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가 4월말 완공을 목표로 시청앞 잔디광장 조성사업에 착수했다. 발표 3일 만에 교통체계 개편공사를 시작하는 놀라운 순발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미 1년여 전 공모전에서 당선된 ‘빛의 광장’ 계획을 전면 보류하고 ‘잔디광장’을 급조한 데 따른 비난도 만만치 않다. 당선작을 설계한 서현 교수가 현상공모에서 당선작 보류결정까지의 일지를 토대로 서울시의 밀실·졸속의 관료주의 행태를 고발했다.
- “이명박 시장님, 뭐가 그리 바쁘신가요?”
2003년 1월 ‘서울시청앞 광장 조성 설계공모’에서 당선된 ‘빛의 광장’ 조감도.
그리고 원구단공원이 태어났다. 1897년 정유(丁酉)년 음력 7월19일 대한제국 수립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음미하는 대신 시민의 날에 맞춘 개장이 더 중요했다. 다행히 그 날짜에 맞춰 완공은 했지만 시민의 공원이 된 것 같지는 않다. 원구단공원은 항상 썰렁했고 그 앞으로는 무심한 자동차들만이 지나갔다. 건축가의 머릿속은 또 시키지도 않은 일로 분주했다.
기회가 왔다. 시청앞에 광장을 만든다는, 현상공모로 계획안을 선정한다는 공고가 나왔다. 여기저기서 반대의견이 비집고 나왔다. 교통문제가 앞장섰다. 청계천 복원공사로도 벅찬데 시청앞까지 막는 건 무슨 심술이냐고 투덜거렸다. 월드컵 열기에 편승한 인기위주의 정책이 아니냐고 정치적 배경을 의심하기도 했다. 우리에게는 원래 광장문화가 없었다고 역사적 통찰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우리에게는 광장문화가 없었다. 사실이다. 광장이 없던 때는 시청도 없었다. 아파트도 없고 자동차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전통적으로 광장문화가 없었기에 지금 광장이 무의미하다는 주장은 공허하다. 우리가 지금 기와집에 살아야 하고 도폿자락을 휘날리며 걸어다녀야 한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고종의 황제즉위식 때도, 인산일(因山日)에도 군중은 대한문 앞에 모였다. 전국노동자총궐기대회, 전국불조심경연대회를 비롯한 수많은 집회가 이곳에서 열렸다. 이한열 노제도 여기서 열렸다. 거기 참여한 이들은 모두 우리였고 아버지, 할아버지였다.
도시는 시대의 야심과 상상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 야심과 상상력이 물리적으로 가시화되어 쌓이면서 도시는 역사와 생명력을 동시에 갖게 된다. 서울시청 앞이 한국을 대표하는 장소라면 한국사회의 모습을 명쾌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건축은 공간으로 구현된 시대정신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광장이라는 단어가 함유하는 것 이상을 담을 수 있고, 또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공간이다. 서울은 전세계 어디에도 유례가 없는 상황을 현재진행형으로 보여주는 독특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인터시티그룹의 김형주, 박원근씨와 공동으로 현상공모 참가신청서를 냈다. 현상공모에 참여한다는 것은 광장을 만드는 데 동의한다는 의사표현이었다.
시청앞 광장의 교통문제는 심각하다. 이곳은 기형적인 교통광장이다. 소공로와 태평로를 잇는 도로를 빼고는 나머지 방향은 자동차들이 굽이굽이 돌아갈 길을 찾아야 한다. 꼬여 있는 미로요 엉켜 있는 실타래다. 그나마 광장의 많은 곳이 버려져 있다. 성탄절이나 석탄일에 불 켜진 구조물을 갖다놓는 데나 이용할 뿐이다. 풀어야 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보행자의 통행이다. 1926년 경성부청사가 들어선 이래 이곳은 장안 교통의 중심점이었다. 지금의 소공로인 하세가와조(長谷川町)가 바퀴형태로 교통량을 유입하는 파이프라인이었다.
