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호

‘줄기세포 추출’ 황우석 교수와의 심층 대담

“남녀 유전자 섞이지 않은 복제배아는 생명체 아니다”

  • 글: 김훈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wolfkim@donga.com

    입력2004-03-29 18:5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인간복제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황우석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에게 ‘생명윤리관’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복제된 배아도 생명체이므로 줄기세포 추출은 생명체 손상이 아니냐는 것이 요지다. 황 교수와 김훈기 ‘동아사이언스’ 기자의 대담은 3시간 동안 긴장감 있게 진행됐다(편집자).
    ‘줄기세포 추출’ 황우석 교수와의 심층 대담

    지난 2월말 김훈기 기자와 대담하고 있는 황우석 서울대 교수.

    황우석(黃禹錫·52)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를 만날 때면 늘 부담감이 앞선다. 국내에서 황 교수만큼 매스컴의 조명을 받은 과학자는 없을 것이다. 그는 ‘복제’라는 단어를 온 국민에게 인식시킨 주인공이다. 특히 지난 2월12일 미국에서 한 기자회견은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미국의 과학전문지 ‘사이언스’를 발행하는 미국과학진흥회(AAAS)가 마련한 자리에서 세계 최초로 복제된 인간 배아로부터 줄기세포를 얻는 데 성공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것.

    분명 황 교수는 복제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자다. 세계적 전문가의 연구내용을 쉽게 풀어내는 일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하지만 부담감은 이뿐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의 연구가 전통적인 생명관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는 것이다.

    생명체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란(배아, 胚芽)이 형성되면서 시작된다. 그런데 복제생명체는 어떤가. 정자와 난자 대신 보통의 세포(체세포)와 핵이 제거된 난자만 있으면 된다. 이 두 가지를 결합시키면 감쪽같이 체세포와 동일체인 배아가 만들어진다.

    1996년 태어난 복제양 돌리에게는 어미의 젖세포가 이용됐고, 황 교수가 1999년 만든 복제소 영롱이의 경우는 자궁세포가 동원됐다. 여기서 ‘이 복제동물은 생명체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아마도 어리석은 얘기로 들릴 것이다. 매스컴에서 한 번이라도 돌리나 영롱이를 본 사람이라면 이들이 생명체가 아니라고 의심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제인간 역시 분명 ‘인간’이다. 한 남성이 자신의 세포 하나를 떼어내 핵이 제거된 다른 여성의 난자와 결합시켜 자신과 똑같은 아기가 태어난다면 기분이 어떨까.

    최근 황 교수가 성과를 거둔 인간배아복제 연구도 알쏭달쏭한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복제는 하되 수정 후 4~5일까지만 키우고 이로부터 몸의 각종 장기로 자랄 수 있다는 줄기세포(stem cell)를 얻은 실험이었다. 이론적으로는 이 줄기세포를 환자의 손상된 장기에 이식하면 건강한 세포가 자라나 병이 치유될 수 있다.



    “복제된 배아 입장에서 본다면…”

    이 실험을 복제된 배아의 입장에서 보자. 줄기세포는 배아로부터 얻어진다. 만일 복제된 배아가 생명체라면 이 실험은 생명을 손상시키는 행위가 된다. 이런 논란 때문에 황 교수의 ‘연구발표’ 뒤에는 항상 시민·종교 단체들의 ‘반대성명’이 이어진다. 황 교수의 연구 성과를 취재할 때 부담감이 따르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2월 말 오전 9시 황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과연 황 교수는 생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김훈기 : 지난달 미국에서 발표한 내용은 인간배아복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복제’와 ‘인간’이라는 말이 들어 있어서인지 교수님 실험소식을 접했을 때 곧바로 복제인간이 떠올랐습니다. 이번 연구논문은 사실상 복제인간을 만들 수 있는 설계도인 셈인데요. 복제된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키고 10개월이 지나면 복제인간이 탄생할 테니까요.

    황우석 : 맞습니다. 하지만 복제인간은 절대 태어나서도, 태어나도록 시도해서도 안 됩니다.

    김 : 왜 그렇습니까. 인간복제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불임부부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또 마치 일란성 쌍둥이처럼 어버이 중 한 명과 자식이 단지 유전자가 동일한 생명체라고 주장합니다. 그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쌍둥이일 뿐이라는 것이죠.

    황 : 현대인의 15%가 불임이라고 합니다. 이를 해결하는 마지막 수단이 복제라고 주장하는 분들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닙니다만, 무엇보다 복제기술 자체가 매우 불안정합니다.

