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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광장 논란’ 지상격돌

상상력 빈곤, 정치적 야심에 사라진 ‘빛의 광장’

서울시청 앞 광장 현상공모 당선자 서현의 직격고발

  • 글: 서 현 한양대학교 교수·건축학 hyunseo@hanyang.ac.kr

상상력 빈곤, 정치적 야심에 사라진 ‘빛의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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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가 4월말 완공을 목표로 시청앞 잔디광장 조성사업에 착수했다. 발표 3일 만에 교통체계 개편공사를 시작하는 놀라운 순발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미 1년여 전 공모전에서 당선된 ‘빛의 광장’ 계획을 전면 보류하고 ‘잔디광장’을 급조한 데 따른 비난도 만만치 않다. 당선작을 설계한 서현 교수가 현상공모에서 당선작 보류결정까지의 일지를 토대로 서울시의 밀실·졸속의 관료주의 행태를 고발했다.
  • “이명박 시장님, 뭐가 그리 바쁘신가요?”
상상력 빈곤, 정치적 야심에 사라진  ‘빛의 광장’

2003년 1월 ‘서울시청앞 광장 조성 설계공모’에서 당선된 ‘빛의 광장’ 조감도.

2000 년 여름.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원구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구단공원 설계가 진행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10월28일 ‘서울시민의 날’ 행사에 맞춰 준공해야 하므로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곳을 지나면서 고종의 어가(御駕)를 떠올리고 원구단공원은 어떤 모습이 돼야 할까 하는 시키지도 않은 일에 골몰했다.

그리고 원구단공원이 태어났다. 1897년 정유(丁酉)년 음력 7월19일 대한제국 수립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음미하는 대신 시민의 날에 맞춘 개장이 더 중요했다. 다행히 그 날짜에 맞춰 완공은 했지만 시민의 공원이 된 것 같지는 않다. 원구단공원은 항상 썰렁했고 그 앞으로는 무심한 자동차들만이 지나갔다. 건축가의 머릿속은 또 시키지도 않은 일로 분주했다.

기회가 왔다. 시청앞에 광장을 만든다는, 현상공모로 계획안을 선정한다는 공고가 나왔다. 여기저기서 반대의견이 비집고 나왔다. 교통문제가 앞장섰다. 청계천 복원공사로도 벅찬데 시청앞까지 막는 건 무슨 심술이냐고 투덜거렸다. 월드컵 열기에 편승한 인기위주의 정책이 아니냐고 정치적 배경을 의심하기도 했다. 우리에게는 원래 광장문화가 없었다고 역사적 통찰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우리에게는 광장문화가 없었다. 사실이다. 광장이 없던 때는 시청도 없었다. 아파트도 없고 자동차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전통적으로 광장문화가 없었기에 지금 광장이 무의미하다는 주장은 공허하다. 우리가 지금 기와집에 살아야 하고 도폿자락을 휘날리며 걸어다녀야 한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고종의 황제즉위식 때도, 인산일(因山日)에도 군중은 대한문 앞에 모였다. 전국노동자총궐기대회, 전국불조심경연대회를 비롯한 수많은 집회가 이곳에서 열렸다. 이한열 노제도 여기서 열렸다. 거기 참여한 이들은 모두 우리였고 아버지, 할아버지였다.



도시는 시대의 야심과 상상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 야심과 상상력이 물리적으로 가시화되어 쌓이면서 도시는 역사와 생명력을 동시에 갖게 된다. 서울시청 앞이 한국을 대표하는 장소라면 한국사회의 모습을 명쾌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건축은 공간으로 구현된 시대정신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광장이라는 단어가 함유하는 것 이상을 담을 수 있고, 또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공간이다. 서울은 전세계 어디에도 유례가 없는 상황을 현재진행형으로 보여주는 독특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인터시티그룹의 김형주, 박원근씨와 공동으로 현상공모 참가신청서를 냈다. 현상공모에 참여한다는 것은 광장을 만드는 데 동의한다는 의사표현이었다.

시청앞 광장의 교통문제는 심각하다. 이곳은 기형적인 교통광장이다. 소공로와 태평로를 잇는 도로를 빼고는 나머지 방향은 자동차들이 굽이굽이 돌아갈 길을 찾아야 한다. 꼬여 있는 미로요 엉켜 있는 실타래다. 그나마 광장의 많은 곳이 버려져 있다. 성탄절이나 석탄일에 불 켜진 구조물을 갖다놓는 데나 이용할 뿐이다. 풀어야 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보행자의 통행이다. 1926년 경성부청사가 들어선 이래 이곳은 장안 교통의 중심점이었다. 지금의 소공로인 하세가와조(長谷川町)가 바퀴형태로 교통량을 유입하는 파이프라인이었다.

대신 보행인은 길 옆으로 밀려났다. 광복 후에는 다시 지하로 밀려났다. 마주보이는 건너편까지 가려면 지하도를 몇 개씩 오르내려야 했다. 장애인, 외국인에게 이곳은 도심 속의 극기훈련장이나 다름없다.

도로를 유지하는 비용은 시민의 세금으로 충당한다. 시민은 자동차를 타고 이곳을 통과하는 시민뿐 아니라 묵묵히 걸어다니는 이들도 포함된다. 그 점에서 이곳은 좀더 공평해져야 한다. 자동차 공간의 한켠을 비워 보행인에게 내주어야 한다.

세상을 이어주는 모니터, 빛의 광장

작업이 시작됐다. 아침저녁으로 아이디어를 짜냈다. 이런저런 모양을 만들어보는 시행착오가 거듭됐다. 설계는 한국사회를 들여다보는 지점에서 계속 방황했다. 근대적 기관으로서 시청은 시민(citizen)과 관료(bureaucrats)를 전제로 존재한다. 근대의 민주사회는 관료라는 집단의 여과장치를 거쳐 행정을 집행한다. 이러한 대의적 시민사회는 20세기 말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그 도구가 인터넷이다. 이전에 시민의 목소리가 최고위 행정관료에게 전달되려면 겹겹이 쌓인 관료집단을 수직적으로 통과해야 했다. 그 과정에 분명 왜곡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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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서 현 한양대학교 교수·건축학 hyunseo@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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