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닥 등록 앞두고 ‘잠깐만 나가 있어라’
- 코스닥 등록 후 주가 뛰니까 ‘주식 돌려달라’ 협박
- 회사 성장에는 관심 없고 현찰만 챙기려는 투자자들
- 연줄로 사람 모아서 한건 하자는 욕심뿐
- 개발자들이 늘 이용당하는 이유 알 만하다
이 무렵 기자는 우연히 당시 벤처기업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로부터 ‘이수영 사장이 주주들이 짜놓은 덫에 걸려 억울하게 웹젠을 그만두었다더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배경에 지난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여러 후보군 중 한 사람의 핵심 측근이 자리잡고 있다는 이 관계자의 귀띔은 더더욱 기자의 흥미를 자극했다. 그녀가 지난해 8월 웹젠 이후 두 번째 CEO를 맡았던 마이클럽 사장직을 내놓으면서 ‘두 달 뒤에 모든 진실을 밝히겠다’고 했던 의미심장한 말도 기자는 잊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IT나 게임업계에 대한 취재 경험이 많지 않았던 기자는 당연히 ‘이수영’이라는 사람도 다른 매체의 기사를 통해 접해 보았을 뿐 일면식도 없었던 터였다. 이 사장은 당시 웹젠을 그만두고 여성 포털 마이클럽 사장을 맡았다가 이마저 그만두고 한국과 미국을 오가던 중이었다.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그녀에게 메일을 보내고 한국에 돌아온 뒤 서너 차례 통화한 끝에 ‘인터뷰가 아니다’라는 선을 긋고서야 이수영 사장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 자리를 마주한 곳은 강남의 메리어트 호텔 지하 멤버스 클럽.
“어머, 진짜 디아블로네.”
웨이터가 내온 칠레산 와인의 이름이 유명 게임 타이틀과 이름이 같은 ‘디아블로’인 것을 확인하자 그녀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게임업계의 최고 유명인사와 시중에 유명한 게임 타이틀과 같은 이름의 와인을 마시면서 만남을 시작한 것만으로도 왠지 대화가 잘 풀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수영 사장은 이리저리 찔러보는 기자의 질문에도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자정이 훨씬 넘도록 겉도는 이야기 끝에 ‘나중에 인터뷰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이 성과라면 성과였다. 그 후에도 기자는 몇 차례 이 약속을 내세워 접촉을 시도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그러는 동안 이수영 사장은 장애인이면서도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부장검사로 성공한 정범진씨와의 결혼을 발표해 또 한번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5개월 걸린 인터뷰
‘신동아’ 3월호 최종 마감을 앞둔 2월 중순경, 결혼 소식을 화제삼아 다시 ‘인터뷰를 하자’며 이수영 사장과 만났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3월호의 실제 발행 일자를 확인하더니 갑자기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다고 했다. 풀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4월호에 인터뷰 기사를 게재할 수 있도록 다시 약속을 받았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었던 만큼 이번 인터뷰는 이수영 사장으로서는 ‘작심하고’ 기자를 만난 것이었다. 지난 3월9일 강남구 논현동 그녀의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는 당연히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회사의 성장이나 발전에는 관심이 없고 ‘머니게임’만 노린 무책임한 초기 투자자들이 벌인 일입니다. 그분들은 연줄을 동원해서 돈만 벌 줄 알았지 회사라는 것을 바라보는 시각부터가 저와는 달랐어요. 회사는 언제든지 팔아치울 수 있는 것이라는 식의 ‘게임의 법칙’만이 지배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수영 사장은 인터뷰 초반부터 웹젠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사실이 본인 스스로 결정한 것이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 웹젠이 코스닥 등록을 추진하던 시점에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배경은 무엇입니까?