대신 보행인은 길 옆으로 밀려났다. 광복 후에는 다시 지하로 밀려났다. 마주보이는 건너편까지 가려면 지하도를 몇 개씩 오르내려야 했다. 장애인, 외국인에게 이곳은 도심 속의 극기훈련장이나 다름없다.
도로를 유지하는 비용은 시민의 세금으로 충당한다. 시민은 자동차를 타고 이곳을 통과하는 시민뿐 아니라 묵묵히 걸어다니는 이들도 포함된다. 그 점에서 이곳은 좀더 공평해져야 한다. 자동차 공간의 한켠을 비워 보행인에게 내주어야 한다.
세상을 이어주는 모니터, 빛의 광장
작업이 시작됐다. 아침저녁으로 아이디어를 짜냈다. 이런저런 모양을 만들어보는 시행착오가 거듭됐다. 설계는 한국사회를 들여다보는 지점에서 계속 방황했다. 근대적 기관으로서 시청은 시민(citizen)과 관료(bureaucrats)를 전제로 존재한다. 근대의 민주사회는 관료라는 집단의 여과장치를 거쳐 행정을 집행한다. 이러한 대의적 시민사회는 20세기 말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그 도구가 인터넷이다. 이전에 시민의 목소리가 최고위 행정관료에게 전달되려면 겹겹이 쌓인 관료집단을 수직적으로 통과해야 했다. 그 과정에 분명 왜곡이 존재했다.
컴퓨터 모니터가 바닥에 깔리도록 설계된 시청앞 광장 예상도.
인터넷과 공동체의식,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니터가 세상의 매개체였다. 책도 전화도 미술관도 도서관도 카페도 그리고 여자친구도 남자친구도 모니터 안에 있었다. 심지어 자신의 존재까지도. 그 안에선 아바타가 자신을 대신했다. 설계는 그 매개체로 광장을 만드는 데서 출발했다. 그러니까 모니터가 바닥에 깔린 광장이다.
모니터가 시민사회를 보여준다면 운영방식도 시민사회에 걸맞게 임대하는 것을 전제로 했다. 광장에 놓인 모니터를 직접·보통·평등의 정신 아래 임대한다. 대기업도, 유명 연예인의 팬클럽도, 고위관료도 이웃의 초등학생과 마찬가지로 한 개의 모니터만 빌릴 수 있다. 누구나 단 한 장의 투표용지를 받듯이. 그 모니터를 통해 자기가 공개하고 싶은 내용을 띄운다. 광장 전체의 색과 모습은 시민들이 올린 화면의 집합적인 영상으로 표현된다. 광장은 빛으로 번안된 시민사회의 모습인 것이다. 그래서 ‘빛의 광장’으로 명명했다.
왜 광장이 필요한가
해마다 연말이면 명동과 종로가 들끓는다. 축제를 원하기 때문이다. 놀라운 점은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왔을까 하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별로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빛의 광장’은 축제를 담고자 한다.
이런 모습을 상상해보자. 새해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면 모니터의 화면이 하나씩 꺼진다. 광장은 침묵의 어둠으로 덮인다. 그리고 새해가 시작되면서 광장의 모니터가 한꺼번에 점등되고 ‘빛의 광장’이 되살아난다. 그때 보신각에서는 전통대로 종소리가 들려온다. 이것이 ‘빛의 광장’이 축제를 담아내는 방식이다.
현상공모는 경쟁이다. 심사위원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광장이 너무 열려 있다는 의견에 따라 빛의 기둥을 첨가했다. 모니터 개수가 계속 문제였다. 적당한 선에서 무작위로 배열해놓으니 2300여개가 됐다. 숫자에 얽매이는 디자인을 혐오하지만 현상설계니만큼 혹시 이런 숫자에 호감을 갖는 심사위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에 따라 2003개로 결정했다. 2003이 무언가를 상징하거나 의미한다는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기로 했다.
대한문 어간(御間)에 서서 원구단 쪽을 바라보면 원구단의 황궁우와 원구단 공원이 강조되도록 바닥 조형물을 배치했다. 이 공간의 형성에서 소공로가 지니는 중요도를 존중해 분수는 소공로의 축과 맞추어 배열했다. 버스정류장이 마련된 위치에는 나무를 심었다. 광장은 인위적 공간이다. 그만큼 나무를 심는 방법도 인간의 질서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나무는 격자형으로 배열했다.
