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호

자손 번성시키는 할머니의 힘

  • 글: 이영완 동아사이언스 기자 puset@donga.com

    입력2004-03-30 10: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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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손 번성시키는 할머니의 힘
    어린 시절 할머니는 뭐든 들어주는 완벽한 내 편이었다. 할머니는 어머니의 회초리를 막아주는 사람, 늘 먹을 것을 챙겨주는 사람, 배탈이 나면 약손으로 치료해주던 사람이었다. 최근 할머니의 힘이 위대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국 셰필드대 연구자들은 200년 동안 여성의 가족사를 조사해 할머니가 자손을 번창시키는 데 결정적인 노릇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할머니가 있는 가족에서는 자식들이 더 많은 손자를 낳고 더 건강하게 자라났다는 것.

    인간의 경우 여성은 70세 이상 장수할 수 있음에도 50세 전후에 폐경이 돼 생식능력을 완전히 상실한다. 반면 동물세계에서는 수컷이든 암컷이든 죽을 때까지 생식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제시된 것이 바로 ‘할머니 가설(grandmother hypothesis)’이다.

    ‘할머니 가설’은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더 오랫동안 부모의 신세를 진다는 사실과 여성은 나이가 들수록 아이를 낳다가 죽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데 바탕을 두고 있다. 즉 할머니는 아이를 제대로 낳기도 힘들 뿐 아니라 설사 낳았다 하더라도 그 아이가 보살핌이 필요 없는 나이까지 살아 있기가 힘들다. 그러므로 자신이 직접 아이를 낳기보다는 이미 낳은 자식들이나 손자들을 보살피는 것이 같은 유전자를 가진 후손의 수를 늘리는 데 더 효과적이란 것.

    셰필드대의 비르피 루마나 박사는 ‘할머니 가설’에 입각해 18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동안 캐나다와 핀란드에서 살았던 여성 3000여명을 대상으로 가족사를 조사했다. 과학전문지 ‘네이처’ 3월11일자에 발표된 조사결과에 따르면 여성이 폐경 이후 오래 살면 살수록 아들딸의 자식농사가 더 성공적이었다. 할머니가 오래 산 가족에서는 아들딸들이 더 빨리 가족을 이뤘으며 그들이 낳은 자식들, 즉 할머니의 손자들의 터울도 짧았다. 그리고 손자들이 탈 없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비율도 높았다.



    비르피 박사는 “여성은 폐경 이후 10년마다 평균적으로 2명의 손자를 더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그 이유가 “할머니들이 자식들에게 아이들을 키우는 경험을 전달하고 직접 손자들의 양육에 도움을 주므로 자식들이 아이를 갖는 데 부담을 덜 갖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사 대상이 된 할머니들은 나이나 사회경제적 지위, 문화면에서 다양했다. 이는 조사결과가 사회문화적인 요인보다는 생물학적 요인에 의한 것임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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