“2002년 당시 코스닥 심사에 들어가면서 회사 대여금에서 문제가 발생했던 거예요. 하지만 당시 초기 투자자들이 저에게 “코스닥위원회에서 등록 심사를 담당하는 믿을 만한 사람이 ‘이수영 사장이 사임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고 종용하는 바람에 일단 서류상으로 제가 대표이사직을 내놓고 경영 경험이 전혀 없는 엔지니어 중 최연장자를 대표이사로 앉혀서 코스닥 등록 서류 심사를 받았던 거죠.”
이 사장이 이야기하는 ‘대여금’이란 당시 회사돈을 잠시 빌려쓴 뒤 채워넣었던 것을 말한다. 당시 이수영 사장은 주주 한 명이 팔려고 내놓은 주식을 개인 자격으로 사들였는데 일시적인 자금 부족으로 회사돈을 꿔서 주식 매입 대금을 치르고 몇 달 뒤 채워넣었다고 했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봤을 때 회사 대표의 대여금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리 큰 금액이 아니었고, 코스닥 등록 심사 서류를 제출한 것이 2003년인데 그 돈은 이미 2001년에 발생해서 회계처리가 끝난 것이었거든요. 게다가 발생 사유도 모두 소명 가능한 것인 데도 그것 때문에 대표이사를 바꿔서 코스닥 등록 심사를 받고 나중에 복귀해달라는 것이었어요. 물론 제 입장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정작 나를 제외하고 엔지니어 3명과 투자자들이 모여서 그렇게 결정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렇게라도 해서 빨리 코스닥을 가고 싶으면 그렇게 하겠다’고 승낙을 했어요.”
- 그런 일이 발생했던 이유는 뭡니까?
“당시 증자를 끝내고 나니까 경영진 지분이 52%에서 47%로 떨어졌어요. 이 정도로는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존 주주들을 상대로 주식을 팔 의향이 없는지 알아봤죠. 처음에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다가 얼마 뒤 초기 투자자들 중 한 명이 급하게 자금이 필요하다며 주식을 팔겠다고 나선 거예요. 그 분은 당시 유력한 대선 후보 중 한 명의 캠프 핵심으로 일하고 있었거든요. 대선 준비 때문에 팔 수 있는 건 다 팔아야 하는 입장이었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당시만 해도 회사가 외부에 많이 알려지질 않아서 처분하기가 쉽지 않을 때였어요. 그래서 제가 그 분 지분 일부를 인수하게 된 거죠. 계약을 마무리한 것이 5월 초인데 5월 말까지 대금을 지불하지 못했어요. 그러던 중에 그 분이 자꾸 독촉을 하길래 일단 회사에서 빌려서 대금을 지불하고 문제가 될지 몰라 다시 갚아넣은 뒤 원금은 물론 2달간 이자까지 확실하게 기록해 두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불거진 것 같았다. 코스닥위원회는 예비 심사 단계에서 가수금이나 가지급금 거래 사실을 경영 투명성을 평가하는 하나의 잣대로 적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거래가 비상장 기업들 사이에서는 워낙 빈번하게 발생하는 일이다 보니 이런 거래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코스닥 등록 탈락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사장은 이 부분을 자세히 몰랐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중에 보니까 나에게 팔지 않은 그 지분의 나머지도 다른 업체로 넘어가버린 거예요. 중간에 브로커를 이용한 거죠. 처음에는 내게 ‘회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아는 후배에게 팔았다’고 이야기했는데 알고 보니까 이 사람이 전문 브로커였던 거예요. 내가 여기에 대해 항의하니까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분이 밀었던 후보가 당내 경선에서 떨어지고 나서 여기저기서 빚을 많이 졌던 모양이에요. 이때부터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웹젠이 코스닥에 등록되고 나서 주가가 엄청나게 뛰어오르니까 초기 투자자 중 한 사람이 ‘(대박 직전에 웹젠 주식을 팔아치웠던) 사람이 친구 사이였던 다른 주주들을 협박하는 바람에 입막음하느라고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해오는 거예요. 그때만 해도 다른 주주들은 10억을 벌었느니 40억을 벌었느니 하니까 팔아버린 주식이 아까워서 억울한 마음에 그런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겠거니 하고 넘어갔죠.”
