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호

민주당 뒤늦은 이실직고 “127억 선관위에 보고 누락”

‘2000∼2002년 총선·지방선거 불법자금 지원설’ 실체 확인

  • 글: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4-03-26 14:2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민주당이 127억원을 정식 회계처리(선관위 보고) 하지 않고 2000년~2002년 총선, 지방선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당시 민주당 후보들에게 지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중엔 민주당 혹은 다른 당 후보로 이번 총선에 다시 출마하는 정치인들이 상당수여서, ‘민주당 불법 지원금 수령자’ 실명 공개 여부를 놓고 논란이 예상된다.
    민주당 뒤늦은 이실직고 “127억 선관위에 보고 누락”
    민주당은 2004년 2월1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2003년 중앙당 정기 회계보고서를 제출했다. 관련법에 의해 정당은 한 해 동안의 수입·지출 내역을 다음해 2월까지 선관위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이번 민주당의 회계보고는 예년의 통상적 보고와는 달랐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민주당은 회계보고에서 이례적으로 127억원을 ‘결손금’으로 보고했다”고 밝혔다. 결손금이란 실제로 자금을 집행했으면서 선관위에 보고되는 회계장부에는 집행하지 않은 것처럼 처리해놓은 자금을 뜻한다. 따라서 민주당 회계장부에 기록된 자금보다 민주당이 실제 보유하고 있는 자금이 그 액수만큼 적다(결손)는 것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민주당측은 결손금의 성격에 대해 ‘2000년부터 당이 총선 등에 음성적으로 써온 돈’이라고 선관위에 설명해왔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선관위에 결손금의 총액만 보고한 상태다. 선관위는 결손금의 구체적 사용내역과 증빙자료를 제출하라고 민주당에 요구해놓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3월13일 현재까지 결손내역을 선관위에 제출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 강운태 사무총장은 3월초 ‘신동아’ 인터뷰에서 이 결손금에 대해 개략적으로 설명했다. 강 총장은 “130억원에 조금 못 미치는 돈이 결손금으로 처리되어 선관위에 보고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썼지만 장부상 남아 있는 것으로 기록된 자금을 이번에 사실대로 밝힌 것이다.”(강 총장)

    “자필 수령증 70% 보유”

    그는 이어 “결손금 대부분은 2000년 총선 등에 중앙당이 쓴 돈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돈 사용내역을 밝히기 곤란했기 때문에 당시 선관위에는 있는 그대로 보고하지 못했다는 설명이었다. 강 총장에 따르면 민주당은 돈을 사용했다는 ‘근거자료’가 남아 있는 부분만을 결손금으로 집계해 최근 선관위에 보고했다.



    민주당 백재옥 경리국장은 결손금 127억원의 정체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외부 공인회계사들과 함께 결손금 회계정리의 실무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백 국장의 말이다. “2000년 당시 내가 회계 책임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정확하게는 모른다. 그러나 민주당은 2000년 총선 때 출마 후보들에게 특별지원금을 내려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수천 표 정도 박빙의 승부가 벌어진 수도권과 전국 일부 접전지역에 집중 투입됐다. 386 후보들도 이 돈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후보들은 이 돈을 선거자금으로 썼지 않겠나. 그런데 민주당이 이 돈의 사용내역을 당시 선관위에 바로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중앙당이 후보에게 지원한 선거자금이 이미 법정 선거비용(대체로 1억~2억 사이)을 초과한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선관위 회계신고에 누락시켰다는 점에서 민주당의 127억원 결손금은 불법 혐의가 있는 자금으로 볼 수 있다. 돈을 받은 후보들에게도 ‘법정 선거비용 초과지출’(선거법 위반), ‘후원금 선관위 신고 누락’(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2000년 총선 지원금의 경우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도덕적 문제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백 국장은 “2002년 지방선거, 국회의원 보궐선거 때도 비슷하게 자금이 집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 127억원의 상당부분이 대략 이 같은 방식으로 사용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

    흥미 있는 대목은 민주당이 ‘근거자료’가 남아 있는 돈에 대해서만 결손금으로 선관위에 보고했다는 것이다. 어떤 근거자료일까. 다시 백 경리국장의 말이다. “2000년 총선 때 민주당은 후보들에게 돈을 내려보낸 뒤 후보 본인 또는 후보의 대리인으로부터 돈을 받았음을 확인하는 ‘자필 수령증’을 의무적으로 받았다. 영수증 크기의 종이에 후보 이름, 날짜, 받은 액수를 자필로 기록한 수령증이다. 민주당에 아직 남아 있는 이 수령증 등으로 사용을 입증할 수 있는 돈만 이번에 결손금으로 선관위에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근거자료는 결국 후보의 자필 수령증이었다. 민주당의 지원을 받은 후보들 개개인의 입장에선 자신들이 불법성 자금을 수수했다는 물증을 민주당이 지금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2000년~2002년 민주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한 정치인들 중 현재 열린우리당 등으로 당적을 옮긴 정치인들이 적지 않다. 민주당은 이들의 자필 수령증도 갖고 있는 것일까. 강 총장은 “내가 알지 못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백 국장은 우회적으로 “선거 때 민주당의 특별 지원금을 받은 후보들이 당에 제출한 자필 수령증 가운데 70%는 지금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법률지원단 고위 관계자도 “그 같은 자료가 있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누가 받았는지도 밝혀라”

    노무현 대통령은 “2000년 총선에 출마해서 원 없이 돈을 써봤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 총선 당시 수도권에 출마한 민주당 386 후보들의 당 지원금 수수설도 끊이지 않고 나온다.

    결론적으로 이번 결손금 127억 원 선관위 보고 사실과 자필 수령증의 존재는 지금까지 설(說)로만 떠돌던 민주당의 총선자금 지원 의혹을 한층 구체화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2002년 지방선거 및 보궐선거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들 중에 이 자금을 받은 정치인들은 아직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은 처지가 된다.

    민주당이 200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갑자기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선관위에 ‘고해 성사’한 이유는 무엇일까. 강운태 사무총장은 “민주당이 ‘클린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한 진통의 과정으로 이해해 달라”고 주문했다. 민주당은 최근 기업으로부터는 후원금을 안 받고, 정기적으로 의원 개개인의 정치자금 입출금 내역을 회계감사 받아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이번의 결손금 선관위 보고도 과거의 부패 잔재를 털어내는 작업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민주당 재정 관계자는 “정치발전의 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0년 총선 당시 민주당 회계책임자였던 Q씨는 현재 민주당에서 근무하지 않으며 외부와의 접촉이 일체 단절된 상황이다. ‘신동아’는 한 차례 Q씨와 전화통화를 했다. Q씨는 “2000년 총선 지원금 의혹이라니,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 얘기라면 대화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2000년 민주당 총선 후보들 중 민주당 또는 다른 당 후보로 이번 4월 총선에 다시 출마하는 정치인들이 상당수여서 향후 민주당의 2000년 총선 지원금 문제가 어떻게 전개될지 관심을 끈다. 민주당측은 수령자의 실명과 자필 수령증 등을 공개할지 여부에 대해선 언급을 피했지만 이 역시 지체 없이 밝혀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선관위 관계자는 “민주당이 과거 음성적으로 100억원이 넘는 정치자금을 지출했다고 선관위에 공식 보고한 만큼, 구체적인 사용 내역도 조속히 선관위에 보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