광장에서 필요한 온갖 도시시설물들은 서비스 스테이션(service station)이라는 도구 속으로 넣어 일괄 정리했다. 공중전화 부스, 벤치, 자동판매기, 안내판 등이 그것이다. 서비스 스테이션 자체는 조명등이다. 이것만으로도 특허감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시청 청사의 대척점에 서비스 스테이션과 인터넷 서버를 배치했다. 이 사회를 유지하는 두 개의 무게추를 극명하게 대비시킨 구도다.
당선작, 찬사와 우려 엇갈려
2003년 1월27일. 저녁에 당선통지가 왔다. 당선안이 보도되자 극단적인 찬사와 비판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엽서 반 장 크기의 조감도를 보고 이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제각기 의견을 내놓았다. 설계자로서 칭찬보다 비판에 귀기울이지 않으면 안 됐다.
그러나 비판의 내용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2003개의 모니터는 2003년을 상징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런 괴상한 상징을 앞세워 설계한 건축가에게도 비난이 쏟아졌다. 광장 전체에 유리를 까는 것으로 간주한 비난이 가장 직설적이었다. 미끄러워서 어떻게 걸어다니냐는 것이다. 물론 광장 전체에 유리를 깔지 않는다. 모니터를 흩뿌려놓고 그 위에 유리를 덮더라도 전체 광장면적의 3.3%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돌이나 나무판이다. 비가 오면 어떤 길이든 미끄럽다. 눈이 와도 마찬가지다. 건물의 로비에 물갈음방식으로 마감한 돌 표면도 물이 묻으면 미끄럽다. 문제는 어떻게 미끄럽지 않게 만드느냐다. 사람들은 그 작은 조감도에서 파악할 수 없는 대비책은 아예 없는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었다.
‘빛의 광장’에 설치될 예정이었던 각종 시설물의 이미지.
그 공터에서 인라인스케이트도 타고 벼룩시장도 열고 정부 규탄 집회도 열 수 있다. 이곳은 시민을 위한 일상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원래 광장은 그런 곳이다. 바닥에 장애물이 없으니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데 그만이다. 서비스스테이션에서 전원이 공급돼 벼룩시장이 열리더라도 무거운 축전지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
서비스 스테이션에서는 전시나 광고도 가능하다. 내장된 스피커에서는 광장 가득 입체음을 지원한다.
외국의 광장은 밤이면 죽은 공간이 된다. 초현실적 그림처럼 거리는 신비와 우수가 넘치는 을씨년스런 공간이 된다. 그러나 ‘빛의 광장’은 주위가 어둠에 묻히면 더 밝아진다. 그즈음 스위치를 올린다. 이 광장에서 밤은 낮보다 더 아름다울 것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광장
이 디자인에 대한 근본적인 지적은 한시성이었다. 우선 모니터가 소모품이다. 모니터의 수명은 5년 남짓이어서 당연히 교체가 필요하다. 물론 시 예산으로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민자유치를 제안했다.
고궁 주변에 첨단광장이 웬말이냐는 반발도 있었다. 이런 이들은 두 눈을 뜨고 현장에 가봐야 한다. 먼저 짚어야 할 것은 굉음을 울리며 고궁 앞을 지나는 자동차들이다. 시청앞 광장은 고궁이 아니라 바퀴로 굴러다니는 첨단 기계장치들이 하루에도 수십만 대씩 지나가는 곳이다.
자동차가 첨단기계가 아니라면 TV도 휴대전화도 첨단기계가 아니다. 컴퓨터는 더 이상 신기한 기계가 아니다. 모니터 스크린은 집집마다 컴퓨터, 전화기, 인터폰에 붙어 있는 일상의 한 부분일 따름이다. 모니터가 집안에 있으면 일상이고 문밖에 있으면 첨단이라는 잣대는 기이하다. 우리는 일상의 광장을 원할 따름이고 그 광장의 구성방식이 도식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길 원할 따름이다.
