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담수호.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수심이 얕다.<br>▷카리브해와 육지가 만나는 지점에서 노닐고 있는 새들.
악어 부르는 레인저의 손짓
화려한 상가들이 즐비한 플로리다 최고의 도시 마이애미에서 서남쪽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카리브해안 도로를 달리다 보면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으로 인도하는 작은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표지판을 따라 드넓은 경작지를 얼마쯤 더 달려 만난 에버글레이즈의 첫인상은 수수함과 깔끔함 그 자체다. 1947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에버글레이즈는 1979년 유네스코지정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됐다. 지상에서 가장 다양한 식물군이 서식하는 새들의 낙원이라는 것이 선정 이유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은 에버글레이즈는 갈대가 무성한 상류와 각기 독립된 생태계로 뒤덮여 있는 하류로 나뉜다. 상류지역은 수심이 30cm에 불과한 오커초비 담수호를 중심으로 2500㎢의 습지가 펼쳐져 있다. 전체 공원면적의 40%를 차지하는 만큼 서식하는 동식물의 종류가 매우 많지만 그 중에서 가장 방문객들의 흥미를 끄는 것은 몸길이가 5∼6m에 이르는 미시시피카이만악어다.
◀ 방문객을 실은 플라잉보트가 에버글레이즈 습지를 누비고 있다.<br>▶ 국립공원 지역의 상당부분은 1970년대에 농장으로 개간되었다.
카리브해 바닷가에 뿌리내리고 있는 맹그로브나무들.
국립공원 지정 당시만 해도 이 지역에는 미시시피카이만악어가 엄청나게 많이 서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분별한 포획으로 악어의 90%가 사라져 멸종의 위기에 처하자 플로리다 주정부는 포획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 개체수를 꾸준히 늘려왔다.
하류는 새들의 낙원
상류지역이 악어 무리의 터전이라면 담수호에서 흘러내려온 물과 카리브해가 만나는 하류지역은 다양한 나무와 식물군, 희귀 동물이 어우러진 생태계의 보고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당시 1만여종이 넘던 희귀 식물들이 현재는 1000여종으로 줄어들었지만, 습지와 건조지역으로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는 생태계는 여전히 흥미롭다. 바닷물이 유입되는 습지에는 마호가니와 멜라류카 등이 분포해 있으며 건조지역에서는 침엽수면서도 낙엽이 지는 낙우송과 측백나무, 소나무 등이 자란다.
◀ 거울처럼 투명한 호수에서 낚시를 즐기고 있는 현지 주민.<br>▶ 에버글레이즈 상류지역을 가득 메운 다양한 습지식물과 키 작은 갈대.
생태계 파괴의 교훈
주정부가 이 같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플로리다 지역이 한창 개발되던 1970년대 습지를 농지로 개간하는 과정에서 에버글레이즈는 심한 몸살을 앓았다. 농업에 필요한 물을 담수호에서 끌어다 쓰면서 국립공원의 물줄기와 자연이 큰 변화를 겪어야 했던 것. 에버글레이즈의 생태계 80% 이상이 파괴된 후에야 심각성을 깨달은 주정부는 경작지를 늪과 습지로 되돌려놓기 위한 작업을 대대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작업이 마무리되는 20년 후에는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간 에버글레이즈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것이 이들의 기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