이수영 사장은 “그때까지만 해도 코스닥 등록만 끝나면 대표이사직에 복귀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코스닥 등록 절차가 끝나고 복귀하려고 하자 이번에는 초기 투자자들이 나서서 ‘개발자들이 당신이 돌아오는 것을 싫어한다’며 복귀를 막았다고 한다. 이수영 사장측 관계자는 “이 사장이 복귀하면 개발자들이 나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전했다. 컴백을 포기한 것도 이런 사정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 개발자와 나머지 개인 주주들 사이에 ‘이수영은 안 된다’는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통보한 것은 누구였던가요?
“주주 중 한 명을 통해서였어요. 물론 그 회의를 하는 자리에 제가 있었으면 그렇게 결론이 안 났을 거예요. 그 당시 코스닥 등록 업무를 맡았던 재무이사(CFO)는 웹젠에 합류한 지 채 1년이 안된 상태였어요. 코스닥 심사 서류 제출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재무이사가 대표이사 사임 서류를 가져오는데 대표자 사임 일자와 이사 사임 일자가 다른 거예요. 그래서 왜 틀리냐고 물어봤더니 ‘(주주들이) 이렇게 하라고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나중에 코스닥 위원회에서 들어보니까 등재이사를 사임하지 않은 상태에서 코스닥 서류를 넣어 특수관계인으로 묶어놓고 서류를 제출한 며칠 뒤 등재이사에서 빼버린 거예요. 서류 제출 당시 특수관계인으로 묶여서 웹젠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져버렸음에도 (지금도) 주식을 처분하지 못하고 있는 거죠.”
- 결국 편법적인 방식을 동원해서 대표이사를 내몰았다는 이야기군요.
“그렇죠. 결과적으로 보면 현재 CFO가 사실상 대부분의 의사결정을 하고 있는 거죠. 여전히 엔지니어들은 회사 경영에는 경험이 없으니까요.”
“이용만 당한 엔지니어들”
- 김남주 현 사장을 포함한 엔지니어들은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막도 전혀 모른다는 이야기인가요?
“그럼요. 어차피 대표이사 사임한다고 밝힌 이후에는 제가 세 명의 엔지니어들을 붙잡아놓고 이런저런 사정을 설명할 기회가 없었지만 주주들은 옆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을 테니까. 이제 엔지니어들도 본인이 직접 나서지 않는 데도 주변 사람들이 항상 자기를 지켜줄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해요. 저는 왜 벤처기업의 엔지니어들이 항상 이용만 당할까 궁금했어요. 그래서 웹젠에서는 ‘내가 먼저 챙겨줘야지’ 하고 생각했었고 웹젠을 창업하면서는 게임회사 가운데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동일한 주식을 배분한 겁니다. 결국 제 우호지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렇게 되는 걸 보면 ‘이용당하는 데는 이용당할 만한 이유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 그런 무리한 상황을 만들어서 이수영 사장을 쫓아내야 하는 절박한 이유나 동기가 있었을까요?
“첫 번째는 주주들이 코스닥 등록 몇 달 뒤에 얼마를 만질 수 있다는 생각, 그러니까 현금이 눈에 보이니까 다들 급했던 거죠. 사실 제가 미국에서 봐왔던 진정한 앤젤 투자자들은 그 돈이 없어도 사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지금 앤젤들이 벌이는 일들을 보면 돈에만 눈이 어두웠지 회사의 발전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 개인 주주들이 뭘 노렸단 말인가요?