시청 담당공무원들은 비관적이었다. 난감할 만도 했다. 바닥에 돌 깔고 준공식 마친 후 잊어버리면 될 광장을 예상했을 터였다. 그래서 ‘빛의 광장’은 상당기간 당선작도 아니고 당선예정작일 수밖에 없었다.
바닥에 모니터를 깔아놓은 광장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어딘가에 그런 광장이 있다면 설계를 바꿨을 것이다. 그것이 당선작의 강점이었다. 그러나 담당공무원들 눈에는 바로 그것이 당선작의 문제점이었다. 당선작은 벗어버리고 싶은 짐이었을 것이다.
서울시는 실물테스트를 요구했다. 모니터와 컴퓨터를 몇 대 기증받아 우선 야외에 깔아보자고 했다. 모니터 기증요청은 서울시가 직접 할 수 없으니 당선자가 해결하라고 했다. 모니터 제조회사로부터 14대의 모니터와 컴퓨터를 기증받았으나, 이번에는 토목공사 테스트 비용이 문제였다. 이 대목에서 서울시는 실물테스트를 없던 일로 하자고 했다. 기증받은 모니터는 반납했다.
기술적인 문제의 초점은 습도와 온도였다. 모니터의 운용과 보관에 이상이 없도록 습도와 온도를 유지할 방법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대답은 기계공학과 전자공학 분야 전문가에게서 나왔다. 답변은 명쾌했다. “문제 없다.”
습기를 막는 확실한 방법은 모니터와 컴퓨터를 알루미늄 밀폐형 패키지 안에 넣는 것이었다. 광장전체가 침수되는 상황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리와 패키지 사이엔 고층건물 유리창에 사용하는 개스킷을 끼운다. 고층건물의 유리에 가해지는 압력과 습기의 조건은 광장바닥보다 훨씬 거친 것이므로 기술적인 어려움은 크다고 볼 수 없었다. 유리면의 내부 표면결로 유리와 모니터를 밀착시켜 해결하는 것으로 일단 가닥이 잡혔다.
다음은 온도였다. 겨울은 오히려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모니터에 이상이 생길 수 있는 온도인 영하 20℃ 이하로 기온이 내려간 날은 지난 30년간 서울에서 단 하루도 없었다. 여름의 열축적은 좀더 까다로운 문제로 생각했다. 여름날 밀폐된 자동차 안의 열기를 잘 알기 때문이다.
2000년 서울시가 조성한 원구단공원.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하면서 제헌의식을 올린 곳이지만 역사적 체취는 느껴지지 않는다.
유리의 긁힘도 거론됐다. 유리의 강도는 철보다 높다. 문제는 모래다. 유리보다 강도가 높은 모래가 신발 바닥에 묻어와 유리에 흠집을 낸다. 광장이니 모래는 묻어올 것이고, 유리가 긁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모니터를 켜서 배경이 밝아지면 유리의 흠집이 보이지 않는다. 점점 더 많이 긁혀 흠집이 드러나면 유리를 교체하면 된다. 모니터를 내구재로 보지 않는 만큼 유리를 내구재로 보지 않으면 간단한 문제다.
최초의 당선안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개선안도 속속 등장했다. 우선 무선 네트워크의 등장이다. 당선작은 서버에서 단말 모니터까지 모두 유선 네트워크로 상정했다. 건축가들이 가진 정보통신지식의 한계였다. 그러나 무선네트워크 기술로 2003대의 모니터를 선 하나 없이 연결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땅도 계획했던 것의 절반 깊이만 파도 된다.
다른 하나는 광장에서 커서 조작이 가능해진 것이다. 유리판 하부에 광센서를 달고 이 부분을 발로 가리면 커서가 움직인다. 발로 움직이는 터치패드인 셈. 인터넷의 의미 그대로 양방향 소통이 가능하다. 이것은 광장 운영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광장에서 실시간 투표도 할 수 있고 인터넷 벼룩시장도 열 수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조합되는 새로운 이벤트도 꿈꿀 수 있게 된다.
