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사와 약사 간의 극심한 반목 속에 제도 미비 등으로 불안하게 출발한 의약분업은 의사·약사·제약회사 간 새로운 비리 커넥션을 낳았다. 제약회사의 랜딩비와 리베이트, 처방전 수수료 등 구조적 비리가 단절되지 않고 있으며 의사와 약사 간 종속관계는 심화되고 있다.
“아, 글쎄 말이야. 그놈들 때문에 죽겠어. 받을 건 다 받아먹고 그러면 안 되지.”
누군가를 향한 그들의 성토는 낯선 객(客)을 의식하지 않고 계속됐다. 가만 들어보니 그들의 입에 오른 성토 대상은 다름 아닌 의사와 병원 관계자였다. 병·의원에 약을 납품하는 대가로 지불하는 이른바 리베이트를 받은 지 몇 달도 안 돼 다른 제약사의 약품으로 교체한 의사를 두고 돌아가며 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었던 것.
그들 사이에 오고간 ‘영업비밀’을 본의 아니게 엿듣고 “의약분업 후에도 약 공급을 둘러싼 리베이트가 여전히 존재하느냐”고 묻자 네 명 모두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물어볼 걸 물어보라’는 투의 반응을 보였다. 골프를 치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그들 중 세 명은 제약회사 임원이고 나머지 한 명은 관리약사를 채용해 3월 중순께 자신의 약국을 개점할 예정이라고 했다.
“의사가 주는 처방전 있죠? 그거, 적게는 500원에서 많게는 1000원씩에 거래하는 곳도 있어요.”
“누가 누구에게 돈을 준다는 건가요?”
“아, 그거야. 뻔하죠. 약사가 의사에게 주는 거죠. 처방전이 있어야 약사가 약을 지어줄 거 아닙니까. 그리고 약사는 조제비를 받는 거고.”
2000년 의약분업이 시행된 이후 의사, 약사 그리고 제약회사 사이에 만들어진 3각의 ‘검은 커넥션’에 대한 취재는 이렇듯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됐다. ‘의약분업 실시로 의·약계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은 그들 4명의 증언에 의해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리고 열흘이 넘도록 의사, 약사, 제약회사를 밀착 취재하는 과정에서 의약분업의 본질이 곳곳에서 훼손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4년 전 DJ정부는 ‘약물 남용국 세계 1위’라는 꼬리표를 떼고 나아가 국민들을 약의 오·남용으로부터 막아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의약분업제도를 시행했다. 의약분업이 실시되기 전 의사와 약사들이 ‘약값 마진’을 챙기기 위해 환자들에게 필요 이상의 약을 권한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의사는 진단과 처방을, 약사는 약의 조제와 판매를 담당하는 직능분리를 골자로 한 의약분업 추진과정에서 의사와 약사들은 약의 선택권을 뺏기지 않으려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의사들은 거리로 나와 의약분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고 병원 총폐업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처방전은 귀하신 몸
의약분업 시행의 근거가 된 개정 약사법에 따르면 의사는 구체적인 상품명을 ‘명시’해 처방전을 발행하고 약사는 의사가 ‘콕’ 찍어준 제약사의 약을 조제해야 한다. 이로써 약간의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약에 대한 기득권은 의사가 갖게 됐다.
“의약분업 이전에는 의사와 약사가 동등한 관계였지만 분업 이후 종속적인 관계로 변했어요. 처방전을 받으려면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닙니까. 속은 뒤집어지지만 의사의 입맛에 따르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소위 문전약국(병·의원 문 앞에 있는 약국을 일컬음)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는 자기 약국과 같은 건물에 개원한 소아과에 몇천 만원을 들여 인테리어를 해줬다고도 하더라고요.”
한 아파트 단지의 상가건물 1층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이아무개(40·여)씨의 증언이다. 의약분업 당시 ‘의사와 약사 간 담합이 생겨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담합 행위는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의·약계 물밑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약사가 병원의 월세를 부담하는 사례가 있는가 하면 의·약사간 담합에 부동산 중개업자의 상술도 한몫하고 있다.
경기도 부천시에 위치한 한 클리닉센터 건물 1층에는 두 개의 약국이 있다. 2년 전 8개의 병원이 들어설 예정이라는 부동산업자의 말을 믿고 분양을 받았던 한 약사가 건물주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분양 당시 건물 내 약국은 한 곳만 개설한다는 계약사항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사건은 건물주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은 후 일단락됐지만, 의약분업 이후 이처럼 병원과 약국만을 입주시키는 일명 ‘병원 빌딩’이 늘어나는 추세다. 부동산 중개업자는 병원 빌딩 내 입주자를 유치하는 과정에 의·약사간 여러 가지 형태의 담합행위가 이뤄지도록 ‘다리’를 놓고 있다.
