선진국으로부터 부품을 제공받거나 기술이전도 받을 수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한 “위성 개발이 어려운 것은 위성이 다양한 과학기술의 종합체이기 때문이다. 100% 우리 기술로 소화한 위성이 언제쯤 개발될지는 미지수”라고 털어놓았다.
우주선진국들이 우주자산을 이용해서 우리의 안방까지 훤하게 들여다보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고기능의 첩보위성기술을 궁금해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김승조 교수는 “우주개발은 그 자체가 군사전략의 일환이기 때문에 기술이전이 쉽지 않다. 우리나라도 군과 항공우주연구원이 함께 연구한다면 기술수준이 달라질 수 있다. 단, 미국으로부터 부품을 제공받을 수 없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고 답답해했다.
국제우주정거장 조감도.
미 항공우주국(NASA)은 ‘No technology’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와 관련 외나로도 발사장에 대해 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 관계자는 “우주개발에 있어 각국이 기술이전을 꺼리는데 과연 어느 나라가 우리나라 발사장을 이용해 위성을 쏘아올리겠느냐? 우주선진국들이 가만히 있겠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한국항공대 우주시스템연구실 장영근 박사는 “우주개발에 올림픽경기처럼 순위가 정해지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화성을 탐사하기 위해 유인우주선을 보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기술로는 2030년 즈음이나 가능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예 산】일본·중국은 수조원, 한국은 1500억 투자
우주개발비로 미국이 매년 150억달러(17조8000억원)를 쓰고 있는 것을 비롯해 EU 40억달러, 러시아 20억달러, 일본 30억달러, 중국 10억달러 등 한반도 주변국들이 우주개발에 모두 매년 수조원을 투입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우주개발 예산은 어느 정도일까?
우주개발을 위한 우리나라 1년 예산은 1500억원 안팎으로, 과학기술부 1년 예산(약 1조3000억원)의 12%에 해당된다. 이는 작년 중국이 선저우(神舟) 5호를 발사하기 위해 2조원을 투입한 것과 비교된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재정적자가 5000억달러에 이르렀음에도 유인우주선 발사에만 4000억∼5000억달러가 드는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항공우주연구원 우주과학팀장 최기혁 박사는 “우리나라 예산 규모라면 유인우주 기술은 걸음마 단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 달 착륙과 같은 유인우주사업에는 5000억달러 이상의 자금이 소요된다. 우리나라는 2020년에서 2040년은 되어야 유인우주선을 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인우주사업에는 국제 협력이 필수적이다. 5000억달러의 거대 자금이 드는 유인우주사업을 우리나라 단독으로 수행하기란 힘들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현재 항공우주연구원은 2010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중인 국제우주정거장(ISS) 사업에 참여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ISS 참여사업의 아이템 선정 관계자는 “한국이 캡슐형 주거시설이나 우주저울 등을 개발해서 참여한다고 해도 그 많은 부품 중에 물건 하나 납품하는 정도다. 사실상 우주개발의 파트너로 인정받고 있는 16개국은 수억달러 이상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최근 과학기술부는 과학기술과제에 중점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특히 우주개발에 관한 연구개발(R&D)에 우선순위를 두겠다고 약속했다. 덕분에 올해는 우주개발 관련 예산이 전년도에 비해 26.3% 증가했다.
【정책】우주연구 총괄하는 전문 부처가 없다
미국이나 EU가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지구로부터 1억9000만km 떨어진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는 것은 단순히 외계 생물체 존재의 가능성을 입증할 물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그것은 미래 원천기술의 획득을 통해 다음 세대에 세계와 우주를 지배하기 위한 준비의 일환이다.
선진국들은 앞다퉈 우주 탐사 연구 및 개발을 총괄할 정부기구를 만들고 국방부와 기술 교류를 확대하는 등 ‘우주개발 리더십’을 대내외에 천명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우주개발에 대한 정책은커녕 구체적인 비전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우주연구를 총괄하는 전문적인 부처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항공우주국과 한국의 항공우주연구원은 구조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조직 체계상 NASA는 대통령 직속 정부부처다. 예산책정도 자율적이다. 한국의 항공우주연구원은 이에 비해 국가출연 연구기관으로 국무총리실 산하 공공기술연구회 소속이다. 거기에 여러 부처의 이해관계가 상충돼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든 실정이다. 한마디로 한국에는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우주개발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정책결정기구가 없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다목적위성사업단 이주진 박사는 “선진우주국들은 오래 전부터 우주분야를 총괄하는 우주국 을 운영하고 있다. 우주개발은 국가적으로 논의될 일이다. 우리도 우주개발의 방향을 결정하는 기관이 절실하다. 우주를 전문적으로 총괄하는 부처가 있다면 예산규모도 달라질 것이다”고 설명했다.
