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호

패션모델 도신우의 오징어부추잡채

평범함 속에 감춰진 맛의 아름다움

  • 글: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사진: 김용해 기자 sun@donga.com

    입력2004-03-31 1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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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패션모델이라면 흔히 몸매 잘빠진 여성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남성모델이라면 내심 ‘남자가 뭔 할 일이 없어서’라며 한 꺼풀 접고 바라보기 십상이다. 다원화된 세상에서 버려야 할 편견일까, 아니면
    • 받아들여야 할 한계일까.
    패션모델 도신우의 오징어부추잡채
    모델센터 인터내셔널 회장 도신우(都新祐)씨는 1969년 직업 남성모델들이 결성한 ‘왕실모델클럽’ 창단멤버 7명 중 한 사람이다. 35년이 지난 지금, 창단멤버 중 모델업계에 남아 있는 이는 그가 유일하다. 국내 최초의 남성모델이었던 그조차 국내에서 남성모델이란 직업이 갖는 한계와 어려움을 토로한다.

    “모델은 여자에게는 좋은 직업이에요. 깨끗하면서 우아하고, 배우처럼 신체적 접촉도 거의 없잖아요. 자유스럽기도 하고요. 하지만 남자라면 다르죠. 무엇보다 시장이 넓지 않아요. 따로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취미로 한다면 또 몰라도. 젊은 시절 한번쯤 해본다면 좋은 추억은 될 수 있을 겁니다.”

    오랜 기간 모델업계에 종사하면서 그가 내린 결론이다. 그만큼 힘들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TV드라마 연기자는 물론 광고모델도 터부시하던 1960~70년대에 모델이라고 하면 ‘이상한 별종’이라고 무시당하기 일쑤였어요. 모델을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런데 도씨의 얼굴을 보면 그다지 고생한 사람 같지 않다. 이력대로라면 최소한 50대 중반은 넘을 나이지만 40대 초반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비결을 물으니 그의 대답이 조금 엉뚱하다. “저는 나이 든 사람들 가는 곳은 싫어해요. 나이 어린 모델들이나 스태프들과 대화가 통하려면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알아야 하거든요. 그래서 음식점이나 카페도 젊은층이 선호하는 압구정동이나 청담동쪽 아니면 안 가요. 머리도 미용실에서 깎지요.”

    패션모델 도신우의 오징어부추잡채

    ◀모델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예비모델들과 도신우씨.<br>▶한 예비모델이 도씨의 요리를 돕고 있다.

    물론 예외는 있다. 모델센터가 들어서 있는 서울 대치동 섬유센터빌딩 지하 식당가에 있는 중화요리 전문점 ‘비즈차이나’다. 이곳은 주인이 편하게 대해주기도 하지만 음식이 입맛에 딱 맞기 때문에 자주 찾는다.



    그도 보통 남편들과 마찬가지로 직접 요리해본 경험은 기억조차 희미하다. 하지만 요리를 부탁하자 “기회가 있으면 해볼 생각이었다”며 선뜻 도전의사를 밝혔다. 그는 중화요리 전문점에서 즐겨먹는다는 ‘오징어부추잡채’를 선택했다. 요리 재료를 대충 썰어서 버무리면 될 것으로 여겼던 것. 그러나 그게 그리 간단치가 않다. 도씨는 주방장으로부터 한 수 한 수 가르침을 받아 요리를 만들면서 “먹을 때는 몰랐는데 여간 복잡한 게 아니네”라며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패션모델 도신우의 오징어부추잡채

    모델교육을 시키고 있는 도신우씨. 그는 키 178~180cm, 몸무게 52~54kg의 동양적인 미인이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먼저 오징어부추잡채의 주재료인 오징어 껍질을 벗겨낸 후 머리부위를 떼어내고 3~4cm 길이로 썬다. 오징어 다리도 하나씩 떼어내 비슷한 크기로 썬다. 다음은 야채 및 버섯 썰기. 부추는 3~4cm, 대파는 1~2cm 정도로 잘게, 양파와 죽순, 표고버섯, 팽이버섯, 피망(청·홍)은 얇게 썬다.

    가장 중요한 소스는 다진 생강과 다진 마늘, 설탕, 소금, 다시마 가루, 참기름, 간장, 굴소스, 두반장, 정종 등을 적당량 섞어 잘 저어 만든다. 생굴을 발효시켜 만든 굴소스에 중국 된장과 고추장을 혼합해 만든 두반장은 중국요리에 꼭 들어가는 재료다. 재료들이 모두 준비되면 오징어와 죽순, 버섯을 먼저 물에 살짝 데친 다음 프라이팬에 기름을 약간 두르고 나머지 야채와 함께 넣은 뒤 소스를 뿌려 잘 섞으면서 볶는다.

    도씨가 처음 만든 요리 맛은 어떨까. 도씨 자신은 물론 옆에서 지켜본 후배 모델들도 영 못미더운 눈치다. 하지만 맛을 본 후에는 다들 의외라는 반응이다. 겉보기와는 달리 매콤한 소스에 오징어의 졸깃졸깃하고 담백한 맛과 사각사각 씹히는 부추의 신선한 맛이 어우러져 일품이었던 것.

    서울토박이인 도씨의 어릴 적 꿈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선조 때부터 의사나 약재상이 많았던 집안 내력의 영향이 컸다. 비평준화 시절 서울 3대 명문고 중 하나였던 경복고에 입학할 정도로 공부도 잘했다. 대학입시에서 의대에 지망했으나 낙방한 후 “고리타분한 의사보다 이것저것 다 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건 어떻겠느냐”는 아버지의 권유로 중앙대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했다. 아버지의 말씀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그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지 모른다.

    대학시절 도씨는 태현실, 고은아, 황정순씨 등 당대 스타들이 즐비한 극단 ‘신협’에서 이런저런 단역을 맡으면서 연기자의 길을 걷는 듯했다. 그러나 대학 졸업 무렵 친구의 소개로 ‘왕실모델클럽’ 창단멤버로 합류하면서 인생행로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했다. 수입도 짭짤했다. 맞춤복 패션쇼에 한 번 참가하면 모델료 3만원에 정장 한 벌과 구두 한 켤레가 공짜로 생겼다. 대기업 대졸초임이 월 1만5000~6000원이던 시절이니 상당한 수입이었다. 1973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주문복대회는 모델을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 만든 결정적인 계기였다. 그 대회에 국내 대표모델로 출전한 도씨는 ‘월드베스트 10’에 뽑혀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비로소 직업모델의 자부심을 갖게 됐다. 무엇보다 대회에서 만난 외국 모델들이 자신의 직업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경제적 부를 누리고 있는 게 부러웠다. 해외에서 접한 패션쇼는 하나의 예술이었다.

    그로부터 도씨는 국내에서 터부시되는 모델을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당당한 직업으로 인정받게 하고, 화려한 외국의 패션쇼를 국내에 도입하겠다는 꿈을 키웠다.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1984년 모델센터를 설립했다. 위기도 있었고, 시련도 많았지만 2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꿈은 어느 정도 열매를 맺고 있다.

    “패션쇼는 종합예술이에요. 모델과 조명, 음악, 헤어디자인, 메이크업 등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며 펼쳐지는 대사 없는 오페라라고나 할까요. 물론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모델입니다. 모델은 작가의 작품세계를 일반인들에게 전달하는 일종의 메신저예요. 이제 국내에서 세계적인 모델이 나올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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