소아과를 운영하고 있는 전문의 방아무개씨는 “‘약국에서 (병원의) 인테리어를 해준다’는 이야기를 다른 의사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며 의·약사간 담합이 실제로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서울 이촌동에 있는 대한의사협회 건물에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러한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 개정 약사법은 병·의원의 처방약 목록을 지역 의사회가 취합하여 지역 약사회에 넘겨주는 ‘처방약 리스트’ 제출 의무화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규정은 몇몇 지역에서만 이뤄지고 있을 뿐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다. 법을 위반한 것이긴 하나 처벌할 규정이 없어 ‘안 지켜도 그만’이기 때문이다.
제약회사도 의사 앞으로
약의 선택권을 둘러싼 폐해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의약분업 직후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은 재빨리 병·의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약의 선택권을 쥔 의사들에게 영업을 하기 위해서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의사에게는 약값의 30%를, 약사에게는 10%를 줍니다.”
20여년간 제약회사에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광주광역시에서 약 도매상을 경영하는 송아무개씨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의약분업이 실시되자마자 제약회사는 의원을 찾아가 약을 선택해주는 대가로 선(先) 리베이트를 지급했어요. 약의 품목과 사용량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다빈도 처방약은 6개월 또는 1년간 처방을 내주는 조건으로 몇 백만원을 건넸죠.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겁니다. 일부 의사들이 리베이트만 챙기고 다른 제약사로부터 또다시 리베이트를 받은 후 약을 바꿔서 처방하기 시작한 거예요. 결국 리베이트를 제공한 제약회사만 돈을 날리는 꼴이 됐죠. 구두로 합의한 사항이라 돈을 돌려받을 방법도 없고요.”
얘기를 하면서 목소리 톤이 점점 높아진 송씨는 “약속을 어기고 다른 제약회사로 말을 갈아타는 의사가 늘자 제약회사들은 영업방침을 전면 수정하게 됐다”고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면서 “일부 제약회사에서 의사가 처방한 약의 물량을 확인한 후 매달 약값의 30%를 현금으로 의사에게 건네는 월정액 개념의 리베이트 관행은 이렇게 해서 정착이 됐다”고 푸념했다.
의약분업 이후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의 유통 과정을 살펴보면 이렇다. 약국은 제약회사 또는 약 도매상을 통해 전문의약품을 구입한다. 하지만 약국에서 조제약을 판매하는 데 대한 마진(이익)은 없다. 예를 들어 국민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정한 약값이 1000원이라면 약국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으로부터 약제비가 포함된 조제료를 받는다. 하지만 약사는 약값 1000원을 고스란히 제약회사에 건네야 한다. 의약품의 유통비리를 차단하기 위해 마련한 정부의 ‘실거래가 상환제’를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의사와 약사 그 누구도 약값 마진을 취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정부는 이 제도를 통해 의약품 유통의 투명성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의사가 약을 ‘선택’할 수 있다면 약사는 그 약을 ‘주문’할 수 있는 키를 쥐고 있거든요. 약사가 다른 지역의 영업사원, 또는 약 도매상을 통해 주문할 경우 판매에 따른 마진과 실적이 떨어지게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약사에게 10%를 주는 겁니다. 아니, (돈을) 준다기보다 약국이 공단으로부터 받은 약값을 수금하러 가면 약사가 아예 10%를 떼고 주는 거죠.” 서울 종로 5가의 한 대형약국에서 만난 제약회사 영업사원의 증언이다.
적재적소에 ‘뿌리는’ 게 기술
약값이 1000원이라면 그중 300원은 의사에게, 100원은 약사에게 돌아가는 셈이다. 의약분업 이후 이러한 형태의 리베이트 관행은 특정 지역이 아닌 전국에 걸쳐 일반 의원급에서 주로 행해지고 있다는 게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상위그룹에 속한 제약회사는 10~20%를, 중간이 30%, 회사 지명도가 낮은 제약사는 최고 50%까지 ‘뒷돈’ 거래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약분업 실시 이전에는 현금이 아닌 약의 할증이 곧 리베이트였다. 즉 의사나 약사가 약 한 갑을 구입하면 적게는 두세 갑을, 많게는 여덟아홉 갑의 약을 덤으로 얹어주는 식이었다. 1000원짜리 약을 판다면 최대 900원이 마진으로 남는 장사였다. 의사와 약사 모두 이러한 약값 마진의 ‘단맛’에 수십 년 동안 길들여져 있었다.