“매출이 나든 안 나든 자기들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으니까 안전하게 가겠다, 뭐 이런 것 아니겠어요? 그리고 현 경영진들이 투자를 제대로 하고 뭔가를 키워온 사람들이라면 제가 이런 이야기를 안 하겠는데 그 중 누구 한명이라도 제대로 투자해서 회사를 운영하거나 성공시켜본 사람이 있나요? 밖에서 보더라도 회사는 나하고 엔지니어밖에 없었거든요. 그 당시 CFO는 등재이사가 아니었고요. CFO에 친구를 앉혀놓았겠다, 회사에는 현금이 잘 들어오겠다, 또 코스닥 가면 몇 백억원이 들어올 판이니까 엔지니어들만 설득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문제는, 지금은 웹젠이 제2, 제3의 성장동력을 치열하게 만들어가야 하는데 사업에 비해 현금 보유고가 높은 회사다보니 주변의 이해 관계자들이 간접적 영향력을 발휘해서 회사 부실의 원인을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는겁 니다.”
‘현금이 눈에 보이니까’
- 그렇다면 CFO에 그런 사람을 앉히려고 할 때 왜 흔쾌히 받아들였죠? 아니면 사장으로서 인사조치를 했을 수도 있었을텐데.
“안 그래도 좀 불안했죠. CFO가 2001년 8월에 입사했는데 그 당시는 곧 서비스를 유료화해서 회사 매출이 발생하고 코스닥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였거든요. 그래서 아무래도 경험 없는 사람이 들어오면 조금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주주 중 한 명이 ‘친구’라면서 (그 사람을) 추천하더라고요. 명문대 경영학과 출신에 직장생활 내내 회계 분야에만 있었으니까 재무 쪽은 확실히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약간 리스크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필요한 자질이나 경력을 갖고 있는 게 분명한 분이라고 판단했죠. 게다가 그 당시 웹젠에는 그렇게 ‘제대로 배운’ 사람이 없었어요. 뿐만 아니라 CFO를 뽑으면서 (친구인) 앤젤 투자자들과 회사의 입장이 충돌할 경우 어느 쪽 이익을 대변하겠느냐고 물어봤어요. CFO는 당연히 회사라고 말했고 곧이곧대로 믿었던 거죠.”
- 사장직을 내놓은 이후에라도 개발자들과 만나 이런 상황을 설명하고 납득시킬 생각은 하지 않았나요?
“그래도 초기에 같이 고생했고 앞뒤 사정 설명을 듣지도 못한 상태라 한번 밥 먹자고는 했었는데 CFO가 따라나오니까….”
- 개발자들이 그런 내막을 모르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따라나왔다는 이야기인가요?
“그렇죠. 제가 그런 상황에서 아니라고 하고 맥을 끊고 그러려면 엔지니어들이 날 도와줘야 하거든요. 엔지니어들이 나와는 창업 초기부터 함께 일해왔으니까 일단 내 말을 들어봐야겠다고 나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르죠….”
‘명문대 출신’에 대한 거부감
이수영 사장은 인터뷰 도중 자신을 웹젠에서 ‘내몰아버린’ 개인 주주들을 거론할 때마다 ‘모두 친구들이니까…’라는 말을 늘 덧붙였다. 사실 웹젠에 앤젤 투자자로 나선 개인 투자자들과 CFO 등 6명은 서울의 한 명문고교와 대학 동창 사이로 얽히고설킨 관계라고 한다. 학벌이나 명문 학교에 대해 그녀가 불신을 가질 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웹젠과 마이클럽에서 쓰디쓴 경험을 하고 난 후 지금의 회사를 설립하고 신규 직원을 모집할 때 지원 자격에 ‘S대 경영학과 출신은 안 된다’는 단서 조항을 내걸었다는 신문보도가 떠올랐다. 그녀 자신도 대학입시에서 서울대나 연세대를 가라는 부모님의 권유를 뿌리치고 애초부터 목표했던 세종대 무용과에 진학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녀는 2년 전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부모님이 명문대에 가라고 하셨을 땐 세상 물정을 짐작하신 바가 있었던 거죠. 그런데 그때 전 그걸 몰랐던 거예요. 아마 저 때문에 부모님 가슴에 비수가 꽂혔을 겁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죄송해요.”
