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열린우리당은 당사를 서울 영등포 농협공판장으로 옮겼다. 부정부패 없는 정치, 서민 정치를 실현하겠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그 내막을 들여다보니 그렇지도 않다. 새 당사에서 ‘특혜 시비’와 ‘이미지 조작’의 냄새가 풍겼다. 주변 주민들은 “헐고 공원을 지어야 할 곳에 입주해 오히려 서민들의 생활개선을 방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열린우리당이 당사로 사용중인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농협 공판장.
열린우리당은 “허름한 공판장으로의 당사 이전은 불법자금 유입에 대한 사과와 자기희생, 저비용 정치, 서민정치의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언론은 열린우리당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열린우리당은 공판장 소유주인 농협중앙회와 임대차계약을 맺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당사 이전 과정에서 ‘특혜 시비’ 잡음이 들리고 있다. 일부 언론보도와 달리, 열린우리당은 농협측과 임대차계약을 맺지 않았으며 농협측에 계약금을 한푼도 주지 않은 상태에서 입주해 건물을 사용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열린우리당이 입주한 문래동 당사는 농협중앙회 영등포 청과물공판장으로 2004년 2월까지 사용되다가 공판장이 서울 강서구로 이전하면서 비어 있던 건물이다. 문래동 공판장의 주차관리 사업을 맡고 있는 W사 관계자는 “열린우리당 관계자들이 이 건물에 입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래서 건물주인 농협측에 연결해줬다”고 말했다.
돈 한푼 안 내고 입주 “특혜의혹”
농협 관계자는 “문래동 공판장의 면적이 얼마나 되는지도 나오지 않았고 주변 시세도 잘 모르는 상태여서 적정 임대료를 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따라서 조속히 임대차계약을 맺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은 공판장 내부를 수리해 하루라도 빨리 입주하고 싶다고 수차례 요구해왔다. 그래서 임대계약을 체결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열린우리당이 건물을 수리해 입주하도록 허락했다”고 밝혔다.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면 계약금이라도 받았나’라는 질문에 농협 관계자는 “계약금도 받지 않았다. 3월14일 현재 열린우리당과 농협측은 어떠한 계약도 맺지 않았다. 우리당은 농협 측에 한푼도 내지 않은 상태에서 농협 소유 공판장을 수리해 입주했다”고 밝혔다. 3월13일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공판장당사에 입주했다.
농협 관계자는 “열린우리당측이 시급히 입주해야 한다고 해서 보증금-월세 책정 등 임대차계약 체결은 입주 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과 맺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부동산 업계에선 특혜가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월세의 경우 세입자와 건물주가 보증금과 월세 금액을 합의한 뒤 세입자가 보증금을 건물주에 지급한 다음 입주하는 게 상식이다. 세입자 사정이 급하다는 이유로 보증금-월세 합의도 않고, 더구나 계약서 한 장 안 쓰고, 계약금도 받지 않은 채 건물 입주를 허용하는 건물주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세입자가 입주한 뒤에 보증금-월세 계약을 맺으면 계약 내용이 세입자에게 유리한 쪽으로 흐르기 쉽다. 이번 건은 부동산 거래 상식으론 이해하기 어렵다. 건물주가 세입자에게 사실상 특혜를 준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땅값만 150억대 요지”
열린우리당측은 문래동 공판장 건물 2~3층과 1층 일부, 공판장내 주차장 대부분을 실질적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열린우리당측은 건물 면적이 600평 정도라고 밝혔으나 건물내부 공사를 맡은 삼성그룹 계열 삼성홈E&C 관계자는 “열린우리당은 1000평 정도를 사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측은 “허름한 공판장”이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이 공판장의 부동산 가치는 상당히 큰 편이다. 농협 측에 따르면 공판장 부지는 1500여평이다. 문래동 주변 부동산중개업소에 따르면 농협 공판장은 상권의 요지로, 땅값만 150억원대(평당 1000만원)를 호가한다. 문래동 공판장과 경남아파트단지 사이 도로변 상가는 공판장 부지보다 위치가 나쁜데, 이들 상가의 월세도 평당 10만원에 이른다.
농협측은 “열린우리당에 편의를 봐준 것일 뿐 나중에 적정 수준에서 임대차계약을 할 것이므로 특혜가 아니다. 아무 문제 될 것 없는 정상적 임대”라고 반박했다.
열린우리당이 굳이 공판장을 당사로 택한 이유는 당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서다. 누추한 곳에서 ‘저비용 정치’를 실천하는 모습을 TV를 통해 국민에게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취지를 십분 이해하더라도 공판장으로의 당사 이전이 지나치게 작위적이어서 ‘이미지 조작’ 논란을 부르고 있다.
열린우리당 당사가 된 공판장 외부는 1970년대 지어진 건물 그대로여서 누추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측은 공판장 내부를 대대적으로 공사를 벌여 말끔히 수리했다. 공판장 내부는 서울 여느 사무실 못지않게 깔끔하게 단장돼 있다.
공사를 맡은 삼성홈E&C 관계자는 “전등, 배선, 유리, 벽, 도색, 통신, 기타 편의시설 등 모두 새로 공사했으며 공사비는 사후정산해 봐야 정확한 금액을 알겠지만 사후정산해 봐야 정확한 금액을 알겠지만 2억 원 정도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CI업체가 맡은 인테리어 비용은 별도”라고 한다.
“도심흉물, 철거도 못 하게 해”
열린우리당은 당사 이전에 대해 “재래시장 안으로 직접 들어가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홍보했다. 실제로 농협 공판장 맞은편엔 청과물시장이 있다.
그러나 공판장 주변 주민들은 열린우리당의 공판장 입주에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서민 속으로’ 들어가는 ‘이미지’를 홍보하기 위해 오히려 서민의 주거환경 개선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판장 주변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신문기사 스크랩’을 내보이면서 열린우리당에 불만을 터뜨렸다.
“농협 공판장이 운영되는 동안 주변 주민들은 청과물이 썩는 악취로 큰 고통을 받아왔다. TV 고발프로그램에도 소개됐다. 지금의 낡은 공판장 건물은 지역발전을 저해하고 도시 미관을 크게 해치는 흉물이다. 주민들은 하루빨리 이 지긋지긋한 건물이 철거되기를 원한다. 이 건물을 헐고 대형 할인점, 주상복합 등 현대식 상권으로 재개발된다는 안도 나오고 있어 주민들의 기대가 컸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열린우리당이 입주해 공판장 건물 철거가 무기한 연기돼 실망하는 사람이 많다.”
공판장 주변 모 회사 간부는 “‘영등포구청이 공판장 부지를 사들인 뒤 공판장 건물을 헐고 공원 조성을 검토중’이라는 얘기를 공무원에게 직접 들었다. 공원은 이 지역 주민에겐 정말 필요한 시설이다. 열린우리당이 왜 하필 도심의 흉물에 입주해 지역발전에 장애가 되느냐”고 말했다. 농협 관계자도 “열린우리당이 입주하지 않았다면 농협은 공판장 부지를 팔거나 재개발을 추진했을 것이다. 구청이 부지 매입을 검토한다는 얘기는 우리도 들었다”고 말했다.
농협 공판장은 애초부터 사무공간으로 쓰기엔 적당치 않은 건물이므로 열린우리당 사람들도 많은 불편을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