정부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러한 약값 마진 문제를 파악하고 있었지만 의보수가가 낮은 점을 감안해 의사들의 약값 마진을 묵인해왔다. 당연히 의사들은 마진률이 높은 약을 선호하게 되고 이는 과다 처방으로 인한 약물 오·남용을 부추겼다. 처방전 없이 약을 조제하는 약국들도 마찬가지였다.
서울 종로 5가에 위치한 이른바 ‘약국 거리’. 의약분업 이후 쇠퇴기미를 보이고 있다.
취재 도중 평소 연락이 뜸했던 지인 김아무개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대뜸 국내 종합병원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병원을 거론하며 “그 병원에 아는 의사가 있냐”고 물었다. “제약회사에 입사한 지 3년 된 아들이 그 병원의 영업을 담당하게 됐다. 의사나 간호사를 알아야 ‘영업이 쉽다’는 아들의 얘기를 듣고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이제 막 발령받아 담당과장으로부터 일을 배우고 있다”는 그는 “윗사람으로부터 전수받은 주된 업무는 리베이트를 적재적소에 뿌릴 줄 아는 ‘기술’을 터득하는 것”이라며 씁쓸하게 내뱉었다.
“요즘은 50만원 이상 향응을 제공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어 예전 같지 않지만 갖은 방법을 동원해 요리조리 법망을 피해가고 있지요. 병원 의국에서 회식이 있을 경우 식사비를 대납하는 것은 기본이고, 2차로 나이트(클럽)를 가겠다고 하면 ‘어디에 있는 곳에 가서 놀라’고 권해줍니다. 비용을 제약회사가 대는 건 당연한 일이고요. 일부 병원의 의국은 회식 규모에 따라 제약회사를 선택합니다. 일식집에서 밥을 먹는 정도면 하급의 제약회사를, 식사 후 2, 3차로 이어지는 회식일 경우 규모가 큰 제약회사를 부르는 게 관례지요. 때가 되면 의사, 병원관계자에게 백화점 상품권이나 현금으로 인사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요.”
그의 증언은 글머리에 언급한 ‘동승자’ 중 제약회사 임원 3명, 그리고 서울·경기·인천 일원의 병·의원 및 약국을 돌며 만난 영업사원의 증언과 대동소이했다.
불사조, 랜딩비와 리베이트
제약업계에 몸담은 지 30년이 넘었다는 한 제약회사의 간부. 나이 밝히기를 꺼린 그는 “5대 질병에 쓰이는 약품의 경우 병원에 들어가려면 적게는 몇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의 랜딩비가 든다. 5대 질병과 10대 품목의 약 구입은 병원 최고위급에서 결정한다. 공식적으로는 도매상을 통한 입찰을 실시하고 있지만 이미 내정된 약품을 선택한다는 것은 공개된 비밀이다. 랜딩에 성공하면 1년치 약값의 10%를 건넨다. 대형병원의 경우 약 구입과 관련된 심의기구를 통한 심사가 이뤄지고 있지만 이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고 털어놓았다.
종합병원에 약을 납품하는 도매상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아무개씨는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의사를 찾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약을 선택해달라고 머리를 숙여야 하니까. 의사가 해외에서 열리는 학회와 세미나에 참석할 경우 그쪽(병원)에서 제약회사에 정보를 흘린다. 그러면 제약회사는 약 사용량이 적은 과(科) 의사에게는 1000달러 정도, 사용량이 많은 경우는 2000달러 정도를 경비로 제공한다. 통상 다섯 곳의 (제약)회사로부터 협찬을 받는 게 관례여서 의사들 사이에는 ‘외국 갔다 오는 게 남는 장사’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지경”이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의사가 국내외 세미나에 참석할 경우 비행기표와 체재비 일체를 지급하는 행태는 의약분업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단지 의약분업 이후 해외에서 열리는 세미나 횟수가 증가했고 이를 선호하는 의사가 많아졌다. 이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리베이트와 맥이 닿아있다.
지방 대도시의 한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의사 이아무개씨의 증언.