불과 2년 전 이런 말을 했던 그녀가 이른바 ‘명문대 출신’들에 대한 배신감이나 분노를 짙게 토로하는 것을 보면 그녀가 보는 웹젠 사태의 이면에는 명문대 출신 엘리트들의 행태에 대한 깊은 불신이 깔려 있는 듯했다.
이 대목에서 무용을 전공해 여러 차례 무대에 선 경험이 있고, 방송 프로그램 리포터를 하면서 자유분방하게 살던 그녀의 스타일이 분명 어딘가에서는 명문고 명문대를 나온 ‘주류 엘리트’들의 일처리 스타일과 정면으로 충돌했으리라고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 여성 CEO인 데다 명문고와 명문대 출신들인 개인 주주들과는 배경이나 성장 환경이 다르다 보니까 그렇게 당했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요?
“그분들은 실력이나 일로 승부하는 것 외에 ‘그들만이’ 통하는 방식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저하고는 스타일이 전혀 다르죠.”
이수영 사장은 웹젠 대표이사직을 내놓은 지 두 달 만인 2002년 11월 여성 포털업체인 ‘마이클럽’ 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또 한번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러나 듣고 보니 여기에도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배경이 깔려 있었다.
이수영 사장은 “팔았던 주식을 돌려주지 않으면 소송을 내겠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주주 중 한 명이 동양그룹에 몸담고 있었어요. 그룹 회장의 측근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그렇게 ‘밀려난’ 나를 어떤 형태로든 ‘배려’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모기업 관계자인 초기 투자자가 ‘여성 포털인 마이클럽을 맡아서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 거예요. 웹젠 앤젤들에 대한 신뢰가 없는 상태여서 망설였지만 회장이 만나자고 해서 ‘웹젠을 잘 키웠던 것처럼 마이클럽도 잘 부탁한다’고 하기에 흔쾌히 맡았죠. 제가 마이클럽을 맡은 이후 전체적으로 시스템도 빨라지고 회원수도 크게 늘어났으니 회사에도 크게 공헌한 겁니다.”
- 그런데 마이클럽 사장직을 1년도 안돼서 그만두게 된 이유는 뭐죠?
“작년 7월경일 겁니다. 2001년도에 지분을 제게 팔았던 초기 투자자가 주식을 돌려주지 않으면 소송을 내겠다고 협박을 하는 거예요. 마이클럽 사장실까지 찾아와 협박을 했어요. 하지만 나는 정당하게 주식을 산 것이고, 또 돈을 더 벌 욕심이 아니라 적어도 총지분의 50%를 넘겨 보유하는 것이 경영권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서 주식을 매입했던 거라 그런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저를 마이클럽에 소개시켜준 주주도 친구 사이니까 절 협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마이클럽의 모기업에 문제가 생기는 것보단 차라리 내가 그만두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습니다.”
- 당시 마이클럽 사장직 퇴임 배경과 관련해 대주주와의 갈등설 등이 보도됐었는데요.
“그냥 ‘일신상의 사유’라고 하면 이상하게 비칠 뿐만 아니라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걸 아니까 그쪽에서도 명분을 만들어야 했던 거죠. 저도 사임 이유를 어떻게 밝힐까 그쪽과 상의를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결국 실질적 마이클럽의 오너인 동양그룹이 마이클럽을 계열사로 편입하는 식으로 제가 물러날 수 있는 명분을 만든 거죠.
제가 그룹 회장을 직접 만나 의향을 물어봐야겠다고 우겨서 회장을 만났지만, 재벌 회장이라는 사람들, 잘잘못을 따지거나 억울한 구석이 있는지 알아보는 데는 관심 없어요. 일단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끝내는 것이 가장 큰 관심사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굳이 연연해하지 않았죠.”
이수영씨는 정말로 어딘가에 연연해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자기가 해야 할 답변이 끝나면 기자를 쳐다보거나 다음 질문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책상 위의 노트북만 쳐다보면서 계속 마우스를 조작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하는 기자 입장에서는 대단히 무성의하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딴전을 피우는 척 하다가도 자신에게 필요한 대목이라고 판단하면 지체없이 목소리의 톤이 높아졌다.