    일단 유산이나 사산의 확률이 엄청나게 높아요. 대리모만 해도 이상하게 양수과다증 등으로 인해 생명에 위협을 받지 않습니까. 태어났다 해도 내부 장기에 치명적인 결함이 발생해요. 심장벽에 구멍이 생긴다든지, 허파가 일부만 생성된다든지, 뇌가 물로 가득 찬다든지…. 이렇게 불안한 기술로 어떻게 인간을 탄생시킬 수 있겠습니까.

    김 : 그렇다면 안전성이 확보되면 복제인간이 탄생해도 괜찮다는 이야기인가요?

    황 : 아닙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반대이유가 있습니다. 생명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전자를 절반씩 얻어야 ‘진정한’ 생명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신성(神性)’이라 봅니다.

    하지만 복제인간은 다릅니다. 아버지든 어머니든 어른 한 명의 세포를 떼어내고, 이를 핵이 제거된 난자와 결합시켜 생긴 것이죠. 유전자의 99%가 동일한 자손이 탄생한 셈입니다. 이는 신성을 벗어난 행위입니다.

    황 교수는 불교신자다. 따라서 여기에서 표현된 ‘신성’은 특정 종교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다.

    김 : 유전자가 절반씩 섞인 게 아니라면 진정한 생명체가 아니라는 말씀인데요. 그렇다면 이번에 미국에서 발표하신 실험과 관련된 복제 배아 역시 생명체라 볼 수 없겠군요.

    황 : 그렇습니다.

    김 : 하지만 복제된 배아라도 자궁에 착상되면 개체로 태어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진정한’ 생명체는 아니더라도 복제된 배아 역시 생명체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여기서 줄기세포를 얻으려면 불가피하게 배아를 훼손시켜야 할 텐데 이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요.

    황 : 목적하는 바에 따라 조금 다른 눈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배아복제는 난치병 치료에 필요한 줄기세포를 얻는 실험입니다. 만일 환자 자신의 체세포를 이용해 배아를 복제하고, 이로부터 줄기세포를 얻는다면 면역거부반응이 없을 것입니다. 이 점이 바로 인간배아복제의 최대 장점이거든요. 또 이때 사용된 ‘핵이 제거된 난자’는 단지 배양기일 뿐이에요. 복제된 인간배아는 이 배양기에서 체세포를 길러서 얻은 존재입니다. 즉 일반적인 배아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신성한 존재가 아닙니다.

    하지만 인간의 난자를 사용한다는 면에서 윤리적 부담을 안고 있는 게 사실이에요.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인공세포질 연구를 수행하려 합니다. 줄기세포를 분화시켜 배양기(핵이 제거된 난자)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세포를 얻으려는 것이죠.

    줄기세포를 얻는 방법에는 황 교수가 수행한 인간배아복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5년 이상 냉동보관돼 폐기될 처지에 놓인 배아, 탯줄혈액(제대혈), 골수와 같은 성체의 조직에서도 얻을 수 있다. 특히 환자(성체)로부터 얻은 줄기세포는 인간배아복제의 경우처럼 면역거부반응을 없앨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모든 연구가 아직은 초기단계라 임상실험까지는 최소한 10년이 걸린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황 교수는 평소 줄기세포를 얻을 현실적인 가능성이나 효율성을 따져볼 때 인간배아복제가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해왔다. 황 교수는 이번 실험에서 줄기세포를 얻기 위해 16명의 자원 여성으로부터 난자 242개를 제공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호르몬제를 투여해 과배란을 유도한 결과였다(보통 여성은 한 달에 한 개의 난자를 배출한다). 또 난자 채취가 이뤄진 한양대 의대에서 병원임상심사위원회(IRB)의 윤리적 검토과정을 거쳤다고 연구논문에 명시했다.

    김 : 여성으로부터 실험용 난자를 얻기 위해서는 비록 자원자라고 할지라도 실험내용을 충분히 알려줘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인이 이런 전문적인 실험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되는데요.

    황 :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 이번 실험 내용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난치병 치료를 위한 실험이라면 기꺼이 난자를 제공하겠다는 입장이었어요. 사실 우리 연구진도 이 문제가 민감한 사안이라고 보고 난자를 기증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정신과적 테스트까지 실시했습니다. 이런 과정이 완벽하게 진행되지 못하면 연구진의 사회적 생명이 끝장날 수도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복제는 생태계의 교란”

    복제된 인간, 그리고 복제된 인간의 배아는 진정한 생명체가 아니라는 황 교수의 설명을 듣다 문득 복제동물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황 교수는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바로 그날 새벽 2시에 ‘가슴 아픈 실패의 경험’이 있었다고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난해 12월 황 교수는 광우병에 걸리지 않도록 만든 복제소를 언론에 공개해 파장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 소 가운데 갑자기 의식불명으로 쓰러진 개체가 생겼다는 것이다. 5개월이나 자랐기 때문에 정상적인 소라면 자연사할 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김 : 가슴이 아픈 이유는 그것이 하나의 생명이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교수님이 말씀하신 ‘신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복제동물도 복제인간처럼 ‘진정한’ 생명의 자격이 없다고 봐야 할 텐데요.