“해외에서 열리는 세미나는 대개 다국적 제약회사의 본사 및 지사에서 초청하는 형식으로 이뤄집니다. 각종 경비와 체재비는 물론 골프, 쇼핑 비용까지 그쪽(다국적) 제약회사가 다 부담하지요. 서류상 일체의 비용은 다국적 제약회사의 해외 본사나 지사 쪽 회계에 잡힙니다. 그런 점 때문에 일부 의사들이 다국적 제약회사의 해외 세미나를 선호하게 된 거고요. 만에 하나 의약품 비리사건이 터진다고 해도 걸릴 위험이 낮다고 보는 거죠. (세미나에) 갔다 오면 그쪽 약을 선택할 테고 이는 약의 매출과 직결되겠지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최근 민주당 김성순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약제비 보험청구액(EDI기준) 5조2076억원(조제료 포함) 가운데 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 회원사 청구액은 27.2%인 1조4168억원으로 집계됐다.
현재 다국적의약산업협회 회원사는 한국화이자, 한국얀센 등 29개사이며 국내사로 분류된 한독약품(국내·외자 비율이 50대50)까지 포함하면 다국적 제약회사 30개사의 전문의약품 국내 점유율은 30%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중소업체를 포함해 400여개(한국제약협회 회원사는 207개)가 넘는 국내 제약회사의 청구액은 3조7908억원으로 72.8%에 머물렀다. 다국적 제약회사의 매출은 의약분업 실시와 동시에 수직상승했다. 의약분업 실시 원년인 2000년 3651억원이었던 매출이 그 이듬해 8639억원으로, 2002년에는 1조1732억원으로 급증한 것이다.
고가약 처방이 늘어난 까닭
고가의 오리지널 약을 생산하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주 영업 대상은 1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과 대학병원. 국내 제약회사의 임원인 진아무개씨는 “대형병원 의사들은 다국적 제약회사보다 많은 리베이트를 준다고 해도 국내회사를 꺼린다”며 “이는 환자에게 고가약을 투여해 빨리 낫게 하려는 뜻도 있지만 리베이트를 받아도 뒤탈이 적은 곳을 선호하는 ‘두 가지’ 목적이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지적했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수많은 일반급 의원을 제쳐둔 원인은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의사 방아무개씨의 말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의원에서 고가약 처방이 많으면 심평원(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일명 성적표라는 게 날아옵니다. 전국 소아과 평균 약제비는 얼마고, 지역 평균은 얼마라는 걸 보여주는 거죠. 고가약의 비중이 높으면 의사가 받을 진료비가 삭감됩니다. 그러니 개원의들이 고가약 처방을 꺼릴 수밖에요. 돈 되는 일도 아니고. 제 살(진료비)을 갉아먹으면서까지 고가약 처방을 낼 이유가 없는 것 아닙니까. 이러니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상대적으로 심평원의 제재가 덜한 대형병원을 대상으로 영업하게 된 거고요.”
의약분업이 실시되기 한해 전인 1999년 11월부터 도입된 실거래가 상환제 실시로 약값 마진이 ‘제로’가 되자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쾌재를 불렀다고 한다. 의사가 약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사라져 의약분업 이전에 다국적 기업의 고가약에 대한 처방을 기피했던 의사를 상대로 영업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옛날(의약분업 이전)에는 의사들이 약을 팔아서 많은 이익을 남겼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요. 의사는 약값이 싸든 비싸든 신경 쓸 이유가 없어진 거죠. 고가약이 꼭 좋은 약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건 아니지만, 처방전이 공개되니 의사는 환자에게 고가약을 투여함으로써 의사의 권위를 내세울 수 있게 됐어요. 저가약을 사용하는 의사라는 지적을 피할 수 있게 된 거죠.”
지방 대형병원 의사 이아무개씨의 진단이다.
의·약계에 따르면 다국적 제약회사가 랜딩비, 리베이트, 각종 향응 제공 등에 사용하는 비용은 매출액의 7%. 2002년 27개 다국적 제약회사가 국내에서 생산·판매한 의약품이 1조5000억원을 넘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한해 수백억원대의 뒷돈이 의·약계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다국적 제약회사의 국내시장 침투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건강보험공단에 청구된 약값의 상위 10대 품목 중 9개가, 100대 의약품 중에서는 거의 절반인 46개 품목이 다국적 제약회사 제품으로 채워졌다. 지난해 청구액이 가장 많은 약은 한국화이자의 고혈압 치료제 노바스크로 무려 1306억원에 이르렀다.
“전혀 예측 못했다.”
의약분업 이후 항생제 등의 오·남용이 줄어들었음에도 건강보험공단은 재정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고가약 사용 증가는 건강보험 재정악화에 일조했다. 그에 따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은 상태. 의약분업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까.