실시설계 단계에서 보류통보
기술적인 문제는 더 이상 거론되지 않았다. 시청 담당자들도 이 점에 동의했다. 다음은 운영이었다. 현상공모지침의 내용은 광장조성 사업비를 40억원에 맞추고 있었다. 서울시는 광장에 음악분수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제대로 된 음악분수의 디자인과 설치에만 20억~30억원이 든다. 수도꼭지 수준의 노즐을 모아놓아 물줄기가 수직정렬도 되지 않는 음악분수라면 모를까 이곳은 시청앞 광장이다. 40억원 예산에 음악분수까지 요구하는 것은 무리였다.
어찌됐건 현상공모에서는 예산에 맞출 수밖에 없다. 40억원으로 바닥에 돌을 까는 것은 가능했지만 모니터를 깔 수는 없었다.
대신 모니터를 기증받기로 했다. 시청에서 대기업 모니터 제조회사에 문의했다.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는 있어도 기증할 수는 없다는 답신이 왔다. 그 길로 접촉창구가 닫혔다는 것이 서울시의 결론이었다. 당선작이 제시한 조건을 충족시키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때부터 당선작의 아이디어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대안을 찾아보라는 제안도 있었다. 바닥에 수많은 점조명을 설치해 시청의 홈페이지 접속수만큼 무작위로 점멸하는 조명에 의해 광장의 모습이 달라지는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러나 2003년 9월25일 열린 시청앞광장조성위원회의 입장은 단호했다. 당선작은 변형 없이 원안 그대로 실현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니터 기증도 특정 업체에 매달리지 말고 시민 기증을 받자는 제안이 나왔다.
문제는 모니터 기증으로 끝나지 않는다. 모니터를 운영하는 컴퓨터와 서버가 확보돼야 한다. 전례 없는 작업인 만큼 예산추정도 쉽지 않았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토목공사 이외에 필요한 시공예산이 60억원 내외로 좁혀졌다. 물론 여기에는 인건비, 프로그램개발비 등을 포함한 8억원 정도의 연간 운영경비가 추가돼야 한다.
모니터는 민자유치가 유일한 방법이라는 데 당선자나 서울시의 입장이 같았다. 대신 투자회사는 광장을 운용하면서 생기는 수입으로 사업비를 회수할 수 있다. ‘빛의 광장’은 유지관리를 필요로 한다. 부서지거나 고장난 곳이 생기면 손보고 청소도 해야 한다. 당선작은 처음부터 광장 모니터의 유상임대를 제안했다.
임대료는 초고속통신망 사용료, 휴대전화 사용료에 준하는 월 4만원 선에서 결정한다. 모니터 개수가 2000개라면 임대수입이 연 10억원에 이른다. 팬클럽, 동창회 등의 모임에서 임대에 대해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임대 수입으로도 부족한 부분은 자동판매기 수입과 서비스 스테이션 광고 유치 등으로 충당할 수 있다. 이런 것을 항목별로 예측해서 제시했다.
5월1일 ‘하이서울축제’가 열릴 예정인 시청앞 잔디광장 조감도.
하지만 마냥 옥신각신할 일이 아니었다. 시청 담당자들은 기술적인 문제에서 일단 가닥이 잡힌 것 같으니 우선 실시설계계약을 체결하고 작업을 진행하자고 했다. 시간이 없으니 지하장애물부터 확인하고 조속히 시행에 들어가자고 했다. 드디어 작업이 본궤도에 오르는 듯했다. 12월 중순의 상황이다.
‘하이서울’에 맞춰 임시광장 급조
2003년 12월24일. 오후 4시에 시청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시장보좌관회의가 열렸다고 했다. 5월1일부터 개최되는 하이서울축제에 맞춰 임시로 광장을 조성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선작은 보류결정이 났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임시로 광장을 조성한다고만 했지 앞으로 당선작을 어떻게 할지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다. 결정되는 대로 공문을 보내라고 요구했으나 끝내 아무 대답이 없었다.
