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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리포트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 어디까지 왔나

‘방탕아’ 김정남 탈락, ‘범 생이’ 김정철 유력

  • 글: 이기동 통일정책연구소 연구위원 kdlee011@nate.com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 어디까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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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방 이후 30년간 지배체제를 공고히 했던 김일성 주석은 1970년대 김정일 후계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다시 30년이 흐른 지금 ‘포스트 김정일’ 체제가 가시화하고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김 위원장의 뒤를 이을 인물은 과연 누구이며, 후계작업은 어느 단계에 와 있을까.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 어디까지 왔나
‘새로운 시대’. 최근 북한의 보도매체들이 연이어 쏟아내고 있는 말이다. 이름하여 선군(先軍)시대라는 것이다. 김일성 주석 사망 직후 김정일 위원장이 강조하던 “나에게서 0.001mm의 변화도 기대하지 말라”는 언명은 ‘새로운 시대’라는 언명과 더불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 것일까. 새로운 시대는 과연 어떤 시대를 의미하는가.

‘새 시대’라는 말에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사조와 세대교체다. 사조로 따지자면 말 그대로 선군정치, 선군사상 등 북한 사회를 풍미하고 있는 ‘선군’ 담론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세대교체를 살펴보자면 지난해 제11기 1차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단행된 부분적인 당·정·군 엘리트의 교체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라는 말에 눈길이 가는 것은 세대교체의 징후가 보다 높은 차원, 즉 최고지도자의 후계자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즉 ‘새로운 지도자를 맞이하는 새로운 시대’인 것이다.

2003년 벽두 공식화된 ‘선군사상’이라는 말은 올해 들어 온 사회에 걸쳐 ‘일색화’되어야 할 이념체계로 독려되고 있다. 북한에서는 현재 군사를 우선시하고 군대를 혁명의 주력군으로 삼는다는 선군정치를 선군사상으로 포장해 주민들의 머릿속에 각인시키려는 작업이 한창이다. 이는 흡사 1970년대 김일성주의로 전체 사회를 일색화함으로써 ‘수령’ 유일지배체제를 강화하였던 것과 같은 방식이다. 이를 통해 ‘장군’ 유일지배체제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임을 유추해내기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선군시대 개막과 함께 놓쳐서는 안 될 포인트는 지금까지 북한에서 유일지배체제 확립을 정당화하는 논거로 활용되어온 수령론이 퇴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후계자론에 따르면 수령의 후계자는 혁명과 건설에서 수령의 절대적 지위와 결정적 역할을 완전하게 계승하도록 되어있으나, 김정일 위원장 본인은 이미 수령의 완전한 계승자가 되기를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김 위원장은 김일성을 영원한 수령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수령이라는 호칭 대신 ‘최고사령관’ ‘위대한 령도자’와 함께 ‘장군님’으로 불리고 있다. 카리스마적 권위 형성에서 호칭이 갖는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김정일 위원장은 수령의 카리스마적 권위를 전수받기보다는 ‘장군님’의 카리스마적 권위를 창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북한은 ‘수령·당·대중의 일심단결’을 절대불변의 진리인 것처럼 역설해 왔으나 최근 들어 ‘혁명의 수뇌부를 핵으로 하는 당·군대·인민의 일심단결’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수령이라는 호칭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혁명의 수뇌부와 군대가 등장한 것은 간과해서는 안 될 중대한 변화다.



김정일 위원장은 김일성 사망 후 3년상(喪)을 선포한 바 있다. 3년상이 끝난 후 김 위원장은 기존의 수령론을 자신에게 덧입히는 것이 아니라 선군정치라는 독특한 정치방식을 들고 나왔다. 어차피 김일성 주석의 ‘수령’으로서의 카리스마적 권위를 완전히 물려받지 못할 바에야, 아예 김일성을 영원한 수령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후계자’로 남아 혁명위업을 계승해 나간다는 명분을 세우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수십 년 세월 동안 인민들에게 각인돼온 ‘수령’이라는 신성화된 권위 대신 ‘장군님’이라는 세속화된 권위로 대체했던 것이다.

후계구도 가시화, 이미 늦었다

이 같은 배경을 바탕으로 살펴보면 ‘포스트 김정일’ 체제의 윤곽이 잡힌다. 김정일 이후체제에 대한 관심이 처음 대두된 것은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 직후. 후계자가 최고권력자가 되자마자 다시 그의 후계문제에 관심이 쏠린 것은 김일성-김정일 권력승계가 조선시대 세자 책봉처럼 세습의 양상을 띠었기 때문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대략 1980년대 후반이나 1990년대 초반무렵 ‘포스트 김정일’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을 것으로 필자는 판단한다. 물론 자신들의 권력승계 과정을 참고했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잇따른 붕괴와 소련의 해체, 서독의 흡수통일을 지켜보면서 후계문제를 미리 해결했기에 자신들은 건재할 수 있었다는 안도를 느끼는 한편 포스트 김정일 문제에 대한 논의 필요성을 감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마치 1950년대 후반 흐루시초프에 의한 스탈린 격하운동과 스탈린 우상물에 대한 소련인민들의 훼손 장면을 목격하면서 김일성이 후계문제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던 것과 같은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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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기동 통일정책연구소 연구위원 kdlee011@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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