보건복지부 진행근 약무식품정책과장은 “(고가약 처방이) 이렇게 늘어날 줄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며 “실거래가 상환제를 통해 약값 마진을 걷어내 약제비를 낮추어 생기는 돈으로 건보수가를 올리고 조제료를 충당하려고 했던 당초 계획은 고가약 사용의 증가로 인해 물거품이 됐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재정악화의 한 원인이 됐다”고 실토했다. 결국 이에 대한 적절한 대안 없이 시행된 의약분업이 국민에게 부담을 안겨줬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건강보험 재정악화의 원인을 둘러싼 의·약계의 공방은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의사회는 약사에게 지급되는 조제료와 공단의 방만한 운영이 원흉이라고 하고, 약사회는 상품명 처방의 폐해인 약제비 증가가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라고 지적한다.
2002년 10월 의약분업 철폐를 위한 전국의사궐기대회에 참가한 의사들.
“2~3일치 약을 한꺼번에 지어줘도 되는 환자인데 매일 처방전을 들고 약국을 찾아오는 사람이 꽤 됩니다. 약사 입장에서야 처방전의 건수가 많을수록 조제료를 더 받으니까 대환영이죠. 의사가 환자를 매일 부르는 이유도 뻔합니다. 진찰료가 생기니까. 양심적인 의사도 적지 않습니다만 차마 입밖에 내기조차 부끄러운 일이 적잖이 일어나고 있는 게 의·약계의 현실입니다. 의사가 매일 내원하지 않아도 될 환자를 자주 부르면 공단 재정에 빨간불이 켜지는 건 당연한 일 아닙니까.”
경기도 부천시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 약사의 고백이다.
감기 등 가벼운 질병으로 1차 진료기관인 의원을 찾을 경우 1일 진찰료는 7310원. 개인 부담 3000원을 뺀 4310원은 건보공단으로부터 지급된다. 1일 조제료는 3250원. 약사는 환자로부터 1500원을 받고 1750원은 공단이 부담한다.
이렇듯 눈에 보이지 않는 병폐가 건강보험 재정악화를 불러왔다. 의약분업 이후에도 줄지 않고 있는 리베이트 관행 못지않게 의약분업의 본질이 훼손되면서 발생하는 문제도 적지 않다. 의약분업의 추진과정에서 불거진 의사와 약사 간 갈등은 조금도 줄지 않고 오히려 서로에 대한 신뢰가 땅바닥에 떨어진 상태다.
3월4일 밤 9시. 취재차 들른 한 약국에 손님이 찾아왔다. “기침을 하고 머리가 아파서 찾아왔다”는 환자에게 약사는 두 종류의 일반의약품을 내놓으며 “이거 두 알, 요거 두 알 먹으면 빨리 좋아질 겁니다”라고 말했다. 약값은 각각 2000원과 2500원. 손님이 살까말까 망설이자 약사는 “심하지 않으면 한 가지만 드셔도 괜찮다”고 했다.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 없는 일반의약품의 경우 약값 마진율은 평균 30% 정도. 손님은 “돈이 부족하다”면서 약국 문을 나섰다. 소위 ‘끼워 팔기’가 실패한 것이다.
법 어기도록 지원(?)하는 의사협회
취재중에 만난 의사들은 하나같이 의약분업이 제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약사들의 임의조제와 끼워 팔기가 근절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의약품은 약사가 임의조제할 경우 형사처벌을 받기 때문에 일반의약품의 끼워 팔기가 성행하고 있다.
3월10일. 의료 소비자인 필자는 아이가 아파 집 근처의 의원을 찾았다. 의사의 진료가 끝난 후 간호사는 약국제출용 처방전 한 장을 건네주었다. “법적으로 환자보관용과 약국제출용 두 장의 처방전을 발급하게 돼 있지 않냐”는 질문에 의사는 “법에는 그렇게 돼 있지만, 인근에 있는 병원이 모두 이렇게 한다”면서 “의사협회 지침에 따라 약국제출용만 발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처방전을 공개하여 환자가 복용하는 약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도록 하는 의약분업 본래의 취지가 헛바퀴 돌고 있는 것이다. 의협이 공개적으로 지침서를 보낼 수 있는 것은 법 규정을 어겨도 처벌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의약분업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 약무식품정책과의 진행근 과장은 담합행위에 대해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는 상태라 어떻게 할 수 없다”면서 “검찰과 경찰이 나서 수사를 통해 밝혀주기를 바란다”는 답을 내놓았다. “약값을 둘러싼 검은 거래를 차단하기 위한 대책이 있냐”는 질문에 “약가 직불제(건보공단이 제약회사 또는 도매상에게 약값을 직접 결재하는 제도)를 시행하려다 법리상 문제가 있어 없던 일로 됐다”면서 “지난 2월부터 직불제와 유사한 개념의 의약품 전용카드 거래제도 시행을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의약분업 제도를 성급히 실시한 뒤 제도적으로 미비한 사안에 대해선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낱알판매 금지가 그 대표적인 예. 이 문제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의·약사계 눈치를 보느라 3년8개월 동안 ‘나 몰라라’ 하고 있다. “낱알판매와 관련된 문제점과 개선책에 대해 논의한 적이 없었다”는 보건복지부 관계자의 답변이 ‘실상’을 잘 보여준다.
