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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수사기록 통해 확인한 실미도 부대 공작원 31명 명단

누가 이들의 원혼을 달래줄 것인가

  • 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기자 sky3203@donga.com

軍 수사기록 통해 확인한 실미도 부대 공작원 31명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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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현재까지 확인된 실미도 사건 유가족은 모두 10명에 불과했다. 가장 먼저 충북 옥천에서 한꺼번에 실종된 정기성, 박기수, 이광용씨 등 7명 모두가 실미도 부대원으로 확인된 바 있다. 그 후 전북 익산 출신의 김종철씨, 인천시 산곡동에서 실종된 윤석두씨, 충남 부여 출신의 조석구씨 등에 대해서도 실미도 부대원 여부를 밝혀달라는 진정이 접수돼 국방부로부터 확인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신동아’의 확인 결과 군 당국은 최근 들어 실미도 사건이 국민적 관심을 모으기 전에도 이미 유족들의 진정을 접수받아 실미도 부대원 여부를 확인한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공작원들에 대한 훈련을 담당했던 한 관계자는 “이미 2년 전쯤 이부웅씨, 신현중씨 등 2명의 실종자 가족이 국군 정보사에 진정을 해 와 이들이 실미도 부대원인지를 확인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부웅씨와 신현웅씨는 68년 부대 창설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탈영 사건에 연루돼 현지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두 사람의 시신은 섬 안에 매장돼 있다 그 후 부대 내 하극상 사건에 연루된 다른 공작원의 시신을 화장할 때 함께 화장했다고 한다. 따라서 당시 실미도 사건 진상조사작업을 벌이고 있는 군 당국이 의지만 있다면 2년 전의 진정 기록 등을 확인해 얼마든지 이씨와 신씨의 유가족을 찾아줄 수 있는 상황이다.

또한 이 문건은 훈련 기간 중 사망한 7명에 대해 자살 3명, 익사 2명, 도주 2명 등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기간병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익사한 사람은 충남 부여 출신의 조석구씨 한 명에 불과하고 윤태산씨는 기간병을 폭행하는 바람에 하극상이라는 이유로 공작원들의 손에 넘겨져 구타당한 후 숨졌다. 공작원들에 대한 훈련을 담당하던 기간병이 공작원에게 구타당한 사실을 상부에 숨기기 위해 익사로 보고한 것 같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윤씨의 사체는 현지에서 화장 처리됐고 유골은 그대로 바다에 뿌려졌다. 윤씨의 사체를 화장하면서 이미 부대 창설 초기 탈영 사건으로 인해 구타 사망 후 매장됐던 이부웅씨와 신현중씨의 시신도 함께 태워버렸다는 것이 기간병들의 증언이다.

나머지 자살로 분류된 3명은 당시 강간 사건에 가담했던 강찬주씨, 강신옥씨, 황철복씨 등이다. 이 중 강찬주씨와 강신옥씨는 현장에서 자살했고 황철복씨만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부대로 복귀한 뒤 나중에 숨을 거뒀다.

공작원 명단과 관련해 열린우리당 김성호 의원은 국방부 관계자를 통해 71년 8월23일 사건 발생 이틀 뒤인 25일 작성된 ‘8·23 난동사건 작전 상황일지’를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김 의원이 밝힌 작전 상황일지에는 박원식씨가 35세가 아닌 24세로 되어있고 ‘김기정’씨가 ‘김기성’씨로 되어있는 등 ‘신동아’가 입수한 문건과 일치하지 않는 곳도 있다.

‘신동아’의 문건 역시 한두 군데서 잘못된 이름이 눈에 띄고 있다. 예를 들어 충북 옥천 출신의 김병염씨는 ‘김정염’으로, 충남 대전 출신의 이석천씨는 ‘이서천’으로 기록되어 있는 등 사건 직후 시신 안치 장소와 부상자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급하게 작성한 듯한 흔적이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결국 문서 작성 및 관리 체계가 엉성하던 당시 시스템으로 볼 때 진상조사 작업을 공식적인 기록에만 의존하는 데에는 한계가 따를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 사건의 수사 및 뒤처리에 관여했던 관련자들의 증언이 뒷받침되어야만 공작원들의 시신 처리 등 핵심 쟁점들이 밝혀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다행스럽게도 당시 상황을 증언해줄 관계자는 아직 많이 남아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 중 쉽사리 당시 상황에 대해 입을 여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또 입을 연다고 해도 본인이 관여했던 분야에 관해 부분적인 내용만을 파악하고 있을 뿐, 전체 상황을 한꺼번에 파악하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35년만에 발견된 무덤

우선 사망 기간병 및 공작원의 시신 처리 과정을 보자. 당시 사건으로 사망한 기간병들은 모두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생존자들은 아직까지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반면 31명 전원이 사망한 공작원들의 시신이나 유해의 행방은 아직까지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신동아’ 는 지난 3월11일 실미도 내에 있는 당시 공작원 조석구씨의 무덤을 35년만에 최초로 확인한 바 있다. 31명 시신 확인 작업의 신호탄인 셈이다. 실미도 부대 기간병들의 모임인 실미전우회가 ‘신동아’에 최초로 공개한 실미도 희생자 조석구씨의 무덤은 실미도 남서쪽 맨끝,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숲 속에 숨겨져 있었다.

조씨는 1949년 충남 부여생으로 68년 당시 충남 논산에서 편물기계 대리점을 운영하다가 대전으로 돈 벌러 간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선 뒤 돌아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어머니 이병례(84)씨와 7남매 등 조씨의 가족들은 여태까지 행방을 모르고 있다가 이번에 실미도 기간병들을 통해 석구씨의 이름과 사진이 공개되자 국방부측에 사실 확인을 요청하고 무덤 확인 작업을 펼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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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기자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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