최종결정을 내렸다는 그 회의에 당선자는 없었다. 시청앞광장조성위원회의 그 누구도 참석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현상설계공모전 심사위원 중에도 참석했다는 이가 없다. 회의의 내용과 진행상황은 공개되지 않았다. 몇 개월에 거쳐 실무자들과 의논한 문제해결 방안들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대신 시청앞을 ‘잔디광장’으로 조성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1월19일 설계발주까지 했다. 2월11일, 이틀 뒤 시청앞광장조성위원회가 열리니 참석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공교롭게도 전국 건축과 대학생들이 모여드는 공모전 심사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는 날이라 회의에 갈 수 없었다. 그날 회의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가고 어떤 결론이 났는지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했다.
2월23일. 다시 조성위원회가 열렸다. 이번에는 직접 기술적인 문제, 운영상의 문제에 관한 대안을 다시 설명했다. 유리 샘플과 모니터 패키지 샘플도 제시했다. 서로 벽을 향해 이야기하듯 아무런 결론 없이 회의는 끝났다. 아니, 결론은 이미 나 있었다. 회의 다음날 경찰청과 교통협의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대대적인 광고가 시작되었다. 5월1일, 기다리던 ‘잔디광장’이 시민에게 온다고.
당선작 발표 이후 시청앞광장조성위원회의 입장은 줄곧 단호했다. 당선작을 원안 그대로 실현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빨리 실시설계계약을 체결해 남은 문제들을 해결하고 ‘빛의 광장’을 조성해야 한다고 했다. 2월23일 회의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지난해 하이서울축제도 자동차 통행만 막고 진행했는데 올해는 굳이 잔디를 깔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까지 나왔다.
5월1일 시작되는 하이서울축제를 광장의 준공이 아닌 기공의 순간으로 잡자는 의견도 있었다. 당선작은 무력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뚜렷했다. 이미 당선자가 아닌 제3자와 실시설계계약을 했고 기공식 직전 열린 추진위원회에 시청이 요구한 것은 거수기였다.
2000년 서울시민의 날에 맞춰 서둘러 조성된 원구단공원의 악몽은 이렇게 되풀이되고 있었다. 우선 잔디를 깔아놓겠다고 한다. 그리고 여건이 조성되면 당선작을 실행한다는 것이다. 그날이 올 거라고 믿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날이 저물고 해가 바뀌면 언제 그런 계획안이 있었느냐고 되묻는 시기가 올 것이다. 잔디광장을 들어내고 당선작을 실행한다고 하면 시민의 혈세를 낭비한다는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그 준엄한 시민의 의사를 존중하여 사업은 추진되지 않을 것이다. 당선자들은 여건이 조성될 그 때까지 이 계획안을 하염없이 붙들고 있어도 좋을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잔디광장’을 설계한 곳에서는 당선작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단 한번도 묻지 않았다. 광장의 지하에는 지하철이 지나고 잡다한 구조물이 엉켜 있다. 광장 설계에는 이 지하구조물을 옮기는 작업이 포함된다.
당선작의 실현의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당선작의 내용을 감안한 ‘잔디광장’이 설계돼야 한다. 그러나 서울시는 그런 일에 관심이 없다. 5월1일에만 맞추면 된다는 식이다. ‘잔디광장’은 컵 속에 들어 있는 달걀 모양이라고 한다. 이 사회, 이 광장이 컵이나 달걀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를 일이다. 시청에서는 이 자랑스런 ‘잔디광장’의 명칭공모에 들어갔다.
당선작은 3곳의 학회에서 발표됐다. 계획안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은 전문가들은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종종 에펠탑에 비교해 에펠탑도 건립 당시에는 논란거리였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에펠은 그 구조물을 설계한 사람의 이름이다. 그 나라는 인간의 가치를 중요시한다. 통일독일에서도 국회의사당 준공식의 하이라이트는 건축가가 국회의장에게 열쇠를 넘겨주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고위공무원들이 줄서서 테이프 자르고 사진촬영하는 순간이 하이라이트다.