의약분업 제도가 제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의약계 모두 눈앞의 이익을 좇기보다 국민의 건강을 염두에 둬야 한다. 정부도 의·약계 눈치 보기를 중단하고 현재 드러난 의약계의 비리를 과감히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 뿐만 아니라 처벌 규정이 없어 있으나마나 한 관련 법조항을 서둘러 개선해야 할 것이다.
서울 이촌동에 있는 대한의사협회를 찾아가 김재정(64) 대한의사협회장과 의약분업 이후 달라진 의약업계 실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처방전이 거래되고, 약사가 병원의 인테리어를 해주는 등 의사와 약사가 담합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그런 것에 대해 보고받은 적이 없어요. 정부에서 의약분업 할 때 (담합은) 철저하게 실사하겠다고 했는데 정부에서 안 한 거죠.”
-의약분업 이후 제약사와 의사 간에 약값의 30%가 리베이트로 건네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요?
“모르겠어요. 금시초문입니다.”
“절대 받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김재정 회장은 수첩을 꺼내 “의사가 얼마를 받는다고 하더냐”고 되물으며 리베이트와 관련된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시도의사회장 회의가 열리면 ‘그런 얘기가 들린다’고 거론하겠다”며 “‘절대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형사처벌감이다’라고 명시한 공문이 벌써 나갔다”고 대답했다.
-(공문을) 언제 보내셨나요.
“음, 그런 얘기는 들었어요. 들은 게 있어서 ‘절대 받으면 안 된다’ 그랬는데. 받은 사람이 많지는 않아요. 시도의사회장 회의에서 몇 번 얘기했거든요. 공문을 직접 내가(대한의사협회장의 명의로) 보냈는지는 몰라도, 지시를 내린 지는 오래됐어요. 30%나 된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고. 부분적으로야 있을 수도 있는 일이겠지만. 그 문제는 그만 얘기합시다.”
-의사들이 국내외 학회나 세미나에 참석할 때 제약사로부터 비행기표와 경비 일체 등을 제공받는 관행이 여전한데요.
“자기네 제품 판촉하는 건데 그게 뭐 어떻습니까. 그건 상술인데. 새로운 제품을 만들게 되면 회사에서는 당연히 광고를 합니다. 이것은 상도덕이에요. 약의 소비자는 국민이지만 실질적으로 선택하는 사람은 의사잖아요. 당연한 상행위죠.”
-그렇다면 랜딩비를 주고 리베이트를 건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랜딩비 받는 것은 예전에 다 구속했잖아요. 돈을 받는 일은 부정행위니까 검찰과 복지부가 처벌을 해야지요.”
-음성적인 거래가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지 않습니까.
“드러나지 않은 문제를 내가 드러낼 수는 없잖아요. 그 일이라면 당연히 국가에서 공권력을 발동해야죠. 숨어 있는 음성적인 것을 어떻게 다 찾아내요.”
-건강보험 재정적자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선은 예전에 없던 (약사)조제료가 신설돼 많은 비용이 지출된 점을 들 수 있어요. 전문 경영인이 아닌 정치인이 공단을 운영한 것도 원인이겠죠. 거슬러 올라가면 직장보험과 지역보험의 통합도 한몫을 했고요.”
-의사들의 고가약 처방 증가로 약제비가 늘어난 것이 재정적자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는데요.
“내 환자에게, 내 단골환자에게 좋은 약 쓰는 거 당연한 일이죠. 빨리 낫게 하는 약을 주는 거고요.”
-의약분업 이전에는 고가약 처방이 많지 않았잖습니까.
“그것은, 인간인데 인지상정이에요. (의약분업) 이전에는 성분이 비슷하면 그런 약(저가약)도 썼어요.”
-가격은 낮지만 약값 마진이 높은 거요?
“나(의사)한테도 이윤동기가 있으니까. 인간이니까요.”
-결국 똑같은 약이라도 성분이 같다면 저가약을 사용했다는 얘긴데요.