    황 : 복제동물에 대해서는 인간과 다른 가치 기준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소나 돼지는 고기로서의 가치가 있고 개는 반려동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량돼지를 복제하고 애완견을 복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연스런 생태적 철학이라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 복제동물을 만드는 일은 바로 인간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줄기세포 추출’ 황우석 교수와의 심층 대담

    2002년 한 학술대회에서 황우석 교수가 생명복제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 : 생태적 철학이라 표현하셨는데, 사실 생태학자들은 동물복제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합니다. 유전적으로 거의 동일한 개체들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광우병에 걸리지 않는 소를 복제했다면 분명히 이를 전국적으로 보급하려 하겠지요.

    하지만 광우병이 아닌 다른 전염병이 돌기라도 한다면 소들이 한번에 몰살당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유전적으로 거의 동일한 개체들이기 때문이죠. 동일한 종(種)이라 할지라도 유전적으로 다양해야 특정 전염병을 견뎌내는 개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생물 진화의 자연스런 흐름이라는 지적입니다.

    그렇다면 복제동물은 생태적 철학의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생명체가 아닙니까. 또 생태계를 하나의 생명체로 본다면 복제동물은 그 질서를 교란시키는 이질적인 존재가 아닐까요.

    황 : 타당한 지적입니다. 금 문제가 바로 우리 연구진이 고뇌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복제동물의 출현은 분명히 생태교란을 일으킬 수 있어요.

    저는 이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침 오늘 새벽에 인간에게 장기를 이식할 목적으로 복제한 돼지가 태어났어요. 이런 돼지를 만들려면 체세포의 자격조건이 무척 까다롭습니다. 무균상태여야 하고, 이식했을 때 사람에게 면역거부반응이 나타나지 않아야 하며, 사람과 체중이 비슷한 60~80kg의 미니돼지에서 얻은 세포여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는 이런 세포를 8개 종류만 확보한 상태예요. 그래서 유전적으로 좀더 다양한 개체를 복제하기 위해 적어도 수십 종류의 체세포를 얻으려고 노력중입니다.

    김 : 이번에는 사람과 동물이 섞인 ‘키메라’ 배아에 대해 얘기해보죠. 교수님의 실험에 사용된 난자는 분명 인간의 것이었죠. 그런데 1998년 미국의 생명공학회사 ACT의 시벨리 박사가 소 난자에 인간의 체세포를 결합시키는 실험을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반인반수(半人半獸)’ ‘키메라’ 같은 단어가 대뜸 떠오르면서 비윤리적인 실험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작 시벨리 박사는 이 실험이 인간의 난자를 사용한 것보다 더 윤리적이라는 입장이더군요.

    황 : 시벨리 박사의 실험 목적 역시 줄기세포를 얻고자 하는 것이었어요. 소의 난자는 핵이 제거된 상태이기 때문에 배양기 역할만 하는 것이죠. 이때 만들어진 배아는 자궁에 착상시킨다 해도 절대로 개체로 자랄 수 없기 때문에 키메라나 반인반수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입니다. 굳이 소의 난자를 이용한 것은 인간의 난자가 훨씬 소중하기 때문이지요.

    우리 연구진도 여러 번 시도한 실험입니다. 그 결과 수백 개의 배아를 얻었지만 줄기세포는 한 번도 확보할 수 없었어요. 지금은 ‘이렇게 안 되는 걸 보니 아마도 하늘이 하지 말라는 뜻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포기한 상태입니다. 만일 이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게 된다면 인간의 난자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윤리적인 갈등은 덜 일어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소의 난자 세포질에 존재하는 1%의 유전자 문제가 극복됐다는 전제에서죠.

    세포질 속의 1% 유전자

    일반적으로 세포는 핵과 세포질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핵이 99%의 유전물질을 갖고 있고, 나머지 1%는 세포질에 있는 미토콘드리아라는 소기관에 존재한다. 따라서 복제에 사용되는 ‘핵이 제거된 난자’는 1%의 유전물질만을 가질 뿐이다. 나머지 99%는 체세포를 제공한 어버이 중 하나로부터 받는 것이다.

