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거리 사러 슈퍼마켓에 간 김에 가전제품과 속옷을 고르고 자동차보험료 내고 이동통신 서비스에 가입한다. 영국 1위의 유통업체인 테스코에서는 이 모든 일이 가능하다. 1920년대 동네 식료품 가게에서 출발한 테스코는 ‘Every Little Helps(고객이 원하는 모든 것을 제공)’ 전략으로 세계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Every Little Helps’를 모토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국 최대 유통업체 테스코.
영국계 유통업체인 테스코와 삼성이 1999년 합작한 삼성테스코사(社)의 할인업체 홈플러스는 2001년 업계 최단기간 연매출 1조원을 기록하더니 2002년에는 연매출 2조4500억원으로 할인점 업계 2위로 급부상했다. 지난해에는 3조2000억원의 매출을 올려 재계 50위권으로 진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점포당 매출액으로 따지면 홈플러스는 이미 업계 1위인 이마트를 앞지른 상태다.
홈플러스의 지분 89%를 보유하고 있는 테스코는 영국 내 최대 유통업체. 영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유통업체간 경쟁이 치열한데, 테스코는 세인즈베리 등 유력한 경쟁업체를 물리치고 1995년부터 업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또한 1993년 이후부터는 유럽과 아시아 등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기 시작, 단시일 내에 세계 10위권에 드는 초우량 유통업체로 성장했다. 지난해 테스코 매출액은 286억1300만파운드로, 우리나라 돈으로 치면 무려 60조원에 달한다. 1920년대 런던 북부의 작은 마을에서 식료품 가게로 문을 연 테스코는 어떻게 세계적인 유통기업이 될 수 있었을까?
테스코는 물건값이 가장 싼 슈퍼마켓으로 정평이 나 있다. 영국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인터넷 사이트에는 영국의 비싼 물가를 걱정하는 예비 유학생들에게 “테스코에서 쌀과 반찬을 사먹고, 테스코에서 볼펜과 공책을 사서 공부하라”는 충고가 심심찮게 올라올 정도다.
고급 지향의 켄싱턴 매장
지난 2월20일 찾아간 영국 런던 켄싱턴(Kensington)에 있는 테스코 매장은 ‘물건을 싸게 팔기 때문에 다소 허름할 것’이라는 예상을 완전히 깼다. 우선 시원한 통유리로 된 건물 외관이 현대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바깥에서 노란색으로 아늑하게 꾸며진 2층 카페가 올려다보였는데, 그곳에는 쇼핑을 마친 뒤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주부들이 여럿 보였다. ‘과연 이곳이 동네 슈퍼마켓인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깔끔하고 세련된 분위기였다. 스튜어트 리스터 점장은 “켄싱턴 매장은 깔끔함과 고급스러움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테스코의 전략은 가장 싼값에 물건을 공급하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지역적 특색과 고객의 욕구에 맞춰 매장의 특성을 살려내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전략입니다. 켄싱턴 매장에서는 고급화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런던 서부에 자리한 켄싱턴은 팝가수 마돈나와 영화배우 가이 리치 부부가 살고 있는 고급 주거단지. 당연히 고객들의 생활수준도 높은 편이다. 때문에 켄싱턴 매장엔 다소 비싼 제품들이 전진 배치되어 있다. 테스코는 값이 다른 세 종류의 자체 브랜드를 생산하고 있는데, 가장 비싼 브랜드인 ‘테스코 파이니스트(TESCO Finest)가 맨앞쪽에 진열되는 식이다.
또 켄싱턴 매장은 다른 테스코 매장들과 달리 다소 비싼 편에 속하는 ‘핫 델리’ 코너를 점포 입구 쪽에 배치했다. 유리 진열대 안에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음식들-수프나 스테이크, 파스타, 케밥, 각종 샐러드 등-이 시장기를 돋운다. 백화점 지하1층의 식품코너와 유사한 분위기다. 리스터 점장은 “바로 이 코너가 켄싱턴 매장의 자랑”이라며 “매일 신선하게 만들어지는 음식들은 일하는 주부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다”고 덧붙였다.