한국항공대 우주시스템연구실 장영근 교수는 “국방부는 전략적 이득을 취하고, 산업자원부와 정통부는 우주산업화 기반을 닦으며, 과학기술부는 핵심전략기술을 개발하고, 그 밖의 정부부처는 우주자산을 활용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부의 국가우주개발 중장기계획은 연도별 단계별 계획에 불과하다. 특히 우주개발사업을 통한 국가의 비전 제시나 산업화 전략 등이 미흡해 국민적 지지나 호응을 얻기 어렵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기업 투자】“국내 경제사정 감안하면 우주개발은 환상”
21세기 산업 구조는 각종 첨단기술이 결집된 고부가가치 산업 위주로 재편될 것이다. 따라서 우주무한경쟁시대에 대비해 우주산업의 육성이 시급하다. 우주개발은 국가안보 측면에서 중요할 뿐 아니라 국가경쟁력을 결정짓는 요소인 만큼 항공분야에서처럼 민간기업과의 공동연구와 투자가 절실히 요구되지만 국내 기업들은 이에 대단히 부정적이다.
이윤추구가 목적인 기업이 경기침체와 소비위축이라는 악재 속에서 시간과 돈이 천문학적으로 투자되는 우주개발에 뛰어들 리 만무하다. 위성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모 기업 관계자는 “우주개발만큼 돈 안 되는 사업도 없을 것이다. 지난날 우주개발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수많은 기업이 다투어 뛰어들었지만 크게 실망했다. 우주사업은 국가전략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데 몇 년씩 기다려서 겨우 위성을 만들었다. 본체의 일부만을 우리 손으로 제작했는데 100 중에 30∼40을, 그것도 여러 기업이 나누어서 제작했으니 밑지는 장사나 다름없다”고 고백했다.
우리나라의 우주산업화가 지연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김승조 교수는 “산업자원부가 기업에 매칭펀드(matching fund)를 요구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돈을 벌어야지 돈을 쓸 수만은 없지 않은가. 과학기술부가 아닌 산업자원부가 기업과 매칭하는 것은 우주산업화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설명했다.
모 대학 A교수는 “우주항공 분야의 정책조차 제대로 정립하지 않은 상태에서 우주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나라 경제규모를 감안하면 우주개발은 환상이다. 차라리 그 돈으로 가능성이 있는 연구에 투자하는 것이 휠씬 효율적이다”라며 정책 부재를 비판했다.
지난날 일본은 저궤도 위성을 쏘아 올리는 데 몇조 원을 투자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일본 국민들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며 과학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만약 우리나라가 수천억 원을 투자해서 제작한 위성발사에 실패했다면 어떠했을까?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김승조 교수는 “다목적위성사업은 수천억원이 들어가는 사업이지만 실패하면 한푼도 건질 수가 없다. 우주연구에선 실패의 경험도 소중하다. 하지만 나라 경제가 어려운 만큼 실패에 대한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욱이 ‘실패’에 대해 혹독히 매도하는 풍토에서 과학자들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경제사정에 걸맞은 우주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김 교수는 중국의 우주개발 성과에 대해 “작년 중국이 선저우 5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해서 지구촌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지만 사실 몇십 년 전의 기술을 재현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중국은 이 우주프로젝트를 정치적으로 적절히 이용함으로써 국민의 사기를 올리는 데 성공했다. 당시 무디스는 선저우 5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자 중국의 신용등급을 한 등급 올렸다”고 설명했다.
지구인의 영원한 프런티어인 우주를 개발하는 것은 컴퓨터와 정보기술(IT), 생명과학 못지않게 중요하다. 우주개발은 항공, 우주, 전자, 정보통신의 융합에 의한 전략무기 개발뿐만 아니라 대륙간 우주 비행선, 위성통신방송, 지구자원탐사, 지구환경감시, 기상예보, 해양정보 수집, 지구공간위치정보 제공, 대체 에너지 개발을 예고하고 있다.
우주개발 분야를 국가전략사업의 우선순위로 책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업의 경쟁성과 타당성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많은 연구원들은 “비록 한국이 우주개발 후발주자이지만 최적의 개발체제와 전략, 예산이 확보된다면 우리나라도 우주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