세계의 건축가들이 프랑스 파리를 주목하던 미테랑 대통령 시절, 루브르박물관에 유리피라미드를 만들겠다는 건축가의 계획안이 발표됐다. 그리고 지어졌다. 한국에서라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질문에 대답하느라 바빴을 것이다. 피라미드는 이집트 것 아니냐, 왕이 지내던 전통공간에 첨단유리구조물이 웬 말이냐, 그 유리는 어떻게 닦느냐, 유리가 깨지면 어떻게 갈아끼우느냐.
가장 투명한 구조물을 원하는 건축가의 의도에 맞춰 유리회사에서는 역사상 가장 투명도가 높은 유리를 개발했다. 엔지니어는 유리를 끼우는 방식에서도 이전의 것을 근본적으로 뒤집는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냈다. 이 괴상한 구조물의 유리를 닦기 위해 로봇도 만들어졌다. 이렇게 개발된 새 재료와 기술은 외국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다.
서울시청앞 광장은 야심이다. 80년 가까이 고착된 바퀴들의 흐름을 바꾸면서 시행하는 야심만만한 계획이다. 서울의 한복판에서 자행되던 자동차와 보행자의 기형적인 불평등구조를 바꾸겠다는 야심이다.
그 야심에 동의했기에 우리는 현상공모에 참여했다. 도시에 대한 사랑이 없는 야심은 공허하고 위험하다. 설계의 내용은 당연히 그 야심에 걸맞은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모습을 여기에 새기고자 했다. 그러나 이 현상공모가 고위층 인사들의 사진 찍는 배경에 불과했다면 우리는 속은 것이다.
도시는 상상력이다. 현재를 재단하고 미래를 예측하여 우리가 사는 방식을 제안해나가는 상상력이 도시를 만든다. 그것이 도시의 가치다. 그러기에 시대의 야심과 상상력이 보이지 않는 도시는 지리하고 잡다하고 음울하기만 하다. 정치적 야심이 도시에 대한 사랑보다 앞서는 도시는 처절한 한판 난투장일 따름이다. 그 승부의 뒤켠에는 찢어진 현수막과 헛되이 흘린 땀방울만 너저분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건축은 시대를 닮는다”
당선작 ‘빛의 광장’이 완전한 제안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전례 없는 제안인 만큼 풀어야 할 숙제도 분명 많다. 그럼에도 현상공모전 심사위원들은 이 제안에 동의했다. 시민을 대표하는 심사위원들의 판단이었음에도 서울시는 이 결정을 무시했다.
당선에 주어지는 부상이 실시설계권이다. 당선작을 실현시킨다는 약속이다. 실시설계계약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연히 한푼의 설계비도 작업비도 지급되지 않았다. 모든 작업비는 당선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중요하지 않으나 현상설계 당선자에게 관례적으로 수여되는 당선증이나 축하패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이제 조성되는 광장은 ‘빛의 광장’이 아닌 ‘잔디광장’이다.
‘빛의 광장’은 두어 달 작업하여 우연히 얻어낸 만화가 아니다. 몇 년 동안 복개된 개천의 흔적을 헤집고 다니고 무너진 성곽을 따라 돌며 고민해서 얻은 가치관의 결과물이다. 때로는 북한산에서, 때로는 대한문 앞에서 이 도시를 들여다보며 생각하여 얻은 내용이 모인 것이다.
그동안 칼럼이며 책에서 쓴 내용이 부끄럽지 않은지 스스로 반문하며 얻은 대답이다. 내가 안고 살아가야 할 도시여서, 내가 알고 있어야 할 도시의 모습이어서, 다음 세대를 위해 해야 할 작업이 생기면 그때 필요할 배경지식들이어서 열심히 돌아다닌 발걸음이 모여서 이루어진 결과물이다.
그 여름 원구단을 바라보던 건축가의 모습을 그 자리에서 다시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마음속에 담겨 있던 이 도시에 대한 사랑이 이제 회한과 혐오로 바뀔 것이 두렵다.
뒤에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그의 이야기를 여기 인용하면서 이 글을 맺는다. “모든 시대의 건축가들은 그 시대의 모습을 파리에 남겨놓을 책임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