테스코는 1924년 잭 코헨(Jack Cohen)에 의해 설립됐다. 최초의 테스코는 식료품을 파는 작은 가게였는데, 당시 테스코에 차(茶)를 납품하던 스톡웰(T. E. Stockwell)과 코헨의 이름에서 앞 글자를 따서 테스코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고객이 직접 매장을 돌며 원하는 물건을 고르는 식의 슈퍼마켓은 1920년대 대공황 당시 미국에서 시작됐다. 이러한 슈퍼마켓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에도 들어왔는데, 이때 테스코 또한 고객이 직접 물건을 고르는 식의 슈퍼마켓으로 변신하면서 사업 범위를 차츰 영국 전역으로 넓혀나갔다.
테스코는 여러모로 영국 유통시장에서 선두적인 역할을 해왔다. 요즘 우리나라의 웬만한 테이크아웃 커피점에서는 커피를 살 때마다 도장을 하나씩 찍어주고 일정 개수 이상의 도장을 모으면 커피 한 잔을 공짜로 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테스코에서는 이미 1960년대에 시작한 서비스다. 식료품을 살 때마다 도장을 찍어주고 일정 개수가 모이면 현금으로 돌려주거나 선물을 주는 식이었다. 이런 서비스가 곧장 다른 슈퍼마켓으로 전파된 것은 당연한 일.
주유소와 편의점이 함께 나란히 있는 모습도 더이상 낯설지 않은데, 테스코는 이런 방식의 슈퍼마켓 경영을 이미 1970년대에 시작했다. 지금도 전체 매장의 절반 정도가 주유소와 함께 운영되고 있어 테스코는 영국의 최대 유통업체이자 최대의 독립 석유판매회사이기도 하다.
유통업계를 선도하는 테스코의 역할은 1990년대 들어 더욱 두드러졌다. 1993년 업계 최초로 자체 브랜드 상품을 개발했고, 1994년 업계 최초로 클럽카드를 도입했다. 클럽카드란 현재 대다수 유통업체들이 실시하는 회원카드 서비스인데, 구입액에 따라 일정액을 적립시켜 나중에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카드다.
1990년 이후 테스코의 연도별 시장 점유율
또 1993년 프랑스를 시작으로 유럽과 아시아 시장 개척에 나섰다. 1999년 한국, 2000년 대만에 진출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일본 유통업체 시투(C-Two)네트워크를 인수하면서 일본시장에 뛰어들었다. 다음 행선지로는 중국을 검토중이다.
공격적인 시장 확대에 힘입어 테스코의 매출도 해마다 크게 신장하고 있다. 1999년 39조원이었던 연간 매출액은 2003년 60조원으로 4년 만에 무려 55%나 올랐다. 현재 영국 내 테스코 점포는 총 1982개로 이중 62개 점포가 2003년 새로 문을 열었다.
이렇듯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기업의 덩치와는 다르게 테스코의 경영철학은 무척 아기자기하다. ‘Every Little Helps’, 즉 ‘고객이 요구하는 모든 도움을 제공한다’는 것이 테스코의 경영철학이다. 켄싱턴 매장에서 만난 테스코 각 사업분야를 총괄하는 루시 네빌롤프(Lucy Nevile-Rolfe) 이사는 “테스코의 의사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이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강조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만족스러운 가격에 구입하고, 주변이 항상 청결하며, 점원들이 친절하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고객을 테스코로 끌어들이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철저한 고객 위주, 고객 편의 위주 경영철학은 테스코 매장의 형태에서도 나타난다. 영국 전역에 체인망을 갖춘 유통업체지만 똑같은 넓이에, 똑같은 상품을, 똑같은 방식으로 진열하지 않는다. 일단 규모 면에서 소형 편의점인 익스프레스(50평)와 메트로(300평), 슈퍼스토어(500평), 그리고 엑스트라(3000평) 등 4가지 종류의 매장이 있다. 이 가운데 해당 지역에 가장 적합한 형태를 세운다. 고객의 편의에 따라 테스코의 존재방식이 변화하는 셈이다.