“그러니까 (의약분업 이전에도) 생동성시험(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을 거친 약 등을 썼다, 이 말이에요(2000년 7월 의약분업이 실시되기 전 생동성시험을 거친 약은 약 80개 품목에 불과했다. 현재는 1007개 품목). 내(의사)가 먹을 수 있는 약을 썼는데, 지금은 나(의사)한테 이윤동기가 없단 말이에요. 처방료가 없어졌거든요. 진찰료밖에 안 줘요. 진찰비밖에 안 주는데 굳이 내(의사)가 뭐, 약을 가지고 ‘비싼 약을 안 써 (공단의) 재정안정화를 돕겠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내(의사)가 이왕이면 환자에게 좋은 약을 쓰겠다는데. 좋은 약을 쓰는 동기가 뭔지 알아요? 좋은 약을 처방해 환자를 빨리 낫게 하면 환자가 더 자주 나를 찾아올 테니까 좋은 약을 쓰는 거예요.”
“환자에게 당연히 좋은 약 쓰지”
-의약분업 이전에 저가약 위주로 처방한 것은 단순히 이윤동기 때문이라는 거네요.
“아, 그거야 그럴 수도 있죠. 그게 무슨 잘못이라도 되나요? 그건 떳떳한 거죠. 약값 마진이라는 것도 이래요. 당시 의보수가가 낮으니까 정부에서 묵시적으로 ‘약값 마진으로 보전해라. 그거 가지고 국민들 진료해라’ 이런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의사가 나쁜 놈이에요. 의술도 인술만 따질 게 아니라 상술이라는걸 알아야 해요, 상술.”
-다국적 제약회사에서는 약값의 7%를 주로 대형병원을 대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고가약 사용량 증가와 밀접한 관계도 있고요.
“예를 들어 지난해 노바스크(한국화이자의 고혈압 치료제) 한 품목의 매출액이 1300억원에 달했는데, 그건 7%를 썼기 때문에 그 정도 된 거예요. 만약에 2%밖에 판촉을 안 했다면 1000억? 아니 800억밖에 안 됐을지 모르죠. 즉 1차 소비자(의사)에게 판촉을 했기 때문에 그만큼 나간 거지. 광고료와 똑같은 개념인데 그걸 가지고 도덕성을 얘기하면 안돼요.
예를 들어 내가 ‘너 이거 안 가져오면 안 써줘’, 그러면 범법행위예요. 그런데 자기(제약회사)들이 자발적으로 ‘우리 제품을 설명할 테니 오십시오’ 하고 호텔에서 설명회를 하는 거죠. 의사들도 설명 듣지 않으면 모르니까 외국도 나가고, 신라호텔도 가는 거죠. 거기서 저녁을 먹은 거예요. 우리가 강제로 달라고 했다면 범법이지만 자기들이 제품을 팔기 위해서 향응을 제공하는 건데 의사들이 무슨 죄예요. (매출이) 1300억에 이르려면 7% 써야 되고, 2000억으로 올리려면 10% 써야 돼요. 그것은 당연한 상도덕이고 상생인데 그것을 가지고 왜 자꾸 얘기를 해요. 그것은 그만 얘기합시다. 저한테 단도직입적으로 아주 힘든 질문도 많이 하는데….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건강보험 재정을 안정화할 수 있는 대안을 찾는다면요.
“딴 거 없어요. 수입을 지출에 맞게 만드는 수밖에 없죠. 정부가 많이 내든가, 국민이 내든가. 아니면 돈 많은 사람이 더 많이 부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죠. 저소득층은 정부가 무조건 무료로 치료해주고. 그리고 건강보험을 경쟁자 없이 단일보험으로 만들면 썩을 수밖에 없고 발전이 없어요. 보험사가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해봐요. 그 횡포가 보통이겠어요. 공단은 보험회사예요. 1년에 20조 가까이 쓰는. 단일보험을 다수 체제로 만들어서 보험의 틀을 바꿔야죠. 자동차 종합보험처럼 책임보험과 종합보험 형태로 바뀌어야 해요. 책임보험은 모든 국민이 다 들어야 되는 거고. 지금 돈푼이나 있는 사람들 전부 미국 가서 (치료를) 해요. 그 비용이 수십조가 될 겁니다. 그 비용을 종합보험 형태로 만들어 이쪽(우리나라)으로 흡수하자는 거죠. 고급 환자를 받으면 의료기관 질이 향상되겠죠.”