이렇게 똑 부러지는 성격이 혹시 직원들과의 불화를 자초한 것은 아닐까? 그녀가 마이클럽을 그만둘 당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일간지에 ‘이수영 사장이 취임한 이후 마이클럽의 주요 임직원 20명이 그만뒀다’는 기사가 나오자 그녀는 즉각 반박자료를 내고 자신과 직원들 간의 융화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조한 적이 있었다. 아예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직원들과 갈등 없었다”
- 웹젠 시절에도 업무 스타일이 너무 달라 내부 직원들과 마찰을 빚었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았나요?
“내부 직원과의 마찰얘기라면 웹젠뿐만 아니고 모든 게임업체에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문제예요. 요즘 늘어나고 있는 게임포털 업체들을 보세요. 결국 일반 IT업체에 근무하던 사람들이 게임업체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둘 사이에는 문화적 차이가 있대요.
말하자면 IT업체는 오픈돼 있고 게임업체는 상대적으로 닫혀 있다는 거예요. 사고도 그렇고 문화도 그렇고. 그런 이야기를 저한테 많이 하거든요. 저도 게임업체에 있어봐서 그런 문화를 잘 알아요. 또 게임을 개발하려면 그런 분위기도 필요하니까요.
나는 회사를 키워야 하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요구하는 바가 있을 테고 엔지니어들은 자기들이 10년 가까이 해온 방식이 있으니까 거기서 생기는 갈등이야 있을 수 있죠. 그 정도라면 몰라도 나머지 부분에서 마찰이라는 것은 전혀 없어요.”
- 웹젠의 나스닥 등록과 관련한 서류 열람과 복사를 위한 가처분 신청도 법원에 냈던데요.
“나스닥에 가면 현재 국내 주식가치는 희석되게 돼 있어요. 그렇게 되면 주주들한테는 직접 피해가 가는 것이고. 회사가 정말로 자금을 필요로 한다면 그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하지만 웹젠은 당시 코스닥 등록과 매출로 인한 현금만도 600억원 정도나 됐어요. 그것 가지고도 신규 사업을 벌이는 데 부족하다면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죠.
그리고 웹젠 자체적으로 미국 시장 진출 능력이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아는 일이고. 그러니까 지금은 기존 주주가치가 희석되더라도 무조건 돈만 끌어오겠다는 생각이 앞서 있는 거예요. 회사를 일궈갈 능력이 없으면 시인을 하든지. 여태까지 회사를 일궈온 사람을 배제해놓고 이제 와서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현금만 끌어안고 있는 것 아니에요? 기존 주주들은 피해를 보든 말든.”
결국 웹젠 주식 8%를 보유한 ‘최대주주 이수영’은 더는 웹젠 주식을 갖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게다가 그녀는 최근 ‘이젠’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엔터테인먼트 포털 사업을 시작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처지이기도 하다.
- 웹젠 주식에 대한 보호예수는 언제부터 풀리죠?
“올해 5월부터요.”
- 5월부터 보호예수가 풀리면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물량을 정리할 생각이겠네요?
“예.”
- 웹젠에도 그런 사실을 통보했나요?
“1월쯤? 저는 이제 웹젠의 최대주주이기는 하지만 별 상관이 없는 사람이니까 상황을 봐서 처분할 생각합니다.”
깜찍한 외모와 500억원대의 자산, 장애인 검사와의 러브 스토리까지 매스컴의 관심을 끌 만한 ‘스타성’을 두루 갖춘 ‘벤처 신데렐라’가 자청해서 밝힌 성공기업의 이면에는 여러 가지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물론 일부 내용에 있어서는 상대측 관계자에 대한 확인이 필요한 부분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코스닥 황제기업’인 웹젠에서 벌어졌던 일이 다른 벤처기업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