예를 들어 테스코 익스프레스는 대부분 주유소와 함께 운영된다. 도로에서 진입이 쉬운 곳에 위치하며 고객이 자동차에 기름을 넣는 동안 음료수와 쿠키, 샌드위치 등 간단한 식료품과 신문 잡지 등을 살 수 있는 곳이다. 한편 런던 시내의 옥스퍼드 스트리트와 같은 북적이는 도심 지역에는 거의 모든 종류의 식료품과 과일 및 채소를 갖춘 테스코 메트로가 있다. 바쁜 직장인들이 간단하게 저녁 식사거리를 구입하는 곳이다.
테스크는 식료품, 의류, 금융, 이동통신 등 슈퍼마켓의 서비스 범위를 날로 확장시켜가고 있다.
테스코의 세심한 고객 배려, 고객 편의주의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쇼핑카트다. 런던 중심부에서 기차로 30여분 떨어진 교외 주거지역인 뉴멀든(New Malden)의 테스코 엑스트라는 자동차를 몰고 와 한꺼번에 일주일치, 혹은 한달치 장을 보는 고객들이 주로 찾는다. 따라서 엑스트라는 대규모의 옥외 주차장을 갖추고 있다. 또 한꺼번에 많은 물품을 구입하는 고객들을 위해 쇼핑용 카트도 슈퍼스토어의 것보다 훨씬 크다. 노인이나 장애인을 위한 전동 카트, 어린이용 카트도 마련돼 있다.
쇼핑 카트도 고객 눈높이에 맞춰
뉴멀든 엑스트라는 한 종류의 제품에 대해서도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을 구비하고 있다. 고객들의 선택의 폭을 넓혀주기 위한 세심한 배려다. 와인잔만 해도 4개에 0.99파운드짜리부터 2개에 10파운드가 넘는 고가품까지 10여종을 갖추어놓는 식이다. 또 테스코는 환불 서비스가 철저하다. 고객은 구매 후 14일 이내에 환불을 원하는 제품을 가지고 매장을 찾으면 된다. 반드시 제품에 문제가 있을 때만이 아니라 ‘사용해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환불이 가능하다.
테스코는 고객과 좀더 친밀해지고 고객의 요구사항이나 불편사항 등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기 위해 ‘트위스트(TESCO Week In Store Together)’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본사 직원들이 일정 기간 동안 사무실을 떠나 직접 매장의 계산대와 가정배달, 물품 운송 파트에서 일하는 것이다. 이는 CEO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 테스코 CEO 테리 리히(Terry Leahy)는 지난해 본사가 있는 허트포드쉬어(Hertfordshire) 로이톤 매장의 계산대에서 일주일 동안 일했다.
켄싱턴 매장에서도 트위스트 프로그램에 따라 계산대에서 일하고 있는 IT개발부서 총괄책임자인 에밀리 크롤리(Emily Crowley)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매장에서 일하면서 가정배달 서비스의 전산처리 시스템을 보다 간단하게 만들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며 “트위스트 프로그램이 매장과 고객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장시간 동안 서서 고객에게 끊임없이 미소지어 보이는 일도 힘들지만 그걸 내색할 수 없다는 게 더 힘든 일”이라며 솔직한 속내를 보여주기도 했다.
고객 중심, 지역 중심의 테스코 경영철학은 해외시장 전략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CEO 테리 리히는 올해 초 연설에서 “영국 본사에 앉아 있는 내가 어떻게 한국 고객들이 원하는 것을 알 수 있겠느냐”며 “해외시장으로 진출하면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테스코의 성공은 전적으로 테스코를 자기 지역의 가게로 여기는 고객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철저한 지역화를 통해 세계화를 이룬다는 테스코의 세계경영 전략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네빌롤프 이사에게 “한국의 홈플러스 경영에 얼마나 개입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우리는 파트너인 삼성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존중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테스코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고객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고 답했다. 그는 또 “오히려 우리가 삼성으로부터 배우는 점도 있다”고 귀띔했다. 영국에서는 그 동안 지하주차장이라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홈플러스의 지하주차장을 보고는 맨체스터 매장 등 새로 문을 여는 매장에 지하주차장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자사 브랜드 개발로 신뢰도 높여
테스코 매장을 둘러보면 자체 브랜드가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는 점에 놀라게 된다. 쌀, 밀가루, 스파게티 소스, 쿠키, 수프, 우유, 심지어는 콜라까지 거의 모든 식료품들이 PB(Private Brand)제품을 갖추고 있다.