“의술은 인술만이 아니라 상술”
-현재 낱알판매 금지로 한 알이 필요해도 10정짜리 약을 구입해야 하는 등 문제점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요. 의약분업 추진 과정에서 의사협회에서 낱알판매를 거부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약화사고 방지와 약사의 임의조제를 막기 위해서였죠. 세계적으로도 낱알을 판매하는 국가가 없어요.”
-대다수 의료소비자가 낱알판매를 원한다면요.
“잘못된 관행은 고쳐야지. 약화사고를 예방할 뿐만 아니라 국민의 건강을 생각해야 하고.”
-그럼 의약분업 이전에는 낱알판매가 관행이니까 내버려뒀다는 얘긴가요.
“그런 것까지 정부에서 규제를 하고, (의사가) 시비를 걸 만한 여력이 없었죠. 낱알판매가 국민에게 편리하다 해도 안 되죠. 국민들을 골탕먹이고 불편하게 한 것이 아니라 일반의약품의 임의조제를 막기 위해서였거든요.”
-마지막으로 국민의 건강과 관련해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너무나 깊게 들어가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잊어버렸네.”
김 회장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의료계가 하향평준화 방향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인터뷰] 원희목 대한약사회장“담합행위 강력히 제재하겠다”
지난해 12월 직선제로 선출된 원희목(50) 대한약사회장이 지난 3월12일 공식취임했다. 그는 취임 이틀 전 서울 방배동 대한약사회장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의·약사간 담합행위를 대체로 시인하고 정화를 다짐했다.
-의사 처방전을 둘러싸고 의·약계 담합행위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데요.
“인정합니다.”
-처방전이 장당 500원, 1000원에 거래되고, 약사가 병원의 인테리어 비용과 월세를 대납하는 사례도 있는데요.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담합 방법이 다양해지고 있어요. 심지어 병원 주차비를 약사가 대신 내주는 곳도 있어요.”
-그렇다면 담합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약사회의 대책은 있는지요.
“정화할 겁니다. 담합행위는 법에 의해서도 처벌받지만 약사회 윤리위원회에 회부해 강력하게 제재할 겁니다.”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약제비의 ‘원금’을 제약회사에 주도록 돼 있는데 현 실정은 약사가 약제비에서 10%를 떼고 제약회사에 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것 또한 인정합니다. 하지만 10%가 아닌 3~5%라고 알고 있습니다. 불용재고에 대한 부담을 보전하기 위해 일부에서 그런 방법을 쓰는 것 같아요.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우리 약사회는 잘못된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관련 법규를 고쳐가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국민건강보험 재정악화가 약사들에게 주는 조제료 때문이라는 게 대한의사협회의 주장입니다. 약사회에서 보는 재정악화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실질적으로 작년에 건강보험공단의 재정에서 18조가 나갔어요. 그중 약값이 4조3000억원, 의료계에 지불된 게 10조원 정도 됐습니다. 조제비는 연간 1조5000억원 정도로 의약분업 이후 지난 3년 몇 개월간 4조7000억원이 지급됐고요. 없던 조제비가 생겨난 것은 맞지만 실거래가 상환제를 통해 약값 마진이 없어진 데 대한 보전 차원에서 조제비가 지급되는 거 아닙니까. 재정악화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건보수가 인상으로 지출이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가약 처방도 중요한 원인이고요.”
-재정악화를 해결하기 위한 복안은 있습니까.
“고가약 처방이 늘면서 약제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높아졌거든요. 실제로 일부 선진국들도 약품비 절감을 목적으로 (상품명 아닌) 성분명 처방이나 대체조제를 권장하고 있고요. 성분명 처방을 허용하면 재정악화 방지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의약분업 직후 37%였던 고가약 처방 비율이 지난해 상반기엔 55%까지 늘어났거든요.”
-상품명 처방에서 성분명 처방으로 제도가 바뀌면 약에 대한 선택권의 일부분이 약사에게 돌아가는 건데… 약에 대한 주도권을 쥐려는 뜻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제약회사는 다시 약사에게 리베이트를 건네게 될 텐데요.
“꼭 그런 시각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성분명이냐 상품명이냐는 약에 대한 주도권 싸움이 아닙니다. 한 품목에 여러 제약회사의 약이 있다고 하면 생동성시험을 거쳐 3개 이상이 동일성분군으로 판정나면 그 약품에 대해 성분명 처방을 의무화하자는 거지요. 그렇게 되면 환자건강에도 문제가 없으면서 고가약 사용 억제나 약국의 약품부담 해소, 국내 제약업 육성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원 회장은 “약사회는 의약분업이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겠지만, 국민들도 의사나 약사를 감시하는 일을 해주어야 좋은 제도로 성장할 수 있다”며 국민의 관심을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