    만일 핵이 제거된 소의 난자와 인간의 체세포를 결합시켜 복제배아를 만든다면, 난자에 존재하는 1%의 소 유전자가 인간의 99% 유전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이로부터 줄기세포를 얻는다 해도 제대로 작동할지는 미지수다. 황 교수가 “1%의 유전자 문제가 극복됐다는 전제”라고 한 것은 바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김 : 교수님 연구실에서는 배아가 아닌 개체 수준에서도 이종간(異種間) 결합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오늘 새벽에 태어났다는 복제돼지가 대표적인 사례일 텐데요. 심장이나 간 등 인체에 이식할 장기를 기다리는 환자들을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주최로 ‘돼지장기 인간이식, 무엇이 문제인가-이종간 이식의 연구 현황과 문제점’이란 포럼이 열렸습니다. 여기서 한 발표자가 서구에서는 돼지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데 대해 안전성이나 윤리적 측면에서 문제가 많아 상당히 신중하게 바라보고 있다고 전하더군요.

    그 가운데 하나가 돼지가 갖고 있는 고유의 바이러스(PERV) 문제입니다. 그냥 바이러스가 아니라 돼지 유전자 안에 내재한 특이한 종류죠. 즉 평소에는 유전자 안에 묻혀 있다가 어느 순간 바이러스로 활동을 합니다. 현재까지 이런 유전자가 45개 발견됐다는데요. 1990년대 말에는 이 바이러스가 사람의 세포를 감염시킨다는 사실도 밝혀졌다고 합니다.

    아무리 무균 상태의 돼지로부터 세포를 얻는다 해도 유전자에 내재한 바이러스는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요. 당시 발표자는 만일 돼지로부터 장기를 이식받을 경우 그 환자의 몸에서 이 바이러스가 활동을 시작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런 경우 그 환자는 보균자가 돼버려 사회에서 격리돼야 하는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황 : PERV는 장기이식용 복제돼지를 만드는 전체 과정에서 국부적인 문제일 뿐입니다. 지금 과학기술의 추세로 볼 때 해결 가능하다고 봅니다. 즉 PERV가 없는 세포를 찾아내고 이를 이용해 복제돼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 대목에서 황 교수의 어조는 다소 격앙되었다. 황 교수는 자신의 실험에 대해 윤리적 문제제기가 많다는 사실을 평소 인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답변으로 난치병 환자를 언급하는 대목에서 곧잘 목소리가 커진다.

    황 : 다만 저는 이런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난치병 환자의 건강상태에 대해서 가장 걱정하는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바로 의사입니다. 한 달이면 몇 명씩 떠나보내는 의사들의 고뇌를 알아주세요.

    최근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 연구진의 실험내용을 알고 어떤 분이 간곡하게 자신의 자식 얘기를 하면서 시술을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하지만 연구진에 포함된 의사들은 불과 1000분의 1의 위험 가능성 때문에 장기이식 실험이 불가하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한 거죠. 이들의 숭고하고 성실한 자세에 비하면 비판자들은 오히려 ‘공허한 철학’을 내세우고 있는 게 아닐까요.

    “난치병 치료의 고뇌도 고려해야”

    김 :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과학자들이 어떤 실험을 수행하고 있는지 일반인은 전혀 모르는 것도 현실입니다. 막연히 인류복지를 위해 연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괜찮겠지만, 일반인의 윤리 의식에 혼란을 주는 실험이라면 당연히 문제제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환자의 입장도 중요하겠지만, 환자 처지가 아니면 얘기할 자격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황 : 그래서 저는 시민·종교 단체들이 실험의 기획 단계부터 관여해주기를 오히려 바라고 있습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연구는 경쟁입니다. 노출될 경우 연구성과의 가치가 떨어집니다.

    연구 과정과 결과가 알려지면 경쟁상대에게 추월당할 위험성이 있어요. 연구의 보안성만 지켜준다면, 모두 모시고 고견을 듣고 싶어요. 저도 장막 뒤에 숨어서 어느 날 깜짝쇼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황 교수의 이 제안은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렵다. 시민·종교 단체 대표는 말 그대로 시민과 종교인의 대표다. 예를 들어 윤리적으로 새로운 사안이 발생하면 대표는 회원들을 소집해 의견을 수렴하고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그런데 연구내용에 대해 보안을 유지한 채 혼자서 윤리적인 판정을 내려야 한다면 과연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수 있을까.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황 교수는 국민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스타 과학자’의 지위에 올라 있다. 조만간 ‘국민 과학자’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이젠 저를 잊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연구에만 매진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매스컴과의 인터뷰도 가급적 사양하고 있어요.”

    요즘 가장 고민스러운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황 교수의 답변이었다.그러나 우리에게 ‘복제’라는 낯선 용어를 제시하고 사회 전체에 ‘생명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 황 교수의 존재는 쉽게 잊혀질 수 없을 것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