테스코는 1993년부터 PB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했는데, 초기에는 ‘값싸고 질 낮은 제품’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이를 탈피하기 위해 테스코는 PB제품을 3등급으로 나누어 개발했다. 가장 싼 제품은 TESCO Value, 가장 비싼 제품은 TESCO Finest, 중간은 TESCO Normal이다.
네빌롤프 이사는 “Value 제품이라고 해서 질이 낮은 건 아니다. 포장이나 제품 디자인을 단순화해서 원가를 낮춘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PB제품은 다른 제품보다 10~20% 싸기 때문에 소비자 반응이 좋다. 이러한 PB제품은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테스코 경영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테스코는 몇 년 전부터 비식료품 PB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슈퍼마켓에 대한 고객들의 욕구가 단순히 식료품 구입에서 벗어나, 생활 전반에 필요한 모든 것을 얻고자 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료품 이외의 상품을 대거 취급하는 테스코 엑스트라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비식료품 PB제품을 볼 수 있었다. 포크, 나이프, 국자, 도마, 머그컵 같은 주방용품부터 샴푸, 린스, 비누, 수건 등 목욕용품, 심지어는 카메라 필름과 학용품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없는 게 없다.
특히 테스코는 2002년 자체 의류 브랜드인 체로키(Cherokee)를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양말, 속옷, 티셔츠, 청바지, 블라우스, 점퍼 등 남녀 및 아동 의류가 체로키 브랜드로 생산되어 판매되고 있다. 뉴멀든 매장에서 만난 가정주부 아네트 켈리는 “네 살 난 아들 옷은 주로 테스코에서 산다”며 “값도 싸고 질도 좋을 뿐더러 옷을 사러 따로 나갈 필요가 없어 여러모로 편리하다”고 말했다.
테스코는 상품 유통 서비스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테스코는 스코틀랜드 로열 은행과 손잡고 1997년부터 금융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슈퍼마켓과 은행을 결합시킨 것이다. 고객들은 테스코에서 물건을 구입한 뒤 계산대에서 값을 치르면서 은행 업무도 한꺼번에 해결한다. 테스코 현금카드나 신용카드를 제시하면 계산대에서 즉석으로 현금을 인출해주거나 예금시켜주는 것이다. 또 계산대에서 자동차보험료도 낼 수 있다. 네빌롤프 이사는 “테스코 금융서비스 수수료는 일반 금융기관보다 싼 편”이라며 “400만명의 고객들이 테스코 금융서비스를 애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테스코는 최근 이동통신 서비스 분야로까지 영역을 넓혔다. ‘테스코 모바일’이라는 이름으로 많게는 50%까지 여타 이동통신 회사보다 저렴한 요금에 이동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이 모든 부가 서비스 이용금액이 모두 테스코 클럽카드의 포인트로 적립된다. 한 곳에서 모든 서비스를 해결하는 편리함을 제공하는 동시에 더 큰 혜택까지 누리게 함으로써 고객들을 지속적으로 테스코 안으로 끌어들이는 효과까지 거두는 것이다.
생활과 결합된 사회책임전략
테스코의 성공비결은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기민하게 찾아내 재빨리 공급했다는 데서만 찾을 순 없다. 테스코는 1990년대 세 차례나 ‘가장 존경받는 기업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영국민들에게 좋은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상의 주요한 심사 기준으로 지역사회와 환경에 대한 공헌이 작용한다.
테스코는 사회책임전략(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통해 기업의 다양한 지역사회 참여 및 기부활동을 펼친다. 테스코의 CSR은 거창하진 않지만 실속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테스코의 경쟁업체 세인즈베리사(社)는 세인즈베리관을 지어 런던 내셔널 박물관에 기증했지만, 테스코는 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회활동에 기여한다. 즉 슈퍼마켓을 운영과 지역 주민들의 생활을 자연스럽게 결합시키는 방식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테스코 켄싱턴 매장 뒷마당에는 쓰레기 분리수거장이 마련되어 있다. 이 분리수거장은 테스코 매장에서도 사용하지만, 지역 주민들도 자기 집 쓰레기를 가져다버릴 수 있다. 주차장 바로 옆에 있어 오다가다 들리기 편리하다. 테스코는 이 분리수거장에 옥스팜 캐비닛을 설치해두었다. 옥스팜은 기증받은 중고물품을 판매한 수익으로 구호활동을 펴는 영국의 국제 구호단체. 2002년 우리나라에서는 ‘아름다운 가게’가 옥스팜을 모델로 하여 문을 열었다. 주민들은 테스코 분리수거장을 들락거리면서 자연스럽게 옷, 책, 음반, DVD 등 생활용품을 옥스팜 캐비닛을 통해 기증하게 된다.
테스코는 지역 주민을 직원으로 고용함으로써 실업난을 해소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테스코는 현재 영국 전역에서 22만1000여명을 고용하고 있는데, 해마다 1만여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는 추세다. 직원 중 20% 정도가 50대 이상으로 노년층 실업난 해소에도 기여하고 있다.
테스코는 정규직원이든 시간제 직원이든 간에 1년 이상 근무한 모든 직원에 대해서는 일한 기간에 비례해 회사 주식을 배당한다. 그래서 테스코 전체 직원 중 절반 이상인 12만2000여명이 현재 테스코의 주주다. 또 직원이 이사를 가면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매장으로 근무처를 바꾸어준다.
켄싱턴 매장에서 만난 테스코 업무총괄담당 이사 루시 네빌롤프.
테스코는 매년 고객들에게 클럽카드 누적포인트에 따라 쿠폰을 보내주는데 바로 이것이 각종 자선활동에 유용하게 쓰이게 된다. 즉 컴퓨터가 필요한 학교의 교직원이나 학부모들이 이 쿠폰을 모아 테스코에 가져가면 컴퓨터를 기증해주는 방식이다. 상품도 팔고, 기부활동으로 지역사회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는 일석이조의 전략인 셈. 이런 방식으로 2003년에만 총 2억7300만대의 컴퓨터가 지역사회에 기부됐다. 이밖에도 1987년 이래로 해마다 어린이나 노인, 장애인을 돕는 자선단체들 중 한 곳을 선정, 1년 동안 고객들을 상대로 기부운동을 펼친다. 2003년에는 아동 대상 자선단체를 기부대상자로 선정해 총 52억원의 기부금을 모금했다.
환경보호활동 또한 테스코 사회책임전략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물론 모든 활동은 슈퍼마켓 운영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대표적인 예가 옛 탄광지대나 공장지대를 인수해 테스코 매장을 세우는 것이다. 노팅햄시어(Nottinghamshire)에 있는 허크넬(Hucknall) 매장 등 현재 14개의 테스코 매장이 폐광 혹은 옛 공장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버려진 땅을 재활용한다는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탄광이나 공장에서 해고된 노동자를 다시 고용함으로써 지역사회 안정에도 기여하고 있다.
고객을 세심하게 살펴라
또 고객이 중고 휴대전화나 컴퓨터, 프린터 등을 가져오면 현금이나 쿠폰을 주되 그중 절반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도록 한다. 지난해까지 테스코가 재활용한 전화는 35만대, 프린터 잉크젯 카트리지는 3만5000개에 달한다. 또 테스코는 ‘나무 살리기’ 차원에서 총 180만 장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재활용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쯤 되면 동네 슈퍼마켓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무한대다.
테스코를 취재하면서 고객에게 다가서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하는 기업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슈퍼마켓을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고르는 고객이 불편을 느끼는 점은 없는지, 원하는 물건이 제자리에 구비되어 있는지, 매장이 지저분하지 않은지, 혹시 점원들이 불친절하진 않은지 등등 ‘슈퍼마켓의 ABC’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 초우량 유통업체 테스코의 철칙이었다. 또한 이에 맞춰 슈퍼마켓의 고객인 지역주민들의 생활에 보다 건전하고 보다 실속 있게 다가서려는 사회책임전략의 다양한 프로그램은 모범적인 기업의 표준이라 할 만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것”이라는 테스코 사람들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단순하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이 명제를 얼마나 실현하느냐에 따라 국내 1위, 세계시장으로의 도약을 꿈꾸는 국내 유통